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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樂民(장달수)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시를 찾아 보다. 낙민
첫눈〔新雪〕 -지봉 이수광
천상에서 새로이 옥수궁을 낙성하니 / 天上新成玉樹宮
구름 자귀 달 도끼로 백공이 다듬누나 / 雲斤月斧役群工
어지러이 옥가루가 바람 따라 떨어져 / 紛紛落屑隨風下
인간세상을 온통 일색으로 단장하네 / 粧點人寰一色同
[주-D001] 천상에서 …… 다듬누나 : 하늘에서 하얗게 첫눈이 내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옥수궁(玉樹宮)’은 백옥(白玉)같이 하얀 나무로 만든 궁전이라는 뜻으로, ‘옥수’는 원래 전설상의 선수(仙樹)를 가리키는데, 하얗게 눈이 덮인 나무를 비유한다. 원문의 ‘운근(雲斤)’과 ‘월부(月斧)’는 구름과 달나라를 다듬어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도끼를 가리킨다. 당나라 태화(太和) 연간에 정인본(鄭仁本)의 표제(表弟)가 일찍이 왕수재(王秀才)와 함께 숭산(嵩山)에 놀러갔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한참을 헤매다가 문득 숲 속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에 살펴보았더니 하얀 포의(布衣)를 입은 어떤 사람이 보따리를 베고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그를 불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달이 칠보(七寶)로 합성된 것을 아는가? 달의 형세는 탄환과 같은데 그 환한 그림자는 태양이 볼록한 부분을 비추어서이다. 항상 8만 2천 호(戶)가 달을 다듬는데, 내가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다.”라고 하며, 보따리를 풀어 보이는데 그 안에는 도끼와 자귀 등 몇 가지 공구와 옥가루로 지은 밥 두 덩어리가 있었다. 이것을 두 사람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먹으면, 비록 장생불사는 못하더라도 일생 동안 질병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두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을 일러주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酉陽雜俎 卷1 天咫》
밤사이에 큰 눈이 내렸는데 올 겨울 들어 처음 보는 광경이라서 기쁜 마음에 시 한 수를 지어 기암과 백주에게 보내다[夜來大雪 今冬始見 喜成一律 呈畸菴白洲] -계곡 장유
밤 되면서 나무 끝에 바람 불더니 / 入夜風鳴枯樹枝
섣달 겨울 내린 첫눈 기특도 하오 / 窮冬一雪赤堪奇
한기 느낀 늙은이 혼자서 먼저 깨고 / 寒侵老子獨先覺
눈 오는 것도 모른 채 어린 아이 쿨쿨 자오 -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어린 아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들 상서로운 징조라고 한다. - / 睡熟小兒都不知
강산 천지에 활짝 핀 때 아닌 꽃 / 滿地江山花爛熳
구천 궁궐 쏟아지는 어지러운 옥가루 / 九天宮闕玉參差
양원의 서간 받는 것은 나의 일 아니어니 / 梁園授簡非吾事
그저 여러분과 백전시 한번 짓고 싶소 / 欲得諸公白戰詩
[주1] 양원의 …… 것 : 왕명(王命)으로 시를 짓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양 효왕(梁孝王)이 토원(兎園)에서 노닐면서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서간을 보내[授簡] 자신을 위해서 눈에 대한 시를 짓도록 부탁한 고사가 남조(南朝) 송(宋) 사혜련(謝惠連)의 ‘설부(雪賦)’에 소개되어 있다.
[주2] 백전시(白戰詩) : 상투적인 단어를 빼고서 독특한 표현으로 짓는 시를 말한다. 송(宋)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영주 태수(潁州太守)로 있을 때 눈 내리는 날 빈객들과 술을 마시면서 옥(玉), 월(月), 이(梨), 매(梅), 은(銀), 무(舞), 백(白) 등등의 글자를 빼고서 시를 짓도록 한 고사가 소식(蘇軾)의 ‘취성당설시병인(聚星堂雪詩並引)’에 소개되어 있다.
