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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하루 아침에 내 친구 지민이가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불명. 아니, 나와 그 남자애는 알고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조용하게만 지내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 미쳐버릴것만 같다. 지금이 현실인지도 꿈인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얘들아, 시험도 끝났는데 오늘은 자유시간이다.”
“나이스!! 야 뭐하지?”
“다같이 게임이나 할래?”
“오키. 뭐?”
“음.. 마피아 어때?”
기말고사가 끝났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시간을 주셨고, 우리는 그 시간동안 마피아 게임을 하게 되었다. 마피아 게임이란, 밤 동안 사람들을 죽이는 마피아,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의사, 직업을 조사할 수 있는 경찰, 그리고 나머지 시민이 서로 속고 속이며 마피아를 추리해나가는 게임이다. 마피아가 죽으면 시민의 승리, 마피아가 시민을 모두 죽이면 마피아의 승리가 된다. 나는 아마 우리 반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애들중 한명일 것이다. 반에서 친한 친구라고는 지민이 한명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마피아가 걸릴 확률도 거의 제로겠지.
“자~ 그럼 마피아를 뽑겠습니다.”
사회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김민준이라는 남자애였다. 우리 반에서 가장 시끄러웠고, 내 친구 지민이랑 친한 남자애. 그리고 난 그 애를 짝사랑하는 중이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다가 점점 내게 다가왔다. 설마 그 애가 나를 고를까. 아니, 내 옆자리가 지민이여서 그런거겠지. 김민준 때문에 항상 심장이 두근거릴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줄곧 해왔다. 지민이와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른 애라고. 지민이는 예쁘고 인기도 많지만 난 그 반대.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같이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끼리 서로 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거라고. 그러니 김민준도 그런거라고. 나 같은 애 말고 지민이 같은 애들은 김민준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모두 사랑받는다고.
하지만 이런 유리같은 우정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언제나 완벽해 보였던 지민이가 난 미웠다. 차라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 적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에게 하나뿐인 친구가 떠날까봐 무서웠다. 우린 10년지기였지만 서로 너무나도 달랐다. 지민이는 나에 비해 너무 눈부셨다. 나도 남들의 눈에는 존재감 없는 지민이 들러리중 한명이려나. 지민이가 떠나간다면.. 그때의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내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발걸음 소리가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김민준의 손가락이 내 등을 건드렸다. 순간 내 몸이 움찔했다. 설마 지민이와 나를 헷갈린걸까? 왜 지민이가 아니라 나인걸까. 평소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았던 너와 나는. 이런 의심이 들게 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점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설레발을 치긴 싫었지만, 설마 너가 나를 좋아하나.
“아침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고 감고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모두가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물론 나는 나를 시민이라고 소개했다. 마피아라고 한다면 이 반에서 또 쓸데없이 튀게 될테니까.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는 죽일 사람을 골라주세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죽일 사람을 골라야했다. 누굴 고르지? 난 내 맞은편에 있는 조용한 남자애를 선택했다. 이렇게 해야 의심을 그나마 덜 받겠지, 라고 생각하며. 경찰과 의사들이 각자 조사를 하고 누굴 살릴지 결정했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는 경찰을 죽였지만, 경찰은 마피아를 조사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찰과 마피아는 서로의 정체를 알게된다. 설마 그 남자애의 정체가 경찰이었을줄이야. 그래도 이번 판은 빨리 끝나겠네. 경찰 한명이 사라져버렸으니.
“의사는 경찰을 살렸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게 아니었다. 이번 판은 망하겠네. 내가 여기서 뭘 더 할 수도 없는 상황. 그리고 딱히 나서서 주목받기도 싫었다. 그냥 빨리 이 게임이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경찰 누구야?”
그러자 내 앞에 있던 조용한 그 남자애가 입을 열었다.
“내가 경찰인데, 강지민이 마피아야.”
순간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나랑 지민이를 헷갈린 것 아닐까. 하지만 김민준은 혼자만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에이~ 뭐야, 강지민이었어? 야 더 말할 것도없다. 걍 바로 투표하자 ㅋㅋㅋ”
“응?? 아니 뭐야. 얘들아 내 말도 좀 들어줘 ㅜㅜ”
“맨날 조용하기만 한 정현진이 설마 거짓말을 쳤겠냐?”
