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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얼굴
조 정 래
엄마는 남대문 도깨비시장의 미제 물건 장수다. 그리고 징그러울 정도로 열성인 크리스천이다. 엄마가 이런 것에 대해서 언니는 항상 종종걸음을 친다. 뭐 실제로 발을 방정맞게 까불어대거나 몸놀림을 빙충맞게 짓는 것은 아니다.
영 맺힌 데 없이 퍼져버린 매력 빵점의 얼굴에 언제나 죄스러운 그늘이 덮여 있는 것이다. 펑퍼짐한 언니의 얼굴 중에서 그래도 봐줄 만한 것이 있다면 눈인데, 그 눈마저 언제부턴가 김 팍 새서 목판에 나가뻗은 생선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니, 눈은 마음의 창이니 하는 고상한 말이 아니더라도 언니의 마음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음을 나는 망원경 보듯 뻔히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언니를 실눈 뜨고 보면서 코웃음 친다. 한 마디로 웃긴다는 생각뿐이다. 이런 태도의 나를 언니가 어떻게 점수 매기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수치도 체면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계집애라고 철판 칸막이를 쳐두었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언니는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는다. 막 깨놓고 얘기해서 감히 그런 표를 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두렵기 때문이다. 만악 그따위 얼뜬 수작을 했다가는 나의 무차별한 이중(二重) 공격에 떡이 되기 안성맞춤인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농구 선수로 뽑힐 정도로 키가 늘씬해서 두 살 위인 언니보다 한 뼘이나 더 크다. 그래서 언니는 늘 내 완력 앞에 백기를 든 지 이미 오래다. 거기다가 내 혓바닥은 보통 사람들보다 아마 두 배는 부드러울 것이다. 그러니 평균 점수 이하로 말이 느린 언니가 내게 당해낼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이팔청춘인 언니가 시절을 잃어버리고 병든 꽃처럼 되어 있는 것은 순전히 자기 책임이다. 보나마나 언니는 엄마 때문이라고 못 박겠지만 어림도 없는 수작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코웃음을 친다. 언니는 아직도 애송이인 것이다. 배꼽이 등짝에 착 달라붙는 허겁지겁한 꼴을 당해보지 않아서 영화 보고 가슴 아파하는 식의 고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 병신스러운 고민을 포옹하고 맘껏 애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가 고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엄마의 벌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구구법식 산수를 언니는 깨닫지 못할 만큼 어리다. 그래서 나는 언니를 용서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는 완력을 써서 언니의 덜떨어진 생각을 뜯어고칠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러나 곧 보류했다.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생각만은 그 사람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라는 것을 중요시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나를 선머슴애라고 서슴없이 불러대고 나 또한 그런 호칭에 털끝만큼의 신경도 다치지 않는 계집애지만, 그 정도의 식견은 가지고 이 세상을 헤엄치고 있다 그런 말씀이다.
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란 가당찮게도 하느님이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노리갯감이 속죄다. 따라서 그 노리갯감에 붙은 액세서리들이 양심·진실·체면·위신 뭐 이런 것들이다. 하루하루가 심드렁해지거나 꺼끌꺼끌해지려고 하면 나는 가끔 언니의 일기장을 실례하는 버릇이 있다. 그 일기장에는 그 노리갯감과 액세서리들이 뻔질나게 등장하고 있었다. 언니는 지치지도 않고 매일 일기를 쓰고 있었고, 지치지도 않고 첫 줄에 ‘주여’를 느낌표까지 넣어 부르짖고 있었고, 지치지도 않고 속죄라는 노리개를 주물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 뒤집힐 일은 엄마를 죄인 취급해 가며 하느님한테 고자질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에 곯아떨어진 언니의 옆구리를 당장 내질러버리고 싶은 흥분에 휩싸이는 것이었지만 다음 순간 어금니를 물며 참는 것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걷어찼다가는 일기장을 홈쳐본 파렴치범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팔랑개비처럼 가볍게 굴었다가 죄인이 됨은 물른 상대방의 생각의 자유를 인정해서 완력을 쓰지 않는 나의 높은 식견에 똥칠을 할 위험까지 있었다.
진정을 한 나는 언니를 내려다보며 도깨비시장 아줌마들의 말을 흉내냈다.
“쯧쯧쯧, 세상 물정 모르는 풋것 같으니라구…….”