겨울에 오ㆍ권 두 벗이 역사를 찾아왔는데 이때 첫눈이 많이 내려 숲과 언덕이 온통 하얗게 덮였다. 이에 구양공의 취성당 고사를 본떠 시를 지어 회포를 달랬는데, 옥ㆍ염ㆍ은ㆍ화 등 글자는 쓰지 않기로 하였다[冬日吳權二友過驛舍 時初雪大至 林阿一色 茲述歐陽公聚星堂故事 賦詩遣懷 禁用玉鹽銀花字] -다산 정약용
밤이 되자 매섭던 바람 그치고 / 入夜風威靜
산중 누각 들리네 다듬이소리 / 山樓聽遠砧
불만 겨워 차가운 기운 더하고 / 牢騷增薄冷
깊은 사색 한겨울 집중이 되네 / 湛寂滯窮陰
맑은 달은 솔 끝에 깃들어 있고 / 澹月棲松頂
산들바람 대 몸통 흔들더니만 / 微飆撼竹心
짙은 구름 별안간 하늘을 덮어 / 鬱紆俄變色
그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네 / 醞釀窅難尋
이상하다 뜨락이 밝아지다니 / 漸怪階庭晃
놀랍다 시내 골짝 묻혀버렸네 / 翻驚磵壑沈
경탄하여 서둘러 방문 여는데 / 叫奇催拓戶
잠결이라 비녀도 미처 못 꽂아 / 眠起尙遺簪
깜깜할손 별빛은 자취 감추고 / 黯慘星河沒
텅 비고 밝은 수목 늘어섰구나 / 虛明樹木森
화로 다사로워 술상을 내오랬으나 / 爐溫初命酒
시위 얼어 거문고 타지는 못해 / 絃凍未調琴
옷 젖어 흐린 자국 눈에 보이고 / 細點看衣濕
사각사각 나뭇잎 소리 들리네 / 輕篩聽葉吟
초가지붕 흰 비단 덮어놓았나 / 屋茅疑被縞
울 국화 묻힌 황금 애석하여라 / 墻菊惜埋金
험한 바위 호랑이 걸터앉았고 / 危石皆蹲虎
묘한 가지 새들을 아로새겼네 / 奇柯總鏤禽
누대의 밝은 빛은 강물 접한 듯 / 樓光如近水
하늘빛 아스라이 산과 떨어져 / 天色逈離岑
들밭 보리 진중히 새싹 감추고 / 野麥藏苗穩
산중 차는 저 깊이 망울 맺으리 / 山茶結蕾深
풍류도 드높아라 역참의 집에 / 風流高驛舍
선비들 함께 모여 술잔 나누네 / 杯酌聚儒林
겨울잠은 거북이 지혜 따르고 / 凍蟄依龜智
표류하여 개미의 침해 벗어나 / 波漂免蟻侵
쓸쓸히 양보음 읊조리던 중 / 蕭條梁甫詠
한 해가 저물 무렵 지음이 있네 / 歲暮有知音
[주1] 구양공의 취성당 고사 : 송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여음 태수(汝陰太守)로 있을 당시 소설(小雪)에 취성당에 손님을 모아 놓고 금체(禁體)의 시를 지은 일이 있다고 한다
[주2] 양보음 : 제갈량이 은거할 때 즐겨 노래하였다는 악부(樂府)의 곡명. 양보는 태산(泰山) 아래에 있는 작은 산으로 본디 그곳에 묻힌 사람들을 슬퍼하는 만가(挽歌)였는데, 후세에 와서는 불우한 처지를 읊은 처량한 시작품을 가리킨다.
[주3] 지음 : 춘추시대 사람인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탈 때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만이 그 곡조를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데서 나온 말로, 지기(知己)와 같은 뜻이다.
