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배 신부(인천가톨릭대)
조선소 건립 불똥에 갈등의 마을로 조선소 건립 반대하는 수녀원 주변서 일부 시민들 시위
모처럼 시간을 내 피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안내책을 뒤적이다 눈에 확 들어온 곳이 있었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먼저 수정이라는 마을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울 것 같았다. 다음은 트라피스트라는 이름이 유혹했다. 트라피스트는 엄격한 봉쇄와 관상의 대명사이지 않은가!
수정마을은 마산시 끝자락에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을을 지나 수녀원 가까이에 이르렀는데, 요란한 음악소리에 마을 주민들이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다. '마을 축제를 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는데 주위에 나부끼는 현수막에 눈길이 갔다.
"세금도 안 내는 수녀들이 무슨 말이 많은가?" "수녀는 밥 안 먹고 사나" 등의 문구였다. 뭔가 섬뜩함이 느껴진다. 수녀원에 들어와 내막을 들어보니 조선소 건립 문제로 주민들 간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수녀님들이 조선소 건립을 반대한다고, 조선소 건립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수녀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한두 번 하다 끝날 줄 알았는데 열흘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농성 중이다.
시위가 아니라 행패를 부린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의견을 전하기보다는 수녀원의 고요한 침묵을 깨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고성능 스피커를 수녀원 쪽으로 설치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요를 틀어댄다. 어느 순간 스님의 염불 소리가 들린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스님의 염불이 자신들의 주장과 어떤 관련이 있냐고….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비'를 걸고 있다.
하루 일곱 번씩 모여 기도드리는 시간이 음악소리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며칠 참으면 되지. 피정 끝나고 가면 그만 아닌가! 맞다. 남아 있는 수녀님들은? 수녀님들은 고행을 사서도 하시는 분들이니 이런 힘겨운 시간들을 오히려 성화의 발판으로 삼으실 것이다.
그런데도 왠지 마음이 무겁다. 왜일까? 조선소 건립 때문이다. 비전문가가 봐도 조선소가 들어서면 수정마을은 죽음의 고을이 될 것이 뻔하다. 지형상 독성을 품은 공기가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 정책 관계자들이 직접 수정마을에 와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굳이 조선소를 건립해야겠다면 주민 이주에 대한 대책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이주대책 없이 조선소 건립을 강행하니까 반대하는 것 아닌가?
답답하다. 아직도 힘으로, 돈으로 밀어붙이려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이에 맞서는 수녀님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이 생각난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가 골리앗을 쓰러뜨리지 않았는가!
그래서 두손 모아 주님께 기도드린다. 주님! 수정마을을 지켜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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