이 말을 하고 나면 한결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참 딱할 지경으로 풋것이다. “촌년이 반하면 속곳 밑에 자크 단다”는 약간 상스럽고 망측한 말마따나 언니의 폼 쓰는 꼴이 꼭 그짝이다. 미제 물건 팔아서 남는 이익금으로 세 끼 밥 때우는 고갯길 인생이면 그런 인생답게 꾸깃꾸깃 살아가얄 게 아니냔 말이다. 자기가 뭐 융단 타고 날아다니는 페르시아 공주라고, 고민이다 속죄다 해가며 속을 끓이는지 모르겠다. 막말로 해서 하느님은 무슨 놈의 쉬어터진 하느님이냐. 하느님, 그거 말짱 헛것이다. 돈만 있으면 천당행 승차권쯤 적당히 쓱싹할 수 있다는 말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나는 돈이 하느님보다 높다는 것을 실제로 겪어서 잘 안다. 돈은 못하는 일이 없는데 하느님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가. 이런 내 주장에 언니는 희게 질리며 쏟아놓는다. 하느님을 돈과 비교하는 것, 그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며 사탄이나 지껄일 수 있는 악담이라고 제법 기를 세운다. 나는 그만 구역질을 느낀다.
“얼씨구, 자알 돌아간다. 그럼 한 가지 묻겠는데 말야, 예수님이 배꼽이 있게 없게?”
“뭐라구……?”
“모르시지? 그것도 모르면서 뭘 그리 흥분하고 야단야.”
“너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언니는 갑자기 송곳으로 엉덩이라도 찔린 것처럼 바락 소리를 지른다. 가슴께에 모아진 두 손이 창백하게 떨리고 있다. 곧 기도로 돌입할 자세인 것이다. 나는 용용 죽겠지의 폼으로 씨익 웃어준다.
“예수도 배꼽이 있다는 걸 알아둬. 그도 평범한 인간이었단 말야. 다만 용기가 뛰어난 매력 넘치는 사내였지. 미남이었고 말야. 만약 언니나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서 예수한테 프로포즈를 했다면 예수는 단연 날 택했을 거야. 생김새는 그만두고라도 언니처럼 그렇게 무분별하게 치근치근 매달리는 여잘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예수는 자기의 말을 깨닫는 센스 있는 여잘 좋아하지 해결을 강요하는 무디고 미련스런 여잘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두라고.”
“오오 주여! 저 사탄을…….”
결국 언니의 기도의 폭포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한다.
“저런 풋것 같으니라구.”
나는 메스꺼움을 떼치느라고 이 말을 내던지고 돌아서버린다. 나는 언니가 괴로워하는 마음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그걸 용납할 수는 없으며 더욱이 동조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언니의 일기장에 밝혀진 바로는 엄마의 미제 물건 장사는 감시와 단속을 받는 떳떳지 못한 직업으로서 날마다 죄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 비위를 비틀어놓는 것은 그 다음부터다. 그 죄는 체면을 깎고 수치를 키우는 어쩌고 하는 식으로 이어져나간다. 시장 바닥 말로 내갈겨버리자면, 개똥이나 체면이 밥 먹여주고 수치가 앞가려 준다더냐. 더 가관인 것은 그 다음이다. 날마다 죄를 짓고 주일이면 꼭꼭 예수님 앞에 서는 엄마의 모순된 행위를 주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텐데 엄마는 그런 위선을 계속 저지르고 계신다. 이런 식으로 종이 위에다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전을 들춰서야 모순이란 말뜻을 알게 되었다. 나도 엄마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언니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거침없이 교회에 바치는 돈이 아까워서다. 엄마한테 딱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다. 얼마나 아니꼽고 더럽게 장사를 해서 번 돈인데 그걸 일요일마다 교회에 쏟아넣는지 모를 일이다. 아 글쎄 깨놓고 얘기해서 단속반이 시장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때 예수님이 한 일이 뭐가 있느냔 말이다. 목사의 말마따나 주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구제하시기 때문에 미처 그런 데까지 신경 쓰실 여유가 없으셨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전지전능은 또 뭐야. 배꼽이 하품할 시장스런 얘기다. 그러나 난 엄마가 교회에 나가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엄마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언니의 얼빠진 소리처럼 미제 물건 장사를 하며 쌓은 죄를 용서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허전하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엄마는 기도라는 것을 하면서 사죄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주여!’를 부르짖는 것은 ‘여보!’ 하며 아빠를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마는 요즈음도 숨이 콱 막히는 일을 당하면 으레 아빠를 부르는 것이다.
