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의 역사, 신화, 전설들
북해의 역사, 신화, 전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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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北海, )는 대서양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해협으로,
영국 제도와 유럽 북서부의 본토 사이에 위치한다.
이 바다는 유럽 역사에 강한 영향을 끼쳐 상업과
분쟁이 일었던 곳이다. 바다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북해는
한때 영국과 유럽 대륙을 연결했던 거대한 육교였던
테라 피르마였던 지역을 덮고 있다.
북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지정학적, 군사적 문제에서 이 바다의 역할과
관광지로서의 매력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도거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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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국과 유럽 대륙을 연결했던 땅이 있다.
기원전 6500년에서 기원전 6200년 사이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홍수가 났다.
사진은 네덜란드 라이덴의 내츄럴리스
생물다양성 센터에 있는 도거랜드 레크리에이션이다.
도거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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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거랜드는 이름은 북해의 얕은 지역에 있는
큰 모래톱인 도거 뱅크(Dogger Bank)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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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거 뱅크는 중세 네덜란드 어선인
도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스토레가 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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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는 지구상에서 기록된 가장 큰 쓰나미 중 하나이자
노르웨이의 격렬한 산사태(스토레가 슬라이드)에 의해
촉발된 거대한 쓰나미가 현재의 북해를 만들기 전까지
건조한 육지였다. 그렇게, 영국은 섬나라가 되었다.
로마제국의 영국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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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에서 해상 무역이 시작된 것은 서기 43년
로마의 영국 침공 이후였다.
로마인들은 체계적인 항구를 설립했고,
선박을 증가시키고 지속적인 상업을 장려했다.
바이킹의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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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고트족, 색슨족, 앵글족을 포함한
수많은 게르만 부족들이 영국 섬을 정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북해는 793년에 시작된 바이킹 침략으로
영국, 프랑스, 이베리아, 지중해, 대서양의 습격, 침략,
식민지화를 위한 도약점으로 이용되었다.
한자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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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는 중세 유럽의 중부와 북부 도시들과
상인 길드의 연합체인 한자 동맹이
북해와 발트해의 해상 무역을 지배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 중 하나였던
군함 아들러 폰 뤼베크와 같은 배들은
강력한 호위 역할을 했다.
영국-네덜란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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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년과 1673년 사이의 영국-네덜란드 전쟁 동안
북해에서 일어난 최초의 중요한 해군 전투가 목격되었다.
도거 뱅크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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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북해는 전투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1915년 1월 4일, 영국 해군은 도거 뱅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사진은 침몰된 배 중에 하나인 독일의 전함 SMS 블뤼허이다.
유틀란드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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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덴마크 유틀란드 반도의 북해 연안에서
벌어진 유틀란드 해전은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해전이자 유일한 전면전이었다.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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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북해는
1940년 노르웨이 침공을 위해
덴마크를 점령한 독일군에게
편리한 해로를 제공했다.
공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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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추축국과
연합군에 의해 집중적인 어뢰 전투의 장이 되었다.
1941년 사진은 독일의 장거리 해상 정찰기인
FW 200의 호위를 받는 어뢰 유닛들이다.
북해 상공에서의 공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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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는 북해 상공에서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나중에
루프트바페가 크게 패배하면서
하늘은 연합군의 소유가 되었다.
이 희귀한 컬러 이미지에서
P-51 머스탱의 호위를 받는 미국의
B-24 리버레이터 중폭격기(제8공군 소속)가
유럽을 향해 바다 위를 날고 있다.
여객선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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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를 운항하는 여객선과 보트 서비스는 20세기 초
영국의 하리치에서 벨기에의 항구까지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와 대규모 관광이 등장하고 나서야
영국과 유럽 대륙을 정기적으로 횡단하는 북해 항로가
영국 해협 페리 항로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MS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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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6일, 자유 기업의 MS 헤럴드 여객선이
벨기에 지브루게 항구를 떠난 직후 전복되었다.
도버로 향하는 배는 뱃머리 문을 열고 출발했다.
그것으로 바다가 즉시 갑판을 침수시킬 수 있게 했고,
몇 분 안에 피해를 입은 배는 얕은 물에 가라앉아
193명의 승객과 선원을 죽였다.
석유 및 가스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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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연안에서 상업적으로 석유를 추출한 것은
18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해 연안의 석유는 1960년대 초에 발견되었다.
1971년에 거대한 브렌트 유전과 가스전이 발견되었다.
브렌트유는 오늘날에도 유가를 결정하는 표준 기준으로 사용된다.
파이퍼 알파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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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석유와 가스 탐사의 본질적인 위험은
1965년 링컨셔 해안에서 시젬 석유 굴착기가
붕괴되면서 처음으로 명백해졌다. 13명이 죽었다.