아 맞다, 저 남자애 이름이 현진이었지. 정현진. 나와 비슷하게 조용하지만 의외로 얼굴은 반반하게 생겨서 꽤 인기있는. 그래, 나도 저런 조용한 애가 거짓말을 칠줄은 몰랐어.
결국 결과는 지민이에게 몰표, 최후의 변론 시간이었다.
“자~ 강지민은 마지막으로 최후의 변론 해주세요”
“아니 나 진짜 아닌데 왜 죽는거냐고.. 얘들아 나 진짜 아니야 믿어줘 ㅜㅜ”
“네, 잘 들었고요. ㅋㅋ 죽일지 살릴지 정해주세요.”
모두가 엄지를 거꾸로 들었다. 그렇게 지민이는 죽었다.
“...야 채민아! 안채민!”
“..? 꿈..?”
“ㅋㅋ 그래~ 너 어제 잠 잘 못잤어? 수업시간에 너무 졸던데?”
“아.. 어제 좀 늦게 자서 그런가봐 ㅋㅋ”
꿈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꿀 법한 그런 꿈. 그래서 금방 잊게 될 꿈. 그리고 날 깨워준건 지민이었다. 지민이는 언제나 밝았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까지 좋아서 나와는 다르게 항상 인기가 많았다. 난 나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성격도 조용해서 지민이와는 정반대였지만 그래도 둘이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아마 이런 지민이가 죽는 상상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10년지기 절친인 나도 마찬가지. 그런데, 어제의 꿈이 오늘, 현실이 되어버렸다.
“2025년 7월 12일, 강지민 학생이 사망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지민이의 사망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달하셨고, 언제나 시끄럽던 우리 반은 그 순간 만큼은 오직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선명히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지민이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방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자살도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지민이의 죽음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만큼 이 죽음이 비현실적 이었던걸까. 난 한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학교가 끝난 뒤 우리는 모두 함께 지민이의 장례식에 들렸다.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난 좀 더 오래 머물러있었다. 가끔은 지민이가 미웠고 질투가 나서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지만 진짜로 지민이가 사라지길 바랬던 건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 장례식이 끝날 때 까지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남자애, 정현진의 나를 향한 뚫어질듯한 시선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야, 나와.”
“어? 어..”
정현진이 옥상으로 나를 불러냈다.
“무슨 일이야?”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거라면 난 당연히 괜찮지 않다고 대답할것이다. 어떻게 내 절친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는데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괜찮다고 해야했다. 안 괜찮다고 해도 친하지도 않아서 서로 더욱 민망해질 뿐이니까.
“난 괜찮..”
“꿈 말이야.”
“..응?”
꿈이라고? 얘가 뭘 잘못먹었나.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그런 말이 잘도 나오네. 도대체 얘는 무슨 꿈을 말하는걸까.
“너 말이야, 정말로 마피아 게임을 하는 꿈을 꾼 적이 없어?”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쳤다. 그래, 지민이가 죽기 하루 전에, 분명 학교에서 잠깐 꿨던 꿈이 있었다. 그 꿈은 여느 꿈들과 같이 그냥 잊혀지는 꿈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만약 그 마피아 게임이 실제라면, 내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다. 마피아란 사람을 죽이는 게임이니까.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것이 꼬이기 시작한게.
“넌 내가 경찰인거, 알고있지?”
“그래. 네가 날 조사했으니까. 너도 내가 마피아란거, 알고있지?”
“그래. 네가 날 죽였으니까.”
어이가 없었다. 꿈이라면 이게 꿈인 것 같았다. 차라리 영원히 깨지 않는 자각몽이길 바랬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히 깨지 않는 자각몽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만큼은.
“너한테 한가지 알려줄게 있어.”
현진이 말했다.
“그게 뭔데?”
내가 물었다.
“사실 몇 년 전에 나는, 이 꿈과 똑같은 꿈을 꾼적이 있어.”
“뭐..?”
