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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5 (화) 윤석열 당선되자… 벼랑 끝에 선 '추미애의 검사들'
윤석열 당선인이 제20대 대통령으로 결정되면서 검찰의 향후 인사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돌아와 자신을 저격했던 '반윤(反尹) 검사'들을 좌천시키고 '친윤(親尹) 검사'들을 중용해 '검찰 인사 태풍'이 일어날 지가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반윤과 친윤을 떠나 능력과 시스템에 따른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윤석열 당선인이 당선 확정된 3월 10일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이규원(45·사법연수원 36기) 춘천지검 부부장검사가 사의를 표했다. 이규원 검사는 지난 2018~2019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별장 성 접대 의혹' 핵심 인물인 윤중천씨를 조사하면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원주 별장에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는 등의 내용을 면담 보고서에 허위로 기재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이 보고서를 특정 언론에 유출해 보도되도록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로 인해 기소와 징계 청구가 이뤄졌지만 직을 내려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사표가 수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거나, 중징계 절차가 진행 중일 땐 퇴직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서다.
이규원 검사가 사직 신호탄을 쏘자, 검찰 내 시선은 윤석열 당선인과 대립각을 세웠던 검사들로 향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성윤(60·23기) 서울고검장이다. 그는 현 정권에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을 거쳤다. 특히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소와 채널A 사건 등을 두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당선인과 파열음을 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의혹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오히려 중앙지검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간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의 갈등 사태다. 당시 추미애 전 장관 편에 서 윤석열 당선인 징계에 힘을 쏟은 검찰 고위직들은 '추미에 라인'으로 분류된다. 심재철(53·27기) 서울 남부지검장과 이종근(53·28기) 서울 서부지검장 등이다. 2020년 8월 법무부 검찰국장에 오른 심재철 지검장은 대검 반부패부장일 당시 보고 받은 '판사 성향 문건'을 추미애 전 장관에 제보하고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추진했다.
이정현(54·27기)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윤석열 당선인이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을 당시 징계를 주장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냈다. 한동수(56·24기) 대검 감찰부장도 윤석열 당선인 징계위에 증인으로 출석해 불리한 진술을 했다. 한동수 부장은 윤석열 당선인을 겨냥한 것으로 추정되는 페이스북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말 "(윤석열 당선인) 징계 재판 항소심에서 증인으로 채택된다면, 제가 직접 경험하고 기록해 놓은 여러 사건의 본질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하여 증언할 용의가 있다"면서 "역사의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고 적었다.
박은정(50·29기)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은 윤석열 당선인의 감찰과 징계 청구 실무를 주도했다. 박은정 지청장은 감찰 과정에서 상관인 류혁 법무부 감찰관에 대한 보고를 건너 뛰고 당시 감찰담당관실 소속 이정화 검사에게 "윤석열 당선인의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최근엔 성남지청장으로 있으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연루된 '성남FC 의혹'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임은정(48·30기)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한명숙 사건 감찰·수사 방해 의혹' 등으로 윤 당선인과 대립했다.
한편 한동훈(49·27기)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 등 과거 측근들을 중용할지도 법조계의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윤석열 당선인이 한동훈 검사장을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바로 인사하는 것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2위와 득표차가 1%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괜한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와서다.
윤석열 당선인 측 관계자는 "친윤과 반윤 프레임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정치적 목적에 부화뇌동해 정권의 이익에 맹종하는 검사들은 법 질서를 훼손했기 때문에 좌천이 문제가 아니라 범죄 혐의가 없는지 검사의 직무 윤리를 위반하진 않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면서 "적재적소에 합당한 인력이 배치되는 인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준표는 대구로, 김태호 경남… 임종석·추미애, 서울 '물망'
대선을 마친 정치권의 관심은 3월 14일 기준으로, 이제 79일 앞으로 다가온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쏠리고 있다. 대선 선거운동에 주력하던 전·현직 의원들이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며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5월 10일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 3주 뒤에 치러진다. 대선 승리의 기세를 이어가려는 국민의힘과 반전을 꾀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절박한 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번 지방선거가 ‘차기 잠룡’들의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불을 붙인 인사는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다. 재선 경남지사 출신에 국회의원 3선인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의 경남지사 차출론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해 4·7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던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세훈 시장은 이미 차기 유력주자 입지를 굳힌 상태다.
