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본 훼퍼 목사
히틀러의 핍박으로 위기에 처하자 니버 교수의 초청으로
미국에 들어가 엄청난 인기를 끌며신학교에서 강의하는 중
어느 날 기도 중에
‘네가 어찌하여 고난을 피해 여기 있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독일로 들어가
히틀러를 비판하다 옥에 갇히고
마침내 순교를 당하게 된다는 이야기
1. 독일의 설교가요
신학자였던 본 훼퍼 목사는
히틀러의 독재 정권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몸소 보여준 참 신앙인이었다.
16세 때 이미 신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깊은 사고력과 성찰력까지도 겸비해
그의 나이 20세 때 이미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당대에 뛰어난 학자였다.
후대에 그를 평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본 훼퍼를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의 타고난 능력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한평생을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한순간 한순간을 아낌없이
삶을 살았다는 점에 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본 훼퍼는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단에서, 교회에서,
방송에서 쉼 없이 외치며 선포했다.
이 때문에 그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연금되며,
감옥에 까지 갇히는 고초를 당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아까워하던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
의해 1939년 6월 12일에 초대되어
교환교수로 미국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히틀러가 그해 9월 1일에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키자 본 훼퍼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동료들과 독일 백성들이 미치광이
히틀러 때문에 전쟁의 노예가 되고,
살상과 피 흘림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다시 독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이 때 그의 독일 행을 만류하며
미국에 남아 살 것을 권했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게
본 훼퍼는 이런 편지를 남기게 된다.
“나는 독일의 역사에서 어려운 시기를
독일의 크리스천과 함께 보내야겠습니다.
만일 내가 나의 동료들과 같이
이 고난의 시기를 보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난 후에 독일 크리스천의
재건에 동참할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 훼퍼는 그 독일에서
주님이 자신을 부르신 그 목적대로
히틀러를 향하여 준엄한
신앙의 양심을 선포하다가
히틀러가 자살하기 20일 전인
1945년 4월 9일 39살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 당한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탁월한 학자로서
자신의 뜻과 명예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었던 본 훼퍼가
이런 삶을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훼퍼는 독일의 격변기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았던 용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 틀림없다.
2. 미국에서 독일로 죽으러갔던 젊은 목사 '본 훼퍼'
1939 년 미국 뉴욕 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이 승선하였습니다.
그가 아직 젊은 나이에 독일로 향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 정권에 의해서
제 2차 세계 대전에 광분해 있었으며,
유태인 대 학살과 같은 인류 역사 상
찾아 볼 수 없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는데도 안타깝게도
독일의 교회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바라보면서도 침묵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히틀러 만세'
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일 교회의 잠을 깨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자
그는 자신의 조국인
독일로 유유히 향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가 독일로 떠나던 날
그의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 동안 파도처럼 일었던,
몹시도 불안해하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로 돌아간 그는 나치의 학정에
침묵만 지키고 있던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죄상을 공격했고,
그로 말미암아 독일 교회가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결국 독일 게쉬타포에
붙들려 감옥에 투옥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탁월한 학문적 재질을 잘 알고 있던
미국 교회는 그를 구출하려고 백방으로
갖은 애를 썼는데도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본회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마지막으로 써서 띄웠습니다.
"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 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잠들어 있던
독일 교회를 깨우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무사 안일에 빠져 잠든 교회와
성도를 깨우는 멧세지입니다.
말씀 앞에 두 손을 모아봅니다.
‘ 주님,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했던 옛 조상들의
믿음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
펌글
첫댓글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감입니다.
좋은 예화 감사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