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덕, 가족 25-8, 장례식에 다녀와서
금요일 오후, 백권술 씨의 전화를 받았다.
부산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아저씨가 차 문을 열면서 손가락이 삐끗했는지 살짝 부어서 병원 진료를 받겠다고 전했다.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어 아저씨에게 연락했다.
“아저씨, 병원은 다녀오셨나요? 아직도 많이 아프신지요?”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서 병원에는 안 갔어요.”
“다행입니다. 백지숙 씨는 만나셨나요?”
“여기 같이 있어요. 잠깐만요. 권술이 조카 바꾸께요.”
“선생님, 아재는 금방 괜찮아져서 병원에는 안 갔습니다. 그리고 오늘밤 늦게라도 거창으로 다시 가야할 것 같습니다. 발인까지 보고 가려고 했는데, 여기 장례식장에는 잘 곳이 마땅치가 않네요. 거창하고는 달라요. 방도 따로 없고 테이블도 달랑 두세 개가 다라서 아재하고 저하고 지낼만한 공간이 없다 보니까 어쩔 수가 없네요. 아재는 벌써 지겨운 눈치고요. 5시쯤 출발할 예정인데 거창 가면 좀 늦을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밤길에 운전 조심하시고요.”
그날 오후에 백권술 씨가 조의금 계좌를 알려주어 아저씨와 애초 의논한 10만 원을 우리은행 백지숙 씨 통장 계좌로 보냈다.
그날 저녁 8시 30분에 잘 도착했다는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안심했다.
일요일 아침, 교회 준비를 위해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 부산에서 친척분들은 많이 만나셨나요?”
“만났지요. 다들 반갑다 카대요.”
“백지숙 씨는 어떻던가요? 많이 슬퍼하지요.”
“남편이 죽었으니까 많이 울었어요. 나도 마음이 참 안 됐더라고요.”
“그러셨구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까 싶어요.”
“내가 지숙이한테 아들 결혼식 때 보자 캤어요.”
“잘하셨네요.”
사람이 태어나면 꼭 한 번은 떠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누구라도 자신이 떠나는 날까지는 소중한 사람들과 하나둘 이별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하루하루의 삶에 더 숙연해지고 인생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백춘덕 아저씨도 소중한 한 사람과 또 이별했다.
2025년 3월 2일 일요일, 김향
잠시라도 다녀오셨으니 친척들도 아저씨도 유가족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월평
백춘덕, 가족 25-1, 새해 안부, 계획 의논
백춘덕, 가족 25-2, 백지숙 씨와 새해 인사, 계획 의논
백춘덕, 가족 25-3, 백권술 씨와 새해 인사, 계획 의논
백춘덕, 가족 25-4, 아재 모시고 북상 갑니다
백춘덕, 가족 25-5, 고모님 댁 방문 소식 전하며
백춘덕, 가족 25-6, 우리 춘덕이가 최고지
백춘덕, 가족 25-7, 부산 장례식 참석
첫댓글 아저씨 말씀 들으니 입주자분들이 가족 친지의 경조사에 꼭 참석하도록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