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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4일부터 금년 1월 9일까지 4주간 다녀온 인도차이나 탐방기를 몇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Ⅰ. 미소의 나라 캄보디아
1. 탐방에 들어가며
지난여름, 배낭여행으로 한 달 간 인도에서 파키스탄을 거쳐 중국의 신장위구르,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는 실크로드 탐방로를 차분하고 느긋하게 순례하였다. 이를 통하여 숙식과 교통편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현지인들과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배낭여행의 장점을 체험하였다. 그래서 올겨울에는 따뜻한 동남아지방을 탐방하기로 미리 마음먹었다.
함께 실크로드 여행을 하였던 대전의 정영신 님이 3개월 전에 인도네시아 여행을 예약하였다는 소식에 자극을 받았는데 마침 부산의 이승희 씨가 두 달 전에 인도차이나 4개국 탐방코스를 예약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와 처제도 이에 흥미를 가져 달포 전에 12월 10일부터 1월 8일까지 한 달 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를 돌아보는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여행기간에 12월 19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가 들어 있다. 고심 끝에 아내와 처제는 당초 계획대로 참여하고 나는 13~14일에 있는 부재자투표를 끝낸 후 12월 14일에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그 이전의 일정은 여러 차례 다녀온 방콕을 거쳐 캄보디아의 씨엠립을 탐사하는 기간이어서 내게는 건너뛰어도 무방한 코스다.
떠나기에 앞서 먼저 떠난 아내로부터 큰 가방은 이동하기에 불편하니 짐을 대폭 줄여서 작은 가방으로 바꾸라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미리 꾸려 놓은 큰 가방을 작은 가방으로 바꾸니 마음도 가벼워진다. 여행 떠나면서 이것저것 챙기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음을 일깨는 듯.
장도에 오르는 12월 14일, 일주일 넘게 지속되던 혹독한 추위가 물러가고 새벽부터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오전 중에 부지런히 잡무를 처리하고 낮 12시 반에 인천공항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여행길에 나서는가, 버스에 빈 자리가 없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예약한 대로 항공권을 발급받아 수하물을 부치고 입국수속을 마치니 한 시간의 여유가 있다.(옆 좌석의 중년 남성은 비행기 출발 한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을 하였는데 길게 늘어선 출국자들로 시간이 지체되어 수하물을 싣지 못하고 손에 든 가방만 들고 탑승하였다며 낭패한 기색이다.)
연결 편의 지연과 공항 트래픽으로 저녁 7시 10분 출발예정인 프놈펜행 아시아나 739편은 한 시간 이상 늦은 저녁 8시 20분에 이륙하였다. 덩달아 도착시간도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 밤 11시 45분(현지 시간이 한국보다 2시간 늦어서 실제 비행시간은 5시간 반이다), 출국수속을 마치니 자정이 넘었다. 프놈펜 공항의 출국장에는 배낭여행의 길잡이와 아내가 '김태호 님, 프놈펜방문을 환영합니다.'는 피켓을 들고 마중 나왔다. 종일 씨엠립에서 버스를 타고 프놈펜에 입성하여 피곤할 터인데 밤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느라 수고가 많다. 드디어 4주간의 인도차이나 탐방의 시작이다. 푹 자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2. '미소의 나라'에서 살핀 잔혹의 상흔
프놈펜의 왕궁 앞 광장에서
12월 15일, 아침에 숙소의 식당에서 먼저 온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전 9시에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탐방 길에 나섰다. 교통편은 15인승 미니버스로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60달러에 전세 냈다. 일행들은 전날까지 4인 1조로 택시나 툭툭이를 타고 움직였는데 프놈펜의 여러 지역을 한꺼번에 돌아보는 데는 함께 다니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길잡이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일행 중 제주도에서 온 부부는 개별적으로 탐방하겠다며 불참하고.)
