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원을 찾아서 ④
품격 높은 선비의 자리 임대정 정원
홍광표(동국대 교수ㆍ조경학과)
|
임대정 상원의 중심 공간. 임대정이 서북향하고 있고 건너편에는 방지가 조성되어 있다. 정자 주변에는 은행나무, 살구나무, 소나무, 앵두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
임대정(臨對亭) 정원을 조영하고 경영한 이는 사애(沙涯) 민주현(閔冑顯ㆍ1808~1882)이다. 민주현은 홍매산(洪梅山) 문하에서 수학, 철종 2년(1851)에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春秋) 기사관(記事官)이 되었으며, 철종 5년(1854)에는 조경묘(肇慶廟) 별검(別檢)이 되었고, 그 후 벼슬이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자연을 경영한 사애 민주현
『여흥민씨세보(驪興閔氏世譜)』에 따르면 "민주현은 당시 안동 김씨의 세도 아래 부패한 조정에 반발하여 과거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상소를 올리고, 병조참판으로서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정자를 세우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사애는 출사하여 뜻을 펴지 못하면 미련 없이 벼슬을 내놓고 초야에 묻혀 자연과 벗하며 초탈한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는 조선조 선비의 전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애가 남긴 문집으로는 『사애집(沙涯集)』 8권 4책이 있으며, 최근에 가사 「완산가(完山歌)」를 발굴한 바 있다. 문집의 시문을 보면 자연현상과 수목에 대한 내용이 많고 취락(醉樂)과 풍류에 관해서도 표현을 아끼지 않아 그가 자연을 사랑한 군자였고, 성품이 호방한 풍류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애의 「임대정기(臨對亭記)」를 보면 이 정원은 1862년 임술년 그의 나이 55세에 조성된 것으로 적혀 있다. 정원을 만든 곳은 이전부터 풍광이 수려하여 선조 때의 문인 고반(考槃) 남언기(南彦紀)가 정자를 세우고 수륜대(垂綸臺)라 명명하여 전원생활을 했던 곳이다. 여기서 '고반'은 '세상을 피하여 자연과 벗하며 제 마음대로 즐긴다'는 뜻을 가진 말이며, 정자가 세워진 언덕인 '수륜대'는 '낚싯대를 드리우며 즐기는 대(臺)'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애는 고반이 조영한 수륜대가 세월이 흐르면서 황폐해져 쌓은 돌은 허물어지고 초목이 무성하여 옛 자취를 찾을 길이 없음을 한탄, 이곳에 다시 정자를 세우고 연못을 만들어 '임대정'이라 명명한다.
임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서북향한 팔작집이다. 사애는 이 이름을 송나라 유학자인 주돈이가 강서성의 여산에 있는 연화봉 기슭에 터를 잡고 살면서 "아침 내내 물가에서 여산을 바라보며 지냈다〔宋儒終朝臨水對廬山〕"라는 시구에서 인용해 지었다고 한다. 남언기가 명명했던 '수륜대'라는 이름과 은행나무로 인하여 얻은 '은행대(銀杏臺)'라는 이름을 버리고 '임대정'이라는 당호를 취한 까닭은 조선조 문인들이 애송하였던 당송문학의 주인공처럼 퇴관 후 향리에 머물면서 자연을 벗 삼는 이상적 삶을 실천에 옮기고자 한 작정자의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임대정이 지어진 터의 의미
|
왼쪽)임대정 상원 입구 표석. 사애가 경영한 정원임을 표시하는 '사애선생장구지소(沙涯先生杖 之所)'라 새겨져 있다. 오른쪽)임대정 방안에서 방지 쪽으로 내다본 경관. |
임대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 상사평에 있다. 임대정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넓은 벌판을 이루며 흐르는 보성강의 지류 사평천을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인데, 이 언덕은 마을의 진산(鎭山)인 봉정산(鳳頂山:411.3m, 또는 학산)의 맥이 흘러내려오다 멈춘 곳이다.
터를 중심으로 뒤(동쪽)로는 봉정산이 배산(背山)하고 있고, 앞(서쪽)으로는 사평천이 임수(臨水)하고 있으니 실로 산을 대(對)하고 물에 임(臨)한 곳이다. 어찌 그리도 주돈이가 터를 잡고 살았던 여산의 연화봉 기슭과 닮아있을까. 사애가 임대정이라고 한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임대정 정원은 사평천의 동쪽 언덕배기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언덕 위에 지어진 '임대정'이 정원의 중심이 된다. 여기에서 임대정을 특별히 서북향으로 배치한 것은 풍수지리적으로 길한 방향을 얻기 위한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사평천의 물길이 좌청룡에서 우백호로 흘러드는 서출동류(西出東流)의 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임대정에서 바라볼 때 사평천이 이루는 수경관과 너른 들판이 형성하는 자연경관을 쉽게 조망하기 위한 것이리라. 이것을 보면 풍수지리적으로 길한 방향이라는 것은 걸림 없이 조망하기 좋고 바라보아 편안한 마음이 들도록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임대정 정원에 새겨놓은 주인의 마음자리
|
맨위) 방지 안의 섬에 있는 세심석과 방지 가에 있는 자연석 기임석. 명명을 통한 경관연출기법. 가운데) 대나무가 군식되어 있는 방지(피향지). 둥근 섬이 하나 있어 우리나라 못의 전형인 원도방지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래) 상원 방지에서 하원 하지로 물을 인수하는데 사용한 수로와 목조비구. 물이 많으면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
임대정 정원은 임대정이 세워진 언덕 위 상원(上園)영역과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 언덕 아래 하원(下園)영역으로 구분된다. 전체면적이 400평에 이르는 상원영역에는 80평 정도의 마당이 있고 여기에 임대정을 지어 놓았다. 정자에 앉으면 멀리 사평천의 흘러드는 물길과 그 너머 광활한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차경이라는 것은 이같은 경관을 취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인 모양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벽 아래 조성해 놓은 연못이 보일 듯 말듯하니 정자에 앉으면 멀리 있는 경관이나 가까이에 있는 경관을 두루 즐길 수 있다. 정자 옆으로는 은행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살구나무, 갈참나무 등이 있어 맑고 시원한 바람이 항상 정원에 가득하다. 가히 좋은 자리에 정자를 지어놓았다.
