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자신이 한 일은 구약성경에서 약속한 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전한 것밖에 없다고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이야기합니다(19절~23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에게 강렬한 빛으로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전파하라는 명령을 주셨기에 바울은 그 명령에 따라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이 자신이 한 일이라고 변론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베스도 총독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외칩니다(24절). 로마에서 온 베스도 총독이 들을 땐, 바울의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갑자기 바울 앞에 나타나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였다니, 이게 제정신을 가진 자라면 할 수 있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많은 학문을 닦은 것을 알았던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공부를 많이 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내용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땐 어처구니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승천(昇天)하셨다는 이야기는 그저 신화적(神話的)으로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걸 실제로 믿는다고 하면 ‘미친 거 아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그대로 믿는 자들입니다. 아마 베스도 총독에게는 바울이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베스도 총독의 말에 바울은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25절)라고 대답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허황(虛荒)하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실제로 복음을 경험한 자들에게는 실제적 사건입니다. 실재(實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되고 온전한 진리입니다. 꾸며낸 이야기나, 신화(神話)가 아닙니다. 역사(歷史) 속에 있었던 실재적(實在的) 사건입니다.
바울은 베스도 총독 옆에 앉아있는 아그립바 왕을 가리키며 아마 아그립바 왕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6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어느 한 구석에서 조용히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예루살렘이 떠들썩하도록 모든 이들에게 알려진 사건이었다는 것을 아그립바 왕은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아그립바 왕을 쳐다보며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그립바 왕에게 선지자를 믿느냐고 물으면서 아마 믿는 줄 안다고 말합니다(27절). 선지자를 믿는다는 말은 구약성경의 선지서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구약의 선지서에서 한 예언들을 믿느냐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아그립바 왕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답변합니다(28절). 아마 이 말은 아그립바 왕이 어느 정도 설득되고 있음을 살짝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허, 그런 말로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구나’라는 마음을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에게 설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싫은 마음도 있기에 그렇게 답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설득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울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네가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아그립바 왕과 그 주변에 있던 베스도 총독과 천부장들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9절). 내가 이렇게 결박되어 재판을 받는 모습이지만, 이렇게 결박된 것 말고는 당신들 모두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원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에 대해서 아무런 후회도 없고, 매우 만족스럽고, 매우 멋진 삶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기쁨과 행복한 삶을 여러분도 누리면 좋겠다고 당당히 말한 것입니다. 내게 있는 복음의 기쁨, 복음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자녀 됨으로 인한 축복은 너무 좋은 것이기에 모두가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마 바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바울의 당단한 말과 확신에 찬 표정을 보고 ‘도대체 바울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길래, 바울이 믿는 복음이 무엇이기에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일까?’하는 마음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심문한 결과 바울에게는 죄가 없음을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30절, 31절). 아그립바 왕도 베스도 총독에게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풀려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32절). 바울은 죄를 짓지 않은 것이 명백하지만, 바울의 상소로 인하여 로마까지 호송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어 로마에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바울은 예수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에 미친 사람들”로 보여져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도 아니고, 종교적인 형식도 아니며, 심신(心身)의 안정을 주는 심리적 도구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실재(實在)이며, 삶의 능력이며, 영원한 생명의 누림입니다. 적당히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미쳐서 내 생명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내 삶과 생애를 바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