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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사회복지선교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moses hur
영권 (말의 능력)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독교의 본질은 기도, 말씀, 선교이다.
이 본질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아무리 잘 감당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역을 결코 정상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에 전무하는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것이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1. 부흥 뒤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다.
부흥을 이루는 분들의 목회현장에 가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부흥을 이룬 분들치고 개인 기도방이 없는 분을 본 적이 없다.
왜일까? 기도없이는 목회가 안되기 때문이다.
기도없이는 양떼가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없이는 양떼가 자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부흥을 이루기 위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부흥을 이루기 위한 본질이요 원동력이다.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글이나 말들을 통해서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 한번 사람을 붙여 주어보라. 기도없이는 단 100명도 제대로 품지 못한다.
100명의 양떼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100명의 양떼를 품을 정도의 기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100명의 성도가 모이는 것은 100명에 합당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1,000명이 모이는 것은 1,000명에 합당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없이는 양떼가 모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인 양떼를 맡긴다 할지라도 유지도 못하는 것이다.
2. 권위는 기도에서 나온다.
목회에서 분명히 능력이 필요하다.
'위로부터의 능력'없이 일하는 것은 마치 머리깍인 삼손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다.
어느 젊은 목사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주변에 맞먹으려는 사람이 많다.
필자는 인격적 감화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내 인격에 감동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목회에는 어느 정도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외적으로 볼 때 필자에게는 원천적으로 의지할 권위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권위가 생긴다.
알기 쉬운 표현으로 한다면, 무게가 생기는 것이다. 필자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다 내려온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모세'를 항상 연상한다.
목회자는 이러한 영적 광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성도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다.
목회를 하다보면, 교인들이 흩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때만틈 목회자를 당황하게 하는 때는 없을 것이다.
급하다보니 전화통에 먼저 손이 가고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통해서는 영혼을 건지는 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위기의 상황에 주께 매달려 하루고 이틀이고 깊은 기도의 자리에 들어갔다 나오면 질서가 잡히고 영혼들이 끌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영권(靈權)을 잃으면 교회에 재앙이 온다.
교회가 분열되게 된다.
그래서 모든 목회자는 엎드릴 수밖에 없다.
우리의 권세는 내 안에 있는 권세가 아니라, 주님께 종속된 권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목회자는 '얼굴에 광채가 나는 모세의 얼굴'을 자신의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권위는 기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도목회는 절대 필요하고 기도목회하는 목회자는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
3. 기도만이 해결책이다.
기도는 우리의 간구를 하나님께 아뢰는 의미도 있지만, 기도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특별히 목회자에게 있어서 기도시간은 하나님께서 작성하신 설교 원고를 받아 적는 시간이다.
기도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된다.
기도는 만능이다.
기도없이는 말씀의 능력도, 기도의 감화도, 문제의 해결도 되지 않는다.
기도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된다.
4. '끝장보는 기도'가 필요하다.
초대교회는 야성이 있던 교회였다.
핍박이 오면, 피를 흘려가면서 대항해내고, 시험이 오면 온 성도가 모여서 기도로써 그 위기를 극복해내곤 하였다.
초대교회는 세상의 관원들이 아무리 길들이려 해도 길들여지지 않던 야성의 호랑이 였다.
한국교회도 이 초대교회의 야성의 전통을 이어받아 무서운 교회가 되었다. 핍박에 대해서 피로써 항전했다.
시험과 환난이 오면, "소나무 뽑으러 가자"며 산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심장을 쏟아붓곤 하였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오면 오히려 기도의 불길이 타올라 더 부흥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가? 기도할 줄 모르는 성도가 양산되고 있다.
산기도, 철야기도를 통한 '끝장보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성도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교회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자리는 기도회의 자리이다.
이 기도회는 처음보는 사람들이 마치 전투장을 연상케 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제일 많은 전투를 하고 제일 많은 피와 땀을 흘린다.
기도의 승리를 이루고 난 뒤, 다만 사역의 현장에서는 승리의 노획물들을 거둘 뿐이다.
목회선상에서 승부를 거는 끝장보는 기도가 필요하다.
생명을 건 기도로 교회부흥과 성장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기도할 때 영권을 회복하며 능력있게 목회할 수 있다.
