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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종교개혁
평창올림픽 기념지폐 2천원권이 완판이라는데, 종교개혁500주년 기념주화는 판매율이 어찌 될지 모르겠네.헌금함에 동전이 땡그랑하고 떨어지면 연옥에 있는 가족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중세 로마교회 가르침이나, 기념주화 사이트에서 마우스클릭 하는 순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에 동참한다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음?
#20220919
#신앙고백 #사도신경 #성령
Πιστεύω εἰς τò Πνεῦμα τò ἅγιον,
Credo in Spiritum Sanctum,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나는 聖靈을 믿으며,
聖靈을 믿사오며
성령께서는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세 위격 중 한 분이시며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오시고 성자와 연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에 완전충만하게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시자 예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 불리신다. 성령께서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혼돈하고 공허한 땅과 수면 위를 운행하시고 그리스도의 인성의 선포를 따라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는 능력을 발휘하셨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나실 수 있도록 그분의 영원 전 영광의 인성을 한없이 낮추시고 그리스도의 인성의 생육성장과정을 돌보시며 서서히 각성시키셨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인성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한시적으로 주님께로부터 천지만물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권한을 부여받으시고 마치 천지만물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변함없이 만물을 붙드셨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던 마지막 순간에만 잠시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역할을 중단하셨으나 주님께서 죽으신 후에는 시신이 썩지 않도록 보존하시고 부활하실 때까지 주님의 영혼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을 견딜 수 있도록 붙들어주시며 3일째에 주님의 인성을 부활시키시고 부활하신지 40일 째에 주님의 인성을 성육신 시키셨던 그 능력으로 주님의 인성을 하늘로 올리시며 이전의 영광과 권세를 회복하게 하셨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주님의 인성의 보좌를 휘감는 무지개 빛 일곱 영으로 계시며 주님의 인성의 의지와 지시를 따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보혜사로 보내심을 받으시고 성도들의 영에 거하셔서 성도들을 거룩한 성전으로 삼으신다. 성령께서 양자의 영이시라 불리시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양자 된 성도들의 영에 거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을 인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받은 자라고 모독하지 못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의 유일한 구주시라 고백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영에 날때부터 심겨진 믿음의 씨앗을 틔우시기 위해 필요한 모든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시다가 적절한 때가 되었을 때 싹이 나게 하셔서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인식하고 자각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신 유일하신 구주라고 고백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그렇게 성도들의 중생을 위한 믿음의 씨앗을 틔우시는 것으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틔우신 믿음의 씨앗이 지속적으로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돌보신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의 의지를 거스르신다거나 강압적으로 하신다거나 일방적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 자신의 자원함과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혼동할 수 있는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의 심령을 감동시키셔서 자라게 하신다. 성경을 더 알고 깨닫고자 하는 마음과 성경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감동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성령께서 사람에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신다는 것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성령께서 사람이 성경을 아는대로 행함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고 구원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땅의 사람에게 성경을 알아간다는 것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킨다는 것 외에는 육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고, 성경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유익이 없는 것을 넘어서 도리어 많은 것을 손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성경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성경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성도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난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데 이 고난과 역경을 능히 견고하게 인내할 수 있는 것도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배제하신채로 견뎌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의 의지를 불러 일으키셔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게 하시므로 성도의 견고한 인내의 삶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자 전적으로 성도의 의지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탄이 광명한 천사를 가장하듯이, 성령의 감동을 가장한 거짓된 악령의 감동도 존재한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성경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더불어 주시는데, 악령은 교묘하게도 둘 중 어느 하나를 부정하거나 소홀히 여기게 하고 다른 하나만 지나치게 추구하게 한다. 