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을 이렇게............
1960년여름 나는 전북익산의어느 시골가난한집에 태어났다.
그당시 우리집은 남에집 셋방살이를 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동네에서 내놓으라할 정도로 괜찬은 집안이었다한다.
머슴까지두고 살정도의 집안이었다니말이다 하지만 할아
버님의 투전에 가산은탕진하고 집안은몰락되었다 한다
내가 5세때에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병명은 잘모르지만
그당시 돈만있었다면 고칠수있는 병이라했다 40여년이
넘은 지금도 그날의기억이 생생하다 비가억수같이오던
그날 아버님은 리어커에실려 가마니를덮은상태에서 삼촌
이앞에서끌고 어머님과 형님은 뒤에서밀고 울부짓으며
마당을 나가던모습이 지금도 어제일마냥 생생하게 떠오
른다 아버님이돌아가시고 어머님마저 집을나가시고
우리는 나보다3살위인 형님과 할머님과 살게되었다
내나이5살! 너무나도 배가고팠던 시절이다
그당시 정부에서 빈민들에게 한달에한번씩 밀가루한포가
배급되었다 우리의한달식량은 그밀가루한포가 전부였
다 물론 밀가루한포가지고는 한달살기가 부족했고
배가고파서 산에올라가 야생감자(일명돼지감자)를캐먹
고 들쥐를 잡아구워먹고 또 뱀까지도 잡아먹으며살았다
농번기가끝나면 들에나가서 이삭을주웠고 이삭을줍다거
주인에게잡혀서 죽도록 매를맞고거리에나가서
는 담배꽁초를 주웠다 그당시담배꽁초는 필터를잘라
솜처럼부풀서 할머님을드리면 할머님은 그걸어딘지모
르는곳에 갔다파셨다 그당시 그담배꽁초는 아마도
산업용솜으로 쓰였을거라 생각된다 그리해서받은돈은
지금기억으로는 약20리터한가마니에 20원정도를 받으
셨다 또 내나이7살때부터는 나보다3살위인형님과 아이
스께끼장사를했다 키가작아서 아이스께끼통을 어께에매
면 땅에 질질끌려서 넘어지곤했다 형님은 하루벌이가
약10원정도 나는6원정도를 벌었다 국민학교시절에는
도시락을못싸가서 점심시간이면 혼자나와서 물로배를
채웠고 하기야 그당시에 잘사는사람이 몇이야되겠냐마
는 그래도 다른아이들은 밥은 못싸와도 고구마나 감자
정도는 싸오는대 우리형편은 그정도도 못되었으니 어린
마음에 무슨생각을 했었으랴! 그러다가 국민학교4학년
때 어머님으로부터 연락이왔다 대전으로 올라와서
같이 살자고했다 그래서 할머님은 삼촌께로가시고 우리
는 대전에서 어머님과 살게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평탄
치는않았다 어머님은 술집을하셨고 매일같이 술주정뱅
이들한태 우리까지 시달려야했다 또 웬아저씨가 매일저
녁우리집에와서 잠을잤다 방이 하나밖에없는지라 네사
람이 조그마한방에 자야했다 그아저씨는 저녁마다
어머님을 못살게하고 싫다는어머님을매일같이 겁탈을했다
어머님은우리에게 그아저씨를 아빠라불르라고했지만 난
아빠란말이태어나서 한번도불러본적이 없는터라 부르지않았다
그래서매도 많이맞았고 쪽겨나기까지했다 한겨울에 옷을다
벗기고 밖에서하루종일 벌을서고도 아빠라안불렀으니
내고집도 알만하지않은가.....
