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대한민국 인재상 받은 '비보이 킬'
박인수
부모는 청각장애인…
최보식 선임기자 / 조선일보 : 2012.10.22.
"집안 좋았으면 죽을듯 춤추진 않았을 것… '호떡집 아들' 자랑스러워"
"스승님이 제 춤을 보고 상대방 죽이는 기술이라며 '킬'이라고 지어줬어요"
"동영상이나 만화책을 보고 춤 동작을 따라했어요… 중2 때 프로팀에 스카우트 됐죠"
▲ 박인수군은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 재미있어 계속 연습했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 박인수군은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 재미있어 계속 연습했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가정 형편이 좋았다면 죽을 듯이 춤을 추진 않았을 거예요. 이 길을 선택했으니 이 길로 성공해야 한다, 막말로 '난 망하기 싫어'였어요. 패배자라는 느낌을 갖긴 싫었어요."
언뜻 '가수 비'처럼 생긴 박인수(20)군을 만날 때 내가 긴장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보고 물정 아는 사람들 간의 대화가 편안한 법이다. 박군은 내 아들과 같은 나이였다. 자식과 대화하는 데 서툰 나로서는, 박군의 그 나이만으로도 가장 자신 없는 인터뷰 상대였다. 더욱이 그는 물구나무 서서 몸을 팽이처럼 돌리는 '비보이(B-Boy)'다.
박군이 교과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한 '2012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 중 한 명이 됐을 때, 자료를 보니 공교롭게 그의 아버지는 나와 동갑이었다. 아들 세대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런데 제 아빠·엄마는 두 분 다 청각장애 1급이에요. 말도 못하고 안 들리세요."
―그러면 부자 간 대화는?
"대화는 수화(手話)로 해요. 부모님의 수화는 다 알아듣지만, 제가 부모님께 복잡한 얘기를 하려면 수화로 다 표현을 못 해요. 제 수화 실력이 문제죠."
―그런 부모님이 부끄러웠던 적 있었나?
"춤을 추기 전까지는 '나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 했죠. 그냥 철부지, 어린 꼬맹이였으니까요. 우리 집은 정말 못살았어요. 부모님이 지금도 울산에서 소형 트럭을 개조해 호떡을 구워 파니까요. 제가 세상에 나기 전부터 해왔어요."
―자네처럼 멋진 비보이가 '호떡집 아들'이라는 게 알려져도 괜찮겠니? 소녀팬도 많을 텐데.
"제 입으로 '철이 들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춤을 추면서 부모님께 감사하게 됐어요. 저를 '호떡집 아들'로 부르면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예요. 어려운 형편에서 자식을 키우는 게 더 힘들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잘 키워주셨어요."
―좋은 환경이었다면 더 기회가 있지 않았겠나?
"처음에는 도움을 받겠지만, 어른이 되면 독립해야 하잖아요. 보시는 것처럼 제 몸은 유연하게 타고났어요. 제가 춤을 추며 세상 속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거죠."
―춤은 언제 시작했니?
"초등학교 6학년 때 제시카 알바가 주연한 영화 '허니'를 봤어요. 프로 안무가가 된 주인공이 불우 청소년들에게 춤으로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였어요. 거기에 '비보이'가 나와요. 그 순간에 제 인생이 결정된 거죠. 저도 춤추는 사람이 돼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멋진 공연을 해보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앞날을 결정짓는 것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제가 춤에 끼와 적성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비보이가 대중화되기 전이었어요. '댄스부'가 있는 중학교를 택해 입학했어요. 또 제가 비보이팀이 있는 청소년 문화센터를 수소문해 '춤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무턱대고 그랬어요."
▲ 박인수군이 올해 프랑스 칸에서 열린 '브레이크 더 플로어' 대회에서 우승하던 장면.
/브레이크 더 플로어 제공
▲ 박인수군이 올해 프랑스 칸에서 열린 '브레이크 더 플로어' 대회에서 우승하던 장면.
/브레이크 더 플로어 제공
―어려운 가정과 부모님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공부보다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학교를 마치면 바로 연습실에 가서 춤을 췄어요. 귀가 시간이 밤 10시가 넘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것 같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자네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나?