그러나 인명 손실과 산업 영향 측면에서
세계 최악의 해상 석유 참사로 남아 있는 것은
165명의 사망자를 낸 1988년 7월 6일
파이퍼 알파 석유 플랫폼 폭발이었다.
북해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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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길이는 970km, 폭은 580km이다.
가장 깊은 지점은 725m에 이른다.
북해 이름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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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는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로마 작가 대 플리니우스는 그것을
Septentrionalis Oceanus, 또는 "북대양"이라고 기록했다.
서기 2세기의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은
그것을 오세아니아 게르마니쿠스, 즉 "독일의 바다"라고 언급했다.
오늘날의 이름은 네덜란드어로 북해를 직역하는
노르지(Nordzee)를 통해 영어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HMS 글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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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글로스터는 1682년 노퍽 해안의
모래톱에서 허우적거렸다.
요크 공작(훗날의 제임스 2세)은 살아남았지만,
100명 이상의 선원이 사망했다.
그 난파선은 2007년에 발견되었지만,
2022년에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것은
1971년 메리 로즈 이후 가장 중요한 발견물이었다.
북해의 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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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는 유럽의 주요 어장으로,
국제 상업용 어획량의 5% 이상을 차지한다.
개혁된 공동 어업 정책에도 불구하고,
남획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데, 이는 북해의
거대한 지역이 이전에 이미 금지령으로 선포되었고,
감소하는 북해 어획량을 멸종에서 구하기 위한 시도로
어업 할당량이 대폭 삭감되었을 정도이다.
악마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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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는 악마의 구멍으로 알려진
일련의 깊은 참호들의 본거지이다.
해저 지형은 스코틀랜드 던디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참호는 230m에 이르며, 많은 어선들이
가파르고 너덜너덜한 경사면에서
트롤어망을 잃는다.
Horns Rev 1 해상 풍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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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세계 최초의 대규모 해상 풍력 발전소인
Horns Rev 해상 풍력 발전소의 초기 단계가
온라인으로 발표되었다.
2019년 경, Horns Rev 1은 완전히 가동되었다.
그것은 북해의 덴마크 바다에 위치해 있다.
해들리 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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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들리 갱으로 알려진 18세기 영국 밀수업자들은
서퍽의 해들리 시장 마을에서 활동했다.
약 100명의 인원으로, 그들은 북해의 사략선과
해적들로부터 해안을 따라 운반된 밀수품을 배달했다.
바다뱀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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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 신화에 따르면 '요르문간드'는 북해 해역에서
선원들을 괴롭히는 거대한 바다뱀이다.
1927년, 영국 노퍽의 에클스 해변을 산책하던
세 명의 남자가 "해변에서 약 1마일 떨어진 곳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특이한 형태"를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멀리서 보면, 그것은 길이가 30에서
40피트 정도 되는 거대한 뱀의 형태로 보였고,
벌레 같은 움직임으로 수면을 스치지만 확실히
1분에 1마일 이상의 놀라운 속도로 여행하는 것처럼보였다"고
덧붙였다. 지역 신문인 Eastern Daily Press가 이 기사를 실었다.
던위치의 잃어버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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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위치는 앵글로색슨 시대에 앵글 왕국의 수도였다.
영국 서퍽 주의 번창하는 항구 도시였던 이곳은 결국
폭풍 해일과 그에 따른 해안 침식의 희생양이 되었고,
북해에 의해 삼켜졌다. 오늘날 영국의 아틀란티스로
묘사되는 이 잃어버린 마을은 파도 아래 15m, 해변에서
최대 1.5km 떨어져 있다.
1904년 사진은 더니치의 고대 교회 중
마지막으로 바다에 유실된 올 세인츠 교회의
유적으로, 1922년에 마침내 물에 잠겼다.
1953년의 북해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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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31일, 파도와 비슷한 강력한 폭풍이
네덜란드, 벨기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를 강타했다.
사진은 에식스의 한 마을이 물에 잠긴 모습이다.
광범위한 피해 및 인명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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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만조, 저기압이 합쳐지면서 평균 해수면보다
5m 높은 곳까지 바다가 범람해 광범위한 피해와
1,83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사상자의 대부분은
네덜란드 남부 젤란트주에서 발생했다.
생물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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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해안에는
엄청난 수의 해양 포유류와
수백만 마리의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수많은 자연 보호 구역이 있다.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를 아우르는
북해 남동부의 조석지대인 바덴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ScienceDirect)
(Eastern Daily Press)
(BBC) (Britannica)
참조:
Leggy birds to keep an eye out f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