교회를 출석하면서 많이 듣는 말중에 영성(靈性)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성이 높아지고 깊어 질까?
신앙이 깊어 질수록 궁금해 하는것인데도 배울데도 마땅한곳이 없고
물어봐도 별로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영성의 완성은 예수그리스도이시고. 영성의 푯대 또한 예수님 이시다,
우선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제일가는 영성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겸손를 닮는것입니다.
신앙의 영성중에 사랑과 겸손이 가장 큰 영적 덕목이라 볼수 있습니다.
영성은 오직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성품을 뜻하는것입니다.
교회 오래 출석했다고 자연스레 체득 되여지는게 아니므로 성도들은 항상 겸손히 각각의 자아를 죽이고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하여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은사와 부르심은 여러가지입니다.
어떤이들은 사도로, 선지자로, 교사로, 병고치는자등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각각의 달란트를 따라 여러 모양과 여러 모습이 있을수있으나
이것이 각기 다른 영성을 뜻하는것이 아니라 ..한 성영안에서 직임이,,,
각각의 역할과 소명이 다를뿐이라는 것입니다 ,
안수에 관하여는 안수 하는자의 영성이 더욱 요구 됩니다,
주의하셔야 할 것은 안수는 함부로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안수하는자의 영적 능력과 더불어 그사람의 혼적인 것까지도 전달이 될수있기때문입니다.
안수시에는 안수자의 영적능력이 받는자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수자가 성령께서 검증한 사람인지 아닌지 온전히 구분치 못할때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은사를 받은자가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여 혼적인 혼탁함이 쌓이고 있을때 이런자에게 안수를 받게되면 능력뿐만 아니라 그의 혼탁함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이러한 이치가 이상한것이 아니라 원래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영성으로 창조되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알지도, 구하지도 아니하였는데 그의 옷을 병든자에게 얹었어도 병이 나았다고 기록된것처럼,,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바울에 임한 능력이 그의 두른 옷에까지 임한 것처럼 영성의 영향력을 세상의 학문 으로는 정의를 할수 없습니다,
이말을 들으면 의문이 생기겠지요? 그러면 절간의 스님이나
무당이 쓰는 부적에 영험한 효과가 있는게 맞는것이 아니냐고요?
여기서 믿는자의 영성이 얼마나 귀함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적은 영적인 단계가 아닌 사람의 마음의 겉단계라고 할수 있는
혼적인 단계에서(퓨스케)가 일어나는 일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은사는 영적인(퓨뉴마) 단계로써 분명한 격차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혼(魂 )적인 단계와 주님이 거하시는 영(靈)적인 단계의 비교는 마치 원자탄과 폭죽놀이(폭음탄)의 차이가 나므로 비교 불가능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답답한 나머지 무당과 점집을 찾는다면 그의 죄악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들일수 밖에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따라서 사단은,,영성이 깊은 사도바울의 은사를 흉내내고 모방함으로써 부적을 만들어 영험한것처럼 속이며 고가에 팔면서 심령을 혼란케 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안수를 하는 이의 영성뿐만 아니라 혼적 부패함도 받는 이에게 함께 영향을 끼침을 주의하셔야합니다
안수의 효과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소개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딤후1:6)
성령안에서 정결한자의 안수함을 받는 것은 받는 이에게 새로운 믿음의 도전을 주게 됩니다.
여러 능력도 나타날수 있고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일어나게 할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잇습니다
안수가 우리 마음에 근본적인 변화는 주지 못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오직 성경 말씀 외에는 비결이 없다 하겠습니다,
안수 받는것도 좋으나 그보다 비할 바 없이 좋은 것은 성령 충만한자 에게서,, 마음에 변화를 줄수있는 은혜의 말을 듣는것이 제일 좋은 동기를 부여 할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음에서 믿음이 생긴다고 했으니,,,이것은 깨달은 자의 말한마디가 일만 방언보다 유익하다고 한 뜻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언어와 사망의 언어
Family therapy (가족치료)
현증서교수가 총신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지도하는 언어치유연구소에서
생명의 언어와 사망의 언어를 분류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하는 혀의 권세를 구체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내면에 상처와 아픔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병들고 상처를 받습니까? 말 때문입니다.
함부로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로 받은 상처가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대화훈련 세미나에서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95%가 남편이라고 대답하고, 아내라고 대답합니다.