“여보!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그러면서 두 손을 맞잡는다. 6년이나 교회를 다녔으면 ‘주여!’를 부를 만도 한데 교회가 아닌 데서는 엄마는 꼭 아빠를 불렀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시자 곧 교회를 나가게 된 것만 보아도 엄마의 심정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엄마와는 달리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예수의 열성적인 딸이 되어버린 언니가 잠꼬태처럼 중얼대는 속죄니 죄악이니 하는 말은 탓하지 않더라도 엄마까지 죄인 취급하는 데는 피가 곤두설 지경이다. 엄마의 모순된 행위를 주께서 용납하지 않아도 좋다. 그까짓 것 하나도 떨 것이 없으니까. 그런데 얄미운 것은 정작 언니다. 자기 목숨을 이어주는 밥이, 그리고 예수님 앞에 바친 돈이 바로 엄마의 모순된 행위로부터 나온 것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점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어서 엄마가 다른 떳떳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소갈머리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고 고달픈 장사니까 바꿔야 한다면 좀 기특하고 훈훈한 말일까. 이건 순전히 예수님한테 속죄하는 뜻으로 다른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철부지 소견머리에 어떤 장사가 좋다고 밝혔을 리가 없다. 언니는 불쌍하게도 이 세상의 모든 장사라는 것이 거짓말 콘테스트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안의 맏이답게 엄마의 명령에 순종해서 시장 바닥에는 얼씬도 안 했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명령을 식은 죽 먹듯 어긴 나는 이제 엄마와 동업자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라는 것 외에 미제 물건 장사 보조역이라는 이중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좀 어른스러운 말로 하자면 핏줄이라는 것은 더러워서 막상 언니를 미워하거나 따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굳이 언니의 좋은 점만을 보도록 노력하고 있다. 언니를 말하는데 단연 손꼽을 수 있는 것이 공부를 빼어나게 잘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도 점수 벌레들한테나 부러움을 살 일이지 나로선 별로 느낌이 없다. 아니 오히려 구질구질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언니하고 두 살 차이면서 학년은 1년 차이다. 그 이유는 분명히 있다. 언니가 국민학교엘 들어가고부터 나는 언니와 거의 똑같이 공부를 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나를 1년 먼저 학교에 넣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4년 동안 언니와 나란히 1등을 먹었던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엄마와 언니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난 공부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겨우 중간 정도의 공부를 하면서 언니에게 뻣뻣하게 대하는 데도 언니가 우등생족들이 범하기 쉬운 교만이나 경멸의 태도를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나의 이런 과거의 영광과 저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탓이다. 나는 지금도 발동을 걸었다 하면 성적을 올리기에는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를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공부라는 것 잘해 보았자 오히려 초라하고 처량해질 뿐이다. 1등을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아빠 없는 세상에서 우리 남매는 엄마한테 너무 무거운 짐이다. 1등이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 상업고등학교 졸업이 학벌의 전부가 될 나 같은 처지에서 1등이면 뭘 하고 우등생이면 별수가 있나.
그래도 성적이 좋아야 은행이나 재벌 회사에 취직이 될 게 아니냐고? 회충이 고고를 출 만큼 배고픈 이야기다.
시집가면 모가지 뎅겅할 조건의 하품 나오는 취직 생활을 하는 건데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면 어떻고 사무원 노릇을 한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단 말인가. 점잖은 양반들이 들으면 알로 깐 소리라고 날 불량한 계집애 취급을 하겠지만 나같은 종자들이 취직을 하는 데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미모가 차지하는 비중도 대단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미모에 대해선 자신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처럼 언니와는 남남 같은 생김이다. 체구가 그렇고 얼굴이 그렇다.
난 아빠를 닮았고 언니는 엄마의 복사판이다. 나는 내가 아빠를 닮았다는 것을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차츰차츰 보배롭게 여겨오고 있다. 이건 어쩌면 아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가 덜렁 대지 않고 공부만 좀더 잘하면 언니보다 훨씬 나을 거라고들 한다. 걱정이 팔자인 사람들의 흰소리다. 내가 딱 질색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체하는 것이다.