나중에알고보니 그가게도 그아저씨가 마련해준것이라했
다 그후약1년뒤 어머님과 그아저씨는 헤여졌다 또헤여
지면서 어머님과우리는 쪽겨나다시피했다 그길로형님
은 기술를배운다고 나갔고 난또다시 할머님과 조그
마한방을얻어 살았다 또다시고생은 시작되었고 어머님
은 몇달에한번씩 다녀갔다 난그때6학년 신문배달과
구두닦이를하며 생활해야했다 할머님은 병이있었는대
일명(화병)이라하셨다 한번발작을하면 하루나 이틀은
꼼짝못하시고 누워서 끙끙알으셔야했고 그증상은 심해
져만갔다 그러던어느날 어머님이오셨다 그당시 난 중학
교는 가고는십었지만 꿈도꾸지못했었는대 어머님은
중학교를 보내줄태니시험을봐라하셨다 그때중학교는
시험을봐서 합격이되어야만 진학할수가 있었다 난너무
나 기쁘고 좋은나머지 시험을치뤘고 뒤이어 합격통지서
가날라왔다 그런대어머님은 나에게 제안을하셨다 시골
어느 돈많은집으로 시집을가신다는것이다 물론
우리를 대리고말이다 형과난그말에 따를수밖에없었다
사실그나이에 무엇을 알겠는가 어른의말씀이니 따라야한
다는것밖에 그래서간집은 충북어느시골집! 그집은식구
가많았다 4남1녀에 할머니까지.... 우리할머님은다시
삼촌께로 형님은 예전직장으로갔다 그런대그집또한
부자는아니였다 그집 아버지라는분이 놀음으로 이미가
산은 탕진했고 그저 그~팔아먹은땅을 도지를내고 부처
서 생계를 이어가는 정도였었다 남은것은 집하나뿐!
하지만 방이많아서 세를놓아 생계에 도움이되었다 나에
중학교진학도 물거품이되었고 하기야 그집자손들도
대부분이 초등학교출신이 많았기에 언감생신 나는 중학
교는 꿈도못꾸었다 어머님은 속아서왔다고 매일같이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역시 눈치밥을먹으며 생활을
해야했고 난내방을따로썼는대 그집할머니는 매일같이
요강을 내방문앞에 비웠다 그러다보니 내방은 일년내
내 냄새가 끈이질않았다 친구들마저 발을끈고 오지않았
다 난끝내 이생활을져버리고 친구따라서울로
올라오게되었다 서울에와서 상계동에있는 개인사업을하
는곳에 취직을하게되었다 그곳은(일명요꼬)쉐타를짜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의 내꿈을 이루리라 다짐하고
밤에는 야간중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1년여세월이 지나
고 나는 내나이보다 2~3살이더많이 들어보이는관계로
나보다 2~3살이 더많은형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점점나
뿐길로 빠져들게 되었고 공부는저버리고 일하는 시간도
적어지며 매일같이 친구들과어울리며 술에 담배에 또패
싸움질까지 경찰서를 내집드나들듯하고 매일같이 반복
되는싸움에 난점점 구렁텅이로 빠져들고있었다 심지어
는 다리에 칼에찔리는 중상까지입고 병원신세도졌고
매일같이 소주4홉들이한병씩 안먹을때가 없었다 19살
내몸은 그렇게 망가져만갔고 밥을먹으면 속이쓰리고 아
파서 밥을 못먹을때가많았다 그러던어느날 상계동 (도봉
산) 근방에서 큰싸움이 벌어졌다 난 머리에 허리띠로맞는
중상까지 입었고 난또경찰서신세를지게되었다 어떻게알
았는지 어머님이 올라오셨다 운이좋게 합의가잘이루어
져서 보호자인계훈방조치로 난어머님과 내려오게되었
고 집근방에 따로방을하나 얻어서 혼자 자취를하며살게
되었다 약도먹어가며 얼마를 지났을까 몸도어느정도
좋아지고 난취직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당시이름있는
제빵회사에 취직을하게되었다 직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보고 또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회사에서 조금떨
어진곳에 친구와함께 자취를했었고 난그녀의모습을보
는걸로 하루의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
었고 그녀의친구는 1살이더많았다 우리는 1년여동안을
만나며 물론몸도석었다 그러던어느날 지금에와이프였
던 그녀의친구가 내방에들어왔다(참고로 그들의자취방
과 나의집의거리는 약1~2분거리)그녀의친구였기에
나는 거리감을두고 많은 예기를했다 그사람의 가정환경
과 살아온예기 또 나의과거예기등등... 우린 많은예기를
나누고 헤여졌다 그러던어느날 나에그녀가 시골집에 가
정사로 잠시 갔다오마하고 내려간날 그날저녁 그친구가
또 나의방에들어왔다 무서워서 혼자 못자겠다는말이었다
그친구와나는 맥주를 사다놓고 밤이늦도록 예기를나누
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대 술기운이 약간오를즘! 새벽
녁즘에 그친구와난 돌이킬수없는일을 저질르고 말았다
유혹은 먼저그녀쪽이었다 술기운이돌았는지 내다리를베고
눕질않은가 덥다고웃옷까지벗어던지고나니 하얀속살이
훤히들여다보이는상황에서 순간 나도모르게 일을저질르고
만것이다 그녀또한 일체의반항을 하지않았으니.........