오세훈 시장과 맞불을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거론된다.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가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단일화했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나설 가능성도 있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았던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출마않기로 했다. 우상호 의원은 민주당 선대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대선을 이끌었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공백으로 ‘무주공산’이 된 경기지사 후보 자리를 놓고도 여야에서 다수의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모두 5선인 조정식·안민석 의원이 이미 출사표를 던졌다. 두 의원은 경기지사 출마를 위해 3월 12일 당에 지역위원장 사퇴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4선의 김태년 민주당 의원도 후보군으로 언급된다. 국민의힘에선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원 의원이 경기지사 출마 권유를 강하게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선대본부 공보단장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으로 발탁된 김은혜 의원이 경기지사 후보로 거론된다. 국민의힘 선대위 정책본부장을 지낸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윤석열·안철수 단일화’에 공을 세운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도 후보군으로 꼽힌다. 나경원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3월 11일 YTN라디오에서 “이번에는 좀 쉬고 싶다. 서울시장에 다시 나가는 건 명분이 있을지 몰라도 다른 단체장에 도전한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안방’인 호남과 TK(대구·경북)의 경우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대구시장에는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대선 다음 날인 3월 10일 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의원은 온라인 플랫폼인 ‘청년의꿈’에서 “나를 키워준 대구부터 리모델링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에 하방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같은 당 소속의 권영진 현 시장도 3선에 도전한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황실장으로 활약한 윤재옥 의원도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호남정치 1번지’ 광주시의 경우 재선 도전에 나서는 민주당 소속 이용섭 현 시장과 설욕에 나서는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리턴매치’를 벌일 예정이다. 여기에 정준호 변호사와 김해경 남부대 초빙교수도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전북지사 선거에는 민주당 소속 송하진 현 지사가 3선 도전을 선언했다. 현역 의원으로는 김윤덕, 안호영 민주당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경남지사의 경우 국민의힘에서는 김태호 의원의 결정에 따라 구도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인사들은 김 의원에게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태호 의원은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핵관(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인 윤한홍 의원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3선의 윤영석 의원, 재선의 박완수 의원도 경선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에선 민홍철 의원과 김정호 의원이 경남지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경남지사 출신의 김두관 의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원지사에는 강원지사 출신의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출마를 고심했으나, 차기 원내대표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당선인을 가까이서 보좌한 이철규 인수위 총괄보좌역과 이양수 전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이 강원지사 출마 후보군으로 꼽힌다. 선대본부에서 TV토론 준비를 맡았던 황상무 전 KBS 앵커도 도전장을 냈다. 인천시장의 경우 민주당 소속 박남춘 현 시장의 재선 도전이 유력하다. 국민의힘에선 최근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당선 무효형을 피한 4선의 윤상현 의원의 이름이 나온다. 이학재 전 국민의힘 의원도 3월 11일 인천시장 예비후보를 등록하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부산시장 선거에는 지난해 보궐선거로 취임한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현 시장이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5선의 서병수, 조경태 의원과 3선의 이헌승, 하태경 의원 등도 국민의힘 경선 후보군으로 꼽힌다. 제주지사 선거에는 민주당 선대위 후보 비서실장이었던 오영훈 의원이 출마할 전망이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은 3월 10일 문자메시지를 통해 “충북에는 노련한 요리사가 필요하다”면서 “충북의 발전을 위한 길에 충북의 딸 이혜훈이 함께 하겠다”며 충북지사 도전을 알렸다.
조은산… "이제 정치 글 안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시무7조'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려 주목을 받은 정치 논객 '진인' 조은산이 "이제 정치에 관한 글은 쓰지 않기로 했다"고 절필을 선언했다. 다만 그는 일상적인 글은 이어나가겠다며 "다시 그런 (정치) 글을 쓰게 된다면, 아마도 그땐 제 신분을 밝히고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이후가 될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발언도 했다.
