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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東夷) 악(樂)【韎】은,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
[‘매(韎)’란 동방종족(東方種族) 악(樂), 동이(東夷) 악(樂), 곧 천하(天下)]
2025년 04월 13일
◎ 오늘(今日)의 주제(主題)는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음악(音樂)】인 “매(韎)”에 대해서 설명(說明)해 보기로 한다.
㈠ 여기서 우선(于先), 「동방(東方)」이란 “범위(範圍)”를 알아야 한다. 통상적(通常的)으로 “사해(四海)”란 4개의 바다(海)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海)와 같이 넓은 네 개의 땅”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서방(西方), 동방(東方), 북방(北方), 남방(南方)”의 사방(四方)」을 말하는 것이니만큼 “한반도(韓半島) 또는 조선반도(朝鮮半島)”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이야기다.
㈡ 여기에 “종족(種族)”을 더하면 바로 “동방종족(東方種族)”이 된다. 「동방종족(東方種族)이란 바로 동이(東夷)를 말하는 것이고 이는 곧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이며, 한(韓)을 말하는 것이다.」
「동방(東方)은 곧 반도(半島)」라는 인식(認識)은, 20세기(世紀) 초 일제(日帝)가 조선사(朝鮮史)를 반도(半島)에 심고, 만들면서 만들어낸 조작(造作)된 해설(解說)로, ‘한글’ 해설서(解說書)에서만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동방(東方)이 반도(半島)」란 말은, 서방【西方 : 서역(西域)】은 중국(中國)이 되는 것이고,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는 서서국(西西國)’이 되고, ‘구라파(歐羅巴)는 서서서국(西西西國)이 되어야 할까?’ 「한마디로 ‘미친놈’들이 지랄발광(癎疾發狂)」을 떨며 헛소리하는 것이다.
㈢ 「해국도지(海國圖志) 국지총론(國地總論)」에서 이르기를 : 「중화(中華)는 총령(葱嶺) 동(東)에 있다【夫中華在蔥嶺之東】」라고 하였는데, 또한 이르기를 「자고(自古)【예로부터】 이래(以來) 진단(震旦)은 중국(中國)【故自古以震旦為中國】」이라고 하였다. 곧,
海國圖志 國地總論 이르기를(曰) : 「총령(蔥嶺) : 곤륜(崑崙) : 불주산(不周山) : 아누달산(阿耨達山) : 천주(天柱)」라고 하였는데, 「夫中華在蔥嶺之東,則山脈自西來,愈西愈高,高至蔥嶺而止,西洋在蔥嶺西,則山脈自東往,愈東愈高,亦高自蔥嶺而始。山居東西正中。: 중화(中華)는 총령(蔥嶺)의 동(東)쪽에 있다. 산맥(山脈)이 서(西)쪽에서 오는데, 점점 서(西)쪽으로 점점 더 높게, 높은 것은 총령(葱嶺)에서 멎었는데, 서양(西洋)은 총령(蔥嶺)의 서(西)쪽이며, 산맥(山脈)은 동쪽으로 오고 가는데, 점점 동(東)쪽으로 점점 높게, 또한 높은 것은 총령(蔥嶺)에서 비롯된다. 산(山)【총령(葱嶺)】은 동서(東西)의 정(正)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라고 하였다.
【“진단(震旦)”이란 바로 : “해가 뜨는 동방(東方)을 뜻하는 말이고, 또한 발해(渤海)의 동(東)쪽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곧 옛 조선(朝鮮)을 말하는 뜻이다. 진단(震旦)은 “한족(漢族)과는 전혀 관계(關係)가 없는 말이다”】
❶ 「총령(葱嶺) 동(東)쪽은 “동양(東洋 : 東方)”이며, “중화(中華)=진단(震旦)”이다」
➋ 「총령(葱嶺) 서(西)쪽은 “서양(西洋 : 西方)”이며, “서이(西夷)=서융(西戎)”이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區分)한 것은 “총령(葱嶺)은, 천하(天下)의 중심(中心)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➌ 이래서 「동방(東方)이 반도(半島)란 말은 잘못된 것 곧 큰 오류(誤謬)다」라는 것이고, 바로 일제(日帝)가 반도(半島)에 옛 조선(朝鮮)을 만들어 놓고, 식민통치(植民統治)를 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작(造作)된 역사(歷史)다.
「해동(海東)」이란 말 역시(亦是) 똑같은 경우(境遇)다. ‘한자사전(漢字辭典)’을 찾아보면 : 「해동(海東) : ‘발해(渤海)의 동쪽(東-)’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우리나라”란 말은 곧 반도(半島)를 지칭(指稱)한다고 하는데, 이는 20세기(世紀) 초(初)에 출현(出現)한 역사해설(歷史解說)일 뿐이다.
지세(地勢)를 보자. 「“발해(渤海)”의 동(東)쪽이 아닌 “황해(黃海)”의 동(東)쪽 땅이 한반도(韓半島) 땅이 된다.」이건 “초딩”들도 지도(地圖)를 보면서 : 두 손 번쩍 들어 “나요, 나요, 나요”할 것이다. 이 말은 「반도(半島) 사학(史學)은 ‘초딩’들 수준(水準)보다도 더 떨어진다」라는 이야기다.
