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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시 27; .4 ,8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분이 누구신지 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시작된다.
이사야는 40;13-14]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당신은 하나님의 전지 하신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은 실수나 혼동하지 않습니다. 전지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의 이해와 배려 밖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전지하심 밖에 있는 것은 결코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필요를 아신다.
그리스도인이 진실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다 보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유익을 위해서 거짓되게 살면 안 됩니다.
좀 손해를 봐도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받은 자”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의 한 사람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양을 치는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다윗입니다.
그러한 다윗이 인생의 절정기에 매우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욕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의 부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여 아이를 임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우리아를 전장터에서 소환하여 아내와 동침하도록 두번이나 유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갑니다.
충직한 군인이었던 우리아는 전장에 있던 동료들을 생각하며 아내 곁에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결국 자신의 죄의 흔적을 모두 없애 버리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서 군대장관 요압에게 우리아를 최전방의 맹렬한 격전지 속으로 들어가게 할 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여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명령합니다.
그 후로부터 1년 간 그는 마치 자기죄의 흔적이 사라진 것처럼 뻔뻔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으로부터 1년 뒤,
아주 행복한 여가을 보내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십니다.
나단은 왕에게 우리나라에 아주 슬픈 한가지 이야기를가 있다고 들려줍니다. “주군이시여. 한 부자와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았지만,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어떤 손님이 왔을 때, 부자는 그토록 양과 소가 많이 있었지만, 자기의 것을 잡지 않았습니다. 되려, 부자는 가난한 자가 자신의 자식처럼 귀히 여겼던 그의 암양 새끼 한 마리를 대신 잡았습니다.”
다윗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삼하 12:5-6).
나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삼하12:7).
시편 51편 표제 에는 작은 글씨로 “ 다윗의시 , 영장으로 한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때에”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는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마음에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책망의 예리한 칼날에 깊이 찔린 다윗의 양심은 자신의 죄악의 실체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내면을 관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아만 죽이면 모든 범죄를 덮을 수 있다고 착각했던 그는...
제 6계명(살인)과 7계명(간음)을 범한 악랄한 죄인이 주께 살려달라 울부짖는 시입니다.
다윗의 표현을 유심히 살펴보면 두가지 상충되는 개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첫 번째 원칙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죄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만약 누군가가 인생들이 회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속성을 왜곡해서 이해/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개하지 않고서는 구원 받을수 없다는 것을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은 회개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긍휼이 있지 ,
회개하지 않는사람에게 침묵 하십니다. 왜? 죄 인줄 인정하지 않습니다.
“ 무엇이 잘못 된것이냐? 물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믿는 자이든 믿지 않는 자이든 죄책감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죄책감이 씨앗이 되어 진정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려는 자가 있습니다.
시편73;27-28] 만사가 어그러질 때 또는 형통할 때
시편 기자는 자신의 결론을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27절)와"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28절)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든지 아니면
멀리 하든지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일만 남아 있지 그 외의 다른 어중간한 자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결론 지었습니다. "내게 있는 진정한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안이한 시절을 약속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 넉넉히” 이길수 있는 삶을 보장 받았습니다.
롬3; 37]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서 있는 위치입니다.
삶은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 [전략]#필요합니다 .
1. 우리는 항상 하늘 곧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해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 이땅에 내려와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삶과 문제을 대면 해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을 시작 해서 안된다.
절대로 땅에서부터 시작 하지 마세요.
항상 하늘에서부터 시작 해세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각과 주의와 계획을 육체에만 집중[자기가 원하는 대로, 욕심을 따라] 시킵니다.
오죽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욕심에 따라, 자기 기대에 따라, 자기 생각에 따라 해석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을 단순히 이세상에서 돈이나 벌고 일이나 죽도록 하라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위해 살며, 모든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 이 말씀은 “너희 중에 누가 생각만으로 너희 생명을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사람들은 생명을 연장하는데 관심을 둡니다.
사람들의 행복은 돈과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수명의 길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관심과 생각과 주의를 여기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퀴리 부인은 평소에 자기가 원하던 가죽옷을 남편이 생일 선물로 사주니 아주 기뻤지만 “여보, 이런 옷은 사주지 않아도 돼요. 나는 당신만 내게 있으면 그저 기쁘답니다. 당신의 존재가 내게 가장 큰 선물이에요.”라고 했답니다.‘당신이 내게 가장 제일 귀한 존재입니다.’라는 이 말에 그 남편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라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좋아하겠다고, 그 전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주의 전에 오래 거하고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했습니다. 다른 소원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귀하시니 하나님의 집도 귀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평생 소원이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셉이 17세의 어린 나이에 팔려 왔으니 아직 젊습니다. 그런데도 죽죽 승진을 해서 그 가정의 총무가 되어 9절에 보면 그 집에서 요셉보다 높은 사람은 보디발 장군뿐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승진시켜 주어서 올라가면, 하만처럼 총리가 되면 죽습니다. 마지막이 비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면 요셉처럼 갈수록 좋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올려주시니 올라갈수록 더 잘됩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동산도 잘되고 부동산도 잘됩니다.
억지로는 안 됩니다.
영적생활에는 절대적 규칙이 있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의지하는 사람은
그 어떤 일도 우리의 평정과 평온을 뒤흔들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만일 무언가에 대해 염려하고 싶다면 너희의 영적 상태,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친밀함, 그에 대한 관계에 대해 염려하라.
