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치와 나
오늘 아침, 서울신문 기사 한 줄이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냈다. 삼척 정라진 앞바다 정치망에 걸린 한 마리의
황새치. 길이 3미터, 무게 226킬로그램. 그 덩치 큰 바다의 제왕이 겨우 6만 원에 위판됐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황새치라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에서 사투 끝에 노인이 겨우 끌어올린 그 상징적인 생명
아닌가. 죽도록 싸우고, 결국 뼈만 남긴 채 육지로 돌아온 늙은 어부의 손끝처럼, 그 물고기에는 어떤 존엄이
깃들어 있었다.
황새치는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따뜻한 바다에 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제주 남쪽
먼 바다에서나 겨우 모습을 드러내던 녀석이 이제는 동해까지 올라오고 있다니, 지구가 변하고 있다는 게 실감
난다. 온난화가 몰고 온 새로운 손님이자, 바다가 던지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나는 젊은 시절, 바다 위를 떠다니며 살았다. 유조선에 몸을 싣고, 페르시안 걸프에 들어가 대기할 때면 정박 중에
낚시를 즐기곤 했다. 앵커를 내린 해저 지형에 따라 낚이는 고기가 달랐다. 뻘 바닥에서는 바다메기가, 자갈밭에선
광어나 돔이 올라왔다. 수면 가까이에선 갈치나 오징어가 팔딱이며 뛰어오르기도 했다.
황새치는 나에게 전설 같은 존재였다. 간혹 어떤 선원이 황새치를 낚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곤 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실제로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굵은 로프에 소고기 조각을 꿰어 밤새 바다에 던져두곤 했고, 운이
좋으면 펄쩍펄쩍 수면 위로 뛰어오르다 결국 지쳐 죽는 황새치를 건져 올리곤 했다. 녀석의 뾰족한 뿔은 잘라 기념으로
가져가고, 살점은 선상에서 회를 쳐서 선원들과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한 번은 스리랑카 근해를 지나며 나도 긴 낚싯줄을 선미에 달아보았다. 망망대해를 가르며 배는 나아가고, 줄 끝에는
바람과 파도만이 매달려 있었다. 황새치는 끝내 잡히지 않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바다를 더 가까이 이해했던
것 같다.
황새치는 결국 나의 낚싯바늘에 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러오지 못한 전설은 오히려 내 기억 속에서 더 또렷하게
살아 있다. 오늘 삼척 앞바다에서 걸린 그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금 먼 바다의 밤과 낚싯줄, 그리고 물고기 하나에
걸었던 꿈을 떠올렸다.
세월이 흘러 육지에 뿌리를 내린 지금도, 가끔은 그 바다의 숨결이 그립다. 황새치는 나에게 단지 고기가 아니다.
젊음의 바다, 기다림의 무게,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