「해동(海東)」이란 : 「지중해(地中海)의 동(東)쪽 땅을 지칭(指稱)한다.」 「북사(北史)에서 말하고 있는 “발해(渤海)는, 곧 흑해(黑海)”다.」
지중해(地中海)와 연결(連結)된 바다로 「흑해(黑海)는, “동발해(東渤海)”요, 서(西)쪽의 지중해(地中海)는, 서발해(西渤海)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당시(當時)의 이 기록(記錄)을 반박(反駁)할 수 있는, 반론(反論)할 수 있는 당시(當時)의 기록(記錄)이 있을까?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當時)에는 다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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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은 “매(韎)”라고 부른다」라고 하였으니, 동방종족(東方種族)에 “한족(漢族)”은 없다. ‘한족(漢族)’은 없고, ‘동이(東夷), 구이(九夷), 한(韓)’이 있을 뿐이다. 이게 뭔 말인가 하면 「“동방종족(東方種族)”이란 바로 “동방(東方) 땅에 사는 백성(百姓)들의 악(樂)”이란 것이고, 여기에는 이민족(異民族)은 낄 자리가 없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방종족(西方種族)의 악(樂)은 주리(侏離)요, 북방족(北方族)의 악(樂)은 금(禁)이요, 남방족(南方族)의 악(樂)은 임(任)이라고 한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 「동방(東方)」의 의미(意味), 쓰임 예(例) : 속동문선(續東文選) 제17권 / 가요(歌謠) 기로가요(耆老歌謠) / 김흔(金訢) 【출처(出處) : 한국고전번역원 DB】
「天祚東方, 篤生我王 : 하늘이 우리 동방(東方)을 도우시어, 돈독히 우리 임금을 내시어. 受命溥將, 在疚嬛嬛 : 큰 명령을 받게 하였네. 상에 계신 외로움 몸… …중략(中略)」하였는데,
위의 “글”에서 「동방(東方)」은, 한반도(韓半島)를 지칭(指稱)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그저 “동방(東方)”이라 하였고, 이 동방(東方)에 있는 나라【왕조(王朝), 국가(國家)】는 “하늘의 은혜(恩惠)를 입었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천조(天祚)」란, 「천자(天子)의 지위(地位) 또는 하늘(天)이 내린 복(福), 하늘(天)이 내려준 은혜(恩惠)를 입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옛 왕조(王朝)가 한반도(韓半島)에서 반만년(半萬年)을 이어오며 「❶ 하늘(天)의 복(福)을 받고, 은혜(恩惠)를 받아 신주(神州)를 두고 천자(天子)가 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➋ 하늘(天)의 선택(選擇)을 받지 못해 버림을 받고, 대국(大國)인 천조(天朝)를 대대손손(代代孫孫) 섬기는 한갓 사대사상(事大思想)에 찌들고 찌든 제후(諸侯)의 약소국(弱小國)이었다는 것인가?」
그러나 “위의 글”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은, 「동방(東方)에 있는 아국(我國) 곧 우리나라는 하늘(天)의 은혜(恩惠)를 입고, 하늘의 부름을 받아 돈독(敦篤)하게 천자(天子)를 내시었다」라는 뜻이다.
➨➨ 동방(東方)과 한반도(韓半島)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동방(東方)에 있었던 것이지, 한반도(韓半島) 땅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동방종족(東方種族)을 반도(半島) 땅 종족(種族)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겠는가!」 그러나 실제(實際) 반도(半島) 땅의 학계(學界)에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역사해설(歷史解說)이라고 불리며 이걸로 먹고 사는 부류(部類)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社會)가 바로 우리 사회(社會)다.
그런 실정(實情)이니 보니, 「종교(宗敎) 특히 기독교(基督敎)를 빙자(憑藉)한 민주주의(民主主義)를 거부(拒否)하는 “극우주의자(極右主義者)”들이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자(者)들을 꼬드겨 “태극기(太極旗)+성조기(星條旗)+이스라엘기”를 나누어 주고는 흔들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특히 이런 와중(渦中)에도 종교(宗敎)를 빙자(憑藉)한 “돈벌이”에 열심(熱心)인 것을 보면 : 돈벌이를 위한 것인지… …극우(極右) 파시즘을 위한 것인지 분간(分揀)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무리를 교화(敎化)하는 것이 바로 ‘계몽(啓蒙) 대상(對象)’인 것이다” 「“지 0”도 모르는 놈들이 “지 0”을 잡고 엉뚱한 ‘계몽(啓蒙)’이란 한국말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여기에 「“보수(保守)의 올바른 뜻도 모르는 사이비(似而非) 보수우파(保守右派)”들까지 이런 난장(亂場)에 난입(亂入)하여 ‘꼴불견(不見)’을 연출(演出)하고 있다.」 “보수우파(保守右派)”를 자칭(自稱)하려면 최소한(最小限) “보수(保守)”란 올바른 뜻과 “우파(右派)”의 진정(眞正)한 뜻이나 의미(意味) 정도(程度)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윤(尹)” 아무개처럼 : 「스스로 현안(懸案)을 해결(解決)할 노력(努力)이나 노력(勞力)은 하지 않고, 무능력(無能力)하게, 무책임(無責任)하게 무작정(無酌定), 맹목적(盲目的), 무대포로 권한(權限)만을 행사(行事)하는 짓거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헛빨짓’일 뿐이며, 자신(自身)을 파멸(破滅)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스스로 망(亡)치는 암세포(癌細胞)와 같아, 스스로 생명(生命)을 갉아먹으며 죽어가는 것이다.
「“윤(尹) 아무개”는, 지금(只今), 이를 ‘82억 인류(人類)’ 앞에서 “생방송(生放送)으로 이를 증명(證明)하고 있잖은가!”」 이건 몇 세기(世紀)에 걸쳐 볼 수 없는 희귀(稀貴)한 생방송(生放送)이었음을 장담(壯談)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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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명(朝代名)』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을 풀어보면 두 가지 뜻을 내포(內包)하고 있다. 즉(卽),
➊ 조대명(朝代名) : ‘조(朝)’를 조선(朝鮮)의 ‘조(朝)’자(字) 뜻으로 보면 : 「조선왕조(朝鮮王朝) 또는 조선(朝鮮)의 대명사(代名詞)」란 뜻으로 「많은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옛 왕조(王朝)들은, 조선(朝鮮)을 이은 나라」란 뜻이 된다.
➋ 조대명(朝代名) : ‘조(朝)’를 뒤에 붙여 왕조(王朝) 또는 조정(朝廷) 곧 조당(朝堂)을 말하는 것이니, 여러 「왕조(王朝)의 이름, 조정(朝廷)의 이름」을 뜻한다.
➨ ① “조(朝)” : [출처(出處) : 네이버 한자사전] :‘朝’자(字)는, ‘아침(朝)’이나 ‘왕조(王朝)’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朝’자는 艹(풀 초) 자(字)와 日(해일) 자(字), 月(달 월) 자(字)가 결합한 모습이다. ‘朝’자의 갑골문을 보면 초목 사이로 떠오르는 해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달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태양과 달이 함께 있다는 것은 이른 아침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소전에서는 月자 대신 舟(배 주)자가 잘못 그려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月’자로 표기되었다. ② “조(朝)” [접미사(接尾辭)] : 왕명(王名)이나 왕조(王朝)를 나타내는 말의 뒤에 붙여 통치기간(統治期間) 또는 왕조(王朝)를 나타내는 말이다.