실제〔失題〕 -도은 이숭인
저녁 햇빛 아직도 나무에 있는 때 / 斜陽猶在樹
말 세우고 인가를 물어보노라 / 立馬問人家
봄풀은 황량한 거리에 돋아 나오고 / 春草生墟巷
강가의 배는 모래 언덕에 걸려 있네 / 江舡閣岸沙
막혀 있는 땅에 산기슭 끊어지고 / 地窮山趾斷
활짝 트인 하늘에 갈림길 멀어라 / 天豁路歧賖
내일 그리고 계속해서 또 내일 / 明日又明日
길 위에서 늙어가는 이 신세를 어떡하나 / 行行老奈何
깊은 산골 적막한 동네 / 深山寂寞境
연일 자욱이 내리는 봄비 / 春雨連朝昏
돌아가지 못하는 천리의 길손 / 千里未歸客
감상에 젖어 문에 홀로 기댔노라 / 多情獨倚門
이 시절 새로 찾아온 제비 / 此時新鷰到
어딘가에 옛 둥지가 있으련마는 / 何地舊巢存
애석해라 진흙 물고 날아가는 곳 / 可惜含泥處
모두 지난해의 마을이 아니구나 / 都非去歲村
아스라한 세모의 하늘 / 蒼茫歲暮天
첫눈이 산천을 뒤덮었네 / 新雪遍山川
새는 산속의 나무를 잃고 / 鳥失山中木
중은 돌 위의 샘을 찾누나 / 僧尋石上泉
들 밖에서 우짖는 굶주린 까마귀요 / 飢烏號野外
냇가에 누워 있는 얼어붙은 버들이라 / 凍柳臥溪邊
어딘가에 인가가 있는지 / 何處人家在
먼 숲에 흰 연기가 피어나누나 / 遠林生白煙
십일월 삼일 많이 내린 눈을 보고 -이규보
절후가 벌써 대설이 되었으니 / 節已侵大雪
이번에 내린 눈 급한 것 아니로다 / 此雪未云劇
첫눈이 이미 이처럼 많으니 / 初雪已如此
세 차례 큰 눈은 걱정이 없네 / 何憂不三白
밤이 깊어지고 잠도 깊이 들어 / 夜深睡正甘
눈송이 나는 것도 보지 못하고 / 不見飛花色
창에 뿌리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 洒窓猶未聞
창문을 열어보니 놀랍게 쌓였구려 / 開戶方驚積
멀리서 생각노니 대궐 아침엔 / 遙知紫宸朝
축하하는 그 춤에 옷자락 빛나리 / 舞賀朱袂赩
나와 같이 노퇴한 사람이야 / 如予老退者
혼자서 박수나 치리라 / 宜以才自拍
[주-1] 세 차례……없네 : 이 구절은 풍년을 점치는 말. 납전(臘前)에 세 차례의 눈이 오면 이듬해 풍년이 든다 한다.
차 정선 객사 운(次㫌善客舍韻) -조준(趙浚)
계산에 첫눈 오자 행인도 적은데 / 溪山初雪少人行
흥에 겨워 높이 읊으며 이 성에 이르렀네 / 乘興高吟到鳳城
첩첩한 물은 뇌성처럼 땅을 치며 들어오고 / 水疊雷犇衝地入
봉은 층층 병풍을 묶어 반공에 비꼈구나 / 峯層屛束半天橫
잔 들고 검을 보며 내 뜻을 위안하고 / 引杯看劍寬吾志
고삐 잡고 풍속 보며 인심을 점검하네 / 攬轡觀風檢俗情
동해를 말끔히 씻을 날이 있으리니 / 滌蕩東溟當有日
백성들 다 눈을 씻고 맑아질 때를 기다리네 / 居民洗眼待澄淸
[주-1] 맑아질[澄淸] : 한(漢) 나라 범방(范滂)이 지방을 안찰(按察)하러 나갈 때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 천하를 맑힐 뜻이 있었다.
