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大自然)의 품에 안기면...
류장우
선반 위 머리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는 돌을 본다.
제 고향을 잃고 나의 탐욕의 포로가 되어 방에 갇혀 있는 돌을 보며 생명을 잃은 듯한 안스러움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돌을 즐긴다고 산하(山河)를 누비던 시절이 30대 초반이었는데 어언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꿈 많았고 의욕에 넘쳐 무리에 무리를 해가면서 사업 신장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조그마한 성취감을 맛보던 시절이다. 제조원에 무리하게 발행해 준 선수표에 대금 결제하느라 지친날이 많았다. 힘이 부칠 때는 은행지점장을 졸라 발행해 놓은 수표결제를 아슬아슬하게 마치면 오후 3시, 성취감에 쾌재를 부르기도 하지만, 지치기 마련이다. 도소매를 겸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멀미를 느낄 정도로 몰려 오는 손님들과 씨름하느라 ‘손님 좀 그만 왔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게 되는 그야말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시절이었다.
푸우! 은행 결제도 끝났으니 이제 해방이다. “김기사, 강에나 가자. 차 가지고 나오게.” 하면 그도 이미 돌꾼이 되어 있는 터라 바빠진다. 상회 직원관리는 엄마와 조카에게 맡기고 강으로 달아난다. 수석 산지로 유명한 남한강 상류라 가까운 강변은 충주에 2,30분이면 강가에 닿는다. 온갖 욕된 생활과 일상에 지쳤던 자신이 장엄한 자연의 큰 모습에 나설 때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티끌과 같음을 깨닫게 해 준다. 나를 안아 주는 자연의 순수한 진실앞에서 자연에 따르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가 된다. 돌을 모으면서 애석풍류를 즐기느니 하는, 고차원적으로 이름 지을 것도 없다. 어린 아이라도 강가에 데려다 놓으면 예쁜 조약돌을 주워 모은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가끔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사랑하는 둘째 딸 정안이를 데리고 다녔다. 여기저기 다니더니 “아빠 공!” 하고 나에게 내민다. 웬 일이야. 남한강을 수 십 년을 누비고 다녀도 탐석하기 어려운 석질(石質)도 좋은 공을 닮은 오색영롱한 둥근 돌을 만난 것이다. 심미안(審美眼)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수석, 분재 등의 취미는 자연 사랑으로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을 나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나의 집 뜰 앞에 산수 풍경을 맛볼 수 있고 방안에 놓여 있는 작은 돌에서 자연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어 한 동안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었다.
채근담(菜根譚)에 “풍정(風情)을 얻은 것은 많은데 있지 않고 작은 돌, 좁은 못 하나에도 구름 안개가 깃든다. 훌륭한 경치는 먼 곳에 있지 않는다. 오막살이 초가에도 시원한 바람, 밝은 달빛이 있다.” 라고 쓰고 있다. 작은 돌 하나에서도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있고 달빛이 깃듬을 느낀다.
노자도 자연 사랑에서 꾸밈이 없고 거짓이 없는 무위(無爲)한 자연에서 배우라 했다. 이에 우리가 노자의 깨달음을 무위자연사상(無爲自然思想)이라고 부르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따르면 텅 빈 골짜기는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며 산천초목을 기르며 새와 짐승을 껴안고 낳아주고 길러주는 어머니의 자궁(子宮)과 같다고 했다. 노자는 이 신비로운 현상에 ‘텅빈 골짜기는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곡신불사(谷神不死)라 했다. 그렇다. 자연은 생물과 우리들을 지켜 주되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소유병에 상처 내고 서로간의 아픔을 겪는다. 노자의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는 가르침에 귀 기울이게 된다. 자연의 산물인 돌은 인간에게 쓰임을 주고 비록 말이 없지만 침묵하라 교훈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하(山河), 너와 함께 한 나날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지금은 충주 댐 건설로 수몰되어 호흡할 수 없으나 남한강 상류 제원군 양평 여울목의 정취(情趣)가 있는 풍정(風情)을 잊을 수가 없다.
겨울이 와 사각사각 눈이 내리면 ,......
강 건너 아득히 눈안게 피어올하 열폭 산수화 그려내고,,,,
돌밭에 자직자직 얼음 풀려 봄을 재촉하고 ,...
봄이와 돈돌막 언덕배기에 명지바람 불어 와 ,......
기화요초(琪花瑤草) 피어나면,.....
꽃 향기, 풀 향기 바람에 실려와 꽃 멀미하던 봄 날,,..
기나긴 여름 해질 녘, 석류 빛 노을 지던 강변이 그립고,,.....
가을이 오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이 강물에 비취어,.....
그리도 아름답던 그 곳 산천이 그립고, 그 때가 그립다.
이제 나의 거실 선반 위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학대 받고 있는 저 돌, 이미 오래 전에 고향을 잃고 빛 바랜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아니보면 그립고, 깊은 정을 나누었고, 나의 생애의 반을 함께 했다.
