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온달산성
온달(溫達)은 역사적 인물이자 문학적인 인물이다.
590년 온달이 전사하고 무려 555년이 지난 1145년에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는데 김부식은 '열전 온달 편'에서특이하게 대화체가 포함된 설화풍으로 기술하였는데 김부식이 온달을 통하여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
『三國史記 列傳 卷第四十五 - 溫達 (삼국사기 열전 권제45-온달 편) 』중 한 부분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평강왕 시대 고구려의 대형(大兄) 벼슬을 한 장수인 반면, 가난하고 못생긴 그에게 공주가 시집와서 인생이 역전된 마치 설화의 주인공처럼 묘사된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지? 좌우간 김부식은 555년전 일을 소설을 쓰듯 묘사하였고 이는 우리 역사상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바보에서 장수까지 가장 극적인 생애를 살다 간 온달에게 많은 사람의 애정과 관심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전해지는 온달
온달장군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편에 전하고 있는데 열전편은 삼국의 중요 인물들을 수록하고 있다.
고구려 인물로는 을지문덕, 을파소, 명림답부, 연개소문 등 쟁쟁한 역사적 인물들이 열전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온달(溫達)이 열전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삼국사기 本記에선 찿아볼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온달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이 삼국사기 온달전을 토대로 윤색되거나 내용이 덧붙여져 알려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한 이야기도 설화(說話)풍이어서 그것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실증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사회상이나 군사적 관점에서 재고찰해 보는 것으로는 더 없이 중요한 자료이다.
천한 백성으로 태어나, 게다가 바보 소리나 듣는 떠꺼머리가, 아름다운 훈육을 받아 성장하는 과정과, 기울어가는 나라의 기둥을 다시 세우려 죽기까지 각오하고, 끝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해서는 차마 시신마저 안타까워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온달을 우리에게 전해준 김부식의 마음을 느낄수 있다.
590년 온달이 전사하고 무려 555년이 지난 1145년에 삼국사기가 편찬되었고 또 867년이 지난 현재이다.
평강왕 시대에 고구려가 맞은 내우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