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저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위대한 스승들을 만났고 그분들을 통해 배운 것들을 (그것이 성경적인 한)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실천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재정입니다. 우리의 재정 생활을 하나님 말씀에 맞게 실천하면 하나님 말씀이 약속한 재정의 축복이 반드시 풀어집니다. 받기만 하면 축복이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거저 받는 법을 모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처음 캐리스 바이블 칼리지에 입학했을 때, 저는 너무나 많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직장에선 선생님, 교회에선 청년부 회장 누나, 등 언제나 그런 위치였기에 항상 제가 내고, 제가 사줬는데 미국에 가니 저 멀리 바다 건너 한국에서 젊은 여자가 왔다고 기특하다며 다들 저에게 사줬습니다. 미국이라고 다 더치페이는 아니더라고요. 그때 저는 얻어먹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고 어떻게 해서든 갚으려 했습니다. 거저 받는 법을 몰랐거든요. 그러니 하나님께도 거저 받는 법을 몰랐습니다.
한번은 얻어먹은 것을 어떻게 해서든 갚으려고 하다가 급한 마음에 콜로라도 눈길에서 미끄러져서 차를 인도에 들이박은 적도 있습니다. 평생 사고 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다행이 행인 없는 골목길이었고 그냥 저 혼자 인도를 들이받은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제가 크게 충격을 받고 힘들어했는데 (얻어먹은 걸 갚으러 가는 길에 왜 사고가 나는가 하는 생각에) 그즈음에 예언 사역하는 단체를 만나 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진짜 예언의 은사를 경험하는 큰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분은 딱 한 번만 기도 해 주시고 두 번은 만나 주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정말로 그런 고난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했습니다. (평생 이런 은사를 만난 것은 크리스 헤리스 목사님 이후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받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제가 저항을 하고 있다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당시 겪고 있던 모든 어려움들이 분명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주는 것"에만 익숙하고 "받는 법"을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저 받는 법을 몰랐던 것이지요. 누가 뭘 사주면 맛있게 먹고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표하면 되는데 ‘얻어먹었으니 나도 갚아야겠네...’ 하며 속으로 항상 부담을 가졌었고, 당시 유학생 신분이다 보니 나도 같은 가격으로 사 줄 수 없어서 다른 것으로 갚을 생각을 하나 보니 뭘 만들어 주거나 하는 등 힘들게 살았습니다.
오늘 내용은 항상 얻어먹기만 하고 그것이 익숙한 분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밥값 안 내기로 유명하고 얻어먹고도 감사하단 말도 없는 사람들은 전부 가난했습니다. 그런 행동은 가난한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고방식의 결과로 그런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것입니다. 만에 하나 돈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가난한 영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회개하고 변화돼야 됩니다.
오늘은 항상 사주면서 절대 얻어먹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큰 축복을 거저 누리는 법도 깨닫지 못하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항상 '받았으니 갚아야지, 많이 받은 자에겐 많이 요구하신다던데...' 하면서 마치 하나님을, 고리대금업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리대금 업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항상 얻어먹던 사람이 한 번 더 얻어먹는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항상 얻어먹기만 하다가 한 번쯤 남에게 사주는 것이 기적이고 그렇게 주고, 쓰고, 베풀 때 가난의 영(사고방식)이 떠나 기적이 풀어집니다.
이렇듯 항상 얻어먹기만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항상 사주기만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상대방의 형편이 어려우니까 내가 알아서 사 주는 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에게 항상 얻어만 먹던 그 상대방이 마침내 나에게도 베풀 때, 그때 그 사람에게 재정의 축복이 풀어지는 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런데 항상 내가 알아서 사준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축복받을 기회를 내가 차단하는 것이며 나 또한 거저 받는 방법을 알지 못해 결국 하나님께도 거저 받는 법을 배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빌려주는 것이 짐을 함께 지는 것이었다면 십자가를 통해 재정의 통로가 열린 지금은 재정적 문제가 있는 사람을 도와주되, 그 사람에게 재정의 영적 원칙을 가르쳐 주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으로 함께 짐을 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조건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진정한 도움이 아닙니다. 진정한 도움은 재정의 원칙을 알려 주고 그대로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할렐루야! 하나님 말씀의 원리를 배우고 배운 대로 실천하는 자들에게 복이 따르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