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일 관음기도 도량 무등산 규봉암(圭峰庵)
연혁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영평리 산897)에 자리한 규봉암은
무등산 동쪽 기슭 해발 약 850m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본사 송광사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창건에 이어
798(신라 원성왕 14)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대사(順應大師)가 중창했다고 전해 온다.
전하는 설에 의하면 이곳을 찾은 의상스님이
바위 틈에서 흐르는 물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것을 기이하게 여겨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물은 지금도 용왕각 뒤에 사시사철 흘러내리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이 석간수는 보살님들한테 좋은 미네랄 등이 풍부하고
특히“위장병을 치료한다”해서 많은 사람들이
먼 산길을 마다하지 않고 물을 받아가곤 한다.
신라 말의 도선국사(827~898)는 규봉암 은신대(隱身臺)에서
조계산의 산세를 살펴보고 송광사의 터를 잡았다고 하며,
고려 후기의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진각국사 혜심(1178~1234)도
이 절 주변의 삼존석과 12대에서 수도하여 득도하였다고 한다.
또한 고려 말의 나옹혜근(1320~1376)도
이곳에서 수도했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처럼 규봉암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고승들과 관련된
유서 깊은 수행도량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조선시대의『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규봉암'이라고 하지 않고
'규봉사'라고 했는데 고려 후기에는
상당한 규모를 갖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중기의 의병장인 고경명(1533-1592)이 지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의하면
당시만 해도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이 쓴 현판이 전해 왔다고 한 것을 보면
규봉암은 최소한 1,200년 전에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폐허가 되어버린 절을 1739년 화순군 출신인 연경(演瓊)스님이
3년간의 불사(佛事)를 하여 이 절을 중건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10년 동안
황무지로 방치되어 폐사가 되었던 것을
1957년 당시 주지였던 이한규 스님이
대웅전을 비롯한 3동의 전각을 임시로 지었다.
최근에는 정인(正因) 스님이
1995년에 이 절의 중심 전각인 관음전을 짓기 시작하여
1996년 8월 21일 송광사 법흥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낙성식 및 후불탱화 점안식을 가졌다.
이후 종각, 삼성각, 응향각(요사채), 용왕각, 금영각(요사채),
해우소, 축대를 중창하였고
2016년에는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개금과 통일관음보살 대불을 모셨다.
절 자체는 작은 암자에 지나지 않으나
역사적으로는 훌륭한 고승들의 수행처로 알려졌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삼존석을 비롯한 십이대 등
무등산의 대표적 절경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어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는 아름다운 곳이다.
규봉 십대(圭峰 拾臺)
무등산에는 세계적 학술 가치로 유명한 주상절리로 된 3대 석경(石景)이 있다.
200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정상 부근의 서석대(瑞石臺)와 입석대(立石臺) 그리고
규봉암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광석대(廣石臺)이다.
그런데 규봉암 주위에는 규봉 십대(拾臺)라하여
또 열 개의 바위 군이 마치 부처님과 보살님 그리고
아라한처럼 사찰과 신도들을 보위하고 있다.
즉 송하(松下), 풍혈(風穴), 장추(藏秋), 청학(靑鶴), 송광(松廣),
능엄(楞嚴), 법화(法華), 설법(說法), 은신(隱身), 게성(偈聖) 등이다.
이 밖에 삼존석(三尊石. 여래, 미륵, 관음)과 광석(廣石)을 포함하여
12대(臺)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