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노래- 전체 목록보기
◈◈◈
“믿을 수 없어요. 왜 이런 명령이…….”
지금의 상황이 꿈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듯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노엘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손으로 훔치고는 눈물을 그친 채 눈앞에 서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크리스 카를리아는 노엘의 눈물에도 불구하고 총을 거두라는 명령을 끝까지 거두지 않았다. 거기다가 선을 확실히 그으려는 듯 그는 품안에서 주위에 노엘을 향해 총을 겨눈 2급 헌터들과는 다른 모양의 총을 꺼내 들었다.
“명령이다. 명령장에 적힌 바대로 행해라.”
주저앉은 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은 상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다가 마주친 어둠 속 가라앉은 검은 빛의 눈동자.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헌터협회의 간부로서의 차가움만이 가득한 검은 눈동자. 그 눈동자가 자신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노엘은 마치 자신의 심장을 차가운 칼날이 관통하는 것만 같은 아픔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노엘의 마음속 희망을 짓밟기라도 하듯이 그의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
그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노엘을 바라보던 것과 달리, 계속 흔들리던 노엘의 눈동자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흔들림이 사라졌다. 이윽고 더더욱 큰마음을 먹으려는 듯이 노엘은 눈을 한동안 감았다가 떴다. 그 행동 후, 노엘은 쓸쓸해 보이면서도 슬픈 표정을 하고서는 침을 삼키고는 닫혀있던 말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뭐지?”
여전한 태도로 대꾸하는 아버지를 향해 노엘은 갑자기 닥쳐온 마지막을 준비라도 하려는 듯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믿으시는 건가요?”
“아니.”
거침없이 돌아온 대답에 노엘은 기쁘다는 듯이 진심으로 웃어보였다. 그러나 뒤에 돌아온 대답은 무척이나 잔인했다.
“믿고 아니고를 떠나서 신뢰한다. 나는 헌터협회의 간부로서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확실한 정보였으니까…….”
그 말에 진심어린, 노엘의 미소어린 표정이 다시 절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돌아왔다. 굳은 표정을 하고서는 그녀는 그 자리에 아무런 생각이 담기지 않은 눈동자로 땅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전 배신하지 않았어요. 그것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고개를 숙이고는 노엘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지 않은 듯 눈을 굳게 감았다. 마음 속 깊이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누구라도 품고 있는 삶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삶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도 때로는 후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삶이 있으면 이 세상의 한 조각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무엇을 하던지, 무엇을 원하던 지 그것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자유다. 살아있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에 할 수 없는 것은 무한히도 많다.
생물이라면 가지고 있을 살고 있다는 욕구, 그 본능으로 인해 노엘은 총알을 피하고 이곳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극한에서 삶의 욕구를 억누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총알 하나를 피한 다해도 아버지의 뒤에 있는 헌터들이 총을 쏠 거야.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죽고 싶지는 않아. 하나뿐인 목숨이니까 키워주신 아버지에게 해는 끼치지 않고 죽고 싶어. 한 순간이야. 한 순간이면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갈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또 다시 타고 흐르는 눈물을 좀 전처럼 그녀는 손으로 훔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총알이 자신의 몸을 정확히 관통하는 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철컥―.
소리가 들려왔다. 생의 끝에 있는 가운데 들려오는 소리. 노엘은 그 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은 채 들릴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자신의 몸을 꿰뚫는 고통을 각오해야 했기에 추하게 비명을 지르며 죽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나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올 소리는 좀처럼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아? 왜 총소리가 안 들려오는 거지? 무슨 일이…….’
차릉―. 차르릉―.
들려오는 다른 무언가의 소리. 쇠붙이가 가볍게 부딪혀 나는 듯 한 소리. 그 소리가 노엘의 귓가에 들려오고 잠시 후, 두려움에 눈을 뜨지 않은 노엘에게 일제히 철컥하며 총이 겨누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럴 수가. 오늘 뱀파이어가 나타난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살기로 봐선 강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간부님! 어떻게…….”
웅성거림과 당혹감과 놀란 목소리. 최대한 자제했지만 공포 섞인 목소리. 정적에 쌓여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 순간에 들려온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 이 느낌은 아까의 나와 같은 기분이야. 삶에 대한 욕구와 공포어린 감정. 누가 나타났기에…….’
“모두 당황하지마라! 뱀파이어 어째서 방해하는 거냐? 그럼, 네가 노엘 카를리아와 내통해서 협회의 정보를 빼돌린 자냐?”
앞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 그리고 경계하는 듯 한 움직임. 누구의 것인지 모를 살기에 노엘은 몸을 움츠린 채 떨면서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정보를 빼돌렸다라……. 꽤나 지나친 생각이군. 그런 어리석은 생각으로 자신의 딸마저 죽이려하고……. 헌터협회에는 정말 그런 인간들밖에 없는 건가?”