무식한 냄새를 온몸에 덕지덕지 바른 여편네가 공연이 끝나버린 오케스트라 관람을 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애석해 한다거나, 은어(隱語)랍시고 쓴 영어가 전혀 엉뚱한 뜻으로 빗나가는 경우 같은 때 나는 그만 미치기 직전에 다다른다. 오히려 내가 쑥스럽고 계면쩍고 겨드랑이가 스멀거리는 것을 참지 못해 상대방을 와드득 쥐어뜯고 싶은 충동에 고통을 당한다. 반 아이들 중에서 이런 여편네 후보생들이 나타났다 하면 나는 무지막지한 공격을 감행하곤 한다.
그래서 그따위 덜떨어진 버르장머리를 싹 뜯어고쳐 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언니를 무릎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도 언니의 태도를 이런 식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쉬어터진 짓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지하실 도깨비시장 바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언니는 꿈속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미제 물건 장수 딸년답게 눈알 똑바로 뜨고 살라는 말이다.
언니는 천상 3류 영화의 주인공이다. 홀어머니 밑의 4남매 중의 맏이. 거기다가 우등의 성적.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고민녀.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여러분, 이 사람을…… 동전을 구걸하기에도 낡아빠진 레퍼토리인 것이다. 나는 이따위 자격 구비를 하게 될까 봐 끔찍해서도 공부는 벼락치기로, 마음은 유쾌하게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언니의 소리 없는 바람인 직종 변경 이전에 엄마는 벌써 서너 가지의 장사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아빠가 엄마와 언니와 나와 남동생 준이가 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버린 다음부터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당연하게 우리 집의 아빠까지 되어야 했다.
아빠는 우리들의 박수를 받으며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한 번 머리를 쑥 내밀고 사라지더니 까마득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의 파랗게 질리는 얼굴을 보고 우리는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의 울음소리에 놀란 엄마는 ‘사람
살려어’를 찢어져라고 외쳤다. 물안경을 쓴 남자들이 풀로 박혀 들어갔고 헤엄에 열중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물 밖으로 튕겨져나왔다. 건져올려진 아빠는 잠자는 것 같았다. 피부가 검게 번들거리는 남자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인공호흡이라는 걸 시켰지만 아빠의 팔목은 다시 팔딱거릴 줄을 몰랐다.
눈이 썩지 않나 싶을 지경으로 길고 긴 날을 징징 울어대던 엄마는 엉뚱하게 장사를 시작한다고 나섰다. 흔해빠진 양품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이미 엄마는 교회에 나다니고 있었고 언니는 표나게 말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2년 가까이 되어 엄마는 양품점 문을 닫았다. 집을 팔아서 줄였고 엄마가 다시 시작한 장사가 분식 센터다. 그것도 1년이 조금 지나 그만두었다. 미장원엘 통 다니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엄마는 놀랍게 늙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아빠 얼굴을 모르는 막내동생이 우리 아빤 어디 갔느냐고 따져물을 만큼 자랐다. 엄마가 세 번째로 시작한 것이 기름 장사다. 그것도 흐지부지되고 네 번째가 바로 미제 물건 장사였던 것이다.
중 3 1학기가 지나면서부터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갔다. 그런 때 엄마의 눈은 시큰하게 슬픈빛을 담고 있었다. 나는 머잖아 그 안개빛 자욱한 슬픔의 이유를 알아냈다. 엄마는 이제 지치고 비틀거리는 형편이었다. 엄마는 나를 대학까지 보낼 자신이 없었던 거다. 그럴 바에는 인문고등학교보다 실업고등학교옐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슬픈 울음을 운 것이다.
“주희는 인문·실업 중에서 어떤 걸 택하고 싶지?”
담임의 이런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회색빛 커튼이 쳐진 창과 같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담임과 어리석은 숨바꼭질을 할 필요가 없음을 직감했다.
“실업학굘 가겠어요¨”
“너 그게 정말이냐?”
담임의 음성은 놀라움보다는 반가움이 더 짙게 묻어났다.
“엄마의 부탁과 일치했죠?”
“아니, 그걸 어떻게…….”
나는 재빨리 돌아섰다. 담임의 아무 책임 없는 위로를 받게 될까 두려워서 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철부지였다. 엄마가 아빠 노릇까지 하기가 그렇게 힘 이 드는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등나무 밑 벤치에 늦게까지 앉아 가을 냄새가 물씬거리는 깊디깊은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며 콧물을 들이마셨다. 이날처럼 아빠가 없는 흔적이 크게 느껴지기도 처음이었다. 하늘의 넓이로 커진 그 흔적은 그대로 외로운 바다가 되어 나를 에워쌌다. 나는 엄마가 미제 물건 장수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우리가 다섯 식구라는 사실을 흡씹었다. 나는 몇 시간 사이에 어른이 되어 어스름을 밟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에 나는 엄마한테 능청을 떨었다.