자녀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면 부모님이라고 대답합니다.
상처는 먼데 있는 사람에게 받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받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받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소한 일 때문에 상처를 받지 큰 문제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 때문에 다투게 되고 싸우게 됩니다.
말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또한 말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말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할 수도 있고, 병든 마음을 치료할 수도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망의 언어와 생명의 언어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상처를 주고, 좌절과 절망감에 빠지게 하는 말을 사망의 언어라 하고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실망하고 낙심한 자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 소망을 주는 말을 생명의 언어라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남편을 말로 치료해 주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부부가 자녀를 위로, 격려, 소망을 주고 사랑함으로서 서로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치료해 주는 가정이 될 때에 주님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 천국 가정이 됩니다.
가정이란 참으로 안식하는 곳이어야 하고 위로받는 곳, 상처를 싸매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위해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찢기고 상한 마음,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에 포근히 감싸주고, 싸매주고, 위로해 주는 곳이 바로 천국 가정입니다.
자녀의 성품을 만드는 말 한 마디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 한 마디로 딸의 나쁜 행실을 고친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
19명의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수잔나 웨슬리는 자녀를 키우는 모든 어머니들이 바라는 선망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난 아이 하나도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데 어떻게 19명이나 되는 자녀를 그렇게 성공적으로 양육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면 부러움을 넘어 절망감을 주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녀도 행실이 바르지 못한 딸 때문에 눈물 흘리는 고통의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훈계를 무시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고집불통 딸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수잔나도 막막했습니다.
어느 날 수잔나는 검정 숯을 한 다발 가져와서 딸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딸아, 이 숯을 한번 안아 보렴. 뜨겁지 않단다.”
그러자 딸이 기겁을 하며 말했습니다.
“뜨겁지는 않지만 손과 몸이 더러워지잖아요.”
그때 수잔나가 딸을 꼭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야. 바르지 못한 행실은 화상을 입히지 않더라도 몸과 마음을 더럽힌단다.”
딸은 그제야 크게 뉘우치고 어머니 뜻에 순종했습니다.
부모 된 우리 모두는 큰소리 내지 않고, 강요와 협박 없이 아이를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의 강요와 지시는 효력이 별로 없다는 것도 잘 알지요.
오래 참는 지혜로운 성품을 가진 어머니의 말 한 마디가 방황하는 딸의 인생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수잔나의 이야기는 같은 문제로 방황하는 부모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어쩌면 자녀의 방황은 알고 보면 부모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데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좋은 성품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려면 부모가 먼저 좋은 성품을 소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매순간 깨닫습니다.
오늘을 사는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부모 된 내가 먼저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는, 경우와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 한 마디의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말 한 마디로 자녀를 변화시키는 지혜를 통해 낮은 톤으로 자녀를 교육할 수 있는 현명한 부모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수잔나 웨슬리가 19명의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양육한 자녀양육의 비결입니다.
<수잔나 웨슬리의 자녀 양육 비결>
울고 보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만약 아이들이 울고 싶으면 조용히 울어야 한다.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간식을 먹이지 않는다.
잠은 규칙적으로 재운다.
정시에 아이들을 요람에 눕히고 흔들어 재운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계속 침대 옆에 있지 않고 1시간 이후에 나온다.
어린 자녀는 보조 의자에서 식사하게 하며 자라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가족 식탁에서 식사하게 한다.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 먹고 마셔야 한다.
아이들은 반드시 서로 부를 때 이름이 아닌 언니, 오빠, 형, 누나 등 바른 호칭을 불러야 한다.
아이들 앞에서 결코 화내지 않고 큰소리로 꾸짖지 않는다. 이해할 때까지 설명한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말을 배우고 하루도 쉬지 않고 말을 하지만
자신이 하는 말이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인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
01. 창조주는 말로 세상을 만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말이 자신의 세상을 만든다.
02. 천지 만물을 축복하라. 천지만물은 나를 향해 축복한다.
03. 한번 한 말은 지우개로도 지울수 없다.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지 말라.
04. 사용하는 말에 따라 나의 가치다 달라진다. 값진 말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라.
05. 말은 메아리와 같다. 내가 한 말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06. 눈과 귀가 둘, 입은 하나다. 많이 보고 듣고 적게 말하라.
