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그다지 매섭지 않은 영국의 남서부에서도 1855년의 겨울은 굉장한 추위로 기록되었다. 2월 8일 아침, 데번 주의 탑샘 마을 초등학교 교장 앨버트 브레이스퍼드는 쌓인 눈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길에 한 줄로 발자국이 나 있었다.말굽 자국인가? 처음에는 판자를 박은 말굽 자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발자국은 한줄로 나 잇었다. 말이라면 한쪽 다리로 펄쩍펄쩍 뛴 것이 된다. 그리고 두 다리 동물이라면 발자국이 한 줄로 가지런해지도록 줄타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걸은 것이 된다.
더욱 이상한 것은 발자국의 모양이었다.길이는 약 1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되었다. 게다가 어느 발자국이나 모두 또렸했다. 마치 불에 달군 쇠로 얼어붙은 눈위를 신중하게 찍은 것만 같았다 마을사람들은 이것을 보았고 누군가가 장난을 쳤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남쪽 방향으로 추적해보니 발자국이 벽돌담에 이르러 멈추어 버린 것이다.그러나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발자국은 벽 너머에서 다시 이어져 있었다.
더구나 벽위 에 쌓인 눈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다음 발자국은 마른 건초 더미와 마주쳤다. 이번에도 발자국은 건초 더미 너머에서 앞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는데, 건초 더미에는 무언가 큰 동물이 지나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발자국은 구즈베리 수풀 아래에도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데번 주의 모든 지대로 이어져 있었다. 더 나아가 토트네스에서도 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플리머스까지 거의 절반에 해다되는 거리였다. 누군가 장난을 쳤다면 이 장난을 하기 위해 60킬로미터나 되는 깊을 눈길을 하룻밤 사이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이만한 거리를 통과하려면 몹시 서둘러야한다.
그러나 그 발자국은 집집 마다의 현관을 거쳐서 나 있었다. 현관 여기저기를 겨쳤다가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발자국은 엑스 강 어귀를 건넜는데, 림프스톤과 파우더햄 사이인듯 했다. 그러나 훨씬 더 남쪽인 엑스머스에서도 발자국이 있었다.저기까지 되돌아간 걸까? 진로를 보아서는 목저지가 어디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장소에 따라서는 그 발자국이 갈라져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당시는 빅토리아 여왕 중엽 시대였다.악마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악마의 발자국은 갈라져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남자들은 총을들고 발자국들을 추적을 하고 사전에 대비하였다. 발자국의 주인공을 누구인가? 이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였다. 1855년 2월 16일자 런던타임스는 림프스톤의 거의 모든 집 뜰에 이 기괴한 방분자의 발자국이 있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튿날에는 플리머스 가게트에도 기사가 실렷다. 여기에는 어떤 목사의 견해가 있는데 그의 주장은 캥거루의 발자국이라는 것이다 목사는 캥커루의 발에 발톱이 있다는것을 모르는모양 이었다.엑스터의 플라잉 포스트 기사는 그래도 좀 나았다. 발자국의 주인공이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통신원은 말굽 형태의 발자국을 남기는 새는 없다면서 이 설 자체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캐나다의 삼림 지대에서 5개월 동안 겨울을 지낸 일이 있었는데, 이번처럼 뚜렷한 발자국은 본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3월 3일자에는 유명한 박물학자이자 해부학자인 리처드 우엔이 상당히 독단전인 견해를 발표했다. 발자국의 주인공은 오소리의 뒷발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다수의 오소리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동면을 중단하고 빠져나왔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오소리들이 모두들 뒷발로 껑충껑충 뛰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의사이기도 한 또 다른 통신원은 동료 의사와 함께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이 발자국 연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쳣다고 하면서 엄밀한 조사결과 동물의 발바닥과 발가락 흔적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제기한 것은 수달이었다.
또 다른 통신원은 그것이 "오니더"(Ornither: 비행기라는 뜻)'라고 주장하면서 들오리의 발자국이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그는 들오리 발바닥의 바깥쪽이 둥글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서드베리에서도 다음과 같은 논리가 등장했다. 최근 감자밭 둘레에 남아 있는 쥐의 발자국을 보았는데, 그것이 그 '악마의 발자국' 그림과 똑같았다는것이다.
여러 마리의 쥐가 눈 속을 뛰어다니다가 체중을 실어 떨어지면 대략 말굽 형상의 발자국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참가한 논갠은 눈 속을 질주하는 토기나 털이 긴 족제비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이상의 여러가지 설은 그다지 진기하다고 할 것도 없지만 어쨋든 그 발자국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즉 다리 하나로 껑충껑충 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설명이 되어 있다.
그러나 발자국이 60킬로미터나 이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표류하는 기구의 새클 자국인가? 여러 설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제프리 하우스홀드의 가설 인 듯하다. 그는 이 사건에 관한 여러 설을 소책자 악마의 발자국 (1895년)으로 묶은 편집자이다. 하우스홀드는 필자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나는 데번포트 해군 조선소에서 실험 기구 같은 것이 어떤 사고로 떨어젼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계류 장치에서 벗어나 로프 끝에 두 개의 새클 (U자형의 걸쇠)를 매단 채 질질 끌면 눈 위에 자국이 남습니다. 이것이라면 남벼락을 오를 수도있고, 마른 풀더미를 뛰어넘을 수도있습니다. 카터 소령이라는 이 고장사람이 자기 할아버지의 얘기라면서 들려준바에 따르면 당시 그의 할아버지는 데번포트 해군 조선소에서 근무하고있었다고 합니다. 그 기구는 온실과 집 창문 등에 많은피해를 입혀 조선소 측 에서는 그 사실을 그저 숨기기만 했던 모양 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법 설득력이 있으며, 미스터리 해결에 그럴듯한 열쇠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설명이 필요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자국이 난곳을 지도로 그려 보면 발자국은 탑샘과 엑스머스 사이에서는 거의 둥근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계류 장치에서 떨어져 나간 기구가 이렇게 될수 있을까? 기구는 바람에 밀려 똑바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때 바람은 동쪽에서 불고 있었다. 신문에 이 미스터리가 기사로 실린 것은 일주일 후였다.
이 시간적 지연으로 중요한 열쇠는 그 사이에 모두 소멸되었다. 이를테면 그날 밤에 내린 눈이 1854년의 첫눈이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면 되는데 말이다. 그 해 겨울은 몹시추웠다. 2월에는 많은 동물들은 굶주린 상태가 되므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그가 플리머스 가제트 2월 7일자에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2월 8일 목요일 밤에는 큰 눈이 내린뒤 비가 옴. 동풍이 심했음. 아침에는 서리.' 작은 동물들은 매일 밤 보금자리에서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발자국이 사람 눈에 띈 것은 첫눈이 내린 2월 아침이 처음 이었다. 그 발자국은 부드러운 눈에 깊숙히 박힌다. 그리고 뒤에 내린 비로더욱 깊어져 그 형태로 얼어붙는다.
발자국이 눈에 새겨진 것처럼보인 것은 이로써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2월 8일 밤 이전에 대지가 이미 눈에 덮여 있었다면 이 설도 성립되지 않는다. 눈이 언제 내렸는지와는 상관엇이 어쨋든 이설 역시 발자국이 지붕이나 마른 건초더미를 뛰어넘은 것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150년 이상이 지난 21세기인 지금도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 .
첫댓글 오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