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아, 욱준 선배님!"
"어, 그래 지은씨. 목, 금, 토 술 마시지 말고 일찍 자고.
지은씨 같이 갈 사람없지? 7시 30까지 분포 초등학교 앞에서 봅시다."
딸그락.
'아, 맞다... 20일 하프있었지...'
책이라도 한 줄 본 녀석이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있지.
이건 머, 아.무.생.각.이.없.다.
바야흐로 시합 당일.
공사 현장의 좁다란 길을 따라가는 동안,
베테랑으로 보이는 중년의 마라토너들은 이미 몸을 풀고 있고
곳곳에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처녀, 총각들이 십원짜리 욕을 하기도 하며 무리지어 있다.
아스팔트의 열기와 잡상인이 파는 촌스러운 선글라스의 묘한 조합 속에,
저기 저쪽 효마클 텐트가 보인다.
"아, 아, 안녕하세요!"
허둥지둥 인사를 하는 동안 호진 선배님이 배번을 나눠주신다.
해외출장과 대상포진으로 몸도 안 좋으신것 같던데...
어리버리 삐뚤빼뚤 배번표를 붙이자 윤정현 선배님이
손수 배번표를 붙여주신다.
"지은씨 오늘 페이스 메이커는 있어?"
그룹사 대우 왕 회장님이 말단 직원까지 물어 보신다.
"지은씨, 아침 먹었어?"
초록색 고글형 모양의 선글라스를 끼고 오신 허미경 선배님은 참가자들에게 연신 쑥떡을 건내 주신다.
지난번 핑크 마라톤 대회 때는 핑크색의 명품 펜디 선글라스를 끼고 오셨던데...
훈련도 훈련이지만 스포츠 역시 이쁘게 해야 떼깔이 난다.
"삐약이 칩은 달았어?"
김광호 선배님이시다.
"아.. 칩.."
신발 끈을 풀었다 감았다만 반복하자 보다 못한 선배님이 직접 매 주신다.
게다가 달리기 도중 끈 풀리지 말라고 매듭 부분에 물까지 살짝 칠해 주신다.
그렇게 허둥지둥 화장실에 가려던 찰나,
"야, 너 삐약이."
"네에..에?"
"모자가 말이야, 해골모자가 뭐야??"
오래된 마라톤으로 얼굴이 타신 것인지, 아니면 오래된 흡연으로 검게 되신 것인지 헷갈리는
효마클의 회장님, 민경식 회장님, Min 회장님, The Min 회장님이 앞으로 바짝 다가 올 찰나,
"아.. 아.. 네에..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
미끄럼 타듯이 쏘옥 빠져 나온 나는, 화장실도 페메 욱준 선배님과 함께.
길 잃어 버릴 새라 뒤만 졸졸 따라간다.
"지은씨 오늘 괜찮겠어요?"
핑크 마라톤 10키로 이후 훈련 한번 안해 본 것을 뻔히 아는 욱준 선배인지라 걱정이 大걱정이시다.
"네! 히히"
이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전혀 분간을 못하는 처자의 무식 용감한 대답은 경쾌하기만 하다.
대회 출발선 상에서 아직 얼굴도 모르는 효마클 선배님들께 마지막으로 배꼽인사를 드린다.
"땅"
완주에 대한 열의를 다지며 출발한다.
'몸의 힘을 빼고, 몸을 약간 숙여서 무게 중심을 앞으로 한다는 생각으로 하되 가슴은 활짝 펴고.'
월달 신종철 선배님의 달리기 가르침을 머리 속에 생각해 보면서 달려본다.
우선 생각은 해 보는데 자세가 맞는지 틀리는지 전혀 분간이 되지는 않는다.
완주에 대한 열의도 잠시.
나를 앞질러 가는 여성 주자들의 몸을 스캔해 보기도 하고
멋진 몸매의 남성 주자의 뒷 모습을 보며, 순간 엔돌핀 호르몬이 분비됨을 느낀다.
정말이지 30초간 더 뛸 힘을 얻는다. 신기하다.
처음으로 간 수달 모임, 2차 가지마루 에서 강정수 선배가 그랬다.
'오래 달리다 보면 자신을 만나게 된다고.'