난 아침이되서야 내가저지른 행동에대해서 후회했지만
이미때는 늦은터 어찌할수 없었다 몇일후 내그녀가
돌아왔지만 난 죄책감에 그녀를 똑바로처다볼수가
없었다 하지만 숨길수박에없는 내마음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약2달후즘 그친구로부터 엄청난예기를들
어야했다 다름아닌 임신이라는 말을..........난 어
찌해야좋을지를 몰랐다 물론 이글을보고있는 당신은
나라는 인간을 무척이나 욕할것이다(너도 인간이냐?)
하며................. 하지만 혈기왕성한 20대초반의
나이에 그것도 술기운까지 올라온그때 상대가원하는대
어느남자가 그유혹을 억제할수있으랴! 난 할수없이
결단을 내려야했다 두사람중 한사람만을 선택해야되
기대문에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먼저 나에그녀는 성격
은 활달했지만 털털한멋이있었고 그친구는 내성적이면
서 무척이나 알뜰한면은 있었다 하지만 성격은내성적
이고 욱하는면이 있었다 하지만 임신을했기에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물론 각오를하고 내그녀에게 이모든사
실을 털어놓았다 너무 충격적인내말에 그녀는 할말을
잃고 넉나간사람처럼 먼산만 바라보았다 이때부터
난 죽일놈이 된것이다 우리는 헤여지면서 그녀의마지막
한마디가 내가슴 뼈속까지 파고들어왔다 (난 죽을때까
지 혼자살면서 죽을때까지 너를저주하며 살것이다...)
내욕심이라면 두사람다 놓치고십지가 않았지만 선택
은 하나이기에 어쩔수가 없었다 그녀를보낸뒤 얼마후에
우린 임신중절수술을하고 난 가난했던어린시절과 하루
빨리 내가정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시골의어느마을
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잡았다 같이있을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그이상에 행복은 없었다 또 방위병으로로서
의 입영통지를 받고 얼마 떨어지지않은 군부대로 대대내
방위복무에도 임했다 당시복무기간동안 무엇이라도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특기란에 운전으로 썼기대문에
부대에서는 수송부로 발령이나서 운전을 배울수가 있었
다 하지만 운전에 운자도 모르는놈이 특기를 속이고
입대한죄로 상당히고달푼 군생활을 해야했다 드디어
2년에가까운복무를 마치고 제대를했다 비롯 시골이지
만은 경운기등등을사서 열심히일해서 돈버는재미
도 괜찬았다 하루하루가 줄거웠고 남들에게 잉꼬부부
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시골생활3년만에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서울로 올라왔다 배운것없고 가진것없는나는
먹고살기위하여 무엇이든 해야했다 청계천에 공구상회
점원으로도 있었지만 여의치않아 리어커하나를사서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과일을 띠어다가 과일장사을 시작
했었다 리어커에과일을싫고 주택가골목을누비고 다니
며 목청것 소리를지르며 장사를했다 서울에처음으로 올
라와서 막벌어먹기에는 그래도장사가 제일나았었다
그럭저럭 큰애도 태어나고 비롯 몸은힘들어도 하루하
루가 보람차고 줄거웠다 서울생활4년만에 우리는 큰처
남의 권유로 충북00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는 예전
에 설비일을 조금했었던 재주로 모시멘트회사의 하청업
직원으로 입사하여 전기용접공으로 일을 해왔었다
물론 작은애도 태어나고 나는 남보다더 열심히 일을했
다 그때가 내나이25세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결혼식
도 조그마한 절에서 조촐하게 치루고 예전에 군대에서
