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안쪽 바위에 음각된 극기라는 단어를 보면 백사장에서 알통구보 하는 해병대가 떠오른다 이런 극기 앞을 무례하게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모교의 교훈이 저 단단한 글자라고 말해주지만 학생들은 생뚱맞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웃는다 학생들에게 희극인 교훈은 이사장님에게는 비극이다 극기를 건학 이념으로 내세운 분이 극기를 실천하지 못하고 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네 말이 독이 될 것이다 영하의 기나긴 해안을 팬티차림으로 달리는 중학교 축구부원들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뱉어내서는 안 될 생각들을 곱씹다 내뱉으려 할 때 캄캄한 두 글자가 불쑥 내 멱살을 잡는다
―《현대시》2009년 3월호
----------------- 이창수 / 1970년 전남 보성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시안》 가을호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물오리 사냥』.
첫댓글 '극기'하면 왠지 독하다 말도 함께 떠 오른다
정신 바짝 차리고 독하게 마음먹고 행하면 그 무엇인들 이루지 못할까
위 시를 읽고 최소한 오늘만큼이라도 시 공부에 게을리 말아야겠다 생각하며...잘 읽었습니다.^^
'극기' 교훈으로서는 참 안 어울리는 단어군요.
교장선생님이 혹 해병대 출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