가진 것 없으나 궁색함을 모르고 풍요를 즐겼던 돌의 새 주인을 찾아 나서야겠다. 저돌들을 고희(古稀)에 다다른 나보다 오래오래 더 사랑해 줄, 그들의 속삭임을 알고 의미를 알고 있는 젊은 애석인이 있다면........ 진정 무덤에 함께 가기에도 아까운 이 돌의 안식처가 될 곳은 없는가?
삶의 찌꺼기를 다 털어 내고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다.
첫댓글 지인과의 緣으로 이 카페를 찾은지도 두 달에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수필을 쓴다고 덤벼들었으나 글다운 글을 못 쓰고 있습니다.그저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인내심을 가지고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글이 옛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글을 올린다는
것도 幸 이라 생각 합니다.----
한 말씀 더 드립니다.아래 '수석 지상전'은 산하를 헤메이며 자신이 탐석한 수석이며 ,..
저의 애석생활의 기록이기도하기에 글과 함께 올렸습니다.눈요기도 하시고 < 부록>으로
보아 주시오면 합니다.
옥필에 다시 인사합니다
오래 물에 닳고 닦여져 온 돌은 맹글동글하여 어디에나 이쁘게 둥글게 어울리는 것처럼
물 흐르듯 유연하게 흘러가는 시글들이 마치 무희가 큰 무대 위를 회전하며 곡예를 하듯 합니다
아름다운 클래식의 선율이 더욱 품위를 올리고 언젠가 수석을 합네하고
이 산 저 강변으로 돌아다닌 적을 떠올리며 요리조리 훑어보며 수석이 되는지를 연구하기도 했는데
모두 집착인 것이 류장우 수필가님의 해탈의 경지 곁에 살짜쿵 앉아서 폼을 잡아보려 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나 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신 작품에 깊은 경의를 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셔서 머문 카페에서 흡족하게 행복하시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억만년 오랜 세월을 씻기고 마모되어 옥처럼 부드럽게 다듬어진 돌은 인간의 거친 삶에
수양의 길을 가는 길과도 같습니다.수석을 모으고 즐기면서 먼 곳에서 돌 친구가찾아와 탐내는
돌이 있으면 " 나보다 더 사랑해 줄 수 있느냐 ? 라고 묻고는 아낌 없이 건내주던 옛날은 참으로
순수 했습니다.돌밭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 없는 돌을 닮아 하나같이 여유롭고 해학과 풍류가 있어
하루 종일 함께 어울려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세월 따라 여울 따라 흘러간 돌과 함께 애석인들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나의 귓가를 스칩니다.
수석도 예술의 한 분야로 생각이 되어
수석을 논하는 것이 인생을 논하는 것이 아닌지요
동인들과 나누시는 매력도 새로울 겁니다
저도 아주 아끼던 수석을 누가 너무 좋아해서 그냥 주어 버렸지요
저보다 더 좋아할 것 같아서요
선생님의 작품들은 제가 모셔 두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자주 감상하며 가슴에 느껴보겠습니다
억겁의 역사 인간의 마음으로 상상의나래도 펴보며
그 오묘함 아름다움에 한없이 작아지고 이맘때쯤
어름이 자각거리는 남한강가를 이잡듯 돌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잔잔한 감동을 느낌니다 ^^
라신랑님 낯설지 않는 이름입니다.제가 B 시인에게 쓴 댓글에 생각이 같아
선생님의 이름을 들먹인 일이 있습니다.마치 '산문과 같은 詩'라고',......
어쩌면 돌밭에서 마주친 일이 있을런지도 모르지요.그때는 시인묵객애석인들이 많았지요,
시인 박두진,전기작가 김교식,시인 서정춘,김춘석,유양휴 제씨와 함께 돌밭을 거닐었던
분이었습니다.
돌을 닮아 말 없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고운분들이었지요.
도화리,청풍 개군,양평 사기리,한수 강건너 돌밭,동량면 포탄,목계 아래로
여주 강촌 돌밭,경기 양평의 개군 돌밭,....선생님과 함께 했을,..그땐 행복
했습니다.댓글 주심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말없고 발없는 돌이니 선생님과 긴 세월 함께 할수 있었겠지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인간의 마음을 감히 돌과 견주겠습니까? 나를 지키면서 나를 추억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이른새벽, 우연찮게 이 공간에 스며들어 선생님의 쓰신 좋은 수필과 고운 선율을 접하고 하루를 여는 마음 행복합니다. 감사드리며,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비리2 님 한적한 공간에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지난 세월 무위한
자연에 머물며자신을 추스리는 기회를 가진 일이 있습니다. 어언 3-40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선반 위의 돌만이 묵묵히 나를 내려다 보며 침묵하라
교훈하고 있습니다.졸필 보아 주심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건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