처음 찾은 곳은 프놈펜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로 알려진 왕궁이다. 입구에 이르니 마침 롯데문화센터 여행 팀이 관광버스에서 내린다. 관광객을 입장시킨 롯데 팀의 현지가이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 죽은 전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의 상중이어서 왕궁 내부를 볼 수 없으니 비싼 입장료(6.5달러)를 내고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조언이다. 롯데 팀은 단체관광객이라 부득이 입장하였지만 딱히 설명할 것이 없어 자기는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며.
30분 후에 만나기로 하고 흩어진 일행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왕궁 주변의 광장과 사원을 돌아보는 시간이 유익하다. 15명의 일행 중에 결혼 2년차 신혼부부가 있는데 신랑이 중동의 고대문화를 전공하는 학구파로 불교와 힌두교 등 동남아 종교와 문화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그가 여행안내 책자에 실린 프놈펜의 볼거리를 미리 훑어보고 오늘 돌아볼 코스를 설명하며 안내하니 한결 수월하다.(50~60대가 주축인 일행 중에는 신혼부부 외에 갓 대학입시를 치른 소년과 군복무를 마친 대학생이 젊은 기운을 북돋아서 좋다. 길잡이는 동행하지 않고 다음 이동지의 교통편 등을 준비하러 다닌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국립박물관, 고대 크메르 제국의 예술품과 국보급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앙코르 제국의 영화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입장료는 3달러) 어느 도시나 박물관에 들르면 기나긴 역사의 흔적과 고유문화의 전통을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어서 좋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현지인들의 신앙 중심사원인 왓 우날롬, 부처의 눈썹이 안치된 곳으로 유명하다. 불상 앞에 앉아 있는 노인장(승려 복색이 아니다.)이 향촉을 꽂으라고 건네며 손바닥에 정화수를 뿌려주고 주문을 왼다. 젊은이들은 부처의 눈썹이 어디 있느냐고 눈썹을 문지르며 질문을 하는데 그의 대답은 알아들을 수가 없네.(여행 안내 책자에 눈썹은 직접 볼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네 번째로 찾은 곳은 도심에서 남쪽으로 15km 쯤 벗어난 외곽 지역에 있는 충액(Choong Ek) 킬링필드,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1975년에서 1979년까지 집권한 크메르 루주의 학살현장을 일컫는데 캄보디아 전역에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300개가 넘는다. 외곽으로 나가는 길목에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어서 빠져나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 현장에 도착하니 12시가 가깝다. 한국어로 설명하는 녹음기와 이어폰을 꽂고 한 시간여 잔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발걸음이 숙연하다.(입장료는 5달러)
충액 킬링필드의 위령탑
천만여 인구 중 200여 만 명이 학살된 인류 최악의 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폴 포트 정권이 무너진 후 1980년에 들어선 훈센정부는 이곳에 높이 80m의 위령탑을 세우고 숲으로 이어진 주변을 보존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 17층의 유리로 된 유골 안치장에는 수많은 유골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고 집단학살이 이루어졌던 웅덩이와 처형도구로 이용됐다는 안내판이 붙은 커다란 나무가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일깨워준다.
15년 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벽의 골목길에서 무거운 나무십자가를 목에 걸치고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간접 체험한 적이 있는데 몸에 걸친 것이 없어도 그때처럼 무겁고 가슴 아픈 킬링필드의 숲길이었다. 밖으로 나와 녹음기와 이어폰을 돌려주는 곳에 방명록이 놓여 있다. 옷깃을 여미며 '잔혹한 역사의 희생양이 된 넋들이여, 하늘의 평화와 안식을 누리소서.'라고 쓴 후 땀으로 흠뻑 젖은 발길을 돌렸다.
승합차에 오르니 점심시간이다. 운전기사가 프놈펜 시내에 있는 한국음식점으로 안내해준다. '최고집'이라는 한국식당의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등의 맛이 깔끔하다. 점심을 들고 오후에 먼저 찾은 곳은 크메르 루주의 참혹한 고문현장을 고스란히 보존한 뚜얼슬랭(Toul Sleng)박물관, 본래 고등학교였던 곳을 크메르 루주의 보안부대 본부로 용도를 변경하여 잔인한 고문이 행해졌던 감옥이다. 학생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잔혹한 형틀이 설치된 고문실이 됐고 학생들이 뛰놀던 운동장은 죄 없는 이들의 참혹한 지옥으로 변했다.