3월 14일 조은산의 블로그에 따르면, 그는 이날 새벽 "사실 밥그릇을 다시 차고 거리에 선 지 꽤 됐다"며 "방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글자나 이어 붙이던 몸에 찬바람이 들이치니 올 게 왔는가 싶기도, 목이 따갑고 오한이 난다. 그러나 한때 쓰고 읽혔으니 이제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 곳에서 알게 된 많은 분들 덕분에 큰 용기와 힘을 얻었다"며 "또한 여러분들과 함께 2022년 3월을 맞이했음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글과는 별개로 소소한 일상 글은 이어나가겠다"며 "그 글을 통해 안부 나눴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저의 결정을 이웃님들께서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 당신이 글을 쓰지 않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올라 더욱 그렇다"면서도 "그러나 잠시 동안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살아가고 싶다"고 글을 마쳤다. 조은산은 앞서 고려시대 문신 최승로가 6대 임금이었던 성종에게 건의한 정치 개혁안 '시무 28조'를 본 뜬 '시무 7조'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 화제가 됐다. 당시 조은산은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국회에 모여들어 탁상공론을 거듭하며 말장난을 일삼고, 어느 대신은 집값이 11억이 오른 곳도 허다하거늘 현 시세 11프로가 올랐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며, 어느 대신은 수도 한양이 천박하니 세종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해괴한 말로 백성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정부 정책과 태도를 비판했다.
이어 "역사를 되짚어 살펴보건데 과연 이 나라를 도탄지고에 빠트렸던 자들은 우매한 백성들이었사옵니까 아니면 제 이득에 눈먼 탐관오리들과 무능력한 조정의 대신들이었사옵니까"라며 "소인이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뿌리는 심정으로 시무 7조를 주청해 올리오니 부디 굽어 살피시어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물론 각자의 군수들을 재촉하시고 이를 주창토록 하시오면 소인은 살아서 더 바랄 것이 없고 죽어서 각골난망해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도 했다. 조은산은 시무7조로 △세금 인하 △이성적 국정운영 △실리 중심의 외교 △현실주의적 접근 △인사(人事)의 엄정함 △헌법에 입각한 판단 △대통령 스스로 초심을 되새기며 새롭게 거듭나라는 내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관광객이 빠지고 난 후의 제주 우도… 개들의 시간
섬은 가끔 제 스스로 텔레파시를 보내 사람을 유혹한다. 섬 스스로 고독이란 DNA가 있어 견디는 일이 극에 달하면 먹먹하고, 무료하고, 한없이 나약한 영혼을 불러댄다. 올해 겨울, 제주도가 그랬다. 하릴없이 먼 곳을 응시하는 일이 많던 내 안에 바람 한 점이 훅 들어왔다. 나는 또 길을 나섰다. 천천히 랜딩기어가 작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도가 나를 불렀다는 것을 확신했다. 바람과 막막함, 낯선 풍경들이 미리 말을 걸어왔다. 말쑥한 건물과 건물 사이, 햇살이 튀어 오르는 돌담과 돌담 사이, 도랑과 도랑 사이에 거리가 펼쳐졌다. 때로는 북적거리며 사람들이 걷고 때로는 적막이 머물기도 했다. 처음과 끝을 연결하듯 반복적인 루트를 제공하듯 조용히 드러누워 있는 거리였다. 수많은 거리를 통과하여 내가 당도한 곳은 섬 안의 섬 우도였다.
성산 일출봉 아래 성산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15분 동안 배를 타고 도착한 우도. 제주도 동쪽 끝.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약 3.8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섬 속의 섬 우도. 섬 모습이 마치 소가 누워 있거나 머리를 내민 모양 같다고 해서 우도(牛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객선에서 내린 나는 여행객 무리에서 빠져나와 올레 리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희다 못해 순결하게 느껴지는 서빈백사, 우도봉과 그 아래 몽돌해변, 검멀레 해수욕장을 숨 가쁘게 돌았다. 드디어 마지막 여행객들이 다섯 시 막배로 섬을 빠져나가자 섬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다른 시간대의 두 가지 풍경이 존재했다.
첫 번째 풍경은 첫 배가 들어오고 막배가 나가는 오전 9시부터 5시까지였다. 관광객들이 해안도로와 연결된 올레길(1-1)을 북적거리게 했다. 이른바 관광객들의 시간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띄엄띄엄 자리한 앙증맞은 카페와 식당은 그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닫았다. 일몰과 함께 썰물처럼 이들이 밀려나가면 적막한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을 방패삼아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두 번째 우도의 풍경인 '개들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우도에 여장을 푼 첫날, 해가 저물고 나서는 제일 늦게 문을 닫는다(오후 9시)는 펜션 옆 식당에서 땅콩 막걸리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간당간당 터지는 와이파이로 음악을 들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세를 불린 바람이 창문을 흔들어 대고 바람에 비껴간 개들의 하울링이 파도소리에 간간이 끼어들었다.
