보졸레 누보가 지난 11월 20일 출시되었다. 프랑스 보르고뉴 지방 보졸레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은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에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출시된다. 이것은 일종의 마케팅이다. 보졸레 지역의 땅이 황폐해서 피노누아 등 좋은 포도 품종을 심을 수가 없자, 와인생산업자인 조르주 두보프가 장기간 숙성시킬 수 없는 가메이라는 품종을 심어서 9월에 수확한 후 4주-6주 정도 아주 짧은 숙성기간을 거쳐 햇와인으로 내놓는 것이 보졸레 누보다.
보졸레 누보는 화려산 루비 색상을 띄고 있고 떱떠름한 탄닌 성분이 많지 않아 와인의 깊은 맛은 없지만 딸기향 등 과일향이 풍부해서 가볍게 마시기 좋다. 올해 보졸레 누보는 당도가 다른 해보다 많아서 스파게티나 피자와 같이 먹으면 좋다고 한다..
와인은 어렵다.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와인은 섬세한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여러가지 품종의 포도를 섞는 배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하고, 똑같은 배율로 와인을 만들더라도 포도가 재배된 그 해의 햇빛과 강우량 등 날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최근 트랜드를 반영한 영화들에서는 와인이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년)에서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뉴욕 시내를 전전하며 마시는 와인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키안티에서 생산되는 듀칼레 리제르바이다. 와인 전문지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뉴욕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이다.
와인에 관한 가장 인상 깊은 최초의 영화는 와인잔을 부딪치며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외쳤던 [카사블랑카](1942년)일 것이다. 그 와인은 코르동 루주 브뤼이다. 하지만 모로코를 떠나야만 하는 잉그리드 버그만은 자신을 붙잡는 카페 주인 험브리 보가트에게 [뵈브 클리코라면 남겠어요]라는 명언을 던진다. 레지스탕스를 뒤쫒는 프랑스 경찰서장도 [아주 뛰어난 프랑스산 와인]이라면서 뵈브 클리코 1926년 빈티지를 주문한다.
뵈브 클리코는 [카사블랑카]에서 반 세기가 더 지나 만들어진 [섹스 앤더 시티](2008년)에도 등장한다. 섹스 칼럼을 쓰는 사라 제시카 파커가 자신의 칼럼 광고가 버스에 실리자, 친구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축배를 드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그녀들이 마시는 와인이 뵈브 클리코다. 뵈브 클리코는 시크한 엘로우 라벨도 있지만,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수상작인 [바베트의 만찬]에 등장하는 우아한 맛의 뵈브 클리코 매그넘도 유명하다. 강렬한 바나나향이 혀에 닿는 산뜻한 감촉이 일품인 뵈브 클리코는 특히 여성들의 성공을 기원하거나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며칠전 개최된 청담동 A.O.C의 와인 탱고파티도 뵈브 끌리코만 마시는 파티였다.
보졸레 누보 같은 프랑스산 와인이 최고로 알려져 있지만, 눈을 가리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산 와인이 1위부터 5위를 차지해서 프랑스 와인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1976년 파리 교외에서 있었던 [파리의 심판]을 다룬 영화가 [와인 미라클](원제 Bottle Shock)이다. 총각파티를 떠난 두 남자가 와인 생산지 산타바바라에서 만난 두 명의 여성과의 이야기를 그린 알렉산더 폐인의 [사이드 웨이](2004년)나, 프로방스를 무대로 한 피터 메일의 원작소설 영화 [어 굿 이어](2006년) 등 지금까지 만들어진 와인 소재의 어떤 영화들보다도, 와인 자체의 이야기에 가장 밀접히 접근해 있다. 허구적 구성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와인 미라클]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와인 미라클]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에 대한 예찬론에 가깝다. 그래도 사람들은 보졸레 누보를 마신다. 우리나라에서는 편의점에서도 보졸레 누보를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