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일이었다.
처가 식구들은 두 차로 정읍 결혼식을 가고 난 혼자 무등산엘 갔다. 얼굴도 모르는 처가집
먼 조카 예식에 굳이 가고싶지 않았고 집사람의 특별윤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효분소에서 시작되는 무등산 옛길은 서석대를 오르는 가장 단코스다. 날씨도 좋았고
코로나 때문인지 산객들도 뜸했다. 서석대는 여전히 멋졌고 승천암과 입석대는 이번
산행에서 자세히 둘러봤다.
승천암은 안내판이 새로 생겨 그 전엔 도대체 어디가 승천암이야 했다가 이번에 뭐가
승천암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입석대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확실히 눈맛이 시원했다. 입석대 아래 옴팍한 양지에
수풀이 무성한 무덤 한 기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석축을 쌓아올려
인공적으로 조성한 무덤은 분명 옛 고관대작의 흔적일 터였다.
그러나 후손이 잘 안됐는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고 국립공원이 되면서는 분묘이전
공고가 있었을 텐데도 주인을 찾지 못한 눈치였다. 어찌보면 광주 무등산 기가 모두
모이는 단 하나의 포인트에 쓴 무덤일텐데 너무 기가 세지 않았나 싶다.
'수정병풍'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입석대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위바위마다
천지가 낙서장이었다. 관찰사부터 이름 좀 있는 양반들이 석공들을 데려와 자기
이름을 빼곡히 박아놓은 것이다.
그런 걸 풍류라고 즐겼던 그치들이 조금은 불쌍하기도 했고 요즘이라면 얼마나
재밌는게 많은데 고작 이름쓰기 놀이라니...이 사람들이 조선시대에 살았으니
망정이지 요즘처럼 외국에 보내놓으면 노틀담성당에 융프라우에 그랜드캐년에
제 이름 대빵 크게 박아놓고 사고 칠 사람들이다.
하산길은 규봉암 옆 석불암이라는 암자엘 들렀다. 석불님에게 삼배라도 드리자고
들른 절에는 못보던 비구스님 한 분이 마당청소를 열심히 하고 계셨다. 스님은
심심했던 차인지 차를 마시고 가라고 한사코 권했고 번잡스런 걸 싫어하는
난 괜찮다고 버텼다.
그러고는 입석대 아래 무덤 주인은 누구냐는 나의 질문을 시작으로 근 두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스님이 절에 오기까지 구구절절한 사연부터 요즘 스님되려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러던 중 스님이 위파사나를 배우러 미얀마 유학 까지 다녀온 자부심 쩌는
선승 출신이라는 걸 알고는 평소 궁금해하던 화두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경지가 있느냐는 물음에 스님은 당연하다, 수준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명상법을 따라하기만 하면 명백한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뇌과학과 비슷한
거라나 뭐라나... 뭐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관심 있는 분들은 스님하고
선문답 함 나눠보시길...
그리고 이틀 뒤 하루 휴가를 얻어 가까운 병풍산엘 또 갔다. 점심 무렵부터 비 예보가
있어 서둘러 간 산을 한바퀴 휘 돌고 내려오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헸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하면서 차키를 꺼내려고 보니 없었다. 잠깐 쉬려고 배낭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한 두바퀴 구르면서 그 통에 빠져버린 듯 했다. 등산객들은 허겁지겁 산을
내려오고 나는 장대비를 뚫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배낭이 구른 자리가 투구봉 9부능선쯤이었는데 오르고 보니 거기가 거기같고 여기가
여기같고 백사장에서 바늘찾기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비를 쫄딱 맞고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그럼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야하나 하다 핸드폰으로 광주
자동차키 복사라고 치니 전화번호가 하나 떴다. 연락을 했더니 현장에서 키를
만들어준단다. 비용이 좀 걱정이 됐으나 비는 오지 집에는 가야지 싶어 오시라고
했더니 40분쯤 걸리겠단다.
주차장에 외로이 세워진 차가 있었으나 열쇠는 없지 비 피할 곳도 없지 간이화장실
안에 좀 피해있었더니 그 새에 화장실 청소하는 아줌마가 와서 청소하게 비키란다.
큰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해도 비는 왜 그리 많이 맞는건지...
그래서 한 20분 남짓 어찌어찌해서 차키를 비상키까지 2개를 뚝딱 만들어 주셨다.
비용은 15만원.
병풍산은 차키 잃어버렸다가 아니라 두꺼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얘기를 꺼냈다.
차키를 찾으러 산을 오르고 뒤지고 허탈해하며 산을 내려오는 동안 두 발자국 걸으면
두꺼비 한마리 다시 두발자국 걸으면 두꺼비 한마리 그렇게 본 두꺼비가 5천마리쯤
되는 거 같았다. 참 장대비 오는날 차키 잃어버리니 두꺼비는 원없이 보았다. 죽는
날까지 다시 두꺼비를 보지 못해도 좋을 만큼 정말 여한 없이 보았다.
인간보다 개체수도 공화국 수도 개미가 훨씬 많아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가
지구의 주인이라 했다. 난 그 다음은 인간인줄 알았다. 아니다. 두번째는 개구리도
아니고 단연코 두꺼비다. 내가 그날 본 기준에는. 다른 덴 모르겠고 아무튼 병풍산의
주인은 두꺼비였다.
다시 장대비가 무섭게 오는 날 차키를 잃어버리면서 무등산엘 올라보고 거긴 개구린가
두꺼빈가 맹꽁인가 겪어보고 말해주겠다. 이런 태도야말로 '과학적 사회주의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는가. 사회주의자는 거기서 또 왜 붙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