2,000여 명이 잡혀 들어가 살아남은 자는 10명이 안됐다는 공포의 현장에는 제21보안대의 마지막 희생자 14명의 무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여러 동의 건물 한 곳에는 당시의 처참한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우리가 구원(久遠)의 표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살육과 파괴가 아니라 생명과 창조로 이어지는 평화인 것을 되새긴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곳에 맑은 가락이 넘쳐나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캄보디아를 떠나는 날 아침에 부른 찬송이다.
뚜얼슬랭 박물관에서 나오니 오후 3시 반이 지났다. 이어서 들른 곳은 프놈펜의 랜드 마크와 같은 거대한 돔 형태의 노란색 건물이 중앙에 자리 잡은 프싸트마이(Phsar Thmey) 재래시장이다. 40여 분 간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안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물가수준도 살펴보고 제 맛이 나는 열대과일을 여러 종류 사기도 하였다. 국내보다 가격은 저렴하고 더 싱싱한 과일들이 탐스럽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프놈펜의 도시 이름이 유래된 사원, 왓 프놈(Wat Phnom)이다. 몇 차례 들러 본 캄보디아의 드넓은 평원과 거대한 호수 톤레샾(Tonle Sap)이 인상적이었는데 프놈펜도 도시 전체가 평지이고 톤레샆을 옆에 끼고 있어 운치가 있다. 왓 프놈은 평원도시 프놈펜의 유일한 언덕(높이 27m)에 자리 잡고 있다. 1373년, 펜(Phen)이라는 여자가 강에 떠내려 온 부처상을 발견한 후 이곳에 안치하기 위해 사원을 지었는데 여인의 이름 펜과 사원 이름 프놈이 합쳐져 지은 이름이 프놈펜이라는 설명이다.(입장료는 외국인에게만 1달러를 받는다.)
사원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 시간에 공원 앞 광장에서 서너 명의 젊은 남녀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추어 말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느 이벤트 회사의 홍보행사인지 유니폼이 같고 차량도 준비되어 있다. 뜻밖의 장소에서 강남스타일을 보는 감회가 별다르다.
마지막 코스로 호반 주변을 드라이브한 후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5시, 하루 종일 땀 흘리며 돌아다녀서인지 피곤하다. 더운 물에 이열치열(以熱治熱)로 피로를 풀고 낮에 산 열대과일과 한국에서 가져온 떡국으로 저녁을 들었다. 숙소의 베란다에서 도심 위로 저물어가는 초승달을 바라보며 가격은 저렴하고 맛은 향긋한 열대과일을 맛보는 저녁식탁이 행복하다.
먼저 출발한 아내는 씨엠립에 머무는 동안 같은 조원들과 함께 이틀간 전용으로 이용한 툭툭이 기사 집을 둘째 날에 방문하였다고 한다. 기사의 월급은 80달러, 직장에 나가는 아내는 50달러의 적은 수입으로 아들을 영어학교에 보내는 등 근근이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이란다. 아내는 툭툭이 기사의 부인이 한국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직장까지 하루 쉬면서 식사대접을 하는 등 환대를 받았다며 밝은 기색이다. 앙코르 와트가 있는 씨엠립은 여러 차례 찾았으나 수도인 프놈펜은 초행, 꼭 와보고 싶은 도시에서 잔혹한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툭툭이 기사 부부처럼 순박한 사람들의 터전이자 미소의 나라로 알려진 캄보디아의 밝은 앞날을 기원한다.
추신
인구 110만의 프놈펜 시가지는 곳곳에 현대식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행렬이 줄을 잇는 번화한 모습이다. 시내 중심부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 홍보행사가 벌어지고 현대마크를 단 자동차, LG, 삼성의 전자제품이 즐비하다. 호텔방의 TV가 LG제품이고 주변에 한국음식점이 세 군데나 있다. 병원과 회사이름에 한글간판을 붙인 곳도 더러 눈에 띄고.