“엄마, 내일 진학 분류를 한다는데 나 상업학교 갈까 봐. 영 공부가 하기 싫어 죽겠어.”
엄마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금방 울먹였다. 그리고 한참만에 힘들게 말했다.
“상업학교에서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형편이 나아질지도 모르니 열심히 하도록 해라.”
엄마는 이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건 엄마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또 그럴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엄마를 비굴하게 느끼게 했을 뿐이다. 아빠가 없는 지금까지의 살림살이는 엄마의 노력과는 반대로 한사코 말라비틀어져 왔던 것이다. 마음 놓고 할 수 있던 장사도 거듭 실패를 했는데 쫓기고 쉬쉬해 가며 하는 장사가 번창할 리가 없었다. 엄마는 비굴하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내 성적은 그때부터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성적표를 받아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엷게 일그러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엄마를 괴롭히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적은 자꾸 미끄럼을 탔다. 나는 처음으로 스
스로가 하는 일인데도 스스로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입학 원서를 쓰게 될 즈음이었다.
“주희야, 어떡하면 좋으니.”
언니는 내 손을 어느 때 없이 꼬옥 눌러잡으며 눈물이 글썽했다.
“무슨 일이 있어?”
나는 이상하게도 섬뜩한 기분에 감기며 물었다.
“실망하지 말어. 앞으로 내가 대학을 택할 때도 너처럼 어쩔 수 없이 실리적 인 쪽으로 기울어지고 말 테니까.”
“…….”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구질구질하게 왜 눈물은 핑 돌았는지 모른다. 언니의 이 말은 형편이 나아지면 대학엘 갈 수 있을 거라는 엄마의 말과는 영 딴판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언니가 예견한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밀어닥쳤다. 내가 상업학교 학생이 된 것과 동시에 언니는 문과냐 이과냐를 골라잡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언니는 며칠을 꽤나 괴로워하던 눈치더니 어찌된 영문으로 이과를 택했다. 언니는 당돌하게도 법관이 되고 싶어했었다. 그런데 그 반대인 이과를 택한 것이다. 이과에 속한 어떤 대학엘 진학하게 될 것인지 궁금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느 때든 기회를 엿보아 일기장을 실례하면 모든 궁금증은 샅샅이 풀릴 것이다.
나는 한동안 언니의 일은 감감하게 잊어버렸다. 도깨비시장에 홀려 있었기 때문이다.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마음은 고삐 풀린 망아지꼴이었다. 주산이며 타자에 아무리 마음을 동여매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엄마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얘기지만 쥐콧구멍만 한 월급 받아보겠다고 주판이나 타자기 앞에 매달려 낑낑대느니보다 장사 수완을 익히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상당히 싸가지 없는 생각에 나는 유혹당하고 있었다. 그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엄마의 금족령을 어기고 도깨비시장을 급습한 것이다.
“아니 주희야, 이게 무슨 짓이냐!”
엄마는 놀라움과 노여움이 범벅 된 얼굴로 꾸짖었다.
“엄마, 미안해. 갑자기 보고 싶은 걸 어떡해.”
나는 엄마의 푸르게 날이 선 눈길을 피하며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못된 것! 어서 이리 들어와라, 어서.”
엄마는 내 가방을 낚아채듯 하며 상품 진열대 안으로 끌어들였다.
“글쎄 여기가 어디라고……. 내 말 잊어버렸어? 잊어버렀느냐니까!”
엄마는 바락바락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엄마, 나 야단치지 마. 기왕 와버렸잖아. 오고 싶은 걸 어떡해.”
나는 엄마 팔에 매달리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못된 것. 거기 앉아 있거라.”
엄마는 험한 표정을 무너뜨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코를 들이마셨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도깨비시장은 도깨비가 나올만큼 헐었거나 음침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칙칙하고 끈적끈적 한 불길함이 감도는 것 같았다. 흐리멍텅한 형광등 불빛이나 매케한 먼지 냄새가 꿈틀거리는 지하실이
기 때문이 아니다. 시늉뿐인 상품 진열대나 비좁은 통로나 지친 것 같으면서도 만만찮은 눈빛의 여자들, 이런 것들이 어울려 도깨비시장의 불길함은 숨 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이 날로 바래가는 이유를 알았고, 여길 진
작 찾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나는 자리를 고쳐앉다가 주춤했다. 이상한 옷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그 옷을 얼른 들어 펼쳤다. 그건 속옷이 분명한데 거의 빈틈이 없이 조그만 주머니들이 촘촘히 달려 있었다. 나는 옷을 더 펼쳤다. 한쪽 가랑이께에 조그만 주머니가 반쯤 꿰매진 채 바늘이 꽂혔다. 엄마가 주머니를 달다가 밀쳐둔 모양이다. 어디에 쓰는 옷일까. 왜 이런 손가락 세 개가 제대로 들어갈 수 없는 주머니들을 달까.