차가운 목소리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감정. 앞을 가로막은 채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듯 서있는 존재가 눈을 뜨자 보였다.
차갑고 모든 생물들을 얼려버리는 겨울. 마치 겨울과 그 자체와 같은 차가운 느낌의 남자.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나며 노엘은 그의 뒷모습을 아래서부터 위로 훑어보았다.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색의 롱 코트. 옷 사이로 드러난 창백하리만치 투명한 흰 피부의, 피처럼 붉은 빛깔을 띠고 있는 쇠사슬이 얽혀서 감싸고 있는 두 손.
이윽고 노엘이 완전히 일어서자 그녀의 눈높이 약간 위에 바람에 일렁이는 검은 빛이 보였다. 칠흑과 같은 검은 머리카락. 그 광경이 눈동자에 비치고 그녀는 자신의 코트 안에 있던 붉은 장미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펜던트를 그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녀는 더없이 소중한 것 마냥 펜던트를 어루만졌다.
“네가 어째서?”
따지는 듯이 그리움의 감정을 지운 채 노엘은 펜던트를 손에 꽉 쥔 채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등을 보인 채 앞을 바라보고 있던 그, 아니 카인이 뒤돌아섰다.
“죽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네가 사라지고 또다시 고독만이 존재하는 밤의 어둠속에 갇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약속했잖아.”
차가움 속에 깃든, 숨겨진 따스함을 살짝 보이며 카인은 말했다. 그에 노엘은 신비한 빛깔의, 연한 붉은 빛 눈동자와 눈을 맞추고는 약속과 첫 만남을 떠올리고는 대답했다.
「약속하자. 헤어져도 네가 반드시 널 찾을 거야. 그리고 네가 무서워하는 밤에 같이 있어 줄께.」
「나도 약속할게. 언제나 우리 같이 있자.」
어느 날, 해버린 약속. 그때는 친구로서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다른 감정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것은―.
「나는 노엘 카를리아. 네 이름은?」
“나는 노엘 카를리아. 네 이름은?”
처음 만나서 마치 부서질 것만 같이 슬픔에 젖은 신비한 붉은 눈동자를 보고 자신이 한 말. 하지만 소년은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묻지 않았던 대답.
“내 이름은―. 카인 폰 크로스.”
대답에 노엘은 8년 전, 그때와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카인은 향해 다가갔다. 더없이 아름다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로―.
그리고 카인은 손을 내밀었다. 8년 전과는 달리, 노엘이 내밀었던 손을 잡은 것과는 반대로.
그렇게 8년 전과 겹쳐지는 기억, 그 기억처럼 둘은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은빛카린입니다~
이번주도 같은 요일 찾아뵙습니다.
이것으로 One Night. 약속 종결입니다.
다음주에는 뒤어어 -노엘 카를리아- 아련한 핏빛 바이올린의 선율이 계속 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그게 끝나면 Two Night가 연재됩니다.
1편만에 완결낼 것이라서 -노엘 카를리아- 아련한 핏빛 바이올린의 선율은 3주후에
찾아오겠습니다. 또는 2주후입니다.
그럼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오타나 지적도 받습니다.
첫댓글 아아아.... 드디어 카인이 구해주는 거구나~_~.. 담편은 노엘 중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네, 노엘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ㄷㄷㄷ
멋지게 한 방 날리면서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건만-. 으음, 이제 또 기다려야하나...
한 방 날리기보다는... 눈앞의 주인님 보호하기 급급한 우리 카인군.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머나. 오타지적 ㄳ
명령장보단 명령서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으음. 명령장이 제게는 더 맞게 느껴지는 거 같은데...;
보통은 '공식 명령서'니 뭐니 하니까요.
하긴 그렇긴 하죠.'ㅁ'~ 그냥 작가 맘입니다.훗.
아아-그런 건가요.(우와아....이 사람 진심인가?)
에.. 원 나잇도 노엘중심이었던것 같은데 [....] 어쨋든 재밌네요 ! 히히, 다른소설은 다 제쳐두고 예전에 읽었던 피의노래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카린씨 소설만 읽는다는 :)
카인도 주인공이지만...이 소설의 핵심은 노엘이거든요. Two Night 되면 카인도 많이 중심이 될 것 같네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어어... 끝나꾼... 헳.. ㄷㄷ.. 기다려야하는겅미? ㅠㅠ
제가 내일 입학식도 치뤄야하고... 그러거든요.ㅎ
에휴.. 많이 늦었네요 ! 이번편도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 2~3주 공백동안은 카린씨의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 하겠어요 !
저는 대학교 적응기간으로 인해...[...]
에엑,언제올리셧데요;ㅁ;?!꺄,카인좋아요..
1주일도 더 되었는데...분명히 쪽지 보내드린 걸로 기억하는데...으음?
안왔어요 T_T
어랄라. 빼먹었을리가 없는데...; 보내다가 실수로 안 보냈나봐요.허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