첫눈이 사시(巳時) 초에 내리다. -목은 이색
국운은 애당초 병통이 없었고 / 國脈初無病
천심은 본디 스스로 화평하기에 / 天心故自平
음양은 절후에 따라 조화 이루고 / 陰陽隨節候
형정은 공평무사한 데서 나왔네 / 刑政出鈞衡
오물 삼키어 천원은 깨끗하고요 / 含垢川原淨
청결 드러내 궁전은 밝기만 한데 / 揚淸殿宇明
누가 알랴 깊이 들어앉은 나그네가 / 誰知深坐客
머리 조아려 왕은에 감사한 줄을 / 稽首謝生成
사해에는 구름이 아직 캄캄한데 / 四海雲猶暗
일천 숲엔 길이 이미 편평해졌네 / 千林路已平
부 짓는 재주론 사조를 추앙하고 / 賦才推謝眺
시의 고아함은 광형을 사모하노라 / 詩故慕匡衡
취한 뒤엔 옥산이 무너지는 듯 / 醉後玉山倒
시야에는 은빛 바다가 환한 듯 / 望中銀海明
재신들은 의당 하례를 올리리니 / 宰臣當拜賀
낭사에서는 표문을 작성하겠네 / 郞舍表文成
인심은 아직도 두려워 떨지만 / 人心猶震疊
세상은 그런대로 태평하기에 / 世路且升平
군왕의 자리는 만대를 전하고 / 萬葉傳丹扆
옥형으로는 삼광을 관찰하네 / 三光察玉衡
온 천하엔 더러운 물건이 없고 / 普天無垢穢
작은 집은 더욱 텅 비고 밝은데 / 小室更虛明
목은 노인은 방금 꿇어앉아서 / 牧老方危坐
새로운 시를 갑자기 이루었네 / 新詩忽爾成
[주-D001] 사조(謝眺) : 남제(南齊) 때의 시인(詩人)으로 당대에 재명(才名)이 높았으나 그는 일찍이 설부(雪賦)를 지은 적이 없으니, 사혜련(謝惠連)의 설부가 유명했던 것으로 보아 혹 사혜련의 착오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주-D002] 광형(匡衡) :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일찍이 박사(博士)에게서 《시경(詩經)》을 전공하였고, 그는 특히 시(詩)를 잘 말하였으므로, 당시 제유(諸儒)들이 서로 말하기를, “시를 말하지 말라, 광형이 곧 올 것이다. 광형이 시를 말하면 모두 입이 벌어질 것이다.[無說詩 匡鼎來 匡說詩 解人頤]” 하였다. 《漢書 卷81 匡衡傳》
[주-D003] 취한 …… 듯 :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의하면, 혜강(嵇康)의 풍채는 마치 외로운 소나무가 홀로 우뚝 선 것과 같고, 그가 취한 모습은 마치 크나큰 옥산(玉山)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 옥형(玉衡)으로는 삼광(三光) : 옥형은 구슬로 제작한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기계(器械)인 혼천의(渾天儀)를 가리키고, 삼광은 일(日), 월(月), 성신(星辰)을 가리킨다.