참, 스님 도 딱는 소리다.
멍 때리며 달리는게 달리기의 매력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내 수준은 동네 헬스장 러닝머신 수준이다.
.............
아, 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정신을 차릴 즈음 욱준 선배가 "어, 어. 속력이 떨어진다."라고 주의를 주신다.
반환점을 돌면서 이제는 제 정신이 아니다.
3,4키로 간격으로 여고생들이 생고함을 지르면서 주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귀엽다.
너무 귀여운 나머지 여고생들의 응원 또한 힘이 나는 포인트였는데
나는 그것을 즐기기 위해 손을 흔들면 "언니 이뻐요~!" 이 말을 여고생들 중 한 명은 꼭 해줬다.
'짜식들... 역시 나의 해골 바가지 모자를 알아주는군.'
흐뭇함도 잠시, 내 다리는 후덜덜- 지옥행으로 가고 있었다.
"참, 내가 대신 뛰어 줄 수도 없고 노래라도 잘 하면 노래라도 불러 줄낀데."
아.. 아.. 이럴 때는 선배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수줍은 듯, 감격한 듯 미소 한번 날려 주어야 하는데...
하지만... 절. 대. 쳐. 다. 볼. 수. 없. 다.
그냥 달린다. 더 큰 부담감을 느끼면서.
한 6키로는 족히 넘어 남았겠는데
욱준 선배가 마지막 페이스는 3분 뛰고 1분 걷잖다.
3초 걸은거 같은데 1분 걸었다고 하시고
3분 뛰었는데 어떻게 30초를 못 뛰냔다.
선배의 눈치를 보며
"선배님, 저 그냥 걸어가면 안될까요?"
선배님을 흘끔보며
"선배님, 저 그냥 완주 안할래요ㅠ"
나이가 서른 다 된 처자가 시뻘건 얼굴로 물으니 그냥 씨익 웃으신다.
괴롭다.
아니. 괴로움 반, 후회 반이 밀려온다. (머, 그게 그거긴 하지만;)
우선 괴로움 반은 이 튼실한 무시 다리가 누구의 다리인가 하는 것이고
후회 반은 그 동안 연습 지질히도 안 한 후회 반, 또 무얼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었는가에 대한 후회 반.
춥고 깜깜했던 겨울 바다 앞에서 느꼈던 존재의 무상함이
어지럽게 타오르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생뚱맞게 생각이 난다.
그렇다!
이렇게 개똥 철학을 되뇌이는 동안, 엎치락 뒤치락 하던 '바퀴벌레' 커플이 앞으로 추월해 간다.
아까부터 눈에 거슬렸던! 저 두 마리 바퀴벌레.
손 잡고 뛰더니 이제는 둘이 한 몸으로 가네!
'에잇 모르겠다.'
이. 판. 사. 판. 공. 사. 판.
마지막 필살기. '할 수 있 다' 신공-
한 걸음씩 대 딛을 때 마다 "할 수 있 다" 리듬에 맞춰 무한 반복!!
별 다른 정신무장 없이 입으로만 우렁차게 내 뱉었을 뿐인데, 어느덧 바퀴벌레 커플을 추월하고 우람한 아주머니 한 분도 추월해 간다.
뒤에서 들려오는 씩씩한 목소리가 궁금한 아저씨는 옆으로 흘깃흘깃 쳐다 본다.
"지은씨, 이제 1키로 10분 남았어!"
2012년 5월 다대포 마라톤 대회의 민폐 종결자 박지은의 페이스 메이커를 해 주신 욱준 선배님의 시원한 한 말씀!
그렇게 욱준 선배는 앞서서 뛰어 가셨고
나는 헥헥 거리며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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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마라톤 후의 뒷풀이 횟집에서는 회 한 점, 매운탕 한 숟갈을 은미하며 감사히 먹었건만,
한 숨 자고 저녁에 밥 한 그릇 완젼 후르륵 땁땁 해치우고 냉장고 기웃기웃 하는 본인 발견.
그렇게 고생을하고 후회를 하면서 화요일 시험을 핑계로 재즈학원도 (월달도) 빼 먹고 일찍 귀가 하여 바로 취침하는 것이 삐약양의 실체.
