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최강 발틱함대를 궤멸시키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제독 ‘도고 헤이아치로’가 승전 후 벌어진 축하연에서 한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먼저 그 기자는 세계 4대 해전 가운데 하나인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의 ‘넬슨’ 제독과 ‘도고’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도고 제독은 이렇게 말한다. “넬슨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가지고 싸워 이겼다. 그러나 나와 나의 함대는 러시아 발틱 함대의 3분의 1 규모였지만 결국 승리했다”며 사실상 자신이 넬슨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했다.
내친 김에 기자는 조선의 이순신 제독과 비교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질문에 도고 제독은 대뜸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이끌어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神)에 대한 모독이다."
일본 내에서는 지금도 군신(軍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고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이순신 제독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 제독이 나의 함대를 갖고 있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을 영웅이라 일컫는 이는 별로 없다.
대신 그는 ‘성웅(聖雄)’으로 불린다. 영웅 앞에 ‘성스럽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왜 그럴까. 이순신 장군은 왜 성스러운 영웅일까.
그 질문에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제대로 된 이유를 제시한다.
사실 <명량>은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진 역사물이지만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무비에서나 봤음직한 광경들이 마구 펼쳐진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치렀던 수많은 해전 중 ‘명량해전’은 조금 특별한 전투다.
옥포해전부터 합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등 그전까지 그가 치렀던 전투는 거북선과 판옥선 등 조선 수군의 우세한 전력을 토대로 방심하고 있는 왜군들에 대한 기습작전을 통한 승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명량해전은 완전히 달랐다. 연전연승으로 이순신을 따르는 백성들이 갈수록 많아지자 위기감을 느낀 무능한 임금 선조는 그를 항명죄로 잡아들여 군복을 벗기고 고문을 가한다.
그러는 동안 원균이 조선 수군을 지휘하게 되지만 원균의 함대는 칠천량 전투에서 전멸하게 된다. 결국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게 되고 그 지점에서부터 <명량>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배는 고작 12척 뿐. 330여척에 이르는 왜군과의 싸움은 누가 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뛰어난 지략과 리더십으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그런데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회오리가 일어나는 진도 울돌목에서 벌어진 전투는 사실상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 한 대와 100여척의 적선과의 싸움이었다.
300척이 넘는 적선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11척의 배들은 이순신의 진군 명령을 거부했고, 결국 이순신이 탄 대장선은 회오리의 중심에서 홀연 단신으로 거센 물살을 타고 달라붙는 적선 100여척과 싸워 승리한다.
영화에서는 화포와 백병전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승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지금도 어떻게 이겼는지는 아무도 밝혀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아마 실존하는 슈퍼히어로가 있다면 바로 이순신이 아닐까. 일본의 영웅 도고 헤이아치로가 이순신을 신(神)으로 추앙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명량>은 단순하게 그러한 전투성과를 떠나 그의 마음속에 있는 ‘백성’이란 두 글자를 통해 이순신이 왜 성웅인지를 잘 보여준다.
모 영화평론가가 “왕이 아닌 백성을 향한 충(忠). 영웅이 아닌 백성을 향한 카메라”라고 평했듯 <명량>은 성웅 이순신 너머로 백성을 앉혀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쯤에서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명량>에서는 왜란 당시 백성들을 책임져야 할 최고 책임자인 조선 왕실은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오로지 이순신 장군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백성들뿐이다. 이순신 장군이 치렀던 수많은 해전 가운데 명량해전만 떼어내어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네러티브상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가 한번쯤 등장할 법도 한데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이 터지자마자 선조는 저 살자고 수도와 백성들을 버리고 평안북도 의주까지 도망갔기 때문이다. 왕이 그렇게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간 건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희귀한 일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선조를 볼모삼아 조선을 좌지우지하려 했던 왜군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이순신 장군에게는 시간을 벌어주는 계기가 됐다지만 애시 당초 율곡 이이 선생의 진심어린 십만양병설까지 무시했던 무능한 임금 선조가 계획적으로 피난했을 가능성은 만무하다.
결국 임진왜란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이순신이라는 신적인 존재도 있었지만 도망간 왕을 대신해 내 나라, 내 가족, 내 이웃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섰던 의병들의 공이 컸다는 것은 한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백성은 언제나 위대했지만 정치는 저질인 경우가 더 많았다. 오죽했지만 그보다 훨씬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이런 말을 남겼겠는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은 끝까지 백성 편에 서서 백성을 위해 싸운다. 그의 그러한 성스러운 모습은 영화 속 대사들에도 잘 녹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웠는데도 꼬투리를 잡아 오히려 고문을 가했던 선조가 미웠던 아들 이회(권율)는 명량해전 직전 아버지 이순신에게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왜 싸우냐는 식으로 묻는다.
사실 아들의 질문은 몰염치한 임금 선조를 염두에 두고 도대체 누구를 위해 싸우려는 것이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성웅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의리다. 무릇 장수란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lucas0213@naver.com
뉴스1 에서 퍼온글
첫댓글 감동 그 자체이네요...
간사한 뱀들은 용을 두려워했죠,,,
하지만 용은 자신의 비늘을 아낌없이 백성에게 나눠주고 승천합니다...
와 일본인이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다니 대단하다ㅎ일본도 다나쁜놈은아니군요ㅎㅎ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