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1979년 10월26일 저녁 7시 45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이 역사를 바꿨다. 만찬장이던 나동 안방에는 당시 유신정권을 이끌고 있는 수뇌부가 집결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그들이다.
‘탕!’ 역사를 바꾼 궁정동의 총성
안방과 마루를 사이에 둔 경호원 대기실에는 경호처장 정인형, 경호부처장 안재송과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가, 밖의 제미니 승용차에는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이 대기했다. 50m 떨어진 본관 1층 회의실에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김재규를 대신한 김정섭 중앙정보부 차장보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연회가 시작된 지 한 시간쯤 지나 김재규는 옆 건물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정승화에게 갔다. 김재규는 정승화에게 대통령과의 식사가 곧 끝나니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2층 집무실에서 권총을 꺼내 온 뒤, 박선호와 박흥주를 불러 엄청난 얘기를 꺼냈다.
“시국이 위험하다.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도 다 죽는다. 오늘 저녁 해치우겠다. 방 안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제압하라. 불응하면 발포해도 좋다.” 둘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과 우리 2차장보도 와 있다”면서 “각오는 되어 있느냐”고 되물었다. 박선호가 얼떨결에 “각하까지입니까?”라고 묻자 김재규는 “응” 하고 대답했다.
박선호가 “경호원이 7명(사실은 4명)이나 되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묻자 김재규는 “오늘 하지 않으면 보안이 누설 된다. 똑똑한 놈 세 명만 골라서 나를 지원하라. 다 해치운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선호는 30분만 여유를 달라고 부탁했다
'남산 부장', '북악 실장'을 쏘다
그날 궁정동 안가의 술자리는 왠지 분위기가 다른 날과 달랐다. 술상 위에는 여러 가지 안주와 함께 박정희가 즐기는 양주 ‘시바스 리갈’ 몇 병이 놓여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명당한 김영삼의 이야기가 나오자 박정희는 “김영삼을 구속기소했어야 하는데 마음 약한 유혁인 정무수석이 말려서 그만 두었더니 후유증이 더 크다”며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누군가가 분위기를 좀 풀어보라며 심수봉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녀는 기타를 치며 자신의 히트곡 ‘그때 그 사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좌중에 술잔이 몇 순배 돌았다. 이어서 차지철이 답가를 불렀고 차지철의 지명으로 그 다음은 모델로 활동하던 대학생 신재순 차례가 되었다. 신재순은 심수봉의 기타 반주에 맞춰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노래를 시작했다. 박정희도 애상에 잠겨 후렴구인 ‘예이예이예이 예예예예 예예’를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이 순간 김재규가 오른손으로 옆에 앉은 김계원의 허벅지를 툭 쳤다. 그리고는 오른쪽 바지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뽑아 차지철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과 함께 차지철이 “김 부장, 왜 이래!”라고 소리치며 팔을 움켜쥐고 일어났다. "경호원, 경호원!" 경호원을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뭣들 하는 거야!" 박정희의 노기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김재규는 일어서면서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말하며 정좌한 채 눈을 감은 박정희에게 총을 쐈다. “내가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라며 자신있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했던 박정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중정과 육본, 운명의 갈림길
"군의관 있는 대로 다 나와! 이 사람 살려야 돼!" 7시55분, 경복궁 동쪽 국군서울지구병원에 도착한 김계원 비서실장이 소리를 질렀다. 군의관 정규형 대위가 20분 동안 응급소생법을 시도했지만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넥타이핀의 도금이 벗겨졌고 혁대도 해져 있어서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총성이 울린 지 2~3분 뒤 맨발로 안가 본관에 뛰어든 김재규는 정승화 육참총장을 자기 차에 태웠다. 김재규는 엄지손가락을 펴서 세우더니 가위표를 했다. "각하께서?" 정 총장은 순간 차지철의 소행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김재규와 정승화를 태운 차는 세종로를 지나 삼일고가도로에 들어섰다. 질주하던 차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남산 중앙정보부로 갈 것인가, 용산 육군본부로 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 순간 "병력 배치를 하려면 육본 벙커가 좋겠다"는 정 총장의 말을 김재규가 따랐다. 김재규의 차가 용산행을 택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됐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차가 남산 중앙정보부 건물로 가 지휘소를 차리고 정부 요인들을 소집했다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48시간 동안 비밀에 붙여야 합니다!" 밤 9시30분, 육군본부 벙커 총장실에 모인 최규하 총리와 국무위원들 앞에서 김재규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신현확 부총리와 일부 장관들은 "밑도 끝도 없이 계엄령이라니, 서거 사유를 대라"며 반발했다. 11시30분, 김계원 비서실장에게서 "김재규가 범인"이란 말을 들은 정승화 총장은 김진기 헌병감에게 김재규 체포를 지시했다.
박흥주 "대한민국 육군 만세!"
보안사 오일랑 중령 등에 의해 체포된 김재규는 보안사 참모장의 승용차에 태워졌다. 27일 새벽 2시30분, 김재규가 서빙고 분실로 도착한 뒤부터 그의 '굴욕'이 시작됐다. 6개월 전 자신이 상을 준 보안사 수사관으로부터 30분 동안 두들겨 맞았다. 심문 과정에서 전기고문까지 당했다고 한다. 김재규는 이듬해인 1980년 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살인, 내란수괴미수, 증거은닉, 살인 등의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5월 24일, 김재규는 박선호, 유성옥, 이기주, 김태원과 함께 서울구치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박홍주 대령의 경우는 현역 군인인 관계로 군사재판이 단심으로 끝나 다른 가담자들보다 빠른 3월 6일 육군교도소 내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육사 18기 출신의 청렴하고 강직했던 군인 박흥주는 하늘을 보고 싶다며 눈을 가리지 말고 사형 집행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육군 만세!”를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