➌ 이러한 “조대명(朝代名)”이라는 말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 편에서 설명(說明)하고 있는 대부분(大部分)의 중국(中國) 땅에 있었던 왕조(王朝)들을 나타내는 말로 “조대명(朝代名)”이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예(例)를 들면 : 〈한(漢) : 조대명(朝代名), 당(唐) : 조대명(朝代名)〉 이런 식(式)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㈠「“한(漢)은, 조선(朝鮮)의 다른 이름”」이라는 뜻과 ㈡「“한(漢)은, 한(漢) 왕조(王朝) 즉(卽)” 왕조(王朝)의 대명사(代名詞), 이름」을 뜻하는 말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이다.
➍ 「國臺對照活用辭典」에서는 : [예를 들어] / 「秦」[名] ① 周代國名,七雄之一。② 朝代名(公元前二二一∼二○六)。③ 朝代名,前秦。④ 朝代名,後秦。⑤ 朝代名,西秦。⑥ 陝西省之別名。
이는 곧 조대명(朝代名)이란 이어지는 왕조(王朝)를 의미(意味)한다는 뜻임으로 사용됐다는 것이고, “별명(別名)으로 섬서성(陝西省)을 뜻한다”라고 하는 것은, 곧 옛 “장안(長安)”을 말한다고 보는데, 이는 「장안(長安)에 도읍(都邑)한 왕조를 뜻한다」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只今)까지도 “조대명(朝代名)”이라는 뜻이 무엇을 의미(意味)하는가? 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증(考證)할 수 있는 고전(古典) 기록(記錄)이 없기 때문에 설왕설래(說往說來)만이 ‘왁자지껄’할 뿐이다.
➎ 중요(重要)한 것은, “조대명(朝代名)”이란 : 「위의 글 “➍”의 예(例)를 보듯이 “조선(朝鮮)의 뒤를 이은 왕조(王朝), 또는 조선(朝鮮)의 다른 이름(異名)”으로 쓰였다」라고 봐도 무방(無妨)하다는 것이다.
곧, 소위(所謂) 「중국(中國)」이란 나라 이름(國名)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朝鮮) 천자(天子)가 사는 천하(天下)의 중심(中心), 중토(中土)를 말하는 것이고, 조선(朝鮮)의 천자(天子)만이 유일(惟一)하게 존재(存在)했다」라는 뜻과 같다.
이러한 필자(筆者)의 조선사(朝鮮史) 해설(解說)은 올바른 것이며, 사실(史實)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고, 아래의 「악(樂)」에서도 이를 확인(確認), 증명(證明)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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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樂)」이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중요(重要)한 역할(役割)을 한 것이다」라고 보여지는데, 특히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은 “매(韎)”【동방종족(東方種族)의 음악(音樂)의 이름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東史綱目 3 上
◆ 東史綱目 3 上 / 辛未年 (新羅, 眞興王 12年. 高駒驪, 陽原王 7年. 百濟, 成王 29年. 北齊 文宣帝 天保 2. AD 551)
〈春正月。新羅。改元開國。加耶樂師于勒。投新羅。; 춘(春) 정월 신라(新羅)가 연호(年號)를 개국(開國)으로 고쳤다. 가야(加耶) 악사 우륵(于勒)이 투항(投降)하였다〉라고 하였다.
〈按子曰樂云樂云。鍾鼓云乎哉。孟子曰。今樂由古樂。先儒謂樂是一箇和。【안】공자가 이르기를, “음악이라 음악이라 말하지만, 종(鐘)과 북[鼓]을 말한 것이겠는가?” 하였고, 맹자가 이르기를, “지금의 음악은 옛날 음악과 같은 것이다.” 하였으며, 선유들이 이르기를, “음악은 하나의 화(和)이다.” 〉하였다.
〈由是觀之。則和爲樂之本也。聲器其末也。如使政成人和則巴渝下里。足以爲樂。苟或政乖人怒則咸韺韶頀。適足以增怨。眞興之言。可謂得矣。然而殫財佞佛。無有窮已則其所謂政。可知矣。이로 미루어 보건대, 화(和)는 음악의 근본(根本)이요, 악기는 지엽(枝葉)이다. 예컨대, 정치가 이루어지고 백성들이 화평하면 파유(巴渝)같은 시골의 것이라도 음악이 될 수 있고, 혹 정치가 문란하고 백성들이 조화되지 못하면, 함(咸 황제(黃帝)의 음악)ㆍ영(韺 제곡(帝嚳)의 음악)ㆍ소(韶 순(舜)의 음악)ㆍ호(頀 탕(湯)의 음악)라도, 마침내 백성들의 원망만 더해줄 뿐이니, 진흥왕(眞興王)의 말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진흥왕은 국가의 재물을 털어서 부처 받들기를 마지않았으니, 그의 정치는 알 만한 것이다.〉
〈更按樂者。天地之和氣也。人禀天地之氣以生。無論華夷。其本然之和則未甞已也。夫嬰兒之歡咲。童子之謳吟。皆樂之始也。方隅雖別。爲樂則同。夏商之際。東夷甞獻其樂舞矣。: 다시 상고하건대, 악이라는 것은 천지의 화(和)한 기운이다. 사람은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났다.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물론하고 본연의 화(和)는 일찍이 그침이 없는 것이다. 대저 갓난아이가 기뻐하며 웃고, 동자(童子)들이 노래하고 읊조리는 것이 모두 악(樂)의 시초인 것이다. 국가[方隅]는 비록 다를지라도 음악은 같은 것이다. 하대(夏代)와 상대(商代)에 동이(東夷)가 악(樂)과 무(舞)를 바친 일이 있었다.〉
〈周禮東夷之樂曰侏㒧。言陽氣所通。萬物離地而生也。: 주례(周禮)에, “동이(東夷)의 악(樂)은 주리(侏㒧)인데 양기(陽氣)가 통하는 곳에는 만물이 땅에서 생겨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매(韎)…임(任)…주리(侏㒧)…금(禁)」
