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글밭] 06월 10일(토) '이한열을 넘어 이종창도'
1987년 오늘은 군사독재의 폭압에 저항하여 민주화의 길을 텄던 6월 항쟁일니다.
벌써 30년 전의 일로 저 밖의 지나간 역사는 이한열 열사에 모아지는 오늘입니다.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을 끌어 앉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상징처럼 남아 있으니까요.
로이터통신 기자가 찍은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이종창님을 만납니다.
오늘은 이종창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1987년 6월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생각하면 힘드니까 정리가 잘 안돼요’
‘화염병 던지고 학교 쪽으로 뛰어 가는데 정문 안쪽에 누군가 쓰러진 느낌이 들었지요’
‘쓰러진 한열이를 보고는 안전한 데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테니스장 근처까지 왔어요. 최루탄 가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 지는데
학생 두 명이 제 쪽으로 뛰어오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는 정신을 놓고 쓰러 졌지요‘
‘한열이의 아버지는 곧 돌아 가셨어요’
‘그 후 한열이의 어머니는 투사가 되어 투쟁의 현장을 지키셨지요‘
‘저를 만나면 아들 대신으로 생각한면서 손을 꼭 잡고 등을 감싸 안아주곤 했어요’
‘해마다 5월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어요’
‘6월 초에는 걸개그림이 걸리고, 9일에는 추모식이 열리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쯤은 그림이 걸려 있겠지요'
‘파란 하늘에 하얀 뭉개 구름이 떠 있는 하늘 아래,
그 그림을 보면 눈이 시리면서 마음도 시렸어요‘
'시대의 대변자가 된 부담감과 나만 살아남은 데 대한 미안함이 있어요‘
동갑내기인 이종창님은 그 ‘시린 느낌'을 이렇게 털어 놓으셨읍니다.
그 님의 삶은 이렇게 삶아 집니다.
평생 책을 읽으면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여 도서관학과를 진학했다고 하네요.
졸업하고 빈곤층에도 책을 읽을 기회를 주자는 생각에 꽂히게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달동네인 난곡동에 '난곡주민도서관'을 여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연세대 중앙도서관의 사서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매일, 그 이한열이 쓰러졌던 교문을 들락거리는 삶을 20년이나 했다고 전합니다.
그 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고, 참여하고 가꿔 가면서 지키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한열이를 잊지 마시라’고 부탁도 하시네요.
1618년, 교산 허균의 반역에서 민주주의를, 주권을 찾는 것은 무리일까요?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서 사람이 곧 하늘임을 깨닫는 것은 무리일까요?
2016년, 촛불혁명에서 통일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무리일까요?
더불어 함께였던, 하나인 우리였던 이런 역사가 바로 우리의 역사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6월항쟁과 촛불혁명은 둘 다 무지렁이 백성들의 절대 다수가 뜨거운 박수를 보냈읍니다.
참여한 님들의 손에 화염병이 아닌 촛불이 들려 있었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지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는 촛불로 기어이 평화를 이루어 냈으니까요.
머지않아 그 촛불민심은 통일의 길도 활짝 열어 제킬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튼, 이한열을 넘어 이종창도 사랑하는 촛불민심이기를 빌어 보는 새벽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