의 운전경험이 있어서 운전면허증도 쉽게 딸수있었다
용접공생활3년여만에........ 나에게 이상한변화가
생겼다 원인은 눈이었다 어느때인가부터 모든사물이
2개로 보이기시작했다 처음에는 별거아니려니하고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증상은 점점 날이갈수
록 더욱더 심해졌다 밥상에 젖가락은 4짝으로보이고
다섯손가락은 열개로 한사람이 걸어가면 두사람으로 보
이고 모든사물이 두개로 보였다 하는수없이 나는 병원
을 찾았다 병명은 광선에의한 안막00증! 병원에서는
내가 하고있는 이용접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
지않으면 이런증상은 계속될거라고 했다 나는 또 하는
수없이 용접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약 5개월정도를
쉬어야했다 그리고 다시시작한것이 운전이었다 처음에
는 광산의 8톤덤프차를 운전했다 운전은 군대시절에
운전병으로 복무했었기에 어려움없이 큰차를 몰수있었다
2년후 나는 월급을 더많이받는곳으로 옴겨야되겠다십어
11톤카고트럭으로 옴겨서 시멘트회사에서 시멘트를전국
각지역으로 운송을하는일을 하게되었고 우리는 다시큰
어려움없이 예전의 행복한모습으로 돌아왔다 단지 불편
함이 있다면 대형트럭을 하다보니 한번나가면 몇일씩
집에 못들어오는것이 흠이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잘풀려
가고 그곳에서의 4년여생활을마치고 서울에계시던
장인어른의 권유로 우리는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돼었
다 서울에서는 15톤덤프차를 운전했었고 수입도 많지
는않지만 그래도 넉넉한생활이 이어졌다 서울생활몇년
만에 우리는 서울에서 멀지않은 도시에있는 조그만빌
라를사서 이사를하게 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내집!아무
것도없이 시작한 결혼생활 10여년만에 내집이라니!
이모든것이 집사람에 그알뜰한 살림살이덕분에 이루어
진것이다 난 내색은안했지만 집사람이 무척이나고맙고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모든것이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집사람과에 의견충돌이 많아지고 그로인해 부부싸움도
흔치않았다 나는 내성적인반면에 집사람은 직선적인면
이 화근이었다 난 이곳에와서 버스를 운전했고 우리에살
림은 돈모으는 재미에 애들커가는 재미에 우리부부싸움
만 안한다면 근심걱정이 없었다 이곳으로온지 약5년후
난 욕심이 생기기시작했다 운수사업을 한번 해보지않겠
느냐는 예전에같이 서울에서 덤프차를 운전했던
친구의말에 귀가 솔깃했던것이다 집사람은 반대를했지
만은 그래도비전이 있기에 시도를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이것저것모아서 15톤덤프차를 인수했다 처음에는
괜찬게일이 잘풀렸다 그래서 차도 더늘리고 난매일같이
새벽4시에 서울로 출근을하고 저녁10시가넘어서야 퇴근
을해가면서 몸은 힘들어만갔다 하지만 돈버는재미도
잠시! IMF가왔던것이다 건설업은 하루를일해도 어음을
받았었다 회사들은 하나둘 씩무너지고 거기서받은어
음들은 하나~둘씩 부도나고 하루하루버티기가 쉽지않았
다 결국에는 하는수없이 정리를 해야했고 폐업신고를
하고 차를 정리하고나니 남는것은 빗뿐이었다 그래도
살려볼려고 잠못자고 고생을했는대 이지경이 됐단말
인가... 너무나도 허무하고 허탈함에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를 몰랐다 부부싸움을 할때마다 나오는집사람에 질문공
세 이때부터 집사람과에 거리감이 생겼으리라 생각이든
다 사업은 망했을지라도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생각끝에 승합차를1대 구입해서 일을 했다 회사출퇴근.