우도봉을 오르면서 보았던 햇살에 반짝이며 하늘거리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억새풀과 다른 반전이었다. 고음에서 시작되어 주변으로 퍼지는 하울링은 내 내면 깊숙하게 숨겨놓은 원시성을 건드리면서 손가락을 간지럽게 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오지 않은 아쉬움과 일초도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긴장감 사이에서 졸음이 넘나들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다. 흡사 검청빛 새틴이 펼쳐진 듯한 바다와 그 수평선에 도열된 불빛들. 서서히 그 빛이 유리를 물들였다. 바로 창문 위에 떠 있는 달도 청빛을 품었다. 서서히 바다는 물결을 드러냈다. 나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하울링이 혹 개가 아닌 다른 무엇이 내는 소리는 아닐까, 잠깐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보다 먼저 빈 거리를 점령한 것은 개들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강아지들까지 합해 열 마리 정도 되는 녀석들은 밤새 싸돌아다녔는지 분탕한 기운을 발산했다. 앞서 걷던 커플은 개들을 피해서 거리를 벗어났지만 나는 그들 사이로 서서히 들어갔다. 펜션을 벗어나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왼쪽으로 나 있는 낮은 둔덕길로 접어들었다. 둔덕은 청보리, 마늘, 땅콩이 자라는 검붉은 흙밭이었다. 밭과 묘지 주위에 쌓아놓은 현무암 돌담은 밭보다 더 검었다. 내가 둔덕길로 들어서자 개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해안도로로 향했다. 하지만 두 마리가 내 뒤꽁무니를 따라나섰다. 녀석들은 곧 익숙한 길이라는 듯 청보리나 마늘밭에서 겅중겅중 뛰면서 싸움하듯 장난을 쳤다.
이들의 유쾌한 몸짓을 지켜보다가 지붕 낮은 인가로 들어섰다. 그러자 한 녀석이 재빨리 뒤꽁무니를 뺐다. 녀석을 향하기라도 하듯 인가에 묶인 개들이 사력을 다해 짖어댔다. 줄이 풀리면 금방이라도 사단을 낼 것 같은 날카롭고 적의에 찬 울부짖음이었다. 인가의 개가 거리의 개를 향해 짖었다. 거리의 개는 꽁무니를 뺐지만 딱히 도망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괜한 귀찮음을 피하기라도 하듯 총총히 멀어져 갈 뿐이었다. 해가 완전히 산중턱에 올라왔을 때에야 출발지였던 펜션 앞 하얀 알갱이(홍조단괴) 해변 가에 도착했다. 흡사 긴 라면 줄기를 주물럭주물럭 동그랗게 말아 놓은 것 같은 홍조단괴는 깨끗했다. 그 순백색으로 밀려오는 물빛은 그야말로 투명했다. 투명한 물빛 뒤를 에메랄드빛 물살이,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다시마 색 물살이 그 꽁무니를 이었다.
나는 물살을 보며 해안가에 앉았다. 내가 편하게 앉자 내내 나를 따라왔던 녀석도 배 깔고 등 뒤에서 자리를 잡더니 코를 골기 시작했다. 연이어 밀려오는 밀물처럼 생각 뭉치들이 발밑으로 쏟아졌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에메랄드빛 물살이 홍조단괴에 머물렀다가 뒤로 내뺐다. 적막하고 아름다워서 세상 속에 녹아들 것 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볼수록 투명한 푸른빛은 현실을 외면하려는 환상의 베일처럼 보였다. 손을 뻗어 만져보려다가 만지면 사라질 것 같아 뒤로 물러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 인가의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등 뒤 해안도로가 다른 리듬으로 소란스러웠다. 상점 문 여는 소리, 관광객이 타는 ATV 소리… 긴 밤 불 꺼진 편의점도 불을 밝혔을 것 같았다. 내 등 뒤에서 곤하게 잠을 자던 녀석은 어느새 먼발치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녀석과 나 사이에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이제 개들의 시간이 아닌 관광객의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녀석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섰다. 나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아니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등 뒤로 밀쳐 두었던 세상과 당당하게 대면할 시간이 된 것이다.
글쓴이 : 차노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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