○ 「주례(周禮) 춘관(春官) 제루씨(鞮鞻氏)」에 실린 ‘정현(鄭玄)의 주(注)’에 「사이(四夷)의 음악(音樂)」은, 「동방(東方)의 음악은 매(韎)라고 하고, 남방(南方)의 음악은 임(任)이라 하고, 서방(西方)의 음악은 주리(侏離)라고 하고, 북방(北方)의 음악은 금(禁)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東方曰韎, 南方曰任, 西方曰株離, 北方曰禁.】
「예기(禮記) ‘명당위(禮ㆍ明堂位)’에 “매(昧)는 동이(東夷)의 음악(音樂)이고, 임(任)은 남만(南蠻)의 음악(音樂)이다”【昧東夷之樂也, 任南蠻之樂也】」라고 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經史篇 經傳類 / 樂 / 聲音爲樂辨證說 : 「《禮ㆍ明堂位》。言昧。東夷之樂也。《周禮》。韎師。掌敎韎樂也。韎卽昧也。任。南蠻之樂也。獨西戎北狄之樂。不見於經。」
海東繹史卷第二十二 / 樂志 / 樂制樂器 : ➨ 昧。東夷之樂也。任。南蠻之樂也。【禮記明堂位】
… 春官韎師。掌敎韎樂。祭祀則帥其屬而舞之。大饗亦如之。【周禮。注舞之以東夷之舞】 … 東夷之樂曰佅。持矛助時生。南夷之樂曰任。持弓助時養。西夷曰株離。持鉞助時殺。北夷曰禁。持楯助時藏。皆於四門之外右辟。【孝經鉤命决】
… 南夷之樂曰兜。西夷之樂曰禁。北夷之樂曰昧。東夷之樂曰離. 萬物微離地而生也。【白乕通】
… 先王樂。貴能包而用之。納四夷之樂者。美德廣之所及也。東夷之樂曰侏離。南蠻之樂曰任。西戎之樂曰禁。北狄之樂曰昧。其聲不正。作之四門之外。各持其方兵。獻其聲而已。自周衰。此禮卽廢。【通典】玉海虞傳云。陽伯之樂舞株離。則東夷之樂。亦名株離。
● 옛 고전(古典)에서는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에 대한 명칭(名稱)에 대해서 많은 기록(記錄)은 「매(韎)」라고 말하고 있는데… …일부 선인(先人)들은 「주리(侏離) 또는 주리(株離)라고 한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록(記錄)은 세심(細心)하게 살펴볼 필요(必要)가 있다.
㈠ 유일(唯一)하게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음악(音樂) 명칭(名稱)에 대해서만이 “「서방(西方) 악(樂) 주리(侏離)」와 「동방(東方) 악(樂)인 매(韎)」가 함께 사용(使用)되었다”라고 하는 기록(記錄)을 보면 :
㈡ 동방종족(東方種族)인 동이(東夷), 구이(九夷)는 「본래 서방(西方)에서 시원(始源)하였으니, 그 악(樂)을 “주리(侏離)”라고 지칭(指稱)했으나, 해(日)가 뜨는 동(東)쪽 양곡(陽谷)의 땅을 찾아 오랜 세월 동천(東遷),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총령(葱嶺)=곤륜(崑崙)=불주산(不周山)’의 동(東)쪽 땅에 정착(定着)하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동방종족(東方種族)의 그 악(樂)은 “매(韎)”가 된 것이다」라는 설명(說明)이 가장 합리적(合理的)이다. 북방(北方 : 禁)과 남방(南方 : 任)의 ‘악(樂)’에서는 이러한 예(例)가 없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證據)다.
예(例)를 들어보자.
〈按靑邱風雅。: 살펴보건대 청구풍아(靑邱風雅)를 보면 : 「箕子旣就封朝鮮。敎民以禮樂。厥陋用化。百姓懷之。作至德歌以頌曰。河水潑潑兮。曷維其極兮。日月休光兮。維后之懿德兮。: 기자가 이미 조선(朝鮮)에 봉해져서는 백성들에게 예악을 가르쳐서 비루하였던 풍속을 교화시켰다. 이에 백성들이 그것을 생각하여 지덕가(至德歌)를 지어서 불렀는데,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河水潑潑兮, 曷維其極兮. : 하수(河水)가 넘실 넘실댐이여, 어찌 그 끝이 있으리오. 日月休光兮, 維后之懿德兮 : 해와 달이 아름답게 빛남이여, 임금님의 아름다운 덕이로다」하였다고 하였다.
곧 기자조선(箕子朝鮮)이 주무왕(周武王)에게서 봉(封)해진 그 땅에 “하수(河水)가 남실 넘실대며 끝없이 흐르는 땅에 있었다”라는 것을 후인(後人)들에게 알려주는 대목이다.
반도(半島) 북부지방(北部地方)에 하수(河水)가 넘실넘실 끝없이 흐르는 곳이라고 하면 : 「이곳 땅 하수(河水)가 넘실대며 흐르는 중원대륙(中原大陸)도 크게 보면 역시(亦是) “반도(半島)” 땅이다.」
곧 북(北)쪽, 동(東)쪽, 남(南)쪽의 3면(面)은 바다에 임(臨)하고, 【북(北)쪽에는 북극해(北極海)요, 동(東)쪽에는 동해(東海)요, 남(南)쪽에는 남해(南海)에 막히며, 오로지 서(西)쪽만이 육지(陸地)로 연결(連結)되는 지형(地形)이다】서(西)쪽만이 유일(惟一)하게 뭍(陸地)으로 연(連)하는 지형(地形)이다. 반론(反論)할 수 있는 여지(餘地)조차 없는 해설(解說)이다.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하수(河水)가 흐르는 땅에, 숭산(嵩山)이 서 있는 땅에 있었다」라는 것이다. 이건 부정(否定)할 수 없는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이다.
예나 근대(近代)에나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한반도(韓半島) 땅에 도읍(都邑)을 두고 반만년(半萬年) 태평성세(太平聖世) 혹(或)은 옥촉조화(玉燭調和)【사철(四-)의 기후(氣候)가 화창(和暢)하여 일월(日月)이 환히 비침을 말하는 것이니, 곧 태평성세(太平聖歲)를 이르는 말이다. 또 부부(夫婦)가 화목하게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를 구가(謳歌)한 적이 없다.
예나 근대(近代)에나 “조선왕조(朝鮮王朝)”는, 중원대륙(中原大陸)이 근거지(根據地), 거점지지(據點之地)였다는 것은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이다.
