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분되는 세계시장, 美·英·日 vs. SCO+BRICS+Euro
[세계경제위기 어디쯤 왔나-③SCO+BRICS] 2013-14년 위기의 예비경고
2009년 6월의 예카테린부르크회의는 그해 4월에 있었던 런던의 G20회의에 실망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한 것이었다. 런던의 G20회의는 2008년의 금융위기 직후에 열린 회의였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갖고 금융에 대한 국제적 공동규제 방안을 모색하자고 여러 나라가 열의를 갖고 논의하였는데 미국이 국제적 공동규제는 개별국가의 주권침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의제가 무산되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동이 되어 브라질, 인도, 파키스탄, 이란, 몽골,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독립국연합 등을 불러 모아 미국달러 대신 무역결제에 사용할 통화에 관해 논의한 회의였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도 예카테린부르크회의에 참석하고 싶다는 희망을 표명했지만 정중히 사절한 채 자기들끼리 가진 회의였다. 이들 나라의 GDP는 세계전체 GDP의 42%(G20은 세계전체 GDP의 80%), 이들 나라의 외화준비자산은 세계전체 외화준비자산의 2/3(G20은 세계인구의 2/3)를 차지한다. 그래서 필자는 “SCO+BRICS”라고 부른다.
2011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 당시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중국 홍보 영상ⓒ신화/뉴시스
이들 나라는 자원이 많은 신흥공업국이다. 세계경기가 나빠져 수출이 정체되거나 축소되면 즉각 나라경제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환율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이들 나라의 환율변동은 선진국에서 생기는 거품을 이들 나라에 전가시키는 채널이기도 하다. 거품붕괴로 인해 생기는 지불부담을 신흥공업국에 전가시키기 위해 환율변동을 매개로 해서 신흥공업국에도 똑같은 거품을 만들어낸다. 선진국의 가벼운 기침이 이들 나라에게 독감으로 전염되는 통로가 이 환율변동이다. 자본의 자유이동이 전제된 상황에서는 환율변동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고스란히 빼앗는 메커니즘이 금융거품이다. 그래서 이들은 금융자본의 자유이동을 규제하려는 공동행동을 모색한 것이다.
그러자면, 현재의 지나친 수출의존도부터 점차 낮추어 국내소비 위주의 산업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장기적 과제가 있고, 단기적으로는 달러화에 대한 편중을 낮추고 보유외화를 다양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국통화 혹은 상대국통화에 의한 무역결제 방식을 예카테린부르크회의에서 택한 것이다. 중국이 브라질에서 수입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중국화폐나 브라질화폐로만 결제하고 브라질도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중국화폐나 브라질화폐로만 결제한다. 그리되면 양국 사이의 무역은 수출입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브라질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을 많이 해도 중국 화폐만 잔뜩 쌓을 뿐 별무소용이다. 중국인에게 대부하더라도 중국 돈으로 원리금을 상환 받게 되므로 그 돈은 결국 중국물건을 사는 데만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가 최근 축소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이들 시장에 투자된 외국자본이 급작스럽게 발을 빼는 움직임을 보여 환율이 치솟고 금융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취약한 경제구조를 안고 있기 때문에 환율변동이 가장 위험스럽다. 그래도 이들 나라는 과거 한국처럼 외환위기 같은 것을 겪을 위험이 없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환율을 갑자기 올릴 수가 없어서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이들 나라는 자본의 급격한 이동도 규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율도 즉각 올릴 수가 있다. 준비된 외화현금도 부족하지 않다. 수출은 않고 수입만 해도 6개월 내지 22개월을 버틸 수 있을 만큼 현금사정은 좋다. 필리핀은 단기부채의 6배를 말레이시아는 단기부채의 4.5배를 외화현금으로 갖고 있다. 남미는 차베스의 영향 하에 국가 간의 상호부조체제인 알바(Alba)를 건설하여 왔기에 이번 위기쯤은 알바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이번의 충격으로 신흥공업국들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종래와는 다르게 추구해온 정책들 즉, 무역의존도 줄이기, 국내수요 위주의 성장, 미국달러 대신 자국통화나 상대국통화 사용하기 등이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수출입상품을 다변화하고 수출입대상국도 다변화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수출위주의 경제성장보다는 내수위주의 경제성장 기조를 취하려고 한다. 물론 수출위주 정책으로부터 내수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매끄럽게 진행될 리 없다. 그럴수록 기득권층의 반발과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사회 밑바닥으로부터의 저항과 소요를 지렛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이들 지역에서는 사회적 불안과 소요가 가장 건강하게 표출될 것이고, 그 요구를 흡수해가는 방식도 미국 같은 선진국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사회적 소요가 과격한 폭동이나 혁명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오히려 서방선진국, 특히 전통적 성장이론을 추종하는 나라들에게 있다. 예전처럼 금융위기의 지불부담을 다른 공업국에게로 전가시킬 수 있는 채널(금융거품 확산 및 수출입 물가조작)이 지금은 망가졌다. 그래서 미국이 지금 어떤가? 