“얘, 주희야!”
나는 화닥닥 놀랐고 엄마는 그 속옷을 거칠게 낚아챘다.
엄마의 얼굴은 상상할 수 없도록 무섭게 들떠 있었다. 나는 그 서슬에 질려 엉거주춤 일어섰다. 엄마는 휴우 한숨을 쉬었다.
“앉거라, 주희야. 이거 마셔.”
엄마는 유리잔을 내밀었다. 나는 그걸 얼른 받아 한 모금을 꼴깍했다.
“엄마, 이게 뭐야? 맛있는데?”
나는 유쾌한 음성으로 말했고,
“그래, 쭈욱 마셔라. 오렌지 주스다.”
엄마는 내 등을 쓸며 엷게 웃었다. 나는 주책스럽게도 그 웃음에서 소낙비 같은 울음을 보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이게 오렌지 주슨지 누가 모르나 뭐. 이러지 않고는 어찔 수가 없잖아.’
나는 맛도 모르고 주스를 마시며 이렇게 엄마한테 소리없는 사과를 했다.
그 옷이 루즈나 파운데이션 같은 화장품이나 기타 값나가는 물건을 숨기는 데 쓰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걸렸다. 엄마나 도깨비시장의 여자들은 치마 속에 그 속옷을 입고 무수하게 많은 주머니에 온갖 물건들을 진열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언젠가 본 열쇠 장수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가슴과 등에 열쇠를 잔뜩 매달고 힘겹게 걸었다. 할아버지의 어깨는 열쇠들의 무게를 떠받치느라고 괴롭게 굽어져 있었는데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당장은 할아버지가 그 열쇠들로 목숨을 이어가지만 끝내는 열쇠들한테 먹히고 말 것 같은 초조로움을 떼칠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를 부축해야 된다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나는 엄마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불쑥불쑥 도깨비시장에 도깨비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엄마의 눈길도 위력을 잃어갔다. 그날 내가 들어섰을 때 시장 바닥은 무법자들에게 짓밟힌 서부영화 속의 장면 같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엄마의 가게 쪽으로 내달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엄마와 보자기에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싸고 있는 당당한 기세의 남자였다. 나는 전신이 욱죄여드는 고통에 떨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나는 그 무법자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보퉁이를 들고 돌아서던 남자와 한 덩어리가 되어 나둥그러졌다. 그리고 엄마는 신통하고 장하고 위대하게도 그 남자가 놓친 보퉁이를 집어들고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나는 그날 비로소 엄마가 훌륭한 도깨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너 뭐야! 눈 똑바로 뜨고 다녀.”
남자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아저씨는요! 사과는 못할망정 왜 호령예요, 호령이.”
나도 눈을 딱 부라리고 맞대거리를 했다.
“뭣이 어쩌고 어째? 학생이 뭣 땜에 이런 델 출입하는 거야. 너 어느 학교 다녀!”
“아저씨가 도대체 뭐예요¨ 여기가 극장예요, 다방예요. 시장에도 미성년자 출입 금지가 따로 있나요?”
“아니 이게 근데…….”
남자는 어물거렸고 이와 때를 같이해서 도깨비들의 웃음소리가 히히히, 낄낄낄, 흐흐흐 터져나온 것이다. 음산하기까지 한 엄마와 동업자 아주머니들의 웃음 소리에 떠밀려 남자는 멀쑥하게 떠나갔다.
나는 이 혁혁한 공훈을 인정받아 도깨비시장에서 일약 스타와 같은 명성과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여러 가지 훈장이 수여되었는데 그중에서 쓸 만한 것이, 지극한 효녀라는 것과 당찬 계집애라는 것이다. 이 모녀 합동 작전이 흐뭇한 미담으로 아주머니들의 가슴을 적셔준 것도 의외의 수확이었지만 엄마가 날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역력한 눈치가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남자를 떠받고 넘어졌을 때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붙들고 늘어지는 촌스러운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나나 엄마는 그날의 일을 전혀 입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또 한 번 멋들어진 모녀 합동 작전의 세련미를 보였다.