07.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말라.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라.
08.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간다. 불조심보다 말조심이 먼저다.
09. 기도는 절대자와 직통전화다. 쉬지말고 교신하라.
10. 할말 안 할말 따로 있다. 정확하게 분류하라.
11. 서글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 노래는 복나가는 노래다.
12. 무명가수가 '해뜰 날'을 부르고 쨍하고 해가 떳다. 노래도 선택하여 불러라.
13. 적극적인 말만 사용하라. 희망의 말이 희망을 꽃피운다.
14. 남의 말 좋게 하라. 없던 복도 굴러온다.
15. 말은 자신의 인격을 나타낸다. 자신의 격을 떨어 뜨리지말라.
16. 감사의 말을 많이 써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겨난다.
17. 칭찬은 기적을 만드는 언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18. 잘못 했을때 곧바로 용서를 빌라. 용서를 빌어야 비로소 탕감된다.
19. 힘든 사람에게 격려하라. 격려의 말은 복을 짓는 메시지다.
20. 남과 따지지 말라. 언쟁에 이겼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21. 흉한 말을 자주하면 흉한 일만 생겨난다. 선한 말로 가운을 바꿔 놓으라.
22. 입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표정도 신경을 써라.
23.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말은 의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24. 말에는 온도가 있다. 이왕할 바에야 화끈하게 말하라.
25. 모진 말을 하지 말라. 생각없이 한말도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26. 향기나는 말을 하라. 말의 향기는 하늘 끝까지 올라간다.
27. 음성은 말을 담는 그릇이다. 맑고 밝은 음성으로 말하라.
28. 긍정적인 말만 사용하라. 자신의 운세가 놀랍게 변한다.
29. 아'해서 다르고 어'해서 다르다. 용어의 선택에 주의하라.
30. 약속은 하늘의 명령이다. 장난으로 한 약속도 꼭 지켜라.
31. 남이 욕한다고 화내지 말라. 그가 한 욕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32.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말라. 드라마처럼 편집하며 말하라.
33. 뒷소리를 하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뒷통수 맞는다.
34. 대화는 주고 받는 것이다. 혼자 독점하지 말라.
35. 스트레스 주는 말은 너죽고 나죽인다. 기쁨주는 말을 사용하라.
36.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말을 한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
37. 불평불만을 입에 담지 말라.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38. 부드럽게 말하라. 강한 말 보다 부드러운 말이 훨씬 강하다.
39. 좋은 책을 많이 읽어라. 말과 글은 똑 같은 영향을 발휘한다.
40. 남의 가슴에 실못도 박지 말라. 내 가슴에 대못 박힌다.
41. 죽는소리를 하지말라. 죽는소리하면 천하장사도 살아남지 못한다.
42. 칭찬의 습관을 길들여라. 놀라운 파장이 생겨난다.
43. 웃으면서 말하라. 웃음은 기쁨 행복 사랑 성공의 보증서다.
44. 필요한 때 필요한 말을 필요한 만큼 말하라. 그것이 말잘하는 비결이다.
45. 암전문의가 암에 가장 많이 걸린다. 입만 벌리면 암 얘기만 하기 때문이다.
46. 독을 품은 아내가 밥을 하면 독약이 된다. 아내가 한을 품지 않게하라.
47. 입만 벌리면 불행타령을 하던 사람이 병으로 혀를 잘랐다. 비로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48. 칭찬과 격려속에 자란 애들은 크게 된다. 음식이 보약이 아니라 말이 보약이다.
49. 즐겁게 말하라. 즐거운 나날이 펼쳐진다.
50. 말(言)대로 이뤄(成)진다. 정성(誠)을 다해 말하라.
옛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이라고 하였다.
외모와 말, 그리고 글씨를 보고 그 사람됨됨이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IT기술이 발달하면서 글씨는 사람 판단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외모도 성형수술 덕분에 많이 벗어 나고 있다.
그러나 그사람의 언어 즉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를 판단 하는데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언어학에서 언어가 가지는 힘을 에르곤과 에네르게이아 2분법으로 나눈다. 즉 에르곤이란 되어진 것이란 의미로 말하는 화자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여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는 이론이다.
여기에는 욕을 하던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던 뜻 즉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는 이론으로 국어 순화완 전혀 관계가 없다.