신설(新雪) -서거정
펄펄 날리는 첫눈은 솜보다 더 하얗고 / 飛飛新雪白於緜
은빛 같은 폭포는 중천에 걸리었구려 / 懸瀑如銀掛半天
산중 집은 문 닫은 채 사람 소리 드문데 / 山店閉門人語少
찬 강물 어느 곳에 한 고깃배가 떴는고 / 寒江何處一漁船
이영원(李永元)이 호남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기에 -읍취헌 박은
우리 벗 세모가 되자 맑은 흥취 많이 일어 / 故人歲晩饒淸興
천애 먼 고을에 내리는 첫눈을 사랑하누나 / 秪愛天涯雪落初
방문을 열고서 추운 뒤의 대를 어여뻐하고 / 排戶尙憐寒後竹
도롱이 젖히매 낚시에 물고기 걸린 줄 알도다 / 披蓑知有釣來魚
산과 바다를 늘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 能敎山海長相對
변변찮은 끼니야 넉넉지 못해도 괜찮아라 / 未害虀鹽亦不餘
훗날 시내에 노 저어 벗을 찾아갈 때 / 他日爲尋溪上棹
대 울타리에 띳집이 군의 집인 줄 알겠네 / 筍籬茅屋是君居
택지에게 화답하다 -읍취헌 박은
강산은 눈에 선해 정이 함께 달려가건만 / 江山在眼情俱迋
향화의 문은 닫힌 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 香火關門歲欲窮
지금은 하나의 흥도 없으니 스스로 우습고 / 自笑如今無一興
약속이 있어도 함께 못 만나니 안타까워라 / 更憐有約不相同
빈 술병 놓고서 어찌 첫눈을 대할 수 있으랴 / 空尊何可對新雪
병든 말이 저녁 바람에 더욱 시름하는 격일세 / 病騎轉愁當暮風
종일토록 적요하여 늘 무릎을 감싸 안다가 / 終日寂寥長抱膝
군의 시에 화답하고 나니 마음이 바빠지누나 / 和君詩罷覺悤悤
시월 초하룻날 재차 사직장을 올리고 금산의 농가로 돌아왔는데, 방백이 사직을 수락하지 않고 취직하기를 재촉하므로, 초구일에 길을 떠나 소마현을 지나는 도중에 눈이 내렸다[十月初一日再呈辭狀還金山農舍方伯不受促使就職初九日度消馬峴有雪] -점필재 김종직
무성한 구름 바람에도 걷히지 않고 / 繁雲吹不駁
아침 햇살을 도리어 삼켜버리네 / 朝日旭還呑
하늘은 첫눈을 내리려고 하는데 / 天欲行初雪
사람은 어이해 고원을 작별하는고 / 人胡別故園
소나무는 나직하니 때로 모자를 털고 / 松低時拂帽
까마귀는 울며 다투어 마을로 드누나 / 鴉噪競投村
천재의 고사 시상자에 대해서는 / 千載柴桑子
맑은 풍도를 함부로 논하지 못하겠네 / 淸風未擬論
첫눈〔新雪〕 -회재 이언적
오늘 아침 온 천지에 홀연히 첫눈이 와 / 新雪今朝忽滿地
마치 내가 수정궁에 앉아 있는 것만 같네 / 怳然坐我水精宮
사립문에 섬계를 찾아줄 이 누구일까 / 柴門誰作剡溪訪
앞산의 푸른 솔을 홀로 서서 바라본다 / 獨對前山歲暮松
근래 도를 탐구하여 참된 성품 기른지라 / 探道年來養性眞
상쾌한 마음속에 먼지 모두 사라졌네 / 爽然心境絶埃塵
안연이 누항(陋巷)에서 만족한 걸 누가 알랴 / 誰知顔巷一簞足
산천에 눈 덮이니 나는 가난하지 않네 / 雪滿溪山我不貧
[주-1] 사립문에 …… 누구일까 : 눈 덮인 산속으로 친구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섬계(剡溪)는 진(晉)나라 때 대규(戴逵)가 살았던 곳이다. 어느 겨울밤 큰눈이 내려 사방이 하얗게 덮이자 산음(山陰)에 살던 왕휘지(王徽之)가 멀리 섬계에 사는 벗 대규를 생각하고는, 즉시 조각배를 타고 출발하여 새벽녘에야 대규의 집에 도착하였던 고사가 있으므로 한 말이다. 《世說新語 任誕》
해산정〔海山亭〕 -강한 황경원
높다란 누각에 올라 첫눈을 보노라니 / 懸檻登臨雨雪初
봉래의 산색이 뜨락의 섬돌을 감쌌구나 / 蓬萊山色繞庭除
아침 노을 너머에서 차가운 조수 일렁이고 / 寒潮灧漾朝霞外
저녁 어스름 속에 첩첩 산은 높아라 / 疊嶂嵯峩夕氣餘
