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마치 모두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듯, 누구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2001년 3월, 첫 이메일 이후 그해 여름, 나는 일주일 동안 아담을 방문해 그의 주변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의 가족이 되어주어야겠다고.
한국으로 돌아가 단 3개월 만에 결혼을 준비했고, 결국 우리는 결혼했다.
우리의 결혼 소식에 주변은 술렁였다. 축하와 환영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설명되지 않는 의심과 염려가 함께 따라왔다. 당시 아담은 남가주 밀알선교단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고, 또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하필 아담인가요?”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나는 1998년 이후 선교 훈련을 통해 이미 미국 체류 기반을 갖춘 상태였고, 아담은 신분을 잃은 불법체류자였다. 사람들은 그 결혼에서 ‘이익’도,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영기 자매, 다시 생각해요. 아담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그 말은 염려였지만, 동시에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은 나에게는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나는 단지, 내가 믿는 선택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 선택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우리의 결혼은 한국과 미국에서 기사화되었고, 우리는 라디오와 교회, 여러 모임에서 끊임없이 ‘간증’의 자리로 초대받았다. 나는 아담에게 말했다.
“우리 둘만 무인도에 살면 아무 문제없을 텐데…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사람들의 관심은 ‘내가 누구를 선택했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아였고 장애를 가진 아담, 그를 선택한 나.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입어보지 않았던 옷을 입고 살고 있었다. 나는 늘 ‘나’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는 ‘나’가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불편했고, 낯설었고, 무엇보다 나를 흔들었다. 내가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현실 앞에서,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했고, 그 평가 위에 서 있었는지를.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불안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은 분명 축복이기도 했다.
베델한인교회의 고(故) 손인식 목사님은 우리의 결혼을 교회의 축제처럼 만들어 주셨다. 새로 지은 교육관에서 첫 결혼식을 열 수 있게 해 주셨고, 몇 주 전부터 매주 결혼식을 소개하며 성도들의 마음을 모아주셨다. 결혼식이 열리기도 전에 축의금을 미리 받겠다고 광고하시기도 했고, 실제로 원로목사님 사모님께서 축의금을 모아 주셨다. 어느 날에는 이미 모인 축의금이 있으니 필요하면 미리 주시겠다고까지 하셨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고, 신혼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선물들이 쌓였다. 그 사랑은 감히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내 안의 요동치는 갈등이 나를 버겁게 했지만, 그 시간은 분명 축복이었고 감사할 일이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교회 교육관 1층에 카페를 열어 내가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일터’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나에게 광야였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많이 울었고, 가장 치열하게 흔들렸다. 말씀을 가르치고 청년들을 이끌던 내가 커피를 만들고 음료를 파는 자리에서 ‘전도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나의 자아가 아프기 시작했다. 일주일치 카페 운영을 위해 음료수 박스와 간식들을 작은 차에 실어 나르고 정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 일을 도와주지 못하는 아담은 늘 미안해했고 가슴 아파했다. 어느 날, 부목사님이 전해준 말 한마디가 그때의 나,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혹독했다.
“세상에 나가면 더 힘들고, 더 적게 받으면서도 일합니다. 좀 더 열심히 해 주세요.”
이미 나는 그 세상에 있었고, 그 낯선 자리에서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설명할 수 없었다. 성도 중 누군가가 나의 태도에 불만을 가졌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답도, 반박도, 설명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모든 감정을 삼켰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시간, 카페 구석에 앉아 울었다. 그것은 단순한 서러움이 아니었다. 자존심이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나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카페 한쪽 자리는 나의 ‘광야’가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울었고, 기도했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뜻밖의 선물을 만났다. 유진, 주미, 지현. 대학부 학생들이던 그들이 어느 날 카페 문을 두드렸다.
“전도사님 결혼식을 지나가다 봤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대화가 되었고, 성경공부가 되었고, 삶을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그들은 나를 다시 ‘나’로 살게 해 준 사람들이었다. 광야 같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나를 붙드셨다. 그 아이들은 이제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엄마가 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삶을 나눈다. 그 시절의 만남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보화가 되었다.
서럽기도 했고, 자존심 때문에 수도 없이 울던 그 시절, 아담은 매일같이 그런 나를 위로했다. 늘 한결같은 한마디.
“영기야, 내가 아니었으면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그냥… 마음에서 힘을 빼면 돼. 너무 단단하면 쉽게 부러지지만, 부드러우면 부러지지 않아. 자존심 상하는 것쯤은 괜찮은 일이야.”
나를 살리고, 나를 근본부터 되돌아보게 한 것은 고통 속에서도 삶을 견뎌온 아담의 깊은 진리였다.
첫댓글 삶의 구비구비 얼마나 힘들었을까요ㅜ
카페 구석의 광야에 홀로두지 않으시고 뜻밖의 사람들을 통해 붙들어주시고 삶을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같이 울게 되네요ㅜㅜ
광야같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붙잡아 주셨네요~♡
역쉬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