학생들통학.학원생통학.유치원들 통학까지 지난일을잊
을려고 하루하루를 바쁘게뛰어다녔지만 그일은 그리쉽
게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때 우리사무실에오는 보험외판
원이 있었는대 물론나도 그외판원에게 자동차보험을
들었고 그는 고객관리상 자주 우리사무실을 방문했다
우린자주만났고 예기끝에 고향도 나와같은곳이라 더욱
더 가까이 지냈다 매일점심은 같이할 정도였고 또나에게
지난일에대한 용기와힘을 준것도 그였다 그에말한마다
한마디가 나에게는큰 위로와 위안이되었다 집에서의 받
지못한 애정이 싹트기시작했다 안보면 보고십고 안보
이면 궁굼하고 이건나만이 그러한것이 아니고 그녀도나
와 똑같은 생각이였다 언제였던가 그녀또한 가정에서의
불화로 편할날이 없었던터였고 난느꼈다그녀를 사랑하
고있다는것을....... 사람이라는것은 하나를알면 둘도
안다고했던가 우리는안보면 보고십고 손을잡으면 팔짱
을 끼고십고 그녀를안고나면 키스하고푼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이러면 안된다는생각이 문득들었다
그녀를만났다 내마음은그렇지않지만은 난 헤여지자고했
다 그녀의가정도 중하고 내가정도 중했기대문에 헤여지
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녀도 내가 한말에대해서는
동감했다 하지만 마음어디선가에서는 (너는 절대헤여
질수없어 절대로절대로...)하는 반발심이 울려나왔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결코만나서는 안될사람이지
만은 나도몰래 발길이끌렸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서는 안될선을 넘고말았다 마음은
아니지만 몸은어느새 그녀앞에 가있었다 그녀도 마찬
가지였다 우린 그렇게 얼마간을 지냈다 지금와서 생각
하니 마음에상처를 입은나에게 따뜻한말한마디가 내마
음을 그렇게도 흔들었나보다 우리는 더욱더
서로를 원했고 집사람에게 죄책감이 들어 견딜수가
없었다 난생각끝에결심을했다 헤여지로.........만약
세상사람들이 이걸알면 나란인간을 얼마나 욕을할까
난마음먹었다 모든사실을 털어놓고 집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기로.....빌었다!무릅꿀고 두손모아 빌었다 어떠한
벌도 감수하겠노라고 용서를해달라고.. 물론 이런나에
게 바보라욕할것이다 왜말을했냐고......하지만 난
진정으로 모든걸 털어놓고 용서를 받고십었다 과연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을까...... 그일이있은후 집사람의요
청으로 난그일을 청산하고 버스운전을시작했다
집사람은 날 용서를한듯십었고 나역시 죄책감에 집사람
에게도 잘해주었다 우린다시 예전의우리로 돌아온듯십
었다 비가온뒤 더욱더 굳어지는땅처럼....... 난 열심
히 헨들을돌렸고 열심히 일한탓에 회사에서도 성실상을
탈정도로 열심히일했다 그로부터약2년후 집사람은
직장엘 나가겠다고 했다 난 한사코 반대를했지만 집사
람은 막무가내였다 난 하는수없이 승낙을했고 집사람도
회사를 열심히다녔다 그당시 삐삐가 유행을했던시절이
었기에 나와 집사람은 삐삐를하나씩 구입해서 다녔는대
언젠가부터 집사람은 이상한행동이 눈에띄었다 뭔가
숨기는듯하며 삐삐가오면 확인후 지우는모습이 무엇
을훔치다가 들켰을때의 모습처럼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
만 난 믿고십었고 설마하는생각에 덥어두기로 했다 그러