성경에 대한 지식과 해석과 열정은 누가 봐도 성령의 특별한 은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될 정도로 탁월한데 정작 말과 행실은 성경을 아는만큼 행하려 하지 않거나 개차반인 자들은 성령이 아니라 악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비록 지탄받을만 하더라도 자기들에게는 성경에 대한 지혜와 지식과 열정이 남들보다 더 특별하다는 것으로 구원의 확신과 위안을 삼으며 자기들의 성경 지식으로 죄악된 행실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야고보 사도가 책망한 바와 같이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 불과하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믿음을 주시므로 죽은 믿음은 당연히 악령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성경에는 관심도 열망도 없고 교회활동에만 지나치게 전념하는 자들도 성령이 아니라 악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자들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성경 지식으로만 만족하고 스스로 더 넓고 깊은 지식과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교회의 예배와 기도와 찬양과 봉사 등의 모임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열심히 참여한다. 그런 자들은 자기들의 열정적인 행위를 내세워 성경을 외면하는 죄를 메꾸려 하지만 장님의 인도를 받는 장님에 불과할 뿐이다. 악령의 감동을 받은 이 두 부류의 교인들은 어찌보면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은 둘 다 성경을 무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행위를 무시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과 교훈과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고, 지식을 무시하는 자는 성경의 권위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부류의 악령들린 자들은 공통적으로 성경을 무시하기 때문에 자기 감정과 경험과 가치관과 이념과 신념 등을 앞세우면서도 교묘하게 신앙으로 위장하는데 매우 능하다. 그래서 유명 교단에서 개혁주의를 가르치며 기독교 세계관을 강조하는 신학 교수이면서도 인성파탄자 커뮤니티인 일베 게시물을 퍼뜨리기도 하고, 성경 강해에 능한 개혁주의 목사이면서도 전후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혼자 오해하고 혼자 정죄하고 혼자 용서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벌이기도 하며 개혁주의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면서도 마치 이 땅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를 이루고 보존하는 것이 개혁주의의 목적인 양 열심당원스럽게 행하기도 한다. 한편 성경지식을 무시하는 자들은 성경에 대한 분별력 자체가 없으므로 목사가 여신도의 속옷을 내려보라 하건 자기에게 까불면 하나님도 죽인다고 하건 남북통일을 위해서 북한주민 2천만명을 하나씩 끌어안고 죽자고 하건 그저 자기 신념과 합하니 하나님의 종인줄 알고 맹종한다. 성경을 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이라도 뜻밖의 희생을 당하게 되면 깊은 측은지심을 가지게 마련인데, 성경을 무시하는 악령들린 자들은 대의명분을 이유로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므로 30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한꺼번에 구조받지 못하고 물에 빠져죽어도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서슴없이 조롱하고 저주하고 비방하고 악담하고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20210919
#신명기 #Deuteronomy 32:1-5
제 32 장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이 교훈의 노래를 듣고 익혀야 할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늘과 땅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고 먼저 선포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귀에 거슬리는 내용이라서 그들이 그리 달갑게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설령 이스라엘 중에 단 한 명도 이 노래를 듣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명이 없다고 생각되는 하늘과 땅이 이 말씀의 증인이 되어 명확하게 증거할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전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보이는 천지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하였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서 그들의 전하는 복음을 거부하는 동네에서는 발의 티끌을 털어버려서 복음을 거부한 동네라는 증거를 삼았다. 친형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은 죽어서 흘린 피로써 여호와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왕이여 라며 고백하였다. 기록매체와 인쇄술 등의 발달로 기록 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은 그 자체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가 된다.
