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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웃음의 속셈/ 최금진
은하수 추천 0 조회 39 14.09.20 18: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웃음의 속셈/ 최금진

 

개그맨 p씨가 웃음 회사를 세웠다

회사에서 발생한 이윤은 재투자하여 더 큰 개그 집단을 만들고

국민 전체를 개그맨으로 만들 생각이란다

개그를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개그를 못해서 나라를 썰렁하게 하면 탄핵해야 한단다

남을 웃긴 실적이 부족한 회사원들은 명퇴를 당할 것이고

공무원들에겐 연말 보너스로 웃음이 한 박스씩 배당될 것이다

그들에게 웃음은 머잖아 공포가 될 것이지만

개그맨 p씨는 이렇게 말한다

일부 엔터테인먼트들의 사례가 전체의 예가 될 수 없다,

누구나 꺼내어 크기를 대볼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며

크기에 불만이 있으면 더 크게 웃으면 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갖가지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겼다

덧붙여, 앞으로 웃음은 비닐포장지에 담겨

집집마다 아침 우유처럼 배달되는 세상이 온다고 그는 말했다

웃지 않으려면 밥도 먹지 말라,

웃음이 당신을 속였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그가 말하는 농담과 진실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기자회견을 마친 사람들의 반응이었으나

그의 커다랗고 익살스런 얼굴은 아홉시 저녁 뉴스에 나온다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아마도 조금은 웃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 취직하고 싶다는 몇 통의 장난 전화가 걸려올 것이고

사람들은 모두들 깔깔깔 웃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그의 웃음 전략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웃음이 전파를 타고 시커먼 케이블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

하악뼈와 상악뼈에 도청장치처럼 달라붙는 순간

당신은 우울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건지 알게 될 것이다

 

- 월간 <현대시> 2008. 2월호

................................................................

 

 전두환 정권 시절 이른바 3S라는 우민화 정책은 정설로 잘 알려져 있다. 그 궁극적 목적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Screen의 검열이 파격적으로 완화되어 저예산 에로영화가 범람하였고, Sports의 활성화로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등이 새롭게 탄생하였다. 여기에 Sex산업이 창궐하면서 밤 문화란 것이 생겼고 유흥업소와 모텔이 범람하였다. 정통성을 갖지 못한 5공화국 정부가 국민들의 관심을 이러한 것들로 돌려서 반정부적인 움직임이나 정치·사회적 이슈 제기를 무력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때 심야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었으며 교복도 자율화 되었는데, 때마침 세계적인 3저 호황 덕택에 '그때'가 살기 좋았다며 회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의 빌미가 되었다.

 

 시를 읽다보니 문득 여기에 Smile을 하나 더 추가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하면 사람들은 침울한 현실의 돌파구를 ‘웃음 코드’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5공 당시 코미디가 호황을 누리면서 '개그'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시사 풍자 개그가 새롭게 선을 보이긴 했으나 콘텐츠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지금 '개콘'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80년대 말 ‘유머1번지’란 프로의 ‘회장님 회장님’이란 코너는 재벌 회장을 희화하고 직장인의 애환을 담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치적 상황을 풍자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어쨌든 웃음을 '누구나 꺼내어 크기를 대볼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며, 크기에 불만이 있으면 더 크게 웃으면 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었다.

 

 그때 길들여진 물신주의와 향락주의, 그리고 '좋은 게 좋다'라는 가벼운 낙관주의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나라꼴이 요 모양이 된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니 정의니 아무리 까불어봐야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고 골치 아픈 일에 빠져들기 보다는 즐기는 것이 잭팟이라는 정서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정서가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통치권자가 국민들에게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정의며 정답이라고 지나치게 세뇌시킨 탓도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물신주의가 얼마나 만연하였는지는 '내 인생의 꿈은 연봉 1억'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우리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보면 알 수 있다. 돈이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 나아가 돈이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 결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기적 정서만 팽창시키고 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가 일제히 '민생입법'을 호소하면서 야당은 민생을 도외시하고 세월호 정국을 이용해 정권 흔들기에만 혈안이 된 정당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마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안보'를 이용한 겁박처럼 후안무치하게도 '민생'을 들고 나왔다. 여당대표는 민생행보랍시고 수산시장에 가서 생선을 들어 보이며 화사하게 포즈를 잡는데, 가련한 야당은 겨우 거리의 햇빛 아래서 찡그리며 판떼기를 들고 서있는 게 고작이었다.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가 유포되는 가운데 여당과 종편채널에서는 일제히 지리멸렬한 야당과 야당의 주요인사들을 향해 무차별 조롱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그렇게들 한 목소리로 입을 모았건만 다시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태세이다. 

 

 '하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그의 웃음 전략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여론을 호도해 가면서 누가 더 천박한지를 가리는 게임에 돌입했다. 세상이 송두리째 웃기는 짬뽕이 되어버렸다. 한적한 오후 조주선사께서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함께 토론을 하여 보자. 누가 더 낮은 차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좋습니다. 스승께서 먼저 기준을 세우시지요” “나는 한 마리 당나귀니라” “저는 당나귀 볼기짝입니다” “나는 당나귀 똥이니라” “저는 당나귀 똥 속의 벌레입니다” “너는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 “한여름 휴가를 보냅니다” “씨팔, 먹이나 가져오너라” 사람들은 자신의 삶 자체가 바뀌기를 바라지만 진짜로 바뀌어야 할 것은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라는 지당한 말씀을 다시 새기면서 내 우울함이 '얼마나 부끄러운 건지 알게 될 것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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