나 그런행동은 계속되었고 집사람에 행동이이상했던나
는 집사람에 삐삐비밀번호를 알아내어 듣기로했다 얼마
후집사람이 샤워중에 삐삐가왔다 난얼른전화로내용을
듣고말았다 어이가없었다 전화속에남자는 집사람을오
래전부터 알고있는듯 했다 내용은 집사람이 그남자를
아마도 안만나주는듯 매우화가난 말투였다 난 설마하는생
각에 알면서도 그냥덥어두었다 나도 옛과거가 있기에
저러다가 떨어지것지 하고 그리고얼마후 난 헨드폰을 구입
했다 그런대 내가헨드폰을구입하고 얼마안있어서 집사
람이 헨드폰이 있는걸알았다 난어디서났느냐고 묻자
자기도하나 구입했다는것이었다 모든일에 나하고 상의
하는사람이 폰을구입한다면 나와상의없이 구입할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찌하리오 그것도 그냥덥어두었다
그로부터 약6개월후 일은 터지고 말았다 집사람은 폰을
전화걸고 받을줄만알지 부가사용은 할줄몰랐다 그런대
폰을보니 음성메일이 도착되있었다 아내는 그걸 들을줄
모르는것이다 그래서 내가들어보니 상대방남자의(아내)
가 녹음을 해논것이었다 내용을보니 아마도 전화 내역서
를보고 전화했던것같다 하루에20통화를 통화했다고한다
나도 혹시나하고 다음날 내역서를띠어봤다 역시마찬가지
였다 통화는 밤12시가넘어 새벽4시까지도 이어진적이
있었다 전화요금이 무려40만원이넘게 나왔다 이럴수가....
그런대그날 집으로한통의 전화가걸려왔다 목소
리가 그여자였다 내가받자 만나자는것이다 난 쾌히승낙
을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리고 난 짐작은 했었지만은
엄청난예기를 듣고말았다 그부인은이미 사람을사서
남편의 뒷조사까지 다해본상태였다 여관에 둘이들어가
는모습까지도 사진을 찍어놓았다 실로 기가막혔다
이런식으로 보복을하다니 이것이 두번째남자인것이다
심지어는 이부인이 우리집근방에와서는 집사람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다녔는대 동네사람이 이걸 본사람까지 있
다했다 나만 몰랐던것이다 난 아내와 하는수없이 이번일
에대하여 예기를했다 하지만아내는 모든사실에 50%만맞
는다고했다 난 그부인에게 연락을하여 우리모두 만나자
고했다 그쪽에서도 승낙을했다 다음날 아내와둘이서
약속장소로 나갔다 다방에 않아조금있자니 그쪽부인과
그남자가 들어왔다 그부인은 오자마자아내에게 입에담지
못할욕을 퍼부었다 난사태가조금 진정되길가다렸다
얼마후 조용해졌다 그남자는 약50대초반으로 얼굴은
마마자국에 머리는완전대머리에 눈섭이 하나두없었다
마치 문등병환자처럼 기가막혔다 거기다가 왼손은쌕끼
손가락과 두번째손가락까지 없었다 내가 저사람보다도
못하단말인가 그남자는 나에게 사죄를한다 잘못했다고
다신 안만난다고 난 애들이있고 이혼만은 하지말아야된
다는 생각에 다시는 안만나리라는 다짐을받고 그자리를
일어섰다 난 집으로 돌아오는중에 생각해보았다 과연
내가취한 행동이 잘한짓인가 하지만 나도 어린시절을
부모없이 살아왔기대문에 우리애들한태만은 그고통과
외로움을 물려주않으련다는걸 나스스로 알기대문에
어떠한일이 있어도 내가정만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업보가 아니던가 지난날 내가 저질렀던것에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집에돌아와서 서로가 폰번호를 바꾸
기로한약속을 지키기위해 모대리점으로가서 폰번호를
바꾸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2일후는친척들과 같이 휴가
를 가기로한날이었다 그리고 2일후 내차는 친척들과