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비나 이슬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역에 내리고 맺히므로 유익한 생물들은 유익한 것을 내는 반면에 가시덤불이나 엉겅퀴 같은 해로운 생물들은 비와 이슬을 흡수해서 해로운 것을 내게 마련이다.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복음도 비와 이슬과 같아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건 악하고 불의한 사람이건,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선택함을 받은 사람이건 버림받은 자건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주어진다. 선하고 의로운 성도들은 이 복음을 받아서 자신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반면에, 버림받은 악인들은 이 복음을 받아서 자기들의 탐욕을 위해 악용하여 세상을 해롭게 만드는 사탄의 열매를 맺을 뿐이다. 신령한 복음과 거룩한 교회를 가지고서 돈벌이와 정치권력과 인기와 이성을 탐하는 목사와 장로와 교인들은 모두 영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마침으로써 그리스도와 세상에 해를 끼치는, 창세 전부터 버림받은 악인들에 불과하다.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모세는 자신이 전파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듣는 이들이 모세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면 안되고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영광과 위엄을 돌려야 된다고 가르친다. 아무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능력이 범접할 수 없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시기 위해 그런 능력을 부여하신 것이므로 전하는 자는 물론이거니와 말씀을 듣는 이들도 전하는 자가 아니라 그 대상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다. 사도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이적을 행했을 때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목하지 말고 그 능력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어느 섬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섬 주민들이 자신들을 신으로 섬기려 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가로막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특정 복음사역자들을 따라서 파당을 만드는 것을 심하게 질책하였다. 루터나 칼빈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신앙개혁가들은 자기자신에 대한 이야기 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오로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전하는데에만 온 힘을 기울였다. 따라서 그런 신앙개혁가들을 기린다는 미명하에 그들의 형상을 세우고 기념주화를 만들고 연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신자들의 육체의 소욕에 따른 그릇된 종교심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크다. 성령께로부터 기이한 은사를 받은 신자들도 그 은사로 교회에 많은 유익을 끼치면서 그 공로를 자기가 가로채서는 안되고 아무리 그 은사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를 떠받들려 한다 할지라도 강력하게 거부하고 오로지 그 은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참되게 믿어 토대로 삼아 순종하는 것만이 반석 위에 지은 집 같아서 비가 오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으며, 복음 이외의 모든 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허망하다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집의 모퉁이돌이 되시므로 그분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안전한 신앙의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주시나, 그분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 위에 떨어지는 바위가 되어 그들을 부수어 버리신다. 어떤 시편 기자는 의인들이 화를 당하고 악인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시험에 빠질 뻔 하였으나, 결국에는 악인들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를 깨닫게 되어 하나님의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섭리를 찬양하였다. 어떤 선지자 또한 마찬가지로 세상에 악이 관영한 것을 보며 도대체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내버려두실까 한탄하다가 하나님의 큰 일을 깨닫게 되어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간구하였다. 선지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오직 자기 혼자 남았다면서 한탄하였다가 여호와께로부터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 명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욥은 자기가 왜 이렇게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거의 절망에 빠질 뻔 하였으나 여호와께로부터 그분의 광대하심을 듣고서 회개하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악인들과 거짓 선생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활개를 치며 불법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습에 울화가 터지는게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저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를 우리는 알기 때문에 저들의 악에 시험들 이유가 없이 오로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심판이 이뤄지기만을 간구하면 된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 여호와의 율법을 받고서도 스스로 악을 행하다가 회개하여 돌이킨 자는 삼손과 솔로몬과 므낫세 밖에 없다. 율법 시대에는 이렇게 아주 희귀하게 악에서 돌이킨 자들이 있었을지라도 에수님께서 오신 이후 복음 시대에는 성령의 복음을 한 번 받고 맛보고 유익을 체험하고서도 저버린 자들은 두 번 다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사도들이 단호하게 규정한다. 교회에 심긴 악인들은 드러내놓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지는 않고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마귀와 같이 겉으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런 악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자의적으로 왜곡되었고 그들의 행위는 복음을 거스르기 일쑤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악인들의 죄악을 지적하면 자기는 아직 연약해서 그런 것이라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교회에서 정치적 선동을 일삼고 그릇된 이념주의를 복음으로 그럴듯하게 위장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고 악인을 의롭다 하는 직분자들과 교인들이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하여 악을 행하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잡아 끌어내려 십자가에 다시 못박으며 짓밟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인 것이다.