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군인주일 담화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48회 군인주일을 맞이하여 군의 복음화를 위해 수고하는 군종사제들과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한결같은 사랑으로 국군 장병들과 군종교구를 위해 기도와 도움을 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광복 70주년
올해 우리는 뜻깊은 광복 70주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7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광복의 감격과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고, 광복 5년 후에는 6·25전쟁이 발발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피해 그리고 이산가족을 낳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위험과 시련을 계속 겪으면서도 놀라운 발전과 변화의 축복을 누려왔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 먼저 자비 충만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훌륭한 정치인 및 사회지도자들과 언론인들 그리고 군인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의 일치된 노력과 희생적 애국 활동,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우방 국가들의 도움에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모든 산업기반이 파괴된 국토는 폐허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단어조차 생소해져 가는 보릿고개 시절엔 많은 이들이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해방 후 70년간 국가 총생산액이 31만 배 증가하여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경제성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난 중의 가난이 바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국민이 적어도 배고픔과 입을 옷가지의 가난에서는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경제 원조를 제공하게 된 최초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한 벌거숭이산의 재조림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성장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과 과학인들과 기술자들의 노력에서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투지로 이룩한 성과입니다. 우리는 이 성장을 기뻐해야 하지만, 자만심에 빠져서는 안 되고, 변함없이 근면성 안에서 열심히 정직히 그리고 겸손히 일해야 합니다. 이는 군종 교구의 올해 사목표어인 “기도하며 일하며”와도 관계를 지닙니다. 또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 청년 실업자의 증가,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나라와 세계 각지의 곤궁한 이들과 가진 바를 나누는 형제애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어떤 종류의 차이나 불평등이든 이것들을 극복하는 궁극적이고 효과적인 길은 형제애 실천에 있으며, 그것이 절망을 희망으로 변모시키는 길이 될 것입니다.
또한, 지난 70년간 우리 가톨릭교회가 복음화의 결실을 많이 거두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점이 경제발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세례 받은 신자 수는 70년 전에 비해 몇 배로 증가하여 500만 명을 넘어서서, 이제 적어도 우리 국민 열 명 중 하나는 가톨릭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신자들까지 포함하면 국민 열 명 중 세 명은 그리스도교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도록 합시다. 또한 복음화에 기여해온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 감사드리도록 합시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경우 냉담자의 수도 증가하지만 세례받는 신자 수도 여전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증가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도 한편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영적 상태는 어떤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마태 19,30).” 라고 경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묵상하며 우리 각자의 영적 쇄신을 위해 회개의 삶을 다시 시작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보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기 힘들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난 70년간 우리 군인들이 나라 수호를 위해 보여준 희생적 노력에 감사드리도록 합시다. 6·25 전쟁 중에도 수많은 군인이 조국수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으며,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 수많은 도발과 국지전 속에서도 우리 군인들은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영화로 상영되기도 한 연평해전에서도 6명이 전사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하는 가운데도 모든 장병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습니다. 특히 조타장 한상국 하사는 관통상을 입고도 조타키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전사했습니다. 40일 후 심해에서 발견된 함정에서 그는 조타키를 움켜쥔 채 서 있는 자세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달 전에는 군 수색대원들이 북한이 남측에 몰래 설치한 목함지뢰를 밟아 두 명이 중상을 입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 긴급한 순간 배운 수칙대로 훌륭히 대처하여 중상자들을 즉시 후송해 이들의 목숨을 구한 수색대원들을 칭송하고 싶습니다.
평화: 하느님의 선물, 인간의 책무
제1차 이탈리아 군종교구 시노드에서는, 군인은 평화가 인류를 위한 우선적 선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며, 군종교구는 평화에 대한 열망을 품고 복음적 ‘참된 행복’을 구현하려는 이들의 공동체인 군 세계에 투신한다고 천명합니다. 이러한 군의 올바른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병 한 명 한 명에게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인격교육과 올바른 도덕성을 길러주어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군종 사제들은 군 사목 현장에서 선교와 더불어 비신자 장병들에게도 인격 지도로서 그 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군인들이 정의와 평화의 봉사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신자 군인들이 필요합니다. 즉 ‘의로움에 굶주린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라는 축복 어린 사명을 수행하고 실천하는 군인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군종교구는 군인들이 각자의 삶에서 복음의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선교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근래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군 내외부의 여러 사건으로 인하여,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높아지고, 군의 사기도 저하되며, 무엇보다 군 장병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탓하기보다는 믿고 응원해주며, 격려해주는 형제애가 절실할 때입니다. 군이 평화의 봉사자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장병들이 여타의 불안감에 흔들리지 않고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군에 파견되어 있는 군종사제들이 복음화의 현장에서 그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기도하고 응원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 가정 안에도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15년 10월 4일 천주교 군종교구장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