한반도(韓半島) 땅, 그 어느 곳에서도 “예나 근대(近代)에나 조선왕조(朝鮮王朝)의 흔적(痕迹), 그 정황(情況), 그 유물유적(遺物遺跡) 등 어느 것, 하나 드러난 것이 없다.” 「유일(惟一)【오직 하나밖에 없음】하게 존재(存在)한다」라는 것은, 「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이 만들어 놓은 “한글【‘한글’이라는 말도, 최근(最近)의 주시경 선생과 국어연구학회 회원들에 의해 명명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언문(諺文)】해설서(解說書)”뿐이다」
❶ 「주리(侏離)」란 「서방종족(西方種族) 악(樂)의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은 ‘매(韎)’」라고 했기 때문이다. 서방(西方)과 동방(東方)을 종횡무진(縱橫無盡) 활동(活動)했던 종족(種族)이었다는 것으로 해석(解釋)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大部分) 고전(古典)에서는 “동방(東方) 악(樂)은, 매(韎)라고 하였지만 몇 종류(種類)의 소수의견(少數意見), 견해(見解)에 ”동방(東方) 악(樂)은 주리(侏離)라고 하였다“
➋ 만약(萬若)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음악(音樂)을 주리(侏離)”라고 했다면 : 이는 다른 각도(角度)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즉(卽) 본시(本是) “주리(侏離)”란 서방(西方)에 사는 종족(種族)들의 음악(音樂) 이름이었다면 : 동이(東夷)는 본래(本來) 서방(西方)에 살고 있었다는 해설(解說)이 가능(可能)해진다.
➌ 따라서 본시(本是)에 서방(西方)에서 시원(始源)했기 때문에 “주리(侏離)”란 이름으로 불렸으나, 양곡(陽谷)의 땅을 찾아 동천(東遷), “동방(東方) 땅에 정착(定着)하게 되자” 다시 이를 “매(韎)”라고 부르며, 이는 “만물(萬物)의 성장(成長)하는 악(樂)”으로 불린 것이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동방종족(東方種族)인 ‘동이(東夷) 곧 구이(九夷)’들만이 ‘서방(西方)과 동방(東方)’ 수만리(數萬里)를 아울렸다는 곧 「천하(天下)」를 상징(象徵)하는 것이다.
➍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이라는 말은, 곧 천하(天下)와 같은 말로, 만물(萬物)의 성장(成長)은 하늘(天)에게 부여(附與)된 최고(最高)의 권한(權限)이다. 이를 대신(代身)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은 바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과 같은 이치(理致)다”
곧 「동방종족(東方種族)이 있는 곳이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곳이니, 곧 천하(天下)의 중심(中心) 중국(中國)이요, 천자(天子)가 사는 곳이며, 이곳이 화(華)요, 적현신주(赤縣神州)가 되는 것이다.」 이를 대신(代身)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즉(卽) 〈주례(周禮)에, “동이(東夷)의 악(樂)은 주리(侏㒧)인데 양기(陽氣)가 통하는 곳에는 만물이 땅에서 생겨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구절(句節) 중에서 「동이(東夷)의 악(樂)은 주리(侏離)」라는 말은 잘못된, 오류(誤謬)라는 것은, 소극적(消極的)인 역사해설(歷史解說)일 수밖에 없다.
본시(本是)에 서방(西方)에서 시원(始源)했기 때문에 “주리(侏離)”란 이름으로 불렸으나, 양곡(陽谷)의 땅을 찾아 동천(東遷), “동방(東方) 땅에 정착(定着)하게 되자” 다시 이를 “매(韎)”라고 부르며, 이는 “만물(萬物)의 성장(成長)하는 악(樂)”으로 불린 것이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동방종족(東方種族)인 ‘동이(東夷) 곧 구이(九夷)’들만이 ‘서방(西方)과 동방(東方)’ 수만리(數萬里)를 아울렸다는 곧 「천하(天下)」를 상징(象徵)하는 것이다.
그 예(例)를 보면 「“선비족(鮮卑族)”【오환(烏丸)도 포함(包含)】은, 조선족(朝鮮族) 곧 동방종족(東方種族)과 ‘이웃사촌(四寸)’이며, 형제(兄弟)와도 같았던 종족(種族)이자 부족(部族)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선비족(鮮卑族)”【오환(烏丸)도 포함(包含)】은 서방종족(西方種族)이다. 물론(勿論) 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펄쩍펄쩍 뛸 일이지만 : “선비족(鮮卑族)”【오환(烏丸)도 포함(包含)】은 서방종족(西方種族)이다. 이건 변(變)할 수 없다.
서방종족(西方種族)인 선비족(鮮卑族)과 ‘이웃사촌(四寸)이니 형제(兄弟)와도 같다’라는 말은 : 동천(東遷) 과정(過程)에서 선비(鮮卑)는 제외(除外)되어 서방(西方) 땅에서 그대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수천(數千) 년(年) 전(前)의 사건(事件)이었음을 감안(勘案)하지 않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은, 해발고도(海拔高度) 수천(數千) 미터의 산맥(山脈)과 삐쭉삐쭉 뻗어있는 험(險)한 봉우리(峰)에서 노를 저으며 가고자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者)들이다.
【‘선비(鮮卑)가 서방족(西方族)’이라는 근거(根據)는 이미 카페(Cafe)에 게재(揭載)되어 있다. 다음 게재(揭載) 회(回)에, 그들의 ‘먹사니즘【인간(人間)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 인간(人間)에게 이보다 더 중대(重大)하고 시급(時急)한 일은 없다.】’을 가지고 왜 서방족(西方族)인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 「관연록(觀燕錄)」을 보자. 【‘관연록(觀燕錄)’은, AD 1,804年 동지사(冬至使) 일원(一員)으로 연경(燕京)을 갔다 온 “아산(牙山) 김선민(金善民, 1,772~1,813)”이 AD 1,805년(年)에 쓴 사행(使行) 기록(記錄)이다. 그 원본(原本)은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인용, 출처(引用 出處) : 한국고전번역원 DB-】
➨ 「관연록(觀燕錄)」 본문(本文) : 「밥을 먹은 뒤에 후원(後園)에 올라 관제묘(關帝廟)와 여러 제불(諸佛)을 모신 정전(正殿)을 보았다. 돌아서 민가(民家)로 들어가 마려(磨驢 방아를 돌리는 나귀), 바늘〔針〕, 신발〔履〕, 양아(養兒), 주은(鑄銀 주조한 은) 등 각양의 물건을 보았다. 비록 그것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말이 ‘되놈(侏㒧)’의 것이라 다시 캐묻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臨水埜中飯 : 물에 임해 들에서 밥 지어 먹고, 中略, 侏㒧何所道 : ‘주리(侏㒧)’들이 무엇을 말하거나, 腥臊欲掩鼻 : 누린내에 코를 가리려 했지, 中略, 鞘頭北風利 : 칼집 끝에 북풍이 날카롭다」라고 하였고,
「天寒霜薄坐深更 : 찬 하늘에 서리 내릴 제 밤늦도록 앉았는데, 鬍子當門語不明 : 문 앞에 서 있는 되놈의 말 분명찮네. 來日又從何處去 : 내일은 또다시 어디로 가야하나, 鳳凰山外鳳皇城 : 봉황산(鳳凰山) 밖에는 봉황성(鳳皇城)이 있네.」하였는데, 여기서
❶ 〈주리(侏㒧) : 주리(侏離)〉란 무슨 말일까? 그 주석(注釋) 편에서 : 「주-D001 / ‘되놈의 것’ : 원문은 ‘주리(侏㒧)’로 ‘주리(侏離)’를 말한다. 주리(侏離)는 중국 고대 서방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되놈」이란 ‘호(胡) 또는 호자(鬍子)’를 말하는 것인데, 곧 얼굴에 수염과 구렛나루 털이 많은 서방(西方) 이민족(異民族)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청(淸)」의 여진족(女眞族)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의 몸에서는 누린내가 코를 찌른다고 하였다.
