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초임 월급을 깎아 새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공(公)기업의 다짐이 공염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지난해 2월부터 추진한 ‘공공기관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일자리 나누기 없이 대졸 초임을 깎는 데만 주로 활용됐다고 동아일보가 22일 보도했다.
한나라당김성식 의원실이 이 정책 적용 대상인 297개 공공기관(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가운데 자료를 제공한 246곳의 지난해 채용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공공기관은 모두 대졸 초임을 4∼26%(약 100만∼1000만원) 삭감했다. 하지만 대졸 신입사원을 뽑은 곳은 조사 대상 기관의 38.6%인 95곳(1906명)에 그쳤다. 나머지 151곳(61.4%)은 대졸 신입사원을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4067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깎았지만 대졸 신입사원은 한 명도 뽑지 않았다. 3732만 원에서 2866만 원으로 깎은 한국마사회도 대졸자를 채용하지 않았다.
한국생산성본부는 지난해 연봉 3597만 원(성과상여금은 제외)인 대졸 초임을 2798만 원으로 799만 원(22.2%) 삭감했지만 대졸 신입사원은 뽑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도 2891만 원에서 15.4% 내린 2445만 원으로 대졸 초임을 깎았지만 대졸 신규 채용은 없었다. 뽑지도 않은 ‘유령 사원’의 임금이 깎인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해 2월 정부는 297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대졸 초임을 낮추는 대신 일자리를 늘리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 정책은 “신입사원에게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일자리 나누기’가 더 중요하다는 대의명분 때문에 전격 시행됐다.
공공기관들이 기존 인력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기존 인력까지 감축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 신문은 노동부 관계자를 인용, “급여 수준이 높은 기존 인력을 줄이면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신입사원을 더 뽑을 수 있다”며 “공공기관들이 기존 인력 보호를 위해 움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