임대정 북쪽 마당가에는 정방형에 가까운 작은 방지(7m×6m)를 만들어 놓았다. 방지 안에는 섬 하나를 두었으니 예의 원도방지인 셈이다. 섬 앞쪽에 '세심(洗心)'이라고 새겨진 돌은 주인의 세상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물이다.
못가 마당 쪽에는 윗면이 평평한 사방육면체의 돌(50㎝×50㎝×27㎝)을 하나 놓아두었는데, 돌의 앞면에는 '기임석( リ臨石)'이라는 글을 새겨놓고 그 옆에 '임술춘(壬戌春)'이라고 세로로 적어 놓았다. 새겨진 글을 보면 이 돌은 걸터앉는 돌이란 뜻이니 아마도 좌선석의 용도로 쓰였던 모양이다. 이 돌에 앉아 세심석을 바라다보며 마음을 닦고 인생을 관조했을 사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한편, 돌의 오른쪽 면에는 '피향지(披香池)', 왼쪽 면에는 '읍청당(揖淸堂)'이라는 글이 더 새겨져 있다. 피향지의 '향'과 읍청당의 '청'은 주돈이의 「애련설」에 나오는 구절인 "연꽃향기는 멀어도 더욱 맑다(香遠益淸)"에서 빌어 쓴 말이리라. 사애는 이 돌에 앉아 연향이 바람을 타고 멀리 흩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며, 연향이 지닌 맑은 기운을 즐겼을 것이다.
방지의 물은 남쪽 산골짜기에서 끌어들인 것으로 여기에서 넘친 물은 서북쪽에서 ㄱ자형으로 꺾이면서 나무홈통(목조비구)을 타고 마치 폭포처럼 언덕아래 연못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어놓았다. 방지의 둘레는 작은 자연석을 2~3단 쌓고 군데군데 형상석을 세워놓았다. 전형적인 우리네 못 형태다. 방지 뒤편으로는 대나무 숲이 있다. 이 대숲으로 인해 정원의 분위기는 자연히 소쇄해지니 사애는 대나무의 곧은 자태를 조석으로 감상하며, 그것의 높은 절개가 백설 속에서도 빛난다고 노래했다.
연꽃이 피어나는 물의 정원
|
하원의 상지. 두개의 둥근 섬이 있으며, 섬 안에는 배롱나무와 수석이 있다. |
하원은 정자가 있는 마당에서 자연석으로 만든 계단을 통해서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정자가 세워져 있는 언덕을 둥글게 외호하면서 자리 잡고 있는 하원은 상ㆍ하 두 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물의 정원이다. 두 개의 연못 중 위편에 있는 상지는 길을 따라 길게 반월형을 이루며 조성되어 있는데 남쪽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수원으로 삼고 있다.
한편, 상지의 서북쪽에는 하지가 직선상의 둑으로 분리된 채 1m 단차를 두고 조성되어 있다. 이렇듯 상하 두 연못이 원로로 쓰이는 직선상의 둑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연못이다.
상지에는 둥근 섬이 두 개, 하지에는 하나가 있으니 하원 전 영역에 세 개의 섬이 있는 셈이다. 사애는 하원에 봉래, 영주, 방장의 삼신산을 조성해 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임대정 하원은 신선들이 사는 정원이 되었던 것이니 사애는 그 정원에서 달밤이면 달빛에 취하고, 연꽃이 피면 연향에 취해 더불어 신선이 되었으리라.
더욱이 여름철 세 개의 섬과 연못주변에 심어진 배롱나무에서 밝은 빛깔의 분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때맞추어 연못에 백련과 홍련이 앞 다투어 피어나면 이 정원은 너무나 황홀한 곳이 되고 만다. 이곳이 신선들이 사는 곳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하원 연못에 심어진 연꽃이 피면 그 향기가 퍼져 신선이 사는 별천지가 된다. |
사애 민주현은 지난날 고반이 이룩한 수륜대에 임대정을 짓고 품격 높은 선비의 삶을 살다 갔다. 상원에서는 선비의 도를 일구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조용히 인생을 관조하는 시간을 보내고, 하원에서는 인생을 즐기면서 신선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묻혀 살면서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연꽃의 수승한 향기를 가까이 했던 사애의 삶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고고한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이 연재물은 불교춘추사의 월간 "차의 세계"에 2004년 7월 부터 연재해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