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12-17
12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13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4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36-40
그때에 36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을 섬기는 삶의 정수를 보여 주십니다.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2,37)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봉헌된 날, 그 자리에 함께했던 한나라는 예언자의 삶에 대해 루카 복음사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세상 즐거움과 위안을 맛본 짧은 결혼생활이 끝난 뒤에 그녀는 온 존재와 삶을 하느님께 걸었지요. 자신의 존재를 그분 앞에 두고, 온전히 그분의 소유로 살아간 것입니다.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루카 2,38)
예언자인 그녀의 역할은 하느님께서 입에 담아 주신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목소리니까요. 이제 직접 눈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본 그녀는 무엇보다 먼저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삶은 대부분 감사로 채워지게 마련이니, 그녀의 반응은 놀라울 것 없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답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거기에 더하여 직접 눈으로 본 구원을 선포하게 됩니다. 예언에 증언이 보태어진 것이지요. 세상이 아무리 번잡해지고 향락이 일상화되어도 내적 삶을 소중히 가꾸며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한나의 증언은 견고한 희망의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과 같을 겁니다. 함께 듣고 공감하고, 믿고 희망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에 이르는 길이 훨씬 선명해지니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제1독서의 말씀은 세상의 욕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1요한 2,15)·
물론 "세상"이 가리키는 중의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곳으로서의 세상은,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이 각자의 평화와 충만함을 누리는 장이기에 소중하고 거룩합니다. 동시에 세상은 온갖 욕망과 불의와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장이 되기도 합니다. 요한 서간 저자가 말하는 "세상"의 의미는 어둠의 힘이 장악한 세속을 가리키지요.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7)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쾌락, 만족은 일시적입니다. 겉꾸민 허영과 과시, 눈속임과 위선, 질시와 경쟁, 증오와 기만의 태 안에서는 슬프게도 사랑이 쉽게 유산되어 버리지요. 진실도 선함도 착상할 곳을 찾지 못해 쉬이 유실되고 맙니다. 욕망하는 무언가를 들이면 들일수록 더 공허해지는, 심연의 구렁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바로 그 "세상"입니다.
오늘 복음 속 한나는 영원히 남는 사랑에 전 존재를 던진 지혜로운 여인의 표상입니다. 그녀는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고, 철저히 하느님만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로 삶의 모든 공간을 채웁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녀를 사로잡았고, 그녀의 사랑에 하느님이 매료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시공 안에 현존하십니다.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영성체송)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이미 체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삶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재산이나 인맥, 권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은총에서 우러나는 것이지요. 진정한 행복은 주님의 충만함 안에 녹아들어가 그분 충만함의 일부가 된 영혼에게 주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한나처럼 말이지요.
신구약의 접점에서 복음 안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한 여인의 삶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길 기원합니다. 아기 예수님도 그녀와의 만남을 기뻐하셨을 것이고, 마리아와 요셉도 큰 위안을 받았을 겁니다. 그리하여 각자의 삶에서 조금씩 더 깊이 주님을 섬기는 은총으로 들어가시길 축원합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한나처럼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한 벗님을 축복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