“그때는 내가 마피아, 선생님은 사회자, 반 애들 중 2명이 각각 의사와 경찰이었지. 그때는 그저 시시한 마피아 게임이나 하나보다 생각했어. 그런데 평소 우리가 하던 마피아 게임과는 전혀 다른 게임이었지. 시시하진 않았어.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 애는 반 쯤 미쳐버린 것 같았다. 확실한건 하나였다. 얘가 미쳤거나, 내가 미쳤거나, 아니면 둘다 미쳤거나.
“내가 밤마다 한 명씩 죽일 사람을 지목할때마다 그 사람은 다음날이 되자마자 가차 없이 죽어 나갔어. 물론 내가 그때까지 그 게임의 룰을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지. 하지만 숨겼어. 끝까지 모른 체 했어. 내가 죽긴 싫었으니까. 나 진짜 이기적이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게 지금 나의 상황이었으니까. 나도 조만간 저렇게 될 거였으니까.
“그럼, 경찰과 의사는..?”
“물론 경찰과 의사도 존재했어. 경찰은 마피아와 의사를 찾기에 바빴고, 눈치를 깐 의사는 매일 밤마다 자신을 살리기 바빴지.”
“그럼 사회자는? 사회자도 있었을거 아니야. 설마 선생님이?”
“아니, 그렇지 않았어. 사회자는 꿈에서 깨어나도 우리처럼 이 꿈을 기억하지 못했어. 마치 이 게임의 끝은 없다는걸 알려주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럼 김민준도..”
“아마 기억하지 못할 거야.”
문제는 그 꿈의 주기는 랜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정현진과 나는 동시에 꾼다. 서로와의 합이 중요했고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면 의사와 경찰, 그리고 마피아와의 합이 중요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의사찾기.”
“그래, 의사를 찾아야해.”
“근데 의사는 무슨 수로 찾아? 이런 죽음의 게임에서 자신이 의사인걸 밝히는 바보는 없을거 아냐.”
“..일단 사회자는 몰라도 의사는 이 꿈을 기억하고 있을거야. 사회자가 꿈을 기억해서 이 게임의 진실을 알아버리면 게임을 그만둘테니까. 게임이 계속 되려면 사회자가 있어야하잖아?”
“그렇네..”
일단 정현진과 나는 김민준을 만나러 갔다. 김민준이 지금 어디있는지도 몰랐지만 일단 지금은 뭐라도 해야했다. 김민준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야, 김민준.”
“...어?”
“잠깐 우리좀 봐.”
“...무슨 일인데? 급한 일이냐? 왠만하면 나중에 하지.”
김민준 역시 지민이와 친했던 터라 장례식장에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서 더욱 날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지민이와 누구보다도 친했던, 10년지기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지. 친구의 죽음에도 깊이 슬퍼하지 않는 내 모습이, 김민준에게는 어떻게 보였으려나. 만약 내가 이 마피아 게임의 진실을 알지 못했더라면 나도 계속 이곳에 있었겠지.
“응. 급한 일이라 그래. 잠깐이면 돼.”
내가 말하기도 전에 정현진의 입이 먼저 열렸다. 의외로 상황판단이 빠른 녀석이었다.
“뭔데 그래. 설마 지민이와 관련돼있는 일이야?”
“...응.”
내가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우리 셋은 다시 아까 갔던 옥상으로 갔다. 그곳이 가장 사람이 적은 곳이었고, 동시에 사방이 트여있어서 이렇게 서로 어색한 사이인 사람과 대화해야 할 때 딱이었다.
“혹시 너 최근에 꿈 같은 거 꾼 적 없어?”
“..뭐?”
김민준은 미간을 미세하게 좁히며 물었다. 자신도 지민이의 죽음이 이토록 충격적인데 정작 지민이와 10년지기 절친이었던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서서 뜬금없이 최근에 꿈 꾼적 있냐고 물어보는 꼴이라니. 사실은 지금은 멀쩡한게 아니라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인데 말이다.
“최근에 꿈. 꾼적 있냐고.”
“..있어.”
뭐지? 정현진과 나는 서로를 동시에 쳐다봤다. 분명 사회자는 꿈을 꿔도 기억하지 않는게 정상 아니었나?