엄마의 손바닥만 한 외상 장부를 내가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되었을 즈음에 엄마는 사고를 당했다. 잠복한 단속반에게 물건을 파는 현장을 잡혀 떼들어간 것이다. 다행히 외상 장부는 내 수중에 있었다. 이 외상 장부는 더없이 소중한 물건이다. 차츰 단속이 심해지면서 물건을 사가는 사람까지 덮치기 때문이다. 이 외상 장부가 들통이 나는 날에는 외상값 날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굵직한 단골을 싹 잃어버리게 된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껄이는 것은 팔푼이 짓이다.
“물건은 많이 날렸나요?”
“아니다. 화장품 두어 가지뿐야.”
“어떡하죠, 아줌마?”
“염려 마라. 한 사나흘 도 닦고 나올 테니까. 그동안 집이나 잘 지켜.”
건너편 아주머니는 태평이다.
“그치만 더 오래 못 나오면 큰일이잖아요.”
“요러언, 누가 효녀 아니랠까 봐. 큰 물줄기를 막아야지 우리 같은 피래미 잡아다가 어쩌겠니? 다 한 번씩 거치는 일이니까 잊어버리고 있음 돼.”
나는 미적지근한 기분으로 발길을 돌렸다. 언니는 내 말을 듣고는 못나게시리 쿨쩍쿨쩍 울기부터 했다.
“울지 말어. 애들이 눈치채잖아.”
나는 언니를 핀잔했고,
“어쩌면 좋으니, 어쩌면 좋아.”
언니는 내게 매달렸다.
나는 별수 없이 그 아주머니 흉내를 의젓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냈다.
다음날 학교를 가자마자 나는 가까운 아이들을 불러 집안에 경찰이 있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이 한 가닥 희망은 실망으로 끝났다. 나는 학교가 끝나는 대로 관할 경찰서를 찾아갔다. 언니와 함께 갈까 싶었으나 괜히 짐스러울 것 같고 언니를 괴롭히는 일 같아서 혼자 나선 것이다.
“누굴 면 회하려고?”
“엄마요.”
“엄마가 무슨 잘못으로 여길 들어오셨는데?”
“…….”
“말을 해야지 찾기가 쉽지.”
“미이…… 미제 물건 장사요.”
“미제 물건?”
나는 놀라는 순경의 눈을 빠안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얘야, 그냥 돌아가거라. 면회가 어렵겠구나.”
순경은 제복에 어울리지 않게 인정스런 어조로 말했다.
“왜 그래요? 죄가 무거워서요?”
“그렇진 않아. 그게 무슨 큰 죄가 되겠니? 그만 돌아가거라. 곧 나가시게 될 거다. 가서 공부나 해.”
나는 순순히 물러섰다. 안 될 일에 치근치근 매달려 상대방 호의까지 망쳐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계집애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I˙
엄마는 나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고생 많이 했지.”
나는 엄마의 손을 덥석 잡았고,
“이 짓도 어디 더 해먹겠니.”
엄마는 혼잣말처럼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왈칵 가을을 느꼈다. 나는 막무가내 엄마를 끌어안아 버렸다.
