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스물한 살 [신동욱 앵커의 시선]
https://www.youtube.com/watch?v=zzVrUhKRJ9k
36,474 views Oct 19, 2023 #항저우 #안세영 #앵커의시선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남자가 오늘밤 사라졌습니다." 1994년 미국 방송사들이 일제히 정규 방송을 접고,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벌어지는 차량 추격전을 생중계했습니다. 백 킬로미터를 도주한 끝에 체포된 운전자는 아내 살해 혐의를 받고 있던 할리우드 스타 O. J. 심슨 이었습니다.
그 도망자 심슨이 정작 무죄 평결을 받자 온 미국이 '유전무죄' 논란으로 떠들썩했지요.
하지만 막대한 변호사비와 민사 배상금을 대느라 알거지가 됐고, 강도와 납치까지 저질러 결국 몰락했습니다. 그가 미식축구 최고 스타였음을 생각하면 인생 막장극이 따로 없습니다.
할리우드에는 스포츠 스타 출신 유명인이 적지 않습니다. 영국의 다이빙 선수였던 제이슨 스타뎀 쯤을 빼면 대개는 프로였지요. 우리 방송-연예- 광고계에서도 최근 들어 운동 선수가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르는 경우가 잦아 졌습니다. 국민을 감동시킨 인간 승리 드라마의 명성과 호감을 바탕에 깔고 있으니 방송에서 이름 알리기가 훨씬 쉬워진 탓일 겁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를 갈구하는 이 바닥의 생리와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고요.
그래서 큰 스포츠 이벤트가 끝나기 무섭게 금메달리스트를 중심으로 치열한 출연 섭외 경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항저우 에서 빛난 별, #안세영 선수에게도 당연히 방송, 광고,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그에게 붙은 별명, '국민 개념 선수' 다운 인기입니다.
그런데 그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잔잔한 글을 올려 사양했습니다. "정말 많은 요청이 들어와 감사할 뿐"이지만 "메달 하나로 특별한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니고, 묵묵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평범한 선수 안세영" 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그를 보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뜻을 알렸지요. "모든 시간에 함께해 드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몸은 하나고 마음은 아직 여리어, 이 모든 걸 하기에는 힘이 듭니다. 건방지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려고 합니다."
스물한 살 앳된 그의 글에 흐르는 겸손과 배려, 분별과 자존, 부드러운 듯 묵직한 울림까지 모든 게 놀랍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저우에서 떨쳤던 부상 투혼이, 그가 내면에 쌓고 다져온 의지의 자연스러운 분출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천적'으로 불렸던 중국 선수가 이런 축하 글을 붙인 것도, 이제는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결승이 끝나고 네가 나에게 '활짝 웃자'고 위로해줬지. 너는 진정한 챔피언이야. 축하해."
그가 묵묵히 걸어가는 목표는 올림픽과 아시아선수권까지 마저 석권하는 4대 국제대회 '그랜드 슬램' 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이 모든걸 이룬 것보다 더 값진 걸 얻었습니다.
젊음들에게 힘을, 어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만으로 그 이름 석자가 더없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잘했어 세영아!" 10월 18일 #앵커의시선 은 '아름다운 스물한 살' 이었습니다.
[Ch.19] 사실을 보고 진실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