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당탕탕 정글 한복판에서
은밀하게 들려오는 속삭임!
‘바보’가 되길 두려워하지 않는 자리에
비로소 피어나는 꽃
새침한 장미에게, 다정한 봄바람이 불어 오면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데 예쁘기까지! 누가 봐도 모범생인데다 쉽게 범접할 수는 없는 아우라까지 지니고 있는 나샘이는 툭하면 친구들의 시샘을 받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남모를 아픔을 지니고 있는 나샘이는 늘 연약한 속마음과는 다르게 뾰족뾰족 가시 돋친 새침함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주변 사람들을 물리쳐 내는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고슴도치 나샘이에게, 자기도 모르게 다정한 얼굴이 피어나도록 살살 마음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나샘이의 차가웠던 가슴속에 봄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건, 바로 전학 온 학교에서 바울이라는 아이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교실에서 대놓고 따돌림을 당하는 ‘혼혈아’ 바울이에게 자꾸만 나샘이의 시선과 마음이 기우는 게, 처음엔 아마도 연약한 존재를 지켜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샘이는 자신을 둘러싼 교실 친구들과 늘 어렵기만 한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더 넓고 깊은 시선을 가지게 되고, 바울이에 대한 감정이 비단 연민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은 추석날에나 먹을 수 있는 커다란 배 빛깔이었다. 머리카락은 황갈색으로 반짝였는데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눈이 훨씬 크고, 입술도 두툼했다. (...) 꼭 나처럼 다른 곳에서 살다가 온 것 같았다.’_본문 32-33쪽
저자 소개
임다솔
진한 초록이 깊고 높고 넓어진 나무이고 싶어요. 글 열매, 그림 열매 주렁주렁 맺고 싶어요.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는 『외할머니의 분홍 원피스』와 『마귀할멈 쫓아내기』, 『닉 부이치치의 점프 JUMP』가 있어요.
김세영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한겨레 그림책 학교를 다니며 그림책의 세계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그림책과 동물을 사랑하고, 지금은 고양이 폴린이와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출판사 리뷰
무해한 너의 무해한 마음
필리핀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짙은 피부색에 선명하게 까만 두 눈을 가진 바울이는 한국말을 잘 못해 말하는 것도 조금 어눌합니다. 그렇게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요. 하지만 교실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는 바울이는 겉모습 못지않게 남다른 속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어 주라’는 성경 구절이 있던가요. 바울이는 꼭 그 문장을 그대로 체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실의 말썽꾸러기 골목대장 욱진이에게 아무리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해도, 미워하기보단 오히려 앞장서서 욱진이가 가지고 있는 남모를 아픔을 들여다보고 감싸 안아 줍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바울이와 어울리면 괜히 자신도 같이 따돌림을 당할까 봐 선뜻 바울이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끝내 바울이에게 상처가 되는 거짓말을 쏟아내는 나샘이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하는 법이 없습니다. 바울이는 겉으로 자꾸 비뚤게 나오는 행동과는 달리 속에 숨겨져 있는 친구들의 ‘상처받은 마음’과 ‘고운 마음’을 알아보고, 서두르거나 재촉하는 법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믿어 줍니다.
‘그 덩치 큰 욱진이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맹수 같던 아이가 갓난아이처럼 흐느껴 운다. (...)
“욱찐아, 마음 아러. 욱진이 마니 아파.”