이과를 택한 언니는 간호대학을 지망해아 할 것인지 아닌지 놓고 고민의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언니의 일기장에 의하면 언니는 엄마와 목사님에게 압력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싸게 다닐 수 있고, 따로 취직의 염려가 없으며, 거의 영구적인 여자 직업이라는 것이 압력의 이유였다. 결국 내가 상업고등학교를 택한 것이나 언니가 간호대학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의 귀결인 셈이다. 언니는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상상하면서 비통해 하고 있었다. 지금 자기보다 공부가 떨어지는 아무개 아무개가 의대를 지망한다는데, 10년 후에 그애들은 떳떳한 의사로 군림할 것이고 자신은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간호사 신세라는 것이다. 언니는 그 무너뜨릴 수 없는 벽 앞에서 몸부림치는 흔적이 역연했다. 나는 간호복을 입은 언니를 떠올려보며 피식 웃었다. 볼품은 별로 없으면서 아는 것만 억세게 많은 간호사 원경희―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과히 달갑잖은 존재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이 점에 관심이 더 쏠릴 쁜 언니의 고민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치른 홍역
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구미 떨어지는 일이지만 그때 난 칵 죽어버릴까 하는 거친 충동에 시달렸다. 내가 상업학교엘 가다니…… 그건 견디기 어려운 굴욕이었다. 그러나 아빠가 예수가 아닌 이상 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
송이 패랭이꽃에 지나지 않았다. 언니도 뾰족한 수가 있을리 없다. 홀어머니 맏딸답게, 미제 물건 장수 딸년답게 매력없는 간호사가 되어 엄마의 짐을 어서 덜어드리는 길뿐이다. 그래서 더욱 완전한 자격을 갖춘 5류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언니는 이 문제로 한층 시들어빠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니는 참으로 우연한 일로 그 일을 결정해 버렸다. 나는 그런 언니가 딱하기도 했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유쾌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그날도 엄마를 위해서 교회를 나갔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듣고 하면서도 나는 줄곧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 돈을 받아내나 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외상 장부를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만 7천 원이 적힌 옆에 ‘포기’라고 씌어있었다. 분명히 엄마 글씨였다. 적지도 않은 외상값을 포기하다니,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집 주소를 머리에 새겼다. 그리고 엄마한테 넌지시 물었다.
“엄마, 이건 왜 포기하는 거지?”
“뭔데·…… 으응, 넌 알 것 없다.”
“왜, 떼먹겠대?”
“글쎄, 알 것 없다는데두.”
엄마는 그만 역정을 냈다.
예배가 끝나자 나는 곧장 밖으로 나왔다.
“언니, 먼저 집에 들어가.”
“넌?”
“한강아파트에 다녀올게.”
“거긴 왜. 친구가 사니?”
“아니.”
“엄마 심부름?”
“아아니.”
언니는 금방 이상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난 가면 안 돼?”
“뭐 그렇진 않아. 그치만 후회 할지도 몰라.”
“나두 함께 가자, 얘. 바람두 쐴 겸.”
언니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무슨 일이냐고 서너 번 물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가보면 안다고 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그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2층 짜리 고급 아파트의 6층에 그 집은 끼어 있었다.
“얘 무슨 일이니, 글쎄.”
언니가 옐리베이터를 내리며 초조하게 물었다.
“실망하지 말어. 외상값 받으러 왔어.”
나는 얼른 돌아섰다. 언니의 변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호수(號數)를 확인한 다음 벨을 힘껏 눌렀다.
“누구세요오.”
문이 철판이라서 그런지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동회에서 왔습니다. 여기 도장 좀 찍어 주셔야겠어요.”
나는 준비한 거짓말을 거침없이 내뿜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문이 열렸다. 나는 안으루 지체 없이 들어갔다. 피둥피둥 잘사는 냄새가 확 끼쳐왔다.
“주인 아주머니세요?”
“그래요. 무슨 도장이죠?”
주인 여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포기’라는 어색한 두 글자가 퍼뜩 스쳐갔다.
“도깨비시장의 돈암동 아줌마 아시죠?”
“뭐라구? 넌 누구야!”
여자의 눈썹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했다.
“딸예요. 외상값 받으러 왔어요.”
“뭐 이따위 것들이 다 있어. 당장 신고해 버리기 전에 썩 나가!”
신고? 나는 비로소 ‘포기’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가슴에 확 불이 붙는 것을 느꼈다.
“흥, 신고 좋아하시네. 당신은 성할 것 같애? 신고할 테면 해봐.”
나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눈앞에는 희끄무레한 어둠 같은 것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쥐방울만한 게 어디서 주둥아릴 나불대. 기다려, 당장 신골 해줄 테니까.”
“안 돼요, 그럼 안 돼요! 우리 그냥 돌아가겠어요, 아주머니.”
나는 이렇게 외치는 언니에게 떠밀려 문밖으로 나왔다.
“당장 꺼져버려!”
이런 소리와 함께 덜컹 문이 닫혔다.
“가자, 주희야. 신골 하면 우린 당장 어떡하니. 참아야 해, 주희야. 엄마가 이런 일 시키지 않았잖니.”
언니는 울먹이며 한사코 내 팔을 끌어당겼다.
“아빠, 우린 어떡하면 좋아요.”
나는 복받쳐오르는 울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울면서 언니의 부축으로 계단을 걸어내렸다. 내가 가까스로 울음을 그쳤을 때 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더운데 아이스크림 사줄까?”
언니의 그 웃음은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게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운 흔적은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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