휴가를 떠나고있었다 그런대 갑자기 아내의폰이울렸다
아내는 전화를받더니 어찌할바를 몰랐다 폰을빼앗아보니
바로 그남자였던것이었다 세상에 번호를바꾼지2일만에 또
연락을주고받았던 것이었다 아내는 입만벌리면 거짓말로 변명
을 해댔다 처가집의모든식구들도 이사실을알게되고 그일
로인해서 약2달간을 속을썩이며 살았다 챙피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할노릇이고 답답하기는 이루말할수 없었다
아내의 다짐을 받고또받고해서 조금은 잠잠해졌다 아니
이제는 그일을 잊은듯해 보였고 난더욱더 아내에게
잘했다 한번은우리가 모임에 참석을했을때이다 모임이
끝나고 친목을도모코저 모임에서 전채가 나이트클럽엘
간적이있다 한참을 놀다보니 아내가 보이지않았다 그래
서 돌아보니 한쪽구석에서 웬모르는사람과 서로부등켜
안고 춤을추고있었다 정말 사람이 미칠노릇이아닌가
그후로 난 지쳤고 아내에대해서 신경을 안쓰기로했다
또내가 그러니까 아내도 잠잠해졌다 그리고1년여즘뒤
그뒤로는 아내도잠잠했었고 나도그때그일을 잊을때즘~
이었다 그날은비번날(쉬느날)이어서 집에서 쉬고있었다
아내는 내옆에있었고 그런대그때 아내의폰이 소리를토
해냈다 아내는 폰를받았다 거리가나와 가까운지라
폰속의 말소리가 내게까지들려왔다 남자였다(어!나야)
아내는 누구세요?하고 물었다 그런대 (나라니깐)하고
들렸다 아내는 전화잘못걸었네요 하고답하자(어디~집
이야?시간나면 전화줘!) 아내는 전화를 끈고 아예폰을
꺼버렸다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또시작이란 말인가
그때서야난 결단을 내려야만했다 이건아니구나 2번까
지는 아이들대문에라도 용서를하고 살았지만 더이상은
용서를 할수가 없었다 이제는 더이상 아내에게 정이떨
어져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때부터 각방을 쓰기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더욱더 아내와의 정이떨어져만 갔다 역시
부부는 살을맞대고 살때가 부부지 떨어지니까 남남이드
라는말이 실감이났다 약3개월을그렇게 서로각방을
썼다 그러다가 난아내에게 우리서로 별거를하자고 제의
했고 난옷을 싸가지고 집을나왔다 그리고 우린 그때부
터 별거를했다 8개월여간을 난혼자 생활했다 여관으로
여인숙으로등등 ...전전하면서 생활을하다보니 내신세가
말이 아니였다 처지가그러니 무순일이 잘풀리겠는가
난 하는수없이 집으로 돌아와야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내와는서로 말이없었다 서로가 남남처럼럼...집에
온지10여일뒤 갑자기 아내가 집을나갔다 난애들밥대문
에 꼼짝을할수가 없었다 물론 직장에도 나갈수가 없었
다 큰애가 고2이고 작은애가 중2이니 어찌할수가 없었
다 하는수없이 직장을 그만두어야했다 약20여일뒤
아내가 들어왔다 그동안 남자들만이 살고보니 치운다고
치웠어도 집이 조금은 지저분하였다 아내는오자마자
잔소리를 해댔다 난화가나서 (도대체뭐하는사람이냐고
왜 나갔냐)고 물었다 아내는 (내가 집에있으니 너무
불편해서나갔다)며(내가너랑살려고온줄아니! )라고했다
그래 이것이 내팔자라면 따라야지생각
했다 그다음날 우리는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엘갔다
법원엘가니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저마다 같이않아
서 이야기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서로 떨어져 않아서 말도없었으니까는..