“학교 앞 푸드트럭에서 타코야키를 먹는 꿈이었어. 대신 지금과는 다르게 엄청 행복했었다? 근데 그건 왜 물어.”
“그건 또 대체 언제 꾼 꿈인데? 다른 꿈은? 어제는 꿈 뭐 꾼거 없어?”
평소에 항상 조용하기만 했던 정현진의 질문 세례에 김민준은 살짝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없다니까. 꿨던 것 같아도 제대로 기억이 안나.”
나는 이 꿈의 진실을 김민준에게 말하기를 조금 망설였다. 안그래도 입이 가벼운 애인데 다른곳에 소문내고 다니면 어쩌지? 이 꿈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눈치인데? 순간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나아갈수 없다는걸 안다. 이 잔인한 게임에서 모두가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리 둘은 어제 꿈에서 마피아 게임을 했어. 물론 우리 둘끼리만 한 건 아냐. 우리반 전체가 다 같이 참여한 마피아 게임이었지. 내가 마피아, 정현진은 경찰이었고, 사회자는 너였어. 첫판에 지민이가 마피아로 몰려서 죽게됐고 꿈은 그렇게 끝이 났어. 그런데 그 다음날 바로 지민이가 죽었지. 원인 불명으로 너무나도 갑자기. 그리고 우리는 같은 꿈을 똑같은 날 동시에 꿨고. 좀 이상하지 않아?”
“설마 너네 둘이 짜고 나 놀리냐?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그리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난 그 꿈을 꾼 기억이 없고, 지민이가 죽은 게 우연한 사고일 수도 있잖아.”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해한다. 처음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현진이가 입을 열었다.
“너 작년에 인천에 있는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줄줄이 사망한 사건 기억해? 그것도 원인불명으로.”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완전 난리도 아니었잖아”
“그래. 난리도 아니었지. 근데 그게 우리 학교였어. 그때도 똑같았지. 꿈 속에서 마피아 게임을 진행했고 난 마피아였어. 그땐 모두가 외면하기 바빴어. 하지만 사회자이신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죽어 나가는 원인도 모르고 혼자 자책하셨지.”
“뭐..?”
“그러다가 스스로 자살하셨어. 그래서 그 게임이 끝나게 된거야. 이래도 사회자가 게임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니, 내 말이 아직도 가짜로 들리나? 증거는 충분히 있어. 원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보여줄게.”
맞다. 얘는 올해 학기 초에 전학왔었지. 잠시 잊고있었다. 전학 첫날의 정현진의 얼굴을. 다시 그 날이 반복될까 두려움에 떨던 그 모습을.
“..됐어. 뭘 보여주기까지. 그래, 믿는다 쳐. 그럼 이제 뭘 어떻게 하면 되는건데?”
“더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기 전에, 이 게임을 중단 시켜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현진과 내가 거의 동시에 말했고 우리 셋은 처음으로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이 상황이 재밌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고, 그토록 함께이고 싶었던 내 짝사랑 상대와 평소라면 말도 안 섞어 봤을 남자애와 함께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지민이의 죽음도.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미쳐있었다.
우리는 셋은 일주일 동안 의사 찾기 작전에 돌입했다. 평소라면 매일 갔을 학원도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그 일주일 동안은 빠졌고, 정현진도 마찬가지였다. 학원을 다니지 않던 김민준만은 예외였지만.
우리는 매일 인적이 드문 카페에서 회의를 했다. 하지만 의사를 찾기는 개뿔, 우리 셋의 관계에 뭐가 있다며, 삼각관계가 아니냐는 소문이 학교에서 돌기 시작했다. 대신 우리는 언제 동시에 꿀지 몰랐기에 한가지 약속을 했다. 절대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그리고 경찰은 의사를 찾는데 집중하기로. 마침내, 다시 그 꿈을 꾸는 날이 왔다.
“투표 결과 강지민은 죽었지만 강지민은 마피아가 아니었습니다.”
“에엥? 뭐야, 정현진! 너가 마피아라며? 알고보니 너가 마피아 아냐?”
“아니 그게..”
“자자, 다들 조용히 하시고! 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지민은 죽었으니 아무말도 하지 마시고!”
