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그녀
정말 대찬 여성을 보았다.
부산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시내버스로 옮겨탔다. 휴일이라 승객이 많지 않았다. 낙동강을 건너 얼마쯤 왔을까? 중학교 고학년, 아니면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사복차림의 학생들 넷이 정류장에 서있었다.
그들은 기사에게 버스 노선을 묻더니 방향이 틀리는지 포기를 하였다가 문이 닫히려는 버스에 다가서며 중간 경유지를 묻고서는 재빨리 버스에 올랐다.
그들은 나의 뒷자리인 맨 마지막 자리에 나란히 앉더니 모이 찾는 참새들 마냥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의 말투래야 세종대왕도 모르는 욕설까진 아니지만 비속어 섞인 저속어...
약간 뒤통수가 간지러웠지만 저 또래들 모이면 그렇겠거니 하고 관심을 껐다. 그런데 조금후 격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야이 자식들아! 시끄러워 죽겠다. 조용히 못해!"
목소리가 사뭇 위압적이었다. 관심없어 몰랐는데, 주인공은 나와 동일선상 건너편에 홀로 앉은 50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문제는 담임 선생님 말도 무시하는 마당에 명색이 어른이랍시고, 나무라는 여자의 말에 기죽을 요즘세대의 학생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시 움칫했던 녀석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또 떠들어 댔다. 그러자 그녀는 아이들을 쥐어 박을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것들이 사람말귀를 못알아 듣나? 조용히 하라고..."
여자의 정체가 뭘까? 순간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학생들과 차를 함께 탔었나? 인솔자인가? 혹시 선생님이라도...
허어! 이쯤되면, 어쨌든 남자인 내가 모른체 하는 것도 이상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나는 아이들을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짜식들 신나게 놀다가. 허허허."
한풀 기가 죽은 학생들이 억울하다는듯 씩씩댄다. 아줌마 뒤편에 앉은 녀석이 덥다며 창문을 열었다. 진짜 덥기야 할까?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자 여자가 또 다시 고함을 질렀다.
"날씨 추운데 창문 안닫나?"
깨깽...아이들의 완패다. 그리고는 녀석들은 한참동안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짓거려댄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버스는 그들이 내릴 지점에 가까워졌다. 아직도 까불대는 녀석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야! 니들 여기 내려야지. 빨리 나가라."
그러자 맨 앞서 내리던 녀석이 내게 손을 포개쥐고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 옛날 같으면 후레자식 소릴 들을텐데, 아무튼 애들을 이렇게 만든 공동책임도 내게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손자같은 녀석이 먼저 손을 내밀다니...
"할아버지 저희들이 떠들고 그랬는데,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그래도 어른 말은 들어야 한다. 알았지?"
아이들은 버스를 내려가며 한녀석이 억울 하다는 듯 아줌마를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아줌마가 더 시끄러워요."
ㅋㅋ 녀석들! 꼴에 자존심은 있어 갖고...
아이들이 내리고 다음 정류소에서 아줌마도 내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듯한 시장 보따리를 든 평범한 여성 같았다. 어디서 저런 강단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덕이고 뭐고 자신에 뻘물 튈까 잔뜩 몸만 사라며 피해가는, 도덕이 땅바닥에 패악질 쳐진 이 험난 세상에 정말 당찬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자인 내가 곁에 있으니 마음에 울타리는 되었을 것이다. 아님 패거리 영웅심에 들뜬 녀석들과 언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