"매일 밤늦게 들어오니 꾸중을 하셨어요. 제게는 여덟 살 위 형이 있는데, '바깥으로 나돌지 말고 공부해라'고 막았어요. 제 적성은 춤에 있으니까, 그때 집을 잠깐 나와있었어요. 제가 춤추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다시 집으로 불러들였어요."
―문제 학생이었니?
"춤을 좋아한 것이지 그렇진 않아요.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조그만 애가 춤춘다고 하니까 우스웠던 모양이에요. 선생님은 '지금 이 시기에는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해야 될 것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고 방과 후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그 말씀이 맞아요. 중학교 때는 공부를 하면서도 열심히 춤을 췄어요."
―그 나이에 자네처럼 춤추는 친구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비보이가 길거리 문화에서 나와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춤을 추면서 만난 형이나 친구 중에서 나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한 기술을 연마하려면 적어도 한 달 이상 걸려요. 인내심이 필요하죠. 그런 참을성이 제 성격 형성에도 도움이 됐어요."
―비보이 춤은 위험하지 않은가?
"자칫 잘못하면 어깨 탈골과 허리 부상을 입을 수 있어요. 저는 춤을 추기 전에 팔굽혀펴기 100번과 많은 스트레칭을 해요. 술 담배도 안 해요. 비보이 춤을 추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섯 시간씩 연습했어요."
―누구나 그런 춤을 출 수는 없겠지?
"기본적인 동작은 누구나 연습하면 할 수가 있어요. 몸을 타고난 사람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더 낫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더 낫다고 했어요. 저는 춤을 엄청 좋아했어요.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 재미있으니까 계속 계속 연습했죠. 어느 순간 제가 잘하고 있었어요."
―고난도 기술을 어떻게 연마했나?
"처음에는 동영상이나 만화책을 보고 동작을 따라했어요. 중1 겨울에 울산에서 비보이 대회가 있었어요. 저는 출전할 실력은 못 되고, 대회장 한쪽에서 만화책에서 본 '카포에라'라는 기술을 연습했어요.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몸이 휴대폰 폴더처럼 접히는 동작이에요. 그때 울산의 비보이팀 '카이 크루' 리더가 저를 보고 '한번 키워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중2 때 그 프로팀에 스카우트됐어요."
―지금은 '갬블러 크루' 소속이지 않나?
"'카이 크루'는 울산팀이고 '갬블러 크루'는 서울팀이에요. 저는 양쪽에 다 소속돼 있어요."
―팀 이름 뒤에 '크루(무리)'를 붙이는 게 재미있네.
"이쪽은 그렇게 써요. 개인 비보이는 다들 닉네임도 있는데요. 저는 '비보이 킬(Kill)'이에요."
―죽이다?
"스승님이 제 춤을 보고는 관중을 열광시키고 상대방 기를 죽이는 기술이라며 지어줬어요. '킬'이라고 하면, 세계 비보이 무대에서도 유명해요."
―스승님도 있니?
"저를 키워준 '카이 크루'에 있는 형이에요. 제가 수제자죠. 중3 때 저는 청소년 비보이 대회에서 고등학생 형들을 물리치고 우승했죠. 그때부터 전국에 제 이름이 퍼지게 됐어요."
―호, 어떻게 했기에?
"개인 '배틀'을 붙어, 물구나무 서서 어떤 형상으로 지탱하는 '프리즈(freeze)' 동작과 바닥에 손을 짚고 뱅글뱅글 도는 '파워무브(power move)' 동작으로 이겼죠."
―자네가 말하는 배틀(battle)이란 뭔가?
"무대 위에서 교대로 나와 춤 기량을 겨루는 거예요. 기술 난도와 완성도를 보죠. 시작 전에 서로 기싸움을 합니다. 이때 상대에게 꿀리면 실수를 하게 돼요."
―세계 무대에는 어떻게 해서 알려지게 됐나?
