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헤게모니
그루노는 스포츠는 자발성, 표현의 자유, 미학적 아름다움 등 해방적 측면이 있고, 정치적으로 연대를 산출하여 여성운동, 시민권 운동 그리고 불평등, 부정에 대항항 다른 유형의 저항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일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계급 사이의 스포츠 열광은 사회질서를 강화했다. 오락을 위해 스포츠에 모여든 노동계급은 스포츠의 가치와 원칙에 동화되었다. 그리고 이 가치와 원칙들은 전체 사회의 가치와 원칙들에 완벽하게 꼭 들어맞는 것들이었다.
스포츠에서는 페어플레이와 능력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까지 갈 수 있는 기회가 신성불가침의 것이다. 그런데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업적주의 그 이상을 중요시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실은 모든 자본주의 체계 속에는 수입과 부, 위신의 분배에 있어서 거대하고 구조화된 불평등이 있으며, 이 불평등이 가난한 자보다 부자를 선호하는 상속체계를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복제된다는 점이다.
헤게모니 이론가들은 이것을 사람들이 상식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스포츠는 업적주의의 선함과 삶의 기회의 평등성을 광고함으로서 이를 고무한다.즉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삶의 기회를 말이다.
흑인과 스포츠
특정 스포츠에는 흑인 선수들이 없다. 골프, 사격, 스키 등 돈이 많이 드는 종목에는 흑인이 없다. 이런 스포츠를 시작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대학농구팀에 진학하는 1만 4천명 중에 25%의 선수만이 NBA에서 한 시즌만이라도 뛰어보게 된다. 전체 경쟁률은 143대 1 이다. 한 시즌에 NBA 농구선수 한명을 만들기 위해 143명의 야심찬 청소년들이 필요하다면 마이클 조던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명이나 필요할까?
스포츠계에 입문하는 것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복권을 사는 것에 더 가깝다. 거의 절대 다수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즉 돈과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시작해서 대게는 가난과 범죄 그리고 정신병으로 끝난다.
젊은 흑인들이 스포츠에 유혹되어 직업교육이나 학업을 무시하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스포츠에 투자한 결과 다른 것을 추구할 에너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달콤한 꿈이 사라지면 그들에게 남아 있는 다른 직업 선택의 길은 거의 없어져버리고 만다.
흑인이 겪는 실패는 백인 노동계급의 실패에 비해 훨씬 더 처절한 결과를 낳는다. 적어도 백인 노동계급은 인종주의는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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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힝기스는 테니스 라켓을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온갖 장비와 도와줄 코치를 제공받았다. 돈이 많았던 그의 부모는 그녀를 테니스에 빠질수 있게 해주었고, 그 투자는 성공적이었음이 드러났다. 힝기스가 10대의 나이에 수백만 달러의 돈상자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룩클린 빈민가의 흑인 어린아이가 테니스를 시작했다고 해보자. 이 아이가 커서 힝기스와 대결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시합일까?
물론 일대일로 시합하니 조건이 공정해보일지도 모른다. 스포츠는 모든 것이 공정하며 사회적, 자연적 배경은 그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다고 믿는 사람은 정말로 순진한 사람일 것이다.
약물과 스포츠
약물복용의 부정한 일인 이유의 하나는 이렇게 주장된다. 부자 국가에서는 화학자도 많고, 실험실도 더 좋다. 그래서 좋은 약물을 계발하고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국가 출신이라면 그럴 수 없다. 즉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정도 운동 실력이 있어서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포츠에 전력투구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이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가 온다면 그리로 간다.
그리고 이것은 극히 경쟁적인 스포츠 세계에서 가능한 모든 이점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하고 박탈당한 상황에서 자란 운동 선수들 중에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점을 얻는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사람이 한명이라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택권은 대개 너무 뚜렷하여 그리 고민거리가 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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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스와 텔레비젼 방송사들이 내는 돈에 IOC는 점점 의존하고 있다. 그중 미국방송 NBC 는 시드니 올림픽을 위해 7억5천만달러를 지불했다. 이 방송국이 마음이 좋아서 돈을 기부한 것이 아니라.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판매를 증진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이 취한 방법은 자신들의 미래 시장이 자신들의 제품을 수십억 달러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깨끗하고 건전한 활동과 연관시키도록 고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건강한 행위가 약물 때문에 더럽혀지면 스폰서들이 재빨리 그들의 돈을 빼갈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벤 존슨은 약물 판정 후 수백만 달러의 광고를 잃었다. 이 때 여자 100미터 우승자 그리피스 조이너가 깨끗하다고 선언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실제 그녀가 약물을 사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도 말이다. 1998년 그녀가 죽자 전 세계의 기자들은 그녀가 아마 습관적으로 약물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대담하게 단언했다.
올림픽 트랙 최고 이벤트의 두 우승자가 모두 약물 때문에 실격했을 경우를 상상해보라. 올림픽이 스폰서의 신뢰를 잃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며,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서울 올림픽에서 우승 한지 몇달 후 그리피스 조이너는 29세의 나이가 갑자기 은퇴를 했다.
/ 엘리스 캐시모어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