판사앞에서 이혼을확정받고 집으로돌아왔다 난그길로
구청엘가서 마지막으로 이혼성사신청을 할려니까 아내
는 신고는 더있다가하면 안되냐고하였다 난 한마디로
거절을했다 그리고 이혼신고를 했다 그리고 3일뒤
아내가 집을 나갔다 그후로 난 기러기아빠가되어 살아
가고있다 너무나도 힘이든 생활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중1 고1인두아이들을대리고 살아갈려니 앞이막막했다
한참 사춘기인 두아이들에게 내가 뭘어떻게해야되는지
너무나도 힘들고 너무나도 막막한하기만했다
음식이라곤 고작 라면하나끌일줄몰랐던내가 지금에와서는
지난세월 어떻게살았는지 모르겠다
버스운전을하면서 새벽3시에일어나 아이들먹을것을해놓고
4시에 출근을하고 근무마치고 새벽1~2시에집이라고
들어오면 아이들은자고 반기는사람없이 썰렁한기운속에
설거지며 빨래를하고 대충치우고나면 3~4시 잠한숨못자고
아이들깨워서 밥차려주고 근무나갈때도 육체적피로보다도
단하나 정신력으로 버티며 헨들은잡고 감기는눈꺼풀이
왜그리도 무거웁던지 너무나도 견디기힘들었던 나날들이었다
버스운전은 격일제근무지만 기사가부족했던지라 따불(2일근무)
로 근무한때가 많았었다 내주의에 여자도많이따랐지만
집사람에게 질려서그런지 여자라면은 모든사람이 싫었다
5년여세월이지난 지금 큰애는군에가고 작은애는 모전문대에
입학하여 그곳기숙사에서 있다 이런 글을쓸수있는걸보니
이젠 나에게도 마음에여유가 생겼는가보다
허전함과 외로움도 느끼니말이다 주의에서 많이들예기한다
재혼을하라고들........하지만 나는생각이다르다
내가만약 재혼을하면 내아이들은 모두가 집을나갈것이다
새사람을받아들이기에는 아이들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울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아주이다음에 아이들분가시키고 나면
그때가서 재혼도 고려해볼생각이다 과연 내생각이 옳은것일까.
지난일에 대해서는 후회같은것은안한다 아니 앞으로도 안할것이다
문득 예전일을 생각해본다 예전에 첫사랑 그녀가 나에게 한말을......
(죽울때까지 혼자살면서 죽을때까지 너를저주하면서 살것이다.)
라는말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그녀에게 못된짓을한 나자신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지나간일 난 마음속으로빌어본다
어디에살던지 부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시라고......
2005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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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는 저주도 풀릴때 됐으니 열심히 사십시요
방랑자님에 인생이 여기에 다있군요 참힘든 삶이셨네요 앞으로는 행복한삶이되십시요 남은 인생만이라도 .....
안녕하세요 글을 올릴까말까생각하다가 올렸는대 못난인생못난글읽어주신 님들에게 감사하고 격려의말씀도 감사합니다 하기야 나이오십이다되가는 지금 더이상 무순행복을바라고 무순부귀영화를바라겠습니까 그저 이한몸병들지않고 죽는날까지 맘고생이나없이살다가 가면 그만이겠죠! 님들정말로 고맙습니다 건강들하세요.
힘내세요.... 그리고 결혼이전에 먼저 여자친구를 사귀시는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결혼이전에 먼저 여자친구를 사귀시는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방랑자! 닉네임이좋아신청했는데 님이먼저하셨더군요 방랑자같은삶이었군요 저하구생각하느게비슷해요 언제등산모임에나오세요 같이예기하며 산책하게요 전화한번해주세요(M.017 585 4491)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지 못하는 풍파를 겪을 수 있죠 힘내시고 현재가 중요하니 지금부터라도 후회없는 삶이 되시길,솔직한 마음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