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상하다고 말하는 동자승의 말..
해인사의 새로 지은 매표소 건물 부근에서 어린스님(알고보니 행자였다) 한사람을 만났다.
나이는 이제겨우 아홉에서 열살쯤 되었을까? 국민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 학생이요, 여식 아이였다.
"어딜 가나요? 학교엘?"
"예!"
"몇학년?"
"1학년입니다."
"왜 절에 왔어요?"
"세상이 무상해서요."
나는 더이상 물어 볼 말이 없었다. 국민학교 1학년생이 세상이 무상하다니 너무 일찍 세상의 뭔가를 깨쳤나 싶다.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세상이 무상하느냐고 물으면 '괴로우니 더이상 묻지 마셔요'를 답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동심童心은 불심佛心으로 통한다. 티 없이 말고 깨끗한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이겠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의 나이에 '세상이 무상하다'는 대답은 소녀의 잘못이 아닌, 소녀가 살고 있는 암자의 대중스님들의 잘못이다. 누가 왜 절에 왔느냐고 물으면 세상이 무상해서라고 답하길 가르친 스님은 아마도 없을 줄 안다. 그러나 세상이 무상하면 스님들 간에나 무상했지, 어린 소녀에게는 무상無常 실상實常도 관심 밖의 꿈만 키우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무상하다고 답한 소녀의 잘못된 대답은 소녀의 보호자이신 스님들의 교육과 직결되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어린 소녀(소년도 포함해서) 행자들에게는 세상이 무상할리 없는거다. 뭔가 나이에 어울릴것 같은 꿈을 키워주고 보살피며 맘껏 뛰놀고 장난칠 수 있게끔 제발 머리칼만은 깍지 않고 학교에 보내주었음 싶다.
근심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소녀스님 둔 제방諸方의 스님들께서는 걱정도 팔자라며 오히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동정해 줄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동심童心 즉불심即佛心인 이상 동심을 꺾는 일은 불심을 꺾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도분들이 시주해 온 돈으로 학교에 보내놓으면 제 갈길로 가기 때문에 어린소녀의 머리를 깎아 놓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에 그렇다면 자비심은 커녕 인연법도 모르는 소행임이 분명하겠다.
왜냐하면 어린소녀들이 스님만이 되는 길이 최상의 길이 아님이요, 시집 장가 가서라도 제가신도로서 불심만 잃지 않고 살아가면 그만이겠기 때문이다. -향봉스님의 글에서-
*보살이라 부르는 저변에는..
요즈음, 여신도님들을 보살님이라고 부르면 청신녀로 칭해주길 원하는 분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유를 알고보면, 보살님이란 이타행利他行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뿐더러 불지佛地(부처님의 경지)에 다가 선듯한 어감語感도 있고 하여 매우 황송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보살이란 본디 보리살타의 준말로써 각유정覺有情(깨달은 중생)의 뜻을 지니고 있다. 부처되기 위해 주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으로 생각하면 마음 편할 것이다.
넓은 의미로는 또다른 뜻이 담겨져 있겠으나 여신도를 보살이라고 부르는 저변에는 보살행을 닮으라는 경책의 일언一言이 담겨져 있음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진정삼보三寶에 얼마만큼 귀의한 보살들인지 자신의 신앙을 가눌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어라 부르든 우리는 진정 보살이어야 한다.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보살의 가장 근본적인 자세는 보시요, 애어다. 자비스러운 눈빛으로 품에 안은 어린 자식의 굽어보면 하는 어머니의 말처럼 사랑스럽게 보살펴 주는 언어가 바로 애어이니 그런 마음으로 보시를 베푼다면 추호도 삿됨이 섞이거나 조건이 붙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미소아래 공양을 올리는 자세로 베푸는 것이 보이실 것이요.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대하는 대화가 곧 애어일 것이니, 우리는 모두 불공드리는 경건한 마음을 늘 지니어야만 보살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향봉스님의 글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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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하비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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