엊그저께 다리 아프다고 난리 치더니 오늘은 또 다른 쾌락;을 찾아 떠난다.
참, 답 안나오는 인생이지만.
3분지 1을 달려온 인생을 감사하며, 나머지 인생도 정답 없는 답안지처럼 달려야 겠다.
첫댓글 이 보다 더 생생한 상황묘사는 없을 터.... 삐약양 이제부터 토달에서 연습 많이 하고 갑시다. 달린다고 수고 많았고 주로에서 자주 봅시다. 박지은 힘!!!
이상 좌충우돌,천방지축~~삐약양의 반성문이었습니다, 준비하고 뛰면 보람과 희열이 따르지만 부족한준비에는 고통과 민폐만 남습니다,우야든동 첫하프축하! 계속정진하길!! 욱준아 큰욕봤다ㅎㅎ
하프 후기가 아주아주 생생하네요. 완주 축하하고 다음에는 훈련 열심히 해서 기록 확실히 땡기세요. 박지은 힘!!
마라톤 2번만에 하프 도전한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에요! 섭3했으니 흐내년 쯤 섭2 할 수 있을거에요! 힘
그더위에 3시간 가까이나 뛰느라 욕봤어..지은 삐약. 페메한 욱준씨는 더 욕봤고..ㅎㅎ
대회때 재밌는 정도는 연습량에 비례한다는 사실 이번에 확실히 느꼈겠네.
그러니.. 정달에서 얼굴 자주 보자.. 아참 그라고 첫 하프 축하 축하!!^^
효마클 신기록으로 하프 완주함을 축하한다. 남들보다 두배는 힘 들었을텐데.. 무지가 용기를 낳았네..용기가 기록을 ㅋㅋ
후기를 보니 3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괴롭기는 했지만 자기자신을 많이 만났네... 살짝 대책이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귀엽다.
정답 없는 인생살이 하고싶은 일 많이 하면서 살거레이.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 하프 되겠다. 대단하다 삐약이! 장하다 삐약이!
후기 한번 싱그럽고 생생합니다. 마라톤은 빨리뛰나 천천히 뛰나 정답은 없는것 같습니다. 삐약이가 정답아닐까.
고생 했어요 그리고 참 잘했어요 @도장@
그날 참 더웠는데 고생 많았어요. 하면, 할 수 있다는 그 근거없는 자신감이 전염된 것이 아닌지....완주 축하 합니다.
박지은후배님! 첫 하프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준비되지 않은 레이스는 엄청난 고통을 주며, 달리기가 싫어질 수도 있답니다.
여름동안 열심히 준비하셔서 가을에 좋은 기록내시길... " 할 수 있 따 아 " ㅋ
참 잘했어요..짝 짝 짝~
완죤 계란으로 바위치기! 고상 마이하겠다,담에는 단디하소!!
첫하프 완주축하!!! 우찌됐든 완주했다는거에 박수를~~^^ 조금씩 달리기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풀도 뜯고있을꺼야ㅋㅋ 박지은 힘! 페메 최욱준선배님도 힘!!!
거리는 정해져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그러나 걸음은 느려터져도 한발한발 옮길 수 있다.
언젠가는....우공이 산을 옮기듯이.
지은씨 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달리면서 느꼈던 고통이 마라톤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변하시길... 완주하신다고 고생하셨고, 욱준씨 마이 고생했어요!
하프의 달림을 완성하시고 풀에 도전하시길.....
이렇게나 빨리 하프를 뛸 생각을 했다니 대단합니다. 욱준씨와 함께 한 하프 완주는 길이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됩니다. 후기 읽으니 가슴에 팍팍 와 닿습니다. 박지은 힘!
욕 봤어요...지은씨! 담에는 연습 좀해서 2시간에 도전 함 해보시죠.......
옛날 고생했던 첫 하프가 생각나네요. 꾸준한 연습만이 즐거운 달림을 보장하죠. 조금씩 거리를 늘려서 달리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아마도 뛰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났겠네-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여긴 또 어딘가? ㅋㅋ
수고 마이 했다. 근데 이제 하프도 뛰었으니 삐약이가 아니라 닭이 들어가는 별명으로 호칭변경이 있어야겠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