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이라고 하니 무슨 전근대적인 말이냐라고 반문할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저도 궁합이란 단어 자체에 거부반응을 나타낸 적도 있습니다. 궁합은 예로부터 혼인성립에 필요한 절차의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궁합에는 12지(支)에 따른 겉궁합과 오행(五行/나무,불,흙, 쇠,물) 에따른 속궁합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남녀가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혼인을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상대방의 성품이나 몸의 상태 등을 12지와 오행을 통해 판단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최근 남녀의 만남이 너무도 쉽고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서로를 판단하니 이제 이 궁합이라는 단어는 박물관이나 가서 찾아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하지만 인생을 어느정도 살아보니 옛 조상들의 궁합이라는 행위는 참으로 현명하고 지극히 과학적인 수단이 아니였나 그렇게 생각됩니다. 먼저 음식을 볼까요. 우리가 즐겨먹는 두부를 예를 들겠습니다. 두부는 밭에서 나오는 최고급 단백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강과 영양에 매우 좋은 음식입니다. 시금치는 어떤가요. 예전에 뽀빠이 아저씨가 이 시금치를 먹고 괴력을 얻어 악당 부루트스로부터 올리브를 구해내지 않습니까. 시금치는 영양분이 많아 즐겨 먹는 음식입니다. 양파는 또 어떤가요. 항암과 고혈압 당뇨에 좋은 음식 아닙니까. 그런데 이 세가지 음식을 함께 먹으면 어떨까요. 이 3가지 음식을 함께 섭취할 경우 신체에 매우 좋지않은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아니 좋은 음식을 같이 섭취하는데 왜 문제가 생길까요. 바로 음식간의 궁합때문입니다. 각자 각자는 매우 뛰어난 영양음식이지만 상대와 함께 하면 윈윈 즉 상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극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음식에 담긴 중요한 영양분이 상대의 영양분과 합쳐지면서 그 효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다른 나쁜 물질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음식가운에 대부분의 음식이 이런 상생과 상극의 궁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요. 누가봐도 괜찮은 남녀가 결혼을 했습니다. 정말 괜찮은 재능과 조건을 갖춘 그런 남녀입니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잦아지더니 결국은 이혼을 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서로의 재능과 조건이 상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극작용을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좋은 친구 사귀어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었습니다. 마치 친구 한명 잘못 만나면 인생자체를 망가뜨릴 것 같은 우려때문이겠죠. 그래서 좋은 친구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기 위해 그 유명한 맹모삼천지교도 생긴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친구만 좋으면 만사 형통일까요. 위에서 음식에서도 봤듯이 사람에게도 상생이 있고 상극이 있습니다. 개인 개인을 놓고보며 나무랄 때없이 거의 완벽한 인물이지만 서로 합쳐놓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수한 사람들끼리는 거의 100% 불화를 일으키고 분해되고 만다고 합니다.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재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로 괜찮은 사람들끼리 조직을 만들어도 사분오열 현상을 보이다가 결국은 붕괴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남녀가 아니더라도 서로의 궁합이 당연히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찾을 수 없는 내면의 미묘한 성향을 누구나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미묘함들이 적절히 결합하면 상생 즉 윈윈하는 것이지만 그 미묘한 요건들이 대립각을 세울 틈이 생길 경우 상극 즉 공멸의 길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궁합을 어떤 이는 돌담 쌓기라고 표현합니다. 돌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돌들의 크기나 모양이 정말 제각각입니다. 같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이는 큰 돌들을 많이 모아야 근사한 돌담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큰 돌도 중요하지만 작은 돌들이 정말 대단히 유용하게 돌담구성에 사용된다는 것이지요. 큰돌만으로는 절대 돌담을 쌓을 수가 없답니다. 큰 것으로 짧은 시간안에 높이는 쌓겠지만 금방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중간 중간에 그 큰돌의 부족함을 메워줄 작은 돌이 없으면 돌담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고 합니다. 돌들끼리의 궁합입니다.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뭔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으로는 절대 대단한 조직을 형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 능력있는 사람들 사이 사이에 적당한 능력 그리고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소유하지 못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채워짐으로 인해 탄탄한 조직이 탄생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궁합이라는 것이 단순한 미신이라고 폄하할 것이 아니라 그속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로 보입니다.
2024년 2월 1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