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원로 정창화 감독과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앉은 테이블 내 옆자리에 납작한 캡을 쓴 작은 체구의 노신사가 동반한 여자와 함께 앉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한 뒤 “당신 얼굴은 낯이 익은데 누구인지를 모르겠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그가 “나는 노만 로이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아이구 반갑고 영광입니다.어제 당신 방송을 들었어요”라며 반가워했더니 로이드는 시치미를 뚝 떼고 “그 방송을 들은 사람 적어도 하나는 있구만”이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이에 내가 “당신은 짓궂고 짓궂은 사람이네요”라고 응수했더니 그의 옆에 앉은 여친이 “아주 말 잘 했습니다”라고 동의했다. 로이드는 짓궂고 생기발랄하고 총명하며 또 유머와 위트가 풍부했는데 마치 똑똑하고 귀여운 소년 같았다.
주위 테이블에는 올리버 스톤과 그의 한국인 아내, 브렛 래트너와 로저 코맨,피에르 르시앙과 샌드라 오 그리고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과 이창동 및 이 날 차이니스 극장 앞에 손도장을 찍은 안성기와 이병헌 등이 둘러앉아 서로 대화와 술을 나누면서 만찬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난 테이블을 돌면서 이들과 악수를 나눈 뒤 저녁식사 내내 로이드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그에게 할리웃의 역사를 캐물었다. 로이드는 나의 물음에 재미있고 진지하게 대답했는데 마치 명교수의 명강의를 듣는 것 같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로이드는 자기가 쓴 모자가 프랑스의 명장 장 르놔르가 썼던 것이라며 모자 소개부터 한 뒤 뉴욕의 오손 웰스의 머큐리 극단에서부터 시작해 지난 2010년 ABC-TV의 인기 시트콤 ‘모던 패밀리’에 게스트로 출연하기까지 오랜 배우로서의 생애에 관해 이야기 했다. 속성 할리웃 역사 공부를 한 셈이다.
로이드는 이어 “나 몇 살인 줄 아니. 97세야”라며 자기도 놀랍다는 듯이 나이 자랑을 했다. 나는 “앞으로 20년은 더 사세요”라고 건의했더니 그는 “그 건의 받아들이지”라며 싫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질이 괴팍해 할리웃에 맞지를 않은 웰스와 늘 근엄했던 ‘위대한 환영’의 에릭 본 스트로하임,심술첨지 히치콕과 히치콕 영화의 단골 작곡가 버나드 허만 그리고 채플린과 자기를 영화 ‘개선문’의 조감독으로 써준 루이스 마일스톤 및 채플린 등과의 경험을 듣느라 난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
냉소적인 빌리 와일더는 바람둥이였고 소피아 로렌과 월터 매사우가 ‘그럼피어 올드 멘’을 찍을 때 나눈 음담패설에 둘이 함께 깔깔대고 웃었다.
로이드는 성격파 배우로 많은 영화와 TV 프로에 조연으로 나와 그를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그러나 그는 배우와 제작자와 감독으로서 연극, 라디오, TV 및 영화 등을 섭렵하며 80여년간을 연예활동에 종사해온 베테런이다.
로이드는 그의 할리웃 데뷔작인 히치콕의 ‘사보퇴르’(1942)의 마지막 장면으로 늘 기억되고 있다. 나치 스파이 로이드가 자유의 여신상에 매달렸다가 떨어져 죽는 유명한 장면이다.
내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가 매해 생애업적상 수상자 후보를 추천할 때마다 로이드의 이름이 거론되곤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로이드에게 알려주고 “올해 추천 때는 내가 당신 이름을 거론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댕큐”라고 답했다.
로이드는 수지타산에만 신경을 쓰는 요즘 할리웃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쓰라는 주문도 있지만 “이젠 누구도 할리웃의 과거에 관심을 두지 않아 책을 쓸 마음이 안 생긴다”고 말했다. 로이드는 요즘 테니스와 강연과 교제로 바쁘다.
100세 생일파티는 테니스 코트에서 열기로 했다기에 나도 초청하라고 부탁했더니 “그러마”고 약속했다.나는 로이드와 헤어질 때 당신과 나눈 얘기를 ‘나는 노만 로이드를 만났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쓰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번역해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여친에게 “로이드를 잘 돌봐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그럴 게요”라고 다짐했다.
<박흥진/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헐리웃 외신기자협, LA영화비평가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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