작은 배 타고 너른 물결 헤쳐가고 싶지만 / 欲駕輕舟凌浩蕩
젓대 슬피 불며 허공에 기대설 뿐 / 聊橫哀笛倚空虗
영랑은 한번 가서 끝내 돌아오지 않으니 / 永郞一去終不反
호수 위에 흰 구름만 뭉쳤다 폈다 하네 / 湖上白雲只卷舒
[주1] 해산정(海山亭) : 강원도 고성에 있던 누정. 해금강과 외금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아래로 남강의 물이 흘러가고 있어 강과 산 그리고 바다 세 곳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절경이라 일컬어지던 곳이다.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청천현 객사에서 현판 시에 차운하다〔淸川縣館次板上韻〕 -금역당 배용길
높은 산이 무협에 닿아 있어 / 亂山接巫峽
용공의 솜씨를 빌린 듯하네 / 試手借龍公
비 올 기미는 아침마다 변하고 / 雨意朝朝變
가을 모습은 곳곳마다 같다네 / 秋容處處同
가냘픈 노래에 옥피리로 화답하니 / 纖歌和玉笛
학 한 마리 하늘에서 내려오네 / 獨鶴下瑤空
베개에 기대어 꾸는 고향 꿈 / 攲枕思鄕夢
오늘 밤에 유난히도 놀랐네 / 偏驚此夜中
[주] 용공(龍公)의 …… 듯하네 : 용공은 비와 눈을 맡아보는 신(神)을 말하는 듯하다. 소식(蘇軾)의 〈취성당설(聚星堂雪)〉 시 서문에 “장용공에게 비를 빌어 적은 눈을 얻었다.〔祈雨張龍公得小雪〕”라고 하고, 그 시에 “창 앞의 그윽한 소리 마른 나무 울리니, 장용공이 솜씨 부려 첫눈 내리게 함이네.〔窓前暗響鳴枯木 龍公試手行初雪〕”라고 하였다.
눈을 읊다〔詠雪〕 -용주 조경
용왕이 손을 써서 겨울을 희롱하니 / 試手龍公戲太陰
소아가 이내 눈송이 끼고 내려오네 / 素娥仍挾玉妃臨
소금은 오왕이 달이는 동해물에서 쏟아졌고 / 鹽傾東海吳王煮
매화는 처사가 찾는 서호에서 피해 왔네 / 梅避西湖處士尋
문득 인간 세상을 한 가지 색으로 만드니 / 便使人寰開一色
비로소 하늘이 편협하지 않음을 알겠노라 / 始知天上少褊心
밝고 깨끗한 마음이 눈처럼 더욱 희어지니 / 淸瑩肝膽雪同老
종일토록 사립문에서 괜스레 홀로 읊조리네 / 盡日柴門費獨吟
[주-D001] 용왕이 손을 써서 : 소식(蘇軾)의 〈취성당설(聚星堂雪)〉에 “창 앞에 은은한 소리 마른 잎을 울리더니, 용왕이 손을 써서 첫눈을 내리누나.〔窓前暗響鳴枯葉, 龍公試手行初雪.〕”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2] 소아(素娥) : 달에 산다고 하는 선녀인 항아(姮娥)의 별칭이다.
[주-D003] 소금은 …… 쏟아졌고 : 눈을 소금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한 고조(漢高祖)의 조카인 오왕 비(吳王濞)가 반역하기 위하여 재물을 모으느라고 바닷물을 달여서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史記 卷106 吳王濞列傳》
[주-D004] 매화는 …… 왔네 : 눈을 매화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처사는 북송(北宋)의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임포는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행서와 시에 능하였는데 특히 매화시가 유명하다. 결혼하지 않고 처자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즐기니, 당시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