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와 초코파이
4개월 전쯤 내가 속한 동네 모임에 합류한 분이 있다. 다른 곳에 살다가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어 새로운 얼굴이 되신 분이다. 멤버들과의 처음 회합에서 자신의 소개로 나이는 58년 개띠라고 하니 아직 7학년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모임의 평균 연령보다 높은 축에 속한다. 물론 70 중반을 넘어선 분도 계시고 나도 그에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모임에 뭐 나이가 대수겠는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가 물었다.
“58년생들은 왜 자기 나이를 소개할 때 꼭 ‘개띠’라는 걸 강조합니까?”
7학년으로 올라가는데 치러야 하는 시험문제도 아니니 모두들 그저 웃고 말았다.
그는 첫 모임에서 얼굴을 익히더니 모임의 단톡방에 ‘사자성어’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뜻풀이까지 곁들인다. 그런데 멤버들의 호응이 없다. 누군가가 대꾸를 하여야 그 좋은 의미가 희석되지 않을 텐데 그의 사자성어에는 한 줄 댓글이나 이모티콘 표기도 달리지 않는다. 나는 이 나이에도 그저 학생 때 귀에 익은 사자성어 외에 새로운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중적이지도 않은 한자 네 자를 강조하는 데는 별반 호감이 가지 않는 것이다. 사자성어에 쓰인 한자들은 그리 쉬운 글자들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내가 한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자성어에 무관심한 하나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면서 뜻풀이보다는 한자 네 자를 우선 강조하는 것은 교육의 목적에 앞서 어른들이 한자 네 자를 가지고 아이들 앞에서 유식을 과시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 뜻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면 한자 네 자에 앞서 우리말 풀이 전달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한자어도 알아야 하지만 현 시대에는 그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자판만 두드리면 뜻과 한자는 물론 그 말의 시대적 배경이나 말한 사람의 생애까지도 주르륵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자성어나 한자를 익히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보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자판과 친해지는 게 나이 먹은 분들이 앞으로 지내기에 더 중요하지 않나 하는 게 나의 평소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인물이 아닌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전해진 사자성어보다는 현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현인들이나 다른 많은 나라의 주요 인물들의 어록이 그보다는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추석을 앞둔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제사나 차례상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그 보다는 나이가 많으니 나에게 상차림에 대한 것을 물었다. ‘남의 집 제사상 상차림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상차림은 지방마다 다르고 또 집안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새 젊은 층에서 차리는 것은 거의 비슷하다. 인터넷에서 가르쳐준 대로 차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조카들도 내가 하는 것과는 다른 게 많지만 내가 매형 제사에 참석하여도 그걸 지적하지는 않는다. 나도 우리 집 상차림이 예전 내 아버지가 차리시던 것과 같은 것인지 조차 모른다. 인터넸은 아니라도 그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우리 집 방식이라 생각하고 차리고 있다. 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그도 조상을 잊지 않고 후손들이 모여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취지에는 공감을 하였지만 내가 특별히 잔 올리는 게 끝나면 후식으로 믹스커피와 초코파이를 올린다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왜냐는 그의 물음에 “어머니께서 생전에 믹스커피와 쵸코파이를 무척 좋아하셨으니까”라는 나의 대답에는 수긍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의 그런 모습과 사자성어에는 아마 나와는 다르게 어떤 고정된 관습의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추석에 조부모님과 부모님 차례상 앞에서 나는 “손주와 손주며느리, 아들과 며느리가 이제 70 중반에 들어 허리와 무릎이 평소와 같지 않아요. 그러니 내년에는 서서 인사를 드릴 수도 있으니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라고 고하였다. 그렇게 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2025년 10월 13일
하늘빛
https://www.youtube.com/watch?v=xaeQewlgoGE&list=RDxaeQewlgoGE&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