이것을 첫 자리에 둔다면 염려는 사라질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시27;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시편 기자는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근거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그 원천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합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입니다.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7;14]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여호와가 비결입니다.인간 자신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믿는 확신의 비결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근심, 걱정, 눈물, 한숨, 두려움, 염려가 없지만 이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산 넘어 산이고 강 건너 강이다.”
이 세상에서는 고속도로로만 가듯이 형통할 수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에게 찬송을 받으시고 목자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고 동방박사들에게 경배를 받으셨지만 바로 애굽으로 피난가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칼에서 구원 받아 조금 마음을 놓고, 하나님의 천군천사를 보고는 “야!”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서 앞에서 죽음의 위기, 곤경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가장 위대하고 큰 일 중 하나인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이 나옵니다. 홍해가 쫙 갈라져 물벽을 이루고 서니 그 사이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 통과합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몰고 가는 새끼 양 한 마리도 잃은 것 없이 다 데리고 건너는데, 그 뒤를 따라오던 애굽 군대는 모세가 지팡이 든 손을 바다로 향하니 바닷물이 다시 엎어져 다 몰살을 당합니다.
출애굽기 15장 1절에서 21절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흥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힘, 우리의 찬송, 우리의 구원, 하나님은 높으신 분, 전능하신 분!” 하며 열광적으로 찬양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로 들어도 신바람 나는데 그때 홍해를 건넌 그들, 바다 앞에 있는 그들의 감격이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그런데 그 큰 구원, 그 큰 은혜를 받은 바로 그 다음 날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수르 광야(애굽에서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광야로 사하라 사막)에 들어서니 물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가도, 이틀째 달려도, 삼일간 찾아도 물이 없습니다.
바로 엊그제 홍해를 건너는 큰 구원을 받았는데 바로 오늘 목마르고 캄캄합니다. ‘수르’는 ‘성벽’이라는 뜻이지만 ‘캄캄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온 세상이 벽이 막힌 것처럼 힘들고, 칠흑같이 어둡고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길이다.”
그 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일 간 물이 없어 사람들이 비틀비틀 쓰러지고 죽습니다. 어른도 힘들지만 아이들이 쓰러지니 얼마나 아픈 일입니까?
그러다가 마라의 물을 만납니다. “물이다!” 하고 그 물을 마셨는데 독이 든 것처럼 써서 토합니다. 원어에 보면 그 물이 쓰고 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모세! 모세!” 하며 모세에게 대적하며 불평합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해도 안 되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는데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라왔는데 물이 없습니다. 3일 만에 겨우 물을 발견했는데 그 물마저 쓴물입니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대듭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옆에 나무가 있지? 그 나뭇가지를 물에 넣어라.”
나뭇가지를 물에 넣는 순간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단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벌써 그 쓴물을 치료할 나무를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계셨고, 사막 길을 건널 때도 함께 계셨습니다. 쓴물을 만날 때도 함께 계셨고, 오아시스에서도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될 때만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원에 속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인간은 피조 세계의 통치자입니다. 인간은 이성과 큰 능력과 기질을 부여받은 피조물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입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상황[일이 되어 가는 과정이나 형편]을 비추는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길, 다른 종류의 삶, 다른 출구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실패하지 않습니다.
지식과 영으로 고난에서 벗어나 평화와 안식과 안전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 갑니다.
전환[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꿈]과
해방[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과
이동[무엇을 움직여서 있던 자리를 바꿈]이 있습니다.
3.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시27;1]
요일1;5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시27;8 ]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벧전 5;7-9]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하나님은 단순히 기도을 들으시는분이 아니라 기도를 자극[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함]하시는분 이기도 합니다.
1] 여호와를 믿으라
이것이 인생의 출발점이다. 이방인처럼 되지 말라.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모든 것을 아시며 여러분을 지켜보심을 기억하라.그러므로 더욱 그와 같이 되며, 여러분의 삶을 그와 더욱 닮기를 구하라.
2.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라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주님은 언제나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42). “나를 따르라.” 이것은 주님의 놀라운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초첨이 되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욕구[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와
야망[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의 유일한 목적 되어야 한다.
빌3;10-14]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항상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고 교제하며 그분과 접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서 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응시 하는 것, 이것이 예배이다.
하나님의 영광고 존재를 응시 하는 것. 이것이 인생의 참된 비결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는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겠습니까?
다윗은 자기가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된 것을 알자 아들이 짓도록 자기 보물과 모든 것을 다 쏟아 준비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치고도 아까워하지 않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을 사랑하셔서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역대상 29장 28절에 보면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부귀와 영화와 존귀를 다 누렸습니다.
찬송을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하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마음도 보십니다. 우리의 찬송을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네 소원이 뭐냐?
그런데 다윗은 “제 한 가지 기도 제목, 제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의 전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있게 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귀한 것을 구한 그에게 그가 구하지 않은 만 가지 천 가지를 다 주셨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저의 한 가지 소원은 교회 사랑입니다.
저의 한 가지 소원은 교회에서 사는 것입니다.”라고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얼마나 귀한 소원입니까?
우리도 다윗처럼 찬송하고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서 다윗처럼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며 나라의 등불, 이 세상의 등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