더불어 이들을 지칭(指稱)하여 「주리(侏㒧)=주리(侏離)」라고 하였는데, 「주리(侏㒧)=주리(侏離)」는, ➨「고대(古代) 서방(西方)의 야만족(野蠻族)」을 말하는 것이다.
➨➨➨「여진족(女眞族)【여진족(女眞族)➙말갈(靺鞨)➙물길(勿吉)➙읍루(挹婁)➙숙신민(肅愼民= 肅愼國=肅愼氏)】은, 동북방(東北方) 종족(種族)이 아니라, 서방(西方) 종족(種族)【호(胡)=호자(鬍子)】이었다」라는 것을 확인(確認)시켜 주는 아주 중요(重要)한 내용(內容)이다.
여진족(女眞族)은, 「조선인(朝鮮人)과 그 외모(外貌)가 전혀 달랐다」라는 뜻이다. 특히 봉황산(鳳凰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곳은 당시(當時) ‘건주위(建州衛)의 땅’이었고, 건주여진(建州女眞)이라는 말이고, 이는 곧 이들이 바로 ‘올량합(兀良哈)=오량해(烏粱海)’족이라는 이야기다.
「조선사(朝鮮史)」에서 「건주여진(建州女眞)은 곧 오량해(烏梁海)이고, 올량합(兀良哈)」인데, 이들은 본시(本是) 「만주(滿洲)【예니세이강[Yenisei River] 서(西)쪽으로부터 우랄산맥[Ural, Mt=오랍산맥(烏拉山脈)까지의 서(西) 시베리아(Sibera) 저지대(低地帶)】땅」에서 살던 자(者)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김선민(金善民)”은, ‘되놈’이라고 하고, ‘주리(侏離)=주리(侏㒧)’로 표현(表現)했다. 100% 옳은 말이다.
➨ 「주리(侏離)=주리(侏㒧)」란 「고대(古代) 서방(西方)의 한 종족(種族)」을 일컫는 말이다.
➋ 위의 본문(本文) 글에서 말하는 것은 : 청인(淸人) 역시 몽고인(蒙古人)들과 좀 다르긴 하지만 유사(類似)한 종족(種族)으로, 「되놈(胡 : 鬍子)이며, 주리(侏離)로, 몸에서 누린내가 풍기는 자(者)」들이란 이야기다.
➌ 「필자(筆者) 주(注)」 : 「주리(侏離)」란 「서방(西方)의 악(樂)」을 말하는 것으로, 「서방종족(西方種族)」을 뜻하는 말이다. 많은 ‘고전(古典) 사료(史料)’를 보면 : 『東 曰 韎, 南 曰 任, 西 曰 侏 離, 北 曰 禁 : 동(東)은 매(韎)라 하고, 남(南)은 임(任)이라 하고, 서(西)는 주리(侏離)라 하고, 북(北)은 금(禁)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악(樂) 또는 서방(西方) 종족(種族)」을 일컫는 말이다.
『 韎 』 : ‘동방(東方)의 음악(音樂)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자사전(漢字辭典)’에서도 설명(說明)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大部分)의 ‘고전(古典) 원문(原文)’을 살펴보면 :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종족(種族) 또는 악(樂)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옥편(玉篇)에서는 : 「매(韎) :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周禮卷24 四夷之樂·선화봉사고려도경 제40/악률(樂律)·해동역사(海東繹史) 주례(主禮) 주(注)·樂書(四庫全書本)/卷173·五禮通考(四庫全書本)/卷071 외(外) 많은 사료(史料)가 「서방(西方)의 것을 주리(侏離)」라고 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제22권 / 악지(樂志) 악제(樂制)와 악기(樂器)를 보면 : ➀ 동이(東夷)의 음악은 매(佅)라 하는데, 창을 잡고서 시절에 맞게 자라나는 것을 도우며, ➁ 남이(南夷)의 음악은 임(任)이라 하는데, 활을 잡고서 시절에 맞게 기르는 것을 도우며, ➂ 서이(西夷)의 음악은 주리(株離)라 하는데, 도끼를 잡고서 시절에 맞게 죽이는 것을 도우며, ➃북이(北夷)의 음악은 금(禁)이라 하는데, 방패를 잡고서 시절에 맞게 저장하는 것을 돕는다. 「효경구명결(孝經鉤命決)」】라고 하였다.
또 옥편(玉篇)을 찾아보면 : 「매(韎) :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종족(種族) 또는 악(樂)을 말한다.」라고 하였고, 위에서 말하는 것은, 당시(當時)의 주리(侏離)는 바로 여진족(女眞族)을 말하는 것이고, “되놈”인 “호(胡)=서융(西戎)=서호(西胡)=호자(鬍子)”들을 일컫는 말로 쓰인 것이다.
〈조선(朝鮮)은 반도(半島) 땅에 없었다.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여진족(女眞族 : 되놈 : 胡)은 없었다〉 이게 핵심내용(核心內容)이자, 우리가 이해(理解)해야 할 팩트[Fact]다.