지금 이 꿈 속 세계에서는 지민이가 존재했다. 순간 눈물이 나올뻔 했다. 꿈에서라도 지민이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만약 이 게임이 끝나면.. 지민이는 앞으로 꿈에서라도 영영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서로 충돌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고 죽일 사람을 선택해주세요.”
이 꿈을 꾸기 전, 난 혼자 곰곰이 생각을 했다. 저번에 정현진이 사회자가 자살을 한다면, 마피아 게임은 같이 종료된다고 했었지. 그럼 마피아가 죽어도 이 게임은 끝난다는 건가?
확실히 이 꿈에서의 김민준은 이 게임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 나의 선택이 가장 중요해진다. 이 게임은 반 전체 아이들이 전부 참여했기 때문에 평소 5-6명씩 하는 마피아 게임과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아까 현진이가 몰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애를 죽이면 다음판에 현진이가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가 정한 룰이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사망자로 이 게임을 끝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가장 근본적인 고민. 애초에 우리가 왜 이런 죽음의 게임을 하고 있는거지? 마피아 게임의 마피아는 1명, 나머지는 시민이 대부분이다. 죽이는 사람은 마피아인데 왜 마피아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안달이 난 것일까.
사람을 가장 적게 죽이는 방법 중 가장 빠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피아가 죽는 것이다. 마피아가 죽으면 자동으로 시민이 승리한다. 한마디로 나 한명의 희생으로 모두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민이나 남은 죽어도 나는 죽으면 안된다고 지금껏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이제 내가 할 일은 돌아가서 지민이에게 사과하는 것, 그 뿐이었다.
나는 나를 죽였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경찰은 의사를 조사했고 의사는 시민을 살렸습니다.”
“...마피아는 자기 자신을 죽였습니다.”
꿈이 끝나기 전, 난 정현진에게 쪽지 한 개를 던졌다. 그동안 가장 묻고싶었던 것, 그것을 물었다.
‘너는 왜 처음에 내가 마피아인걸 알았는데도 지민이가 마피아라고 했던거야?’
그렇게 마피아 게임은 끝이났다.
[에필로그]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빨리 끝난 마피아 게임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 마피아 게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어. 지민이와 채민이 너가 죽고, 애들은 너와 지민이와의 동반 자살 아니냐고, 분명히 뭔가 있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소문을 짓기 시작했지. 물론, 그 소문은 오래 가지 못했어. 김민준이 있었으니까. 걔가 그렇게까지 화난 모습은 나도 처음 봤어.
너가 죽고 나서, 난 매일이 고통스러웠어. 이 마피아 게임은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끝날 수 있는건가. 매일이 물음표였어. 그리고 나를 자책했지. 지민이를 죽게 만든건 난데, 왜 너가 죽냐고. 꼭 그 방법밖에 없었냐고. 아직까지도 그게 궁금해. 꼭 그 방법 밖에 없었던거야? 너가 죽어야만.. 그 게임이 끝날 수 있던거야?
마피아 게임이 끝나는 그 꿈 속에서, 너가 나에게 쪽지를 던졌잖아.
‘너는 왜 처음에 내가 마피아인걸 알았는데도 지민이가 마피아라고 했던거야?’
드디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됐네. 그땐 널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네 옆에 있던 강지민이 마피아라고 했던거야. 그때 우리 학교에서 소문이 돌았던거 기억나? 김민준과 너와 나. 서로 삼각관계라는 소문. 사실은 그 소문이 맞았나봐. 넌 김민준을 좋아하고 있었지? 어떻게 알았냐고? 모를 수가 없었어. 김민준을 향한 네 눈빛을 봤거든.
만약 그 곳에서 너가 잊혀질까봐 걱정하고 있다면, 걱정 마. 나와 김민준이 있잖아. 우린 널 절대 잊지 않아. 그리고 다시 그 마피아 게임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꼭. 누구의 희생 없이 그 게임을 끝낼게.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이젠 너가 죽었으니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난 이 말을 너에게 꼭 전하겠어. 다시 너의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할게.
‘너는 왜 처음에 내가 마피아인걸 알았는데도 지민이가 마피아라고 했던거야?’
..널 좋아했거든. 단지 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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