인천~프놈펜의 아시아나 항공 편은 한국인 일색인 다른 국적기의 취항지와 달리 캄보디아인과 외국인들이 많이 섞여있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위상이 캄보디아에도 깊이 뿌리 내리는가? 시내 곳곳에 얼마 전 사망한 캄보디아 전 국왕 노르돔 시아누크의 초상이 걸려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악독한 정권의 하나인 크메르 루주에 긍정적이었던 그에 대한 캄보디아 국민의 존경심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린다. 평범한 서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교사로도 활동한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의 잔인한 행적도 연구대상이다.
프싸트마이 뒤로 멀리 보이는, 프놈펜의 랜드마크 카나디아 은행
3. 넓은 평원과 메콩강을 건너 호치민에 이르다
12월 16일, 오전 10시 반에 호텔을 나서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였다. 교통편은 툭툭이, 네 사람씩 한조가 되어 서늘한 바람을 쐬며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아내랑은 여러 차례 이용하였다는데 나는 이번여행에서 처음으로 타 본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45분에 출발하는 국제버스가 벌써 승차장에 대기해 있다. 아래층은 운전석과 화물칸으로 사용하고 2층에 40석 넘는 좌석이 있는 쾌적한 시설이다. 우리 버스 바로 옆의 시외버스 디자인이 눈에 익어 살펴보니 남원에서 대구 갈 때 가끔 이용하는 전북고속 디자인 그대로다. 그러고 보니 프놈펜시내에서 한글표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버스나 봉고 등이 자주 눈에 띄었다. 우리가 타던 중고승용차도 외국의 어느 도시에서 달리고 있을까?
정시에 출발한 국제버스는 철선에 올라 메콩 강을 건너는 지점까지 세 시간 넘게 쉬지 않고 달린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은 밋밋한 야산조차 눈에 띄지 않는 광활한 초록의 평원이다. 3모작도 가능한 넓은 땅을 잘 가꾸고 개발한다면 엄청난 식량생산국이 될 텐데.
버스에 탄 채 메콩 강을 건너서 30여 분 달리니 국경이 가까워진다. 도로변의 식당에서 가벼운 점심을 들고 차에 오르니 곧바로 카지노와 호텔 등 국경주변 위락시설들이 눈에 띠고 이어서 국경초소에 들어선다. 출입국 관리소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멈춰 서 있고 국경을 넘나드는 인파로 북적인다. 캄보디아의 출국수속은 간단히 끝나는데 베트남의 입국수속이 복잡한 편, 수속에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철선에서 바라 본 메콩강
같은 위도의 지형인데도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풍광이 약간 다른 듯, 캄보디아 쪽이 더 짙은 숲이고 베트남 쪽은 인가가 촘촘하게 들어선 느낌이다. 오후 5시 넘어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석양을 뒤로 하고 도심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접어드니 도로 양편으로 오토바이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호치민 시내의 번화한 거리는 온통 오토바이 행렬로 뒤덮이고. 저렇게 많은 오토바이를 공급하는 회사는 어디일까, 짐작으로는 일본의 혼다가 재미를 볼 것 같다.(나중에 살피니 작은 도시에도 혼다 판매장이 곳곳에 보인다.)
거리마다 넘치는 오토바이 행렬
저녁 7시 넘어 우리가 묵는 호텔 앞의 정류장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린다. 숙소까지 따로 이동하지 않아서 편리하다.(7시간이 넘는 긴 여정의 국제버스요금은 10달러로 싼 값이고 저녁식사로 든 쌀국수는 맛과 질이 좋은데 2달러다. 비교적 저렴한 물가가 부담감을 덜어준다.)
환전소에서 1달러에 20,600동으로 계산하여 돈을 바꾸고 여행사에서 다음날 돌아볼 코스를 예약한 후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 9시, 숙소 앞 공원이 불야성을 이룬 가운데 흥청댄다. 마음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으나 먼 길 오느라 수고하였으니 내일을 기약하고 꿈나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