➨➨➨ 禮書卷一百三十 [宋,陳祥道 撰] 〈經部,禮類,通禮之屬,禮書,卷一百三十〉 : 四夷舞〈周禮韎師下士二人舞者十有六人旄人下士四人舞者無數鄭氏曰韎讀如韎韐之韎旄舞者所持以指揮〉 : 〈四夷之樂東方曰韎, 南方曰任, 西方曰株離, 北方曰禁〉라고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은, 이미 4,000여 년(餘年) 전(前)에 기록(記錄)된 “산해경(山海經)”과 맥(脈)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를 뒤엎을 만한, 배치(背馳)되는 설명(說明)은, 오직 20세기(世紀) 이후(以後)의 사가(史家)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출처(出處) 인용(引用) : 문무(文武)의 조선사(朝鮮史) : 노추(奴酋)와 조선(朝鮮)은, 동(東)쪽으로 국경(國境)을 맞대고 [제2편]【「乃奴之東, 褊與王壤界 : 奴酋의 東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2,025년 01월 16일〉-끝-
◆ 그러나 대부분(大部分) 고전(古典)에서는 “동방(東方) 악(樂)은, 매(韎)라고 하였지만 몇 종류의 소수의견(少數意見), 견해(見解)에 ”동방(東方) 악(樂)은 주리(侏離)라고 하였다“라는 기록(記錄)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각도(角度)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만약(萬若)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음악(音樂)을 주리(侏離)”라고 했다면 : 즉(卽) 본시(本是) “주리(侏離)”란 서방(西方)에 살았던 종족(種族)들의 음악(音樂) 이름이었다면 : 동이(東夷)는, 본래(本來) 서방(西方)에 살고 있었다는 해설(解說)이 가능(可能)해진다.
따라서 본시(本是)에는, 서방(西方)에서 살았기 때문에 “주리(侏離)”란 이름으로 불렸으나, 동천(東遷) 하면서 “동방(東方) 땅에 자리 잡게 되자” 다시 이를 “매(韎)”라고 부르며, 이는 “만물(萬物)의 성장(成長)”하는 악(樂)으로 불린 것이 되는 것이다.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이라는 말은, 「곧 천하(天下)와 같은 말로, 만물(萬物)의 성장(成長)은 하늘(天)에게 부여(附與)된 최고(最高)의 권한(權限)이다. 이를 대신(代身)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은, 바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敎化)과 같은 것이다”
곧 「동방종족(東方種族)이 있는 곳이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곳이니, 곧 천하(天下)의 중심(中心) 중국(中國)이요, 천자(天子)가 사는 곳이며, 이곳이 화(華)요, 적현신주(赤縣神州)가 되는 것이다.」 이를 대신(代身)할 수 있는 곳은 없다.
○ 서거정(徐居正)【AD 1,420년(世宗 2)∼1,488年(成宗 19)】은, 〈조선(朝鮮) 초기(初期)에, 형조판서(刑曹判書), 좌참찬(左參贊), 좌찬성(左贊成) 등을 역임한 문신(文臣)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 찬수(纂修)에도 참가하였으며,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를 공편, 도총관(都摠管)을 겸, 대제학을 겸직했고, 한성부판윤에 제수되었다. 이 해 동문선(東文選) 130권을 신찬하였다. 1480년 오자(吳子)를 주석하고, 역대연표(歷代年表)를 찬진하였다. 1481년 신찬동국여지승람(新撰東國與地勝覽) 50권을 찬진하고, 1485년 세자이사(世子貳師)를 겸했으며, 이 해 동국통감(東國通鑑) 57권을 완성해 바쳤다. 1486년 『필원잡기(筆苑雜記)』를 저술, 사관(史官)의 결락을 보충하였다. 곧 저술로는 시문집으로 『사가집(四佳集)』이 전한다. 공동 찬집으로 『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동문선(東文選)』·『경국대전(經國大典)』·『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가 있고, 개인 저술로서 『역대연표(歷代年表)』·『동인시화(東人詩話)』·『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필원잡기(筆苑雜記)』·『동인시문(東人詩文)』 등이 있다. -인용(引用) 출처(出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러한 분께서 칠언고시(七言古詩)로, 「한도십영(漢都十詠)」을 노래했다. 그 고시(古詩)에서 관심(關心) 있는 구절(句節)을 찾아보자. 【속동문선 제4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 한도 십영(漢都十詠) / 서거정(徐居正)】
「1. 목멱상화(木覔賞花) / 長安萬家百花塢 : 장안(長安) 만호(萬戶)엔 집집이 꽃밭
∼
10. 종가 관등(鍾街觀燈) / 長安城中百萬家, 一夜燃燈明似霞 : 장안(長安) 성중(城中) 백만(百萬) 집(家)에, 밤새껏 켜놓는 등불이 노을처럼 환하구나」라고 노래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한도(漢都)」는 “유방(劉邦)의 한(漢) 왕조(王朝)”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황제(高皇帝) 이성계(李成桂) 조선(朝鮮)」의 “도성(都城) 장안(長安)”을 말하는 것이다. 곧 예부터 “한도장안(漢都長安)”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한도장안(漢都長安)」이라고 하면 : 「유방(劉邦)의 전한(前漢) 도읍지(都邑地) 장안(長安)을 일컫는 말」이라고 거침없이, 막힘없이 말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해설(解說)’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즉(卽) 「15세기(世紀) 때도 “한도장안(漢都長安)”이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도성(都城)을 칭(稱)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명확(明確)한 내용(內容)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程度)다.
➨ 의문(疑問)은 왜 ‘한양(漢陽), 한성(漢城)’이 아니고, ‘장안(長安)’이어야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問題)다. 「고구려(高駒驪) 평양성(平壤城)은, 곧 장안성(長安城)이다.」라는 것과 연결(連結)되는 중요(重要)한 과제(課題) 중의 과제(課題)라고 아니 할 수 없다.
㈠ 「고구려(高駒驪) 평양성(平壤城)」은, 「장안성(長安城)」이다.
㈡ 「고려(高麗) 서경(西京)」은, 「평양성(平壤城)」이다. 고로 「서경(西京)은 곧 장안성(長安城)」이다.
