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산에 들에~~~~~
봄바람은 살랑살랑 쌓인 눈 녹이고,
잔디 밭에 새싹은 파릇파릇 나고요
시냇물은 졸졸 새봄노래 합니다,
며칠전 팔당에서 운길산 까지 옛 철길을 따라 걸을때 한강변의 실버들이
파릇파릇 해 보였다, 비바람이 불어도 꽃은 피듯이 어려움 속에서도 계절은
속이지 않는다.
어제 관악산 등산에도 바람은 세차도 역시 봄바람이라 귀시려. 손시려 하지는
않는다, 위의 동요는 해방된해. 2 학년때 우리말 우리글을 배우면서 부른 동요다.
"봄편지" 는 해방 이듬 해 1946년 3 학년이 된후 배운 동요다.
연못가에 새로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장 붗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조선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이땐 건국전 이어서 조선으로 불렀으나 건국후 대한으로 변경됨
고향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 이때쯤 벌써 "보리고개"가 닦쳐 한강의 달팽이 잡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가득하였다.지금은 다슬기라고 다슬기 해장국으로 사치스런
국으로 변했지만 그땐 배고품의 상징이었다.
달팽이가 거의 사라질때 쑥이 돗았고 쑥이 너무자라 못먹게될지움 소나무의 송화 가루
털어와 연명을 하고~~ 어릴때 봄철엔 배고품의 계절이 떠 오른다, 초등학교 동창의 여자들이
얼굴이 붓고 도시락을 못 싸오는이 많어 선생님이 몇개 더 쌓와 줬다. 그선생님도 돌아가셨고
그 여학생 원순, 순이, 영순, 원자.병순 다 어데가고, 한강물 흐르듯 다 흘러갔다.
어머니 따라 아랫벌 밭에 시금치 따러 가면 서산의 묘련사의 뎅그렁 인경 소리 들릴쯤에 저녁 짓는
연기가 오른다 얘 ! 어느집 연기 안 오른가 봐라! 그날 저녁에 그집 아주머니들이 우리집에 왓다가
갔다, 그덕에 봄나물은 많이 먹게된다, 쌀 한 가마를 풀면 13 일을 먹어야 되는데 9 일을 먹게되니
저눔에 에팬네가 또 됙발질 했구나 ! 아버지 한테 욕먹으면서~~~봄엔 에팬네 소릴 지겹게 듣는 봄이기도 했다
해방후. 면 대항 축구 시합이 봄철에 열린다. 이천시 백사면의 백사초등학팀과 결승을 할때다.
난 4 학년이라 선수아닌 응원 가를 배운후 선수 아닌 학생은 다 나와 응원을 했다.
물론 백사 초등학교에서도 전 학생이 다와서 응원가 부르며 응원을 했다.
두시간쯤 지나서 짚차가 오드니 겅찰이 와서 응원가를 가르친 백사, 이포의 선생 둘을 체포해 갔다.
에라 동무들아 깊은 잠을 깨어라,~~~~가사가 북한의 혁명가 같고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 북한 노래가 분명해 잡아갔고,우리는 이포의 학도다 나라를 짊어질 힘찬소년 자라나가자
뻗어 나가자 둥군공은 보기좋게 높이오르고 굳센다리 재빠를게 뛰어 다닌다 싸워라 힘있게 이기자
이포 이포 승리다. 여주서로 끌려가 이틀을 조사 받고 풀려 났으나 6'25후 공산주의 장학사가 되더니
월북후론 소식이 없다, 그의 외동딸은 목사 부인이 되었고, 그의 부인은 며칠전 별세했다
6/25일 김일성 남침으로 미군이 들어와 우리 면에 미군 19 공병단. 728 미군 헌병대.128 공병단이 주둔해
여기서 일하고 양쌀 배급. 고기 통조림.등으로 보수를 받어 보리고개가 없어졌다. 동네 공산주의 자들 다
나타났고,.이게 김일성 남침 덕인가 ?!. 봄이면 늙어서 이런 추억만이 남어있다.
첫댓글 최대감님 글솜씨가 일품입니다. 자주 쓰세요 늙지 않을테니 멋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