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 에너지
독일의 자연철학자 마이어-아비히는 인간이 발명해낸 에너지 이용 방식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돛단배를 꼽는다. 그것은 자연에게 모든 것을 내맡긴다. 바람이 불면 움직이고 바람이 그치면 조용히 물 위에 멈추어선다. 돛단배는 바람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순응할 뿐이다. 바다를 조금도 손상하지 않고, 바다속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바다와 일체가 되어 이동한다. 이렇게 자신이 처한 곳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움직일 수 있으니 가장 자연스러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에너지 이용방식이 되는 것이다.
돛단배는 인류가 바람을 이용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풍차가 발명될 때까지 그것은 유일한 풍력 이용기술로 남아있었다. 사실 바람이란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세찬 바람이 불면 우리는 옷을 여미고, 문을 꼭꼭 닫아걸고, 바람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바람에 대항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순응하거나 피하는 것, 그것 말고 방법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중세에 들어서 유럽과 아랍 국가에서 풍차라고 하는, 바람에 대항하는 초보적인 형태의 장치들이 등장했다. 이것은 바람이 불어도 이동하지 않는, 땅바닥에 고정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여가는 순응형 돛단배와 달리 풍차는 바람에 대항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응력이 필요하다. 강한 바람이 불어도 날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땅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도 바람이 세게 불면 풍차는 부서지거나 망가지는데, 이것은 바람의 힘에 대항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순응형의 돛단배와 달리 풍차는 바람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 풍차는 주로 곡식을 빻거나 물을 퍼올리는 일에 이용되었고, 조금 더 규모가 커진 다음에는 목재를 자르거나 종이를 만들거나 금속을 제련하는 일에도 이용되었다. 이렇게 적용범위가 넓어지자 풍차의 이용도 점점 늘어나서 19세기 중엽이 되면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1만 개, 독일에서는 2만개 가량의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 50년 동안 수백만개의 풍차가 판매될 정도로 풍차가 널리 퍼져갔다. 크기도 날개가 그리는 원의 지름이 30미터, 높이도 수십 미터 이상 되는 것들이 등장하여 유럽의 들판을 장식했다.
풍차의 전성기는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이 개량되고 퍼져나가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풍차는 자연 속에서 끝없이 생겨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과 꽤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 이용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증기기관이 등장함으로써 화석연료에 밀려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바람을 이용하는 기술이 아주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전기가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물과 바람을 전기생산에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이번에는 풍력발전기라는 장치가 생겨난 것이다.
풍력발전기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처음에 등장한 풍력발전기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기껏해야 전등 한두 개 켤 수 있는 정도의 규모였다. 물론 규모는 점점 커져갔고 보급도 점차 확대되었다. 전기가 보급될 당시 사람이 밀집해서 사는 도시지역은 전선망을 통해서 쉽게 전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집들 사이의 간격이 넓던 농촌 지역은 전선망이 깔리지 않았고 따라서 전기를 공급받기도 어려웠다. 풍력발전기는 이러한 곳에 둥지를 틀고 퍼져갔다. 특히 유럽보다 미국의 대초원 지대에 많은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서 백만개 이상이 2차대전 전까지 이용되었다. 설치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용가능한 것이 남아 있을 정도로 당시의 풍력발전기는 기술 수준도 높았다. 그러나 2차대전 후 농촌지역까지 전선망이 깔리게 됨에 따라 풍력발전기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2차대전 후 수십년간은 석유와 원자력의 시대였다.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고 자동차가 운송수단의 중심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석유는 현대문명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고 가장 주목받는 에너지가 되었다. 원자력도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풍력발전 기술은 이러한 흐름 앞에서 힘을 쓸 수 없었다. 전선망이 깔려있지 않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가에서조차도 풍력발전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도 오직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발전소, 원자력 시설, 그리고 거대 수력발전 시설만이 관심을 끌었을 뿐, 가장 적합한 소형 풍력발전기는 찬반 신세를 면치 못했다.
풍력발전은 70년대 초에 제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면서 점차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났다. 석유가격이 크게 뛰어오르자 석유를 대신할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풍력발전도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캘리포니아에는 80년대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섰고, 덴마크에서도 풍력발전기가 널리 퍼져갔다. 풍력발전기의 규모도 점점 커져갔다. 1980년에 제작된 풍력발전기는 발전용량이 기껏해야 10kW 정도였다. 1990년 경에는 발전용량 100kW 짜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풍력발전기의 규모는 커져갔다. 1990년대 말에는 1000kW를 넘어섰고, 그후 1500kW, 2000kW, 3000kW를 거쳐 최근에는 5000kW 짜리가 개발되어 곧 발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발전용량뿐만 아니라 날개와 기둥의 크기도 거대 규모가 되었다. 2000kW자리 풍력발전기는 날개 길이가 40m, 기둥 높이가 거의 100m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기둥 속에는 엘리베이커가 설치되어 있고, 수리나 점검을 할 때는 사람들은 이 장치를 타고 발전기 꼭대기로 올라간다.
규모가 커지고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풍력발전기에 대한 저항도 늘어났다. 풍력발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소음을 내고 경관을 파괴하고 동물에게 피해를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음 문제는 풍력발전기가 대형으로 발전함에 따라 거의 해소되었다. 날개 크기가 커지면 회전수가 줄어들고 소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피해도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큰 문제는 풍력발전 단지에 한꺼번에 수십개의 발전기가 세워짐에 따라 경관을 크게 변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이해 이미 독일에서는 풍력발전단지의 면적이 국립공원을 제외한 임야면적의 1%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저항도 심하고 마땅한 설치장소도 찾기 어려워진 육지를 피해 바다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풍력발전은 전세계에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다. 앞으로 수십년간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한 풍력발전의 확대는 긴급하고 필연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