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절 – 6절
하나님이 교회와 목회자를 보시는 관점이 곧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판단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서신서들이나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교회나 데살로니가교회는 가난하고 힘든 교회였지만 도리어 감사가 풍성한 교회라고 하는 판단을 받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어 주시는 일에 충성된 종이 있고 늑대처럼 성도들을 자기의 이익을 위한 재료로 여기는 목회자 즉 삯꾼목자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관점에서보는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판단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교회는 성도들도 많고 교회가 확기가 넘쳤습니다. 예배시간에 온갖 은사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신령한 자들이며 장성한 자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뽀는 판단은 전혀 다릅니다. 고린도교회는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다고 합니다. 은사도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들고 장성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사모함과 은사를 향한 갈망과 구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은사는 선물이기 때문에 받는 자가 얼마나 성숙한 신앙인이냐와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데교회를 보게 됩니다. 사데교회는 금이 많이나는 지역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닌까 향락시설이 많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번화가라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 있는 사데교회는 항상 활기가 넘치고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살아있는 교회라고 하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말하면 항상 사데교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라고 스스로 말하고 또 사람들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런 교회의 목회자는 능력있고 복받은 목회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성도들은 웃음이 넘치고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교회입니다.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살아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데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사데지역은 상업이 번성한 지역으로 온갖 우상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교회기둥에 까지 우상들을 세겨 넣기도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제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어지고 선포되지만 그것은 듣는 것으로 끝납니다. 교회는 늘 잔치집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잊혀지는 존재입니다. 목회자까지도 말씀선포와 성도들을 대함이 전혀 다릅니다. 어떤 목회자는 말씀을 강하게 선포하고 강댓상에서 내려가서 성도들이 상처받지는 않을까해서 웃기는 말을 하고 즐겁게 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원수입니다.
그런 사데교회에 몇 명은 신실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받을 때 떨었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그래서 많은 성도들에게 미움이 되었습니다. 잔치집 같은 분위기에 말씀을 듣고 눈물흘리고 아파하니 아니꼬운 대우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