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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01 레드 카펫
황영준 사진 황영준
새해를 맞을 때마다 무엇인가 기대하는 막연한 마음에 들뜨는 것은 지나온 날들이 어둡고 힘들었던 때문일 것이다. 근심이나 걱정거리를 떨쳐버리기에 갈급하고, 행복한 삶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새해를 맞는 정월 초하루 면 각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맞이에 나서는 것 아닐까. 서울에서는 새로 개통된 서울 강릉 간 고속 열차를 타고 동해안으로 몰려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동진만 아니라 동해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출을 기다리고,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환호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이 보여준다. 바닷가만 아니다. 눈 쌓인 산에도 해맞이 인파가 넘친다. 새벽부터 등산해서 감격적인 새해 첫날을 일출로 맞는 것이다. 나는 일출 아닌 일몰을 만나러 나섰다. 물론 한 번도 없었던 특별한 새해맞이이다. 아내와 함께 자주 다녔던 변산반도로 갔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할 생각이었다. 격포해수욕장에 도착한 오후 1시. 들머리부터 차가 밀리더니 주차장에 들어서도 차를 세울 공간이 없다. 한 바퀴 돌아보니 장애자 주차 공가에서 차가 빠져나간다. 장애자 표시가 붙은 내 차(아내 5급 장애)를 겨우 세운다. 온몸을 편하게 하는 갯내를 맡으며 솔밭을 지나 새파란 바다, 수평선이 활짝 트인 위치, 마음 설렘으로 바닷가에 서니 짙푸른 파도가 발밑에서 하얗게 재주를 부리며 힘 있게 부서지고 물거품이 밀려온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바닷가에 쫙 깔려서 환호성이다. 도시에 찌들었던 마음이 활짝 열린 것 같다. 바닷바람이 여름엔 몸의 열기를 식혔지만 이날은 꽉 막히고 답답했던 마음을 씻어주는 것이다. 채석강은 바닷물에 돌아가는 산책로가 막혔다. 포구에도 나가보았지만 여기가 아니다 싶다. 내가 익숙한 곰소로 달린다. 곰소, 곰소……. 소금이 많아서 곰소라고도 했다는데 말 그대로 지금도 염전이 있고 소금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서 곰소라 했던가 싶다. 한 때를 전주에 생활하면서 버스정류장에 나가면 보았던 ‘곰소’라는 생소한 지명. 참 야릇한 지명도 있다 싶었다. 그 후로 광주에 살면서 그곳에 다니며 젓갈이나 생선도 사고, 몇이 어울려 생선회도 맛있게 먹었었다. 일몰 30분 전부터 선창에 앉아 숭어 새끼 훌치기낚시 구경도 하고, 정박해놓은 어선도 석양빛에 담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선창에 앉아 서해바다 쪽으로 곰소만을 배경으로 붉게 물드는 일몰을 맞는다. 진한 잿빛 개펄 위에 얹혀있는 어선도 카메라에 담고, 선창으로 올라가 갈매기 노니는 바다를 향해 삼각대를 세운다. 때맞춰 갈매기가 나돌며 멋진 사진을 찍도록 연출한다. 미세먼지로 석양 하늘이 약간 흐릿하니 햇무리까지 카메라에 담는다. 석양 해님의 얼굴이 산뜻하니 안 보여서 아쉬워하면서도 동그란 윤곽을 잘 드러낸다. 어쩌다가 태양과 바다가 만나는 순간에 오 여사(오메가)도 담는다는데 오늘은 틀렸다. 수평선에서 먹을 풀어놓은 듯 한 어둠의 빛이 해를 품어 들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내려앉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사방이 먹물을 풀어 놓은 듯한 어둠이 날개를 편다. 등대가 눈을 껌뻑이고 어둠이 바쁘게 덮쳐온다.
정월 초하루에 멋질 일몰 풍경을 만난 것이다. 금년 한 해를 잘 살아서 이렇게 멋진 연말이 되면 어떨까. 그리고 내 삶이 후회 없는 감사로 넘칠 수 있고 찬송으로 떠나는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어 이렇게 시 한 편<레드 카펫>을 글로 남겼다.
황금 개띠 첫날 갯냄새 짙게 깔린 곰소만 들머리 등댓불 켜지는 시간 씨벌건 전라도 황톳빛 노을이 갈매기 날개 붙들고 소리없이 밀려온다
칠산 바다 황금 조기철 어선들 만선의 깃발 날릴 때나 빈 그물질에 지치고 사고를 겪어도 갈매기 앞세우고 귀항할 때면 포근한 석양빛이 포구를 감싸 안았다
발길 닿는 곳에서 만날 사람들 행복 꽃피울 사랑의 씨앗 심고 섬기면 2018 무술년 석양에 황홀한 레드 카펫 깔리지 않을까 병신년 생 일흔다섯 할애비의 까치놀에도
<황영준 ‘레드 카펫’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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