반대로 에네르게이아란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힘이란 의미로 말이 지닌 힘을 나타낸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말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힘이 있으므로 말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어 순화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의 말을 들어 보면 대부분 욕으로 대화를 한다.
그러나 학교와 사회에서는 이런 청소년들의 언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학습력, 학력 신장에만 신경을 쓰지 언어를 순화함으로써 학생들의 심성을 기르는데는 소홀히 하고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심성의 표출이다.
말이 거침은 그 사람의 마음이 거침이다.
마음이 거침은 종교적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불교든 천주교든 교리를 살펴보면 마음의 사악함을 경고하는 가르침이 있다. 불교에서는 신,구, 의 삼업이라하여 몸으로 짓는 죄, 입으로 짓는 죄, 나쁜 생각으로 짓는 죄라하여 거친말 이간질하는 말 거짓말 간사한 말을 모두 죄라고 하였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의 교리가 있으며 나쁜 생각까지도 죄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나쁜 말은 나쁜생각의 표현이므로 분명이 이는 죄에 해당된다고 본다.
우리는 징계도 하고, 야단도 쳐야 한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이 들어있으면, 반드시 약효가 난다.
‘말 잘 한다’ 는 것은 청산유수 같은 수사적인 말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말을 하는 것이다.
“미치겠다!” 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정신이 또릿또릿 해 지네!”
“죽겠네!”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잘 살겠네!”라고 말해 보라....
▲1. 말은 심판 받는다
미국의 어느 의사가 가사상태에서 혼이 이탈해서 주님의 심판대를 경험했다. 거기서 네가 세상에 살 때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줬으며 반대로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는지, “말 심판”이 아주 중요하게 취급됨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것은 성경과 일치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6)
생각 없이 내 뱉은 말, 무슨 무익한 말도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중요치 않은 것을 왜 심판으로 다루시겠는가?
그러므로 말로, 악영향을 퍼뜨릴까 지극히 조심하자. 그 말로 심판받는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7)
*말에는 주변을 확산시키는 영향력이 있다.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선한 말로, 주변을 선하게 자꾸 변화시킨다.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악한 말로, 주변을 악하게 자꾸 오염시킨다.
그래서 더욱이 말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말이 심판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말을 매우 주의하자.
▲2. 선한 말을 하려면, 먼저 “생각”의 영역에서 전쟁을 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앞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예로, 남편의 귀가가 늦으면 ‘뭔 일 난게 틀림없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부정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결국 그 밤에 전쟁이 일어난다.
그런데 남편이 늦게 귀가해도 딩동 소리가 나서 문을 열면서
“여보,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하고 문을 열면
그 밤에는 화기애애한 밤이 된다.
두려워 말라, 항상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렇게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준다.
이런 말씀으로써, 우리 생각의 영역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싸워야 한다.
▲3. 말대로 된다.
승리하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 뭐든지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말이 긍정적이다.
말대로 된다.
하나님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듯이, 말은 창조하는 힘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말(씀으)로” 주셨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 그 말대로 된다.
저주도 “말(씀으)로” 주신다.
그것도 시일이 지나면 그 말대로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고 하셨다.(창 12:3)
내가 말로 아브라함같은 성도를 축복하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내가 말로 아브라함같은 성도를 저주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
그러니까 축복과 저주도... 말을 통해 받는다.
*말에는 권세도 있다.
풍랑도 말씀으로 잠잠케 하시고
귀신도 말씀으로 쫓아내셨다.
그러니까 풍랑 앞에서, 귀신 앞에서 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말로써 선포할 때 잠잠케 되고 귀신이 쫓겨 나갔다.
이것이 말의 위력이다. 우리는 말의 선한 위력을 선용할 줄 알아야겠다.
▲4.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어떤 사람인지 안다.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하겠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4)
악한 말을 계속 하는 사람은, 마음에 악이 가득 차 있다.
더 발전하면, 악한 귀신에게 영향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한 말을 계속 하는 사람은, 마음에 선이 가득 차 있다.
더 발전하면, 성령의 영향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과 악한 말이 계속 나오는 사람은
미워하는 상대방과 싸워야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세력(마귀)와 싸워야 한다.
선한 사람은, 상대가 악해도, 가급적 선하게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