지난 5월로 예정되었던 재정절벽이 금년 9월-10월로 다시 연기될 수 있었던 것도 연준의 양적완화 덕택에 다시 형성된 부동산거품으로 자산상의 이득을 본 패니-매(Fannie Mae)란 주택금융회사가 재정절벽이 발효되기 직전, 회사의 대주주인 연방정부에게로 배당금조로 584억불을 지불한 때문에 가능했다. 돈으로 금융회사의 배를 먼저 불려줘야 연방정부가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이런 우스꽝스런 아이러니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이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노후로 인한 방사능유출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전체의 75%나 되고, 우리나라의 성수대교처럼 시애틀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국경지대의 다리가 지난 5월말 붕괴되었는데 이런 다리가 15만개에 이르는데도 재정부족으로 손을 못 쓰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금융 쪽으로만 돈을 풀어 다시 부동산거품을 키우고 있다. 이번 거품은 단기간에 끝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미국식 양적완화를 따르는 나라가 셋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을 금융과 부동산에 풀어놓으면, 기업이나 가계의 파산, 생활수준의 악화, 대량실업, 사회적 소요와 불안 등의 문제를 당분간 감출 수 있다. 사람들은 주식이나 부동산가격만 오르면 곧이어 실물경제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회복되려면 거품으로 성장한 금융이 먼저 금융시스템을 통해 공업국으로부터 경제잉여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만의 돈 잔치로 끝나버리면 거품이 바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에 있었던 ‘페이퍼 금’시세의 붕괴, 국채금리의 상승 시작, 골드만삭스가 미국 국채의 매각을 권유한 것, 최근 주식가격의 급격한 붕괴 등은 큰 손들이 이제 시장에서 은밀하게 손 털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의 거품붕괴는 단순한 붕괴가 아니다. 2008년의 위기가 오히려 2013-14년 위기의 예비경고 밖에는 안 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양적완화를 따르는 나라들의 정치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그 파편이 세계 곳곳으로 튕겨나가 여기저기 의도하지 않은 격변을 초래할 것이다.
문제의 한복판에 놓인 미국은 자기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는 나라들(일본과 영국)과 같이 정면으로 위기와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유로 존은 이번 위기에서 지구촌에서 가장 적게 영향 받는 지역의 하나가 될 것이다. 유로 존은 일찍부터 부실은행과 기업을 정리해왔고 올 초에는 금융통합을 이루었으며 2014/5년으로 예정된 재정통합도 이제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지난 5월말 개별국가의 재정위기를 공동으로 책임질 유로지역 연방정부의 창설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합의한 때문이다. 물론 세계적 규모의 정치사회혁명이 오면 이 지역도 예외일 순 없다.
2011년 브릭스 정상회담에서의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만모한 싱 인도 총리, 후진타오 중국 주석,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차이나데일리
미국이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작년부터 유럽을 회유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으나 지금 거의 실패하고 있다. 대서양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테이블에서 EU에 대해 세일가스를 헐값으로 공급해주는 대가로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가스의존도를 줄여나가도록 요구했으나 EU는 자유무역협상 자체의 성사가능성을 불신할 뿐 아니라 최근 밝혀진 일련의 사건(미국 NSA의 유럽인사에 대한 스파이활동, 문화상품을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상대상에서 제외하자는 프랑스의 요구, 외교특권을 가진 미 국무성 핵심관리들의 세계를 무대로 한 마약밀거래)으로 인하여 미국과의 완전 결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유로 존은 오히려 BRICS와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최근 중국판 신용평가기관인 다공(Dagong)을 유럽에 유치하여 유럽판 신용평가기관들이 못하는 일들을 대신 할 수 있도록 서구의 국채와 회사채에 대한 신용평가를 맡긴 것이라든지, 리보(Libo)금리를 조작한 영미은행들에 대해 엄중한 벌금으로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리보금리의 관리를 런던이 아닌 파리로 옮겨 맡김으로써 유럽금융을 앵글로색슨으로부터 결별시키려는 조치 등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앵글로색슨의 경제모델이 ‘성장모델’이면, SCO+BRICS가 추구하는 경제모델은 ‘번영모델’이다. 성장모델은 수출위주의 성장만 추구한다. 중상주의자들처럼 무역흑자로 외화자산을 될수록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다. 수출품의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된다. 이에 비하여 번영모델은 수출위주가 아닌 국내수요 위주이다. 국내수요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내국인들의 구매력, 내국인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이 일차목표이다. 그렇게 되면 내국인들의 생활수준을 높여주는 효과가 생긴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윤극대화란 목표와 배치된다. 통화운용에서도 미국처럼 양적완화를 통한 위기탈출방식을 반대하고 통화운용을 신중하게 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려 한다. 자금이 필요한 곳에는 당국이 직접 화폐자금을 배급한다. 바로 이러한 번영모델을 유로 존 국가들이 배우고 있다. 9월 초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G20은 이러한 움직임을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