바울이는 그런 욱진이를 안고서는 함께 울어 줬다.’_본문 102쪽
우리가 함께 빛을 볼 수 있을까
바울이는 말합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어둠 속에 갇혀 버리고 맙니다. 그 어둠은 나와 너 사이의 단절, 그리고 나와 나 사이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타인과도, 자기 자신과도 제대로 된 소통을 이루지 못한 채 부유하는 상태이지요.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에게도 그와 같은 어둠은 찾아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 앞에서 내내 버림받은 기분을 삼켜내며 지내야 했던 나샘이, 나샘이 못지않게 커다란 외로움을 안고도 엄마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아이 같은 속내를 꽁꽁 감춰 두고 전사가 되어야 했던 엄마, 어머니의 등 뒤에 숨어 지내며 ‘어른’으로 자라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영훈이, 술에 취한 아빠에게 맞고 나면 돌이킬 수 없이 뻥 뚫려 버린 가슴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와 타인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하는 욱진이, 핸드폰 하나 가지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걸 숨기기 위해 치킨집 전단지를 돌리던 미란이. 이렇게 나샘이의 가족과 친구들처럼, 우당탕탕 좌충우돌 삶이라는 교실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번씩은 그와 같은 어둠을 마주합니다. 그런데 이 감감함 속 당장 오늘 내가 메고 있는 짐가방 하나도 버거울 때가 많은 우리가, 바울이의 말처럼 언젠가는 ‘어둠 속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요?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기 위해 가짜 말만 하다가는, 정말 그대로 되어 버리기도 한다.’_본문 90쪽
섬이 섬에게, 귀를 기울이면
나샘이는 일곱 살 어린 나이였을 때 아빠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엄마와 나샘이를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에 내내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바울이는, 어머니의 고향인 필리핀과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 그 사이 어디에서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빠의 빈자리를 어루만지며 나샘이가 감당해내야만 했던 외로움은, 그렇게 경계 사이에 서 있는 바울이의 존재감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세계, 낯선 타인과의 연결감과 그 연결감이 불러일으키는 당황스럽도록 부드러운 떨림 속에서 나샘이는 전에 듣지 못했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됩니다. 그건 바로 겉으로 드러난 것 너머, 안에 숨겨진 ‘진짜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도 바울이와 나샘이처럼 ‘꽃들이 말하는 소리, 나무가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토끼와 강아지와 같은 동물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아니, 귀 기울일 수 있는 특별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만큼 지금 이 순간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친구의 속 이야기에도 더 잘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더 잘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 더 잘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무의 숨소리는 어떤데?”
“수-아 수-아거려. 꼭 파도 쏘리 같아. 쌀 씻을 때 나는 쏘리 같기도 하고.”
바울이는 눈을 감고 말했다.
“정말 듣기가 좋아. 너무 아름다워!”’_본문 38쪽
바보가 바보에게
그제야, 깜깜한 터널 끝의 빛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우리는 모두 사실, 속에 지니고 있는 어떤 상처와 연약함을 남들에게 들키면 바스러져 버릴까 봐 애써 강한 척 껍질을 두르고 가시를 키우며 숨어 있던 밤톨이고 장미 봉오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러난 각자의 속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조금 사랑스럽고, 눈물겹고, 어리숙합니다. 어리숙하고 눈물겹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 손끝에서, 꽁꽁 꼬여만 있던 관계들이 마침내 가시를 거두고 기꺼이 향을 내어 주는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납니다. 이제 도시 한복판의 어지러운 너와 나의 정글은, 한 뼘 두 뼘 자라나는 아름다운 화원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바울이는 어쩌면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겸손하고 다정하며,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한없이 낮은 곳에서도 마치 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친구들을 감싸 주지요. 어쩌면 그야말로 ‘신의 현현’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신조차도 이야기하기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존재들입니다. 작은 존재가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선은 사실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물을 주어야 토마토가 가장 잘 자라듯,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엔 그저 지속적이고 진심 어린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듯, 우리가 주변을 돌보는 다정한 마음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나만의 아픔과 두려움이라는 껍질 속에서 벗어나와 서로가 ‘바보’이길 자처하며 기울이는 귀야말로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연결해 주는 끈이고, 맞잡은 손이야말로 우리가 ‘작은 존재’로서 ‘커다란 마음’에 이룰 수 있는 길일 겁니다.
‘“우리 반은 아름다운 행운목 꼬시 피는 꾜씰이에요.”
또 저 구겨진 발음을 하는 바울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바울이를 바보로 여기지 않을 것 같은, 아주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_본문 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