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일(화)
마가복음 1:16~34
권세 있는 자의 부르심, 권위 있는 새 교훈
공동체 성경 읽기: 창 3~4장, 마 3~4장, 시 2편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던 예수님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에 그 둘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뒤따랐습니다(18절).
조금 더 가시던 예수님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배에 있어 그물을 깁고 있던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그 아버지 세배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20절).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는데, 그 이유는 그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았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가버나움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말하자 예수께서 꾸짖어 그에게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놀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28절).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곧바로 그 여인은 그들을 시중들기 시작했습니다(31절, 우리말 성경).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자, 예수께서 각종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며, 귀신들이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제가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갈릴리 해변과 가버나움 회당과 시몬 장모의 집을 방문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머릿속에 배경이 되는 장소들을 떠올렸습니다.
둘째는, 화자가 설화(說話) 체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설명하거나 주장하려 들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시간과 장소의 흐름을 따라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곧 … 따르니라(18절).”
“조금 더 가시다가(19절)”
“곧 부르시니(20절)”
“예수께서 곧 … 들어가 가르치시매(21절)”
“마침(23절)”
“곧 … 들어가시니(28절)”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는지’, ‘왜 예수의 소문이 빨리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게 되었는지’, ‘왜 시몬의 장모가 예수 공동체를 수종 들게 되었는지’, ‘왜 가버나움에 있던 병자들이 예수께 모여들게 되었는지’를 긴장감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화자(話者)는 이러한 서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절).”는 대전제를 구체화하려는 의도를 지녔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된 이후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혜택을 누려왔습니다.
예수께서 저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부르셨고, 교회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저를 세워주셨습니다. 또한, 각종 병든 사람과 많은 귀신을 내쫓으실 권능을 저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여전히 우리 가운데서 영으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복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저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도록 돕고 격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