㈢ 「조선(朝鮮)의 한도(漢都)는, 장안(長安)」이다. 곧 「고려(高麗)의 서경(西京)」이요, 「고구려(高駒驪)의 평양성(平壤城)이다.」라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 곧 위의 구절(句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황성(皇城) 곧 내성(內城)에 ‘1 만가(萬家)’가 있었고, 나성(羅城)인 외성(外城) 안(內)에는, 백성(百姓)들의 가옥(家屋)이 백만가(百萬家)였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당시(當時)의 한반도(韓半島) “서울”을 말하는 것일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곧 AD 1,910년대(年代) 한성부(漢城府) 인구(人口)를 보면 겨우 250,000구(口) 정도(程度)였다고 말한다. 이건 내성(內城)인 황성(皇城)과 나성(羅城)인 외성(內外) 모두에서 살고 있었던 수치(數値)다.
그러하면 서거정(徐居正)이 생존(生存)했을 당시의 15세기(世紀)에 한도장안(漢都長安)에는 과연 몇 구(口)가 있었을까? 위의 20세기(世紀) 초 한성부(漢城府)에 250,000구(口)라고 하였으니 “400年 전(前)의 한도장안(漢都長安)에는 백성(百姓)들은 없었다”라는 말과도 통(通)할 수 있는 말이다. 곧 “반도조선(半島朝鮮)은 없었다”라는 것이다.
곧 「서거정(徐居正)【AD 1,420년(世宗 2)∼1,488年(成宗 19)】」이 말한 「“만가(萬家)나 백만(百萬) 가(家)”는, “사백(四百) 수십(數十) 년(年) 전(前)”」의 이야기다. 「한반도(韓半島) 조선(朝鮮)은 없었다」라는 것을 여실(如實)히 증명(證明)해준다.
○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은 매(韎)」다. 이는 곧 「“만물(萬物)의 성장(成長)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은 하늘(天)만이 할 수 있는 특혜(特惠)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권한(權限)이니, 동방종족(東方種族)에게 곧 하늘(天)이 베푼 은혜(恩惠) 곧 천혜(天惠)를 내린 것이요, 곧 천자(天子)요, 천자(天子)가 머무는 것이 적현신주(赤縣神州)가 되는 것이다.」
이걸 ‘한반도(韓半島)’ 땅으로 가져오면 어찌 될까? 버림받은 야만족(野蠻族)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다스릴 능력(能力)이 없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하고, 야만(野蠻)스러운 민족(民族)이기 때문에, 일제(日帝)가 미국(美國)과 은밀(隱密)하게 모의(謀議), 설득(說得)하여 한반도(韓半島)를 강제(强制) 점령(占領), 식민지(植民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음악(音樂)은 곧 “매(韎)”다. 이는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라는 것으로 이해(理解)되는 것이고, 이는 곧 「천하(天下)의 중심(中心)」을 일컫는 말과 같은 것이다. 만물(萬物)이 성장(成章)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류(人類)와 온갖 동식물(動植物)은, 진화(進化)하지 못하고 소멸(消滅)되어 행성(行星)에서 없어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重要)한 일은 없다. 「왜 해국도지(海國圖志)에서 총령(葱嶺) 동(東)쪽이 동방(東方)이자, 중국(中國)이 있다」라는 것을 이해(理解)할 수 있게 되며, 「이곳이 바로 화(華)이고, 동이(東夷) 곧 구이(九夷)가 살며, 그곳의 음악(音樂)으로 매(韎)가 있다」라는 말을 이해(理解)할 수 있게 된다.
➨ 「동방(東方)에 사는 종족(種族)을 동이(東夷)」라 한 것이고, 또 다른 이름으로 세분(細分)하여 「구이(九夷)」라 한 것이고, 「한(韓)」이라 한 것이고, 이것은 시대(時代)에 따라 또는 별칭(別稱)으로 「구한(九韓)」이라고도 한 것이다.
이러한 「동이(東夷) 곧 구이(九夷)【한(韓) : 삼한(三韓) : 구한(九韓)】속에는 “해상부족(海上部族)인 왜(倭 : 南蠻)와 물가를 따라 살던 소수민족(少數民族)이었던 한족(漢族)이 있었다”」라는 것은, 공인(公認)된 역사해설(歷史解說)이지만 이를 간과(看過)하며, 고의적(故意的)으로 무시(無視)하고 있을 뿐이다.
「한족(漢族)」이라는 말은, 「20세기(世紀)에 나타난 ‘정치적(政治的) 구호(口號)’로 탄생(誕生)된 것이고, 이를 정치적(政治的)으로 이용(利用), 중원대륙(中原大陸)을 하나로 하는데 무력동원(武力動員)과 함께 한 것이다.」 지금도 한족화(漢族化)는 계속(繼續)되고 있지만, 말없는 저항(抵抗)으로 지지부진(遲遲不進)한 상태(狀態)다.
➨➨➨ 『“동방(東方)이 곧 한반도(韓半島) 땅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수만리(數萬里) 땅과 중토(中土)에 중국(中國), 신주(神州)가 있으며, 천혜(天惠)를 입은 천자(天子)가 있어, 온 천지(天地)를 교화(敎化)하며, 만물(萬物)이 성장(成長)하는 곳이니, 천하(天下)의 중심(中心)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신주(神州)의 수만리(數萬里) 그 땅을 노래했던 것이 바로 “동방(東方) 음악(音樂)인 매(韎)”다.』
그러나 「“한반도(韓半島) 땅”은, “천혜(天惠)를 입고, 천자(天子)가 있었던 중국(中國)을, 신주(神州)를 담을 곳이 없으며, 수만리(數萬里) 땅을 품을 수 없다. “한반도(韓半島)”는 동방(東方)의 “수백분의 일”에 불과(不過)한 ‘일개(一介) 조그만 모퉁이 땅’일 뿐이다“」
『‘스스로 옛 조선(朝鮮)의 후예(後裔)라고 믿는다’라면 : 자긍심(自矜心)을 가져도 좋다.』 언젠가는 옛 조선(朝鮮)의 영광(榮光)과 융성(隆盛), 융창(隆昌) 했음을 인정(認定)할 때가 반드시 도래(到來)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5년 04월 13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 다음 게재 내용은 "조선"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 : 보고 들은 것을 귀국하여 기록으로 남겨 놓은 '봉사기록'으로 본 "조선의 땅"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 '식민사관=반도사관'의 논리를 가지고는 이러한 봉사기록을 설명할 수 없는 영토와 토산물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은, "조선은 반도 땅에 없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는 기록들입니다.
* 오늘날까지도 교훈이나 정석처럼 반들어지고 있는 "옛 기록"중에서 특히 조선의 영토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물론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 원문 하나하나를 찾아 그것을 일일히 고증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고, '조선의 영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원과 관심애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