"2009년 고2 때 프랑스 톨루즈에서 열린 비보이 대회에서 '갬블러 크루'가 출전했어요. 5명의 '팀 배틀'이 잡혔는데 그때 저를 끼워줬어요. 동영상을 통해서만 봐왔던 세계적인 비보이들과 처음 맞붙은 거죠. 그 대회에서 형들 덕분으로 우승했어요. 당시 저는 의자 모양의 '프리즈' 동작에 '파워무브'를 섞은 기술을 선보였어요. 그 동영상이 유튜브로 전해지면서 제가 알려졌어요."
―왜 자네가 주목받은 거지?
"이런 제 기술과 비슷한 스타일의 프랑스 비보이가 있었어요. 다음 해 마르세유에서 열리는 비보이 대회 주최 측에서 '둘을 맞붙여 보자'는 말이 나왔어요. 그때 '스페셜 게스트'로 초청됐어요. 승패를 가리는 정식 시합은 아니었지만, 배틀이 끝난 뒤 다들 제가 더 잘했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외국 대회에 초청을 많이 받았어요."
―얼마 전 'UK 비보이 챔피언십'에서는 한국팀 '진조 크루'가 우승했더구나. 이 팀은 5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한 차례 이상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보도됐다.
"'진조 크루'는 지금이 최고 전성기예요."
―자네가 속한 '갬블러 크루'와 겨루면?
"그때 그때 컨디션에 따라 달라요. 갬블러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세계에서도 1등이었어요. 요즘은 우리 팀 형 대부분이 군대에 가 있거든요. 예전보다는 실력이 많이 죽었어요. 어느 팀이나 잘나갈 때가 있고 주춤할 때도 있어요. "
―국제 시합에서 우승하면 상금은?
"사실은 국내 대회 상금이 더 커요. 큰 대회는 1000만원 정도 돼요. 상금 중 일부를 출전 선수끼리 나누고, 나머지는 팀 운영비로 들어가죠. 연습장과 숙소가 있어야 하니까요. '갬블러' 팀은 모두 18명이에요. 저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다섯 명은 합숙하고 있어요(현재 그는 춤 특기생으로 양산대 호텔관광학과에 재학 중)."
―손에 들어오는 수입은 얼마나 되니?
"몇 년 전까지 공연 수입이 많았어요. 하루에 두 번씩 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한 달에 대여섯 번쯤 돼요. 수입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돈을 많이 벌려고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춤을 추려고 돈을 버는 거예요. 춤을 엄청 추고 싶은데 밥을 안 먹을 수 없잖아요. 멋진 옷을 안 입을 수도, 좋은 신발을 안 신을 수도 없잖아요."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릴 수는 없겠구나.
"지금은 그렇죠. 작년 겨울에는 '배틀 오브 더 이어'라는 할리우드 영화도 찍었어요. 이 영화 제목은 실제 세계 3대 비보이 대회 중 하나예요. 영화에서는 크리스 브라운이 주연인데, 한국에서 '비' 같은 존재예요. 우리는 미국팀의 상대역을 맡았죠. 연기도 하지만, 실제 '배틀'을 해요. 팀 출연료로 1000만원쯤 받았어요. 내년 9월쯤 개봉한다고 들었어요."
―영화에서 미국팀과 '배틀'을 붙어서 이겼니?
"실제 이 대회에서는 2004년과 2009년에 '갬블러 크루'가 우승했어요. 재작년에는 '진조 크루'가 이겼어요. 비보이 기량은 한국이 최고 수준이죠. 하지만 영화 줄거리에 대해 얘기하면 계약 위반이 된대요."
―책에서 배우는 또래 나이보다 자네는 어른스러운 것 같구나.
"제가 선택한 길이니,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형들과 단체 생활을 하니까 제 나이가 제 나이 같지 않아요. 겉늙은 게 아니라 속 늙었다고 해요."
―또래에게 한마디 해주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나이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수도 있지 않니?
"당장 찾으란 것이 아니에요. 자신이 지금 해야 될 것을 하면서, 적성에 맞는 게 나타나면 해보라는 거죠. 나이와 